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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201화 (201/217)

[201화]

방금 전에 느끼고 온 그 느낌을 그대로 설명하는 서술이 이어졌다.

“누가 만든 이론입니까?”

“보자.”

자료를 순식간에 넘기더니 저자를 확인하고서는 얼굴이 굳어지는 학장님.

“리벨린. 이 사람인가. 아직도 남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유명한 사람인가요?”

“그럼. 대단한 사람이지. 나와 학장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다툰 인물이니까.”

진심으로 놀랐다.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아카데미의 위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모든 사람이 아카데미의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학장이 존재했다.

탑주들보다, 행정수반이나 치안수반보다 더 존경받는 자리. 성주에게 기탄없이 당당하게 반대할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 아카데미에 파다하게 소문났을 것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요?”

그런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학장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한 이야기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학장의 자리는 내정(內定)되어있는 자리야. 그걸 심사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는 뜻이지.”

내부의 심사를 거치고, 내정된 학장이 아카데미에서 여러 부서를 거치며 경력을 쌓는 것.

“그렇기에 아카데미 학장이 되고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후계자 물색이기도 하지.”

“그 과정에서 가장 치열했던 경쟁자라는 말씀이신 거네요.”

“마지막 시험에서 대차게 말아 드셨지만 말이지. 그리고서는 행방이 묘연해졌지.”

리벨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관여가 확실하단 느낌을 받았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용납 가능하다는, 강경함을 넘어선 과격자였다 이거지.’

문제는 그런 사상을 지닌 인물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이었다. 마법 연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치르체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클들이 단단하게 굳어있는.”

얼굴 한편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학장님의 표정에 낭패가 서렸다.

“확실히 그 인간이 관여했나 보네. 약점을 짚었어.”

“약점이라고 하면?”

“학장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선을 지키는 것이니까. 학생을 퇴출시킬 수 있지만 이유가 분명해야 하고 그 이상의 위해는 끼칠 수 없으니까.”

“그 말은 학장님이 대놓고 손을 쓰지 못한다는 말씀이네요.”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래. 교수도 똑같아. 사제관계가 아니라면 용납되지 않아.”

“그 사제관계에 가장 가까운 게 오르지아고요?”

더럽게 맞물린 상황이었다. 학생이라는 위치 하나로 학장님의 손을 묶었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오늘 한 일에서 꽤 괜찮은 방법을 생각했으니까.”

불안한 미소를 짓는 학장님의 표정이 왠지 엄청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 강의 하나만 더 하자. 어때?”

“네?”

강의 하나를 하는데도 벅찼다. 가르친다는 것은 의외로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특강 정도로 하는 거지. 경지에 대해서! 제목으로. 매일 저녁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학장님. 고생길이 눈앞에 훤했다.

“경지에 대해서라니요? 그런 게 필요 있을까요?”

“너무 당연했기에 가르치지 않았는데, 그게 문제가 된 상황이니까.”

인간 최초의 신에게서 끝까지 저항하던 이들의 후예. 그렇기에 신은 당연히 부정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신에 대해 아는 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잊혀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신이 되었고 왜 신이라고 불리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신이라 불리는 이들이 막연하게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인식이 문제인 거지. 초월적이라는 것. 거기에서 시작하면 숭배가 되니까.”

“그렇다고 경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토론한다 해서 바뀔까요?”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과 목표가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잖아? 무엇보다 인식이 달라지니까.”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 보였다.

“굳이 제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너만큼 ‘신’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확신하는 교수가 있으면 추천해 주고.”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도 있으실 줄은 몰랐네요.”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나도 일하고 있다고!”

솔직히 가장 바쁜 이를 꼽자면 학장이기는 했다. 넘어간 이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이제는 마법진까지 공부해야 했다.

“성과는 좀 있어요?”

“어. 생각보다 썩은 부위가 높다는 걸 알았지.”

“행정? 아니면 치안?”

“둘 다. 거기에 성주 쪽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야. 고작해야 10년 만에 말이지.”

“다 쳐낼 생각입니까?”

“아니. 애초에 무슨 모임인지도 모르고 참석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다만, 조금이라도 썩었다면 잘라내야지.”

“참 바쁜 자리네요. 학장이라는 자리는.”

“다 청구할 거야.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데!”

“예예. 그러면 내일부터 시작하는 거로 알고 있겠습니다. 하아.”

“조금만 더 고생해. 어쩌다 보니 믿을 사람이 외부인인 너뿐이네.”

학장실을 나와서 바로 아젠스를 찾았다.

