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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200화 (200/217)

[200화]

치르체가 강단에서 말한 이야기는 토론의 탈을 쓴 전도였고 논리의 탈을 쓴 비틀린 신념이었다.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랬는데, 아프 넌 어떻게 생각해?’

[개소리라기보다는. 전도를 위한 강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신은 그런 것이니까.]

‘완전무결을 바라지 않는 건가? 어렵네. 진짜 모르겠어. 그런데 네 말은 이해가 되기는 하네.’

[리퀴두스님께서도 너와 이야기를 하는 게 괜히 신선하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이 있다면 기탄없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치르체의 저 말 이후에 돌아가는 상황도 묘하기 그지없었다.

‘왜 나는 저게 사기를 치는 것 같냐는 말이지.’

[실제로 통하고 있느니 인간들의 어리석음이란.]

아프나 자신에게 이 공간 내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는 너무나 명확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듣기로는 되도 않는 소리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합리적이고 그럴듯하게 들린 듯했다.

[그리고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긴,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토론을 한다고 했지?’

“범 교수님께서 오셨는데,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지요?”

짜고 치는 듯한 모양새가 별로 보고 싶지 않던 차에 고맙게도 질문이 날아왔다.

“토론의 주제가 ‘신이 있는데 왜 우리는 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가?’ 지요?”

“네! 정확하십니다.”

“그런데 그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건 그들의 주장이구요.”

“음. 그렇습니다. 하지만.”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아니라고는 차마 하지 못 하는 치르체였다.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거기에 그 신들은 치르체 학생이 말하는 것을 본다면, 인간이 경지를 넘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구요.”

신전 대다수가 이야기하는 주제였다. 본래 신이었던 존재가 인간으로 화하여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왔다는 주장.

이제는 ‘신’이라고 불리지만 인간이었던 때의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있기에 펼치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쌓아서 이룬 것이 본래 그들의 경지를 찾은 것이라면, 그들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당연히 신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찾아왔죠.”

5계로 나누어진 세상의 이야기가 저렇게 와전되어서 전승되어 있었다.

“능력만 가져오고 그 세계에서의 기억은 가져오지 못했나 보죠?”

“그게 무슨?”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 세상에 왔을 때 서로 반목하고 성전을 일으킬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건!”

“거기에 더해서 인간들만의 신이라는 게, 그럼 다른 지성체들은 다른 신이 또 있나요?”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치르체와 함께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리고 신인데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네요? 아무리 각자 분야가 있더라도 말이죠. 권능도 이곳은 침범하지 못하구요.”

답답해 죽으려는 치르체와 점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갈 때 나선 것은 그 옆에 서 있던 오르지아였다.

“범 교수님은 신에 대한 인식이 너무 과한 것 같군요.”

담담한 신색으로 말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적의는 숨길 수 없었다.

“너무 과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죠. 이 땅에 인간을 불쌍히 여기어 내려오신 신들이니 당연히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 제한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분들께서 자신들의 힘이 너무 강대하기에 스스로를 억누르신 것일 뿐입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힘도 통제를 못 한다는 소린가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 오르지아였다.

“그분들의 온전한 힘이라면 안타까운 발 구름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죠.”

“아직 오르지아 교수님께서 경지에 올라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네요. 7서클만 되어도 의지에 따라서 육체가 완벽히 제어됩니다.”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는지 담담했던 신색이 무너진다.

“거기에 8클래스는 더 하겠죠? 그리고 감정의 요동 또한 조절이 가능하죠. 그렇다면 9서클은? 아니 그를 넘어선다면? 필멸자를 넘어선 신이라면?”

경지가 오를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인과라고 부르기도 하고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것.

그것을 대하는 자신의 자세에 따라서, 살아온 삶에 따라서 자신의 길이 달라진다.

아직 현경에 갓 오른 자신조차 느끼고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는데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육체를 다루지 못한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신’이라고 칭하여지는 이들이 어떻게 그 경지로 올라갔나를 토론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요?”

“교수님께서는 이상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오신 것 같네요. 혹시 신전에 안 좋은 기억이라고 있으신가요?”

“아뇨. 대부분의 학생도 아는 사실을 오르지아 교수님이 모르시는 게 의아하네요?”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넌 이미 죽었다!]

“저는 몽상가로 불리던 분의 제자로 세상에 나와서 오히려 더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몽상가라는 분의 사상이 의심되네요. 아니면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닌 꿈에 살던 분인가요? 태양은!”

“조금 토론이 과열된 것 같군요. 오늘은 이만하도록 할까요?”

그 말을 끊은 것은 오히려 치르체였다. 누가 교수고 누가 학생인지 헷갈렸다.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서 나가는 이들이 모두 건물을 빠져나가자 남아 있는 것은 치르체와 오르지오 뿐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신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으신가 봐요?”

죽일 듯이 노려보는 오르지아의 옆에서 평온한 신색으로 말하는 치르체.

