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500명이 가득 차 있는 강의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집중하고 있는 공간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나같이 공손히 인사를 하며 빠져가나는 아이들 중에 한 소녀가 편지를 건네고는 빠져나간다.
“이걸 나에게도 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거야 교수님도 좋은 타겟이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요?”
고급스러운 필체로 적힌 편지의 내용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아젠스가 조용히 나타난다.
“기척을 죽이는 게 그렇게 어설퍼서 되겠어?”
“솔직히 교수님이니까 이렇게 쉽게 들키는 거지, 원래 안 그렇거든요!”
“꼭 그런 이야기를 하는 놈들이 능력 부족인 것 같더라?”
“진짜 두고 봐요. 분명히 이런 인상이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엄청 있어 보였는데.”
“들린다.”
“들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여기요.”
“벌써? 수업 중에 만든 거야?”
“에이. 미쳤다고 수업 중에 만들어요. 교수님 수업인데? 이런 건 후배를 시키는 거죠.”
“자랑이다.”
손에 쥐어진 서류에는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보강되어있었다.
“도대체 왜 이대로 내버려 두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아픈 손가락이니까요?”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해 준 게 많아. 손해는 가득하고.”
“그래도 딸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젠스의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기적인 거지. 아니면 자리에서 물러나든가. 멍청한데 욕심만 많고. 하긴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니.”
“그래도 성은 못 받았잖아요?”
“그것까지 했으면, 가주직도 포기해야 했을걸? 그러니까 이기적이라고 하는 거지. 교수할 주제도 안 되잖아?”
“안 된다기보다는 조금 간당간당한 거죠.”
“오르지아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성 성주의 권력이 역대로 연약하게 된 이유. 현 성주의 사생아.
“솔직히 포기할 만도 한데요. 그쵸? 성주의 사생아가 신을 믿는 다라.”
그리고 치르체의 스승이자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다. 자신의 삶이 운명이었다며.
“아직 믿는 건 아니니까. 아니려나.”
“솔직히 신보다 치르체를 더 믿을 것 같은데요? 천재의 인정이었으니.”
아카데미에 공공연하게 오르지아에 대한 무시가 퍼져있었다.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그게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은 안 하지.”
자신의 능력 때문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질투와 환경을 탓하는 오르지아.
그 기간 내내 교수가 주는 명예를,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모르고, 놓지 못하고 있다가 등장한 천재.
그것이 바로 치르체였다. 마법을 가르치는 교수 모두가 탐내던 천재.
그 천재가 치르체를 스승으로 삼는다고 했을 때, 학장마저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치르체를 숭배 가깝게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했지.’
“그거 가실 거예요?”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 아젠스의 말이 들려왔다.
“가야지. 그냥 깽판이 답인 것 같기도 하고. 왜? 너도 가고 싶어?”
자랑스럽게 품 안에서 똑같은 편지를 꺼내는 아젠스. 얼굴에 의기양양이 써 있었다.
“하! 저도 아카데미에서 인재 취급받는 몸입니다!”
“그래 봐야 말석인 주제에.”
“제가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이 순위도 적당히 조절해서 선택한!”
“숨기고 있어도 그 정도 이상은 해야지. 쯧. 아직 멀었어. 2주나 넘게 배웠는데도 아직 형도 다 못 외우고 말이지.”
뭐라고 반박하려고 하던 아젠스의 입이 쏙 들어가면서 다시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그걸 누가 한 번에 외운다고, 오지게 복잡하게도 만들어놨으면서.”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 근데 뭐 어쩔 수 없잖아?’
수호유술. 가장 먼저 배운 식이 존재하는 무예였다. 그렇기에 애착 가는 무예.
제압을 목적으로 하는 박투를 가르쳐달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아젠스의 행태에 문득 떠올라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바람의 탑]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개방한 산들바람과 유술을 섞었다.
2주가 걸린 이유기도 했다. 결과로 탑이 없는 이가 배우기 위해서는 꽤 복잡한 식이 탄생했다.
“그래서 복잡해서 싫다고?”
“아닙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순식간에 밖으로 나가는 아젠스. 덕분에 심심할 일은 없었다.
“꽤 재밌는 놈이란 말이지. 그치? 고귀한 새님?”
[아카데미 인간들은 참 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도도한 표정으로 어깨에 앉아있는 아프에게 학생들은 선망의 눈빛과 함께 고귀한 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 하기는 한다만, 그렇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강의를 시작하기 전, 아프가 추천해준 방법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그냥 여기에 가서 생각한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오라니.”
[네가 가진 신에 대한 개념과 관념이 의외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다!]
“내가 가진 신에 대한 개념이라.”
태어난 세상에서 신이란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 홀로 존재하며 완전한 존재라고 배운다.
[네 세상의 역사가 1000년밖에 안 되었고, 신의 개입이 직접적인 세상이라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리퀴두스님과 함께 생활하며 이 세계에 적응할 무렵, 나눈 대화 중 하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신의 개념이 신이라는 존재에 가장 근접했다고 하셨나.”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알 수 없는 것이 신이라고 단언하셨다. 실제로 신벌 이전에는 그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는 것에 그쳤다!]
“그 어렴풋이 인지하는 것도 드래곤이라 가능한 거였지. 근데 이 세상도 같이 분화되었잖아?”
세상을 하나씩 거칠 때, 알게 된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 비밀이 되고 잊혀진다는 것이었다.
태초에 본래 하나였던 세상이 5개의 차원으로, 그리고 수많은 세상으로 나뉘었다는 상식은 세상의 비밀이 되었다.