‘주와 종이 이렇게 또 명확하게 보일 수가 있나.’

“아니. 별 생각 없는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것. 그게 끝인데?”

“그러시 것 치고는 조금 공격적이라고 느껴서요.”

“그렇게 느꼈다면 오히려 너무 민감한 것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신이 있으니까.”

“언제 한 번 시간을 내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네요.”

“응? 아냐. 생각보다 간단한걸? ‘신’을 인간의 생각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건 신이 아니다.”

재미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르지아는 오히려 분노가 가라앉았다면, 치르체는 담담한 기색이었지만, 언짢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그 둘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에 학장의 호출이 있었다. 학장실로 향하는 길.

“의외로 오르지아는 신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흑색거성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아니, 반감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래 봐야 한편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신에게 맹종하고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치르체에게 맹종하고 맹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치르체. 걔는 학생이 아닌 것 같고.”

[나도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조금 자주 만나라!]

“안 그래도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학장님도 뭔가 생각이 있나 보지.”

동아리 건물에서 치르체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꼈다.

“마법이 부(部) 검술이 주(主)라고 했지?”

[감개가 무량하다! 멍청하기만 하던 아이가 자라나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너도 느꼈다면 더 확실하다는 건데 말이지. 학장님은 알고 있으려나?”

[아마 모르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아래는 보이지만,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단단하게 굳어있는 5개의 서클. 무엇인가 서클들을 단단하게 조이고 있었다.

“저 방법이 마법진을 뚫고 들어온 방법인 것 같은데, 감이 안 오네.”

[학장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우선은 물어봐라!]

노크를 하고 나서 들어간 학장의 방에는 한결 밝아진 학장의 모습이 있었다.

“오늘 한 건 했네? 분위기가 확실히 조금이지만 반전되었다고 하던데?”

“근데 학장님. 이 마법진에 대한 건 학장님이 관리하죠?”

순식간에 굳었다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얼굴이 펴졌다가, 변화무쌍한 학장님의 표정.

“밖에서 권능을 차단하는 마법진. 조금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진짜. 흑색거성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알려달라고 하는 건 얼마나 뻔뻔해야 하는 거냐? 아니, 애초에 아는 사람도 몇 없는데.”

아프를 한 번 보더니 혼자 고개를 갸웃한다.

“영왕님들 중 한 분이 알려주었다고 하더라도, 관리하는 게 학장이라는 건 또 누가 알려줬을까.”

말을 하면서 의자에 앉는 학장. 다시 한번 자신을 보더니 이내 손을 책상 위에 얹었다.

“내가 말했지? 학장 자리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많다고.”

책상에서 시작된 마나의 일렁임이 순식간에 방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그중 하나가 이거지.”

문과 창문이 전부 닫히고 방이 어두워지자 흑색거성의 전경이 담긴 지도가 방 중간에 떠올랐다.

“흑색거성을 중심으로 지하도, 하늘도 감싸고 있는 마법진. 진짜 어마어마하지 않아?”

확실히 보는 것만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무언가 있었다.

“학장이 반드시 마법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비어있는 공간이 없는 것 같은 마법진. 더 놀라운 것은 마법진이 움직이고 있었다.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경지가 오를 수밖에 없지. 진짜 말이 안 나오는 마법진이라니까.”

종종 작은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권능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움직임이지. 깨알 같은 파동이 끝이지. 그래서 알고 싶은 게 뭐야?”

“권능의 방어. 이 부분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권능을 지닌 사람이 들어올 방법이 아예 없을까요?”

“응? 흐음. 기다려 봐.”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서는 책상을 조작하는 학장님.

“사람이 생각하는 게 비슷해. 아니, 궁리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책상 위로 수많은 자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책처럼 떠오르기 시작한 자료들 그중에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권능이 이 땅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 예방책을 만들려고 하는 건가?’

“이게 내가 학장이 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지. 모든 자료를 볼 수 있다는 점.”

몇 개의 책이 한쪽에 쌓이기 시작하고, 다른 자료들은 다시 사라졌다.

“여기. 이것들이 네가 물어본 질문을 똑같이 궁리했던 흔적들.”

한쪽에 쌓여있던 책들이 한 장 한 장 펼쳐지더니 정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안 되는 것들을 제외하고, 아직 검증이 안 된 자료들을 제외.”

“제외하지 말고 다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말투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학장님이었다. 그리고 몇 개 설명이 지나고 나서.

“이건 사실 상상으로 써놓은 건데. 권능을 봉인하고 들어오는 방법이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렸다.

“그러니까. 권능이라는 게 부여받는 거잖아? 그럼 그 대상이 다시 가져갈 수도 있겠지?”

그런 경우가 드물게도 있었다. 그리고 권능이라는 것이 통치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한 건데, 권능을 회수해가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봉인하는 거지.”

“봉인이라면…?”

“대가가 필요한데, 그걸 개인의 역량으로 설정했더라고. 그러니까 마법사면 서클을 봉인하는 식으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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