[그걸 기억하는 인간은 이제 없을 거다! 거기에 이 세상은 신의 간섭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
“그러니 그 드래곤이 다른 생각을 했다 이거구나. 하나의 세계를 닫을 정도면 정말 신이라고 생각하겠네.”
[실제로 드래곤은 신으로 섬기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응?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건 그럴 때마다, 기미가 보일 때마다 철저하게 발본색원해서 그렇다!]
‘지난 때의 과오 때문인가? 그래도 진짜 무섭네.’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기록조차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슬슬 준비하러 가자!]
“준비는 무슨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면서, 아니 뭐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데?”
방금도 먹고, 수업 시작 전에도 받은 음식들을 먹고도 또 들어갈 배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원래 간식 배는 따로 있는 거다! 그리고 배가 불러야 뭘 해도 제대로 한다!]
“예. 예. 그러시겠죠오.”
[말투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봐주도록 하겠다! 어서 움직여라!]
찡얼거리는 아프를 데리고 저녁을 먹은 뒤 바로 치르체가 초대한 곳으로 향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치르체가 돈이 많아?”
[오르지아가 거의 다 지원했을 거다! 좀 제대로 읽어라!]
아카데미의 넓은 대지 중에서 일부분은 동아리를 위해서 할당이 되어 있었다.
동아리를 개설하고,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짓는 것까지 학생들이 알아서 해야 했다.
개중에서는 동아리들을 위해서 임대하는 동아리도 있으니, 아카데미에서 세상을 배운다는 말이 맞았다.
“근데 이거, 좀 거시기하다?”
눈앞에 보이는 진리와 믿음이라는 이름의 동아리. 그 건물의 양식이 묘했다.
[네가 푸룸 시티를 다녀오고, 판테온을 다녀와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천공의 신전이나 사속성 신전처럼 공개적인 신전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폐쇄적인 신전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신전이 희망의 신전과 태양의 신전. 그중에서도 태양의 신전이 가장 베일 쌓인 신전이었다.
사람들이 추측하기로 천공의 신전의 하위 신전이 아닐까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신의 자리에 오른 이가, 무엇 하러 다른 신을 섬기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건물은 신전이었다.
“천공의 신전이랑 태양의 신전을 절묘하게 합쳐 놓은 그런 느낌인데 말이지.”
[동아리 건물이 아니라 그냥 신전 같다!]
아프의 말 그대로였다. 천공의 신전처럼 하늘을 찌르는 듯 솟은 첨탑, 그리고 끝에 태양.
“흑색거성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신전을 보지 못 했지?”
[그럴 거다. 게다가 흑색거성으로 도망친 이들도 다르지 않을 거다.]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너처럼 이 도시 저 도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애초에 제한이 되었다는 소리다!]
“아무리, 아 자기가 속한 신전만 본다 이거구나! 그렇다고 여기서 신전들의 모양을 볼 수도 없을 테고.”
확실히 그럴 만도 했다. 마치 다른 세계처럼 유리되어 있는 두 공간이었다.
“근데 마탑들은? 사속성 신전과 하나 아니야?”
[그게 조금 애매하게 되었다. 시간이 너무 흘렀다고 해야 하나.]
아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해가 되었다.
“하긴, 이제 탑의 출신들은 대부분의 제자들이 흑색거성에서 나고 자란 이들일 테니까.”
[적어도 탑의 장로는 되어야 알 수 있을 거다!]
“근데 가만 보면 너는 아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많단 말이지. 조금 시대에 뒤떨어지기는 해도.”
[나는 고귀한 존재라 그런 거다! 내가 명령을 내리면 바로 따를 존재가 어마어마하다!]
“그래. 그래. 너 잘났다.”
아프와 함께 이야기하며 건물에 들어가니, 의심이 강렬한 의심으로 변했다.
‘하늘이 뚫려있다 이거지. 이것도 비슷하고.’
[왠지 하늘의 구멍이 태양이 가장 찬란할 때에 맞춰서 만든 것 같지 않냐!]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설마로만 둘 일은 아닌가 보네.’
영왕이 걱정할 만했다. 맹점을 참 잘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이지만, 내부에서 시작하면 또 다르다는 거군.’
침입에 방비가 되어있지, 내부에서 자라나는 것에 대한 방비는 아니었다.
‘설마 했겠지. 그렇게도 핍박을 받은 이들인데.’
내부는 마치 예배당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단상이 있고, 그 앞으로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꽤 많은 인원이 참석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질에 신경을 쓴 듯한 인원들.
‘내 수업을 듣는 이들은 대부분이 들어와 있네?’
다양한 나이대의 유망주들, 그리고 몇몇 교수들까지. 적어도 천 명 이상의 인원이 모여있었다.
[아마 궁금해서 온 이들도 적지 않을 거다. 신이라는 존재는 미지의 존재니까. 게다가]
‘그동안 억누르고 억누른 호기심이 터진 거라는 거지?’
아카데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인간이 신이 되어서 일으킨 혈사들이었다.
그리고 신이라고 표현하는 존재들이 실상은 신이 아니라고 교육한다.
문제는 서술되어있는 그들의 능력이 사뭇 대단하다는 것과 후대는 그 잔인함이 와닿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잔인한 핍박이나 고문이라도 자기가 받지 않으면, 기록으로만 보면 덜하기 마련이지.’
이단이라고 규정되어서 죽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던 이들의 선조는 이제 기록에 불과했다
“이 자리에 오신 귀빈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착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닫히고 치르체가 강단에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개소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