“넵! 교수님. 충실한 조교 대령했습니다!”

“치르체. 얼마나 깊게 팔 수 있어?”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바닥이 보일 정도? 완벽하게.”

“할 수는 있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제대로 파려면 그래도 석 달은.”

“한 달. 그 안에 하면 네가 탐내던 거 가르쳐 줄게.”

종종 대련할 때 단 한 번 풍도(風道)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풍도에 목을 매던 아젠스.

“한 달! 아주 바닥이 보이다 못 해 투명하게 파겠습니다!”

‘원래 가르치려고 했다는 걸 알면 조금 배가 아프려나?’

한 달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아젠스에게 생각 이상의 도움을 받으며 꽤 정이 쌓였다.

‘제자는 아니지만, 문하생 정도이려나?’

수호유술을 개량하며 같이 개량한 풍도. 오히려 개량하며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얻기도 했다.

‘결국에는 하나로 모인다는 건데. 그 하나가 중요한데 말이지.’

하나면 잡으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하나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학장님은 일을 잘해도 너무 잘했다.

‘특강이 뭐 이렇게 거대하게 진행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소문을 낸 건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 거기에 탑의 사람들도 보였다.

그 가장 앞에는 오르지아와 일행이 착석해 있었다.

[떨리지 않냐! 엄청 사람이 많다! 아카데미 사람들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입장을 제한한 듯 4학년 이상의 학생들만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별로? 그냥 사람 수만 많아졌다뿐이지 뭐.’

설치된 단상 위에 오르자 마법이 발동했다.

“반갑습니다. 어쩌다 보니 특강을 하게 된 임시 교수 범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뭐라고 말을 퍼트린 것인지 눈동자에 기대감이 가득 담긴 군중이 보였다.

“학장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실망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경지. 마법사에게는 명확하지만, 무예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불명확하죠.”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경지를 쌓은 마법사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탑주는 여기에 도대체 왜 온 거야?’

“서탑에 마법사님? 마법사에게는 어떤 경지가 있을까요?”

6서클을 완성해 나가고 있는 마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간단하게 서클에서 시작해서 9서클이 있습니다.”

“그렇죠. 물론 그 안에 유저와 익스퍼트와 마스터로 나뉘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경지가 나누어져 있죠.”

왜 모두가 아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냐는 눈빛들이 몇몇 보인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무인은 그 경지가 애매하죠.”

그 말에 가장 앞에서 눈을 빛내면서 듣고 있던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여는 학생.

“아카데미 5학년에 재학 중인 익스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유저와 익스퍼트, 마스터로 나누어진 경지가 있지 않나요?”

“확실히 학생의 말 그대로 우리는 흔히 유저, 익스퍼트와 마스터로 경지를 구분하고 말하고는 하죠. 서탑의 마법사님?”

“베이그라고 합니다.”

“베이그님. 마법사 간의 대결이 있을 때. 3서클과 5서클이 감히 부딪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한 서클의 차이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베이그님의 말씀대로 3서클. 마법사의 칭호를 받는 그 순간부터 한 서클의 차이는 굉장하죠. 심지어 높은 경지일수록 말이죠.”

마법을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무예를 단련하는 학생들 중에는 처음 들었다는 듯 놀라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무예를 배우는 이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죠. 유저라고 해도 익스퍼트를 이길 수 있고, 익스퍼트라고 해도 마스터를 죽일 수 있죠.”

“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요?”

“불가능에 가깝다뿐이지, 불가능은 아니니까요.”

아직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모르는 인원이 대다수인 가운데 뭔가 알아챈 이들도 있었다.

“과연 누구를 유저라고, 익스퍼트라고, 마스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러 쓰레드를 만들 수 있다?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다?”

신기하게도 마법사들도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제 경험 중에서는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내지 못하지만, 마스터라고 불리는 이를 손쉽게 상대한 익스퍼트도 있었습니다.”

‘마르쿠스가 그랬지. 재능을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지.’

“그렇기에 저는 경지를 가늠할 때 자신이 닿은 벽. 넘어선 벽에 따라서 가늠하고는 합니다.”

이전 세상에서 만난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개념이었다. 이 개념을 완벽히 이해했을 때, 화경이라는 벽 앞에 설 수 있었다.

‘여기서는 그랜드 마스터라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재밌는 점은 그 이상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그것이 끝이었다.

벽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청중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흘렀을 때.

“모두 조용.”

모두 조용히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 걸음 넘어선 이들이 있었다.

수십 명이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선 채로 명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특강에 대한 소문이 흑색거성 전역으로 퍼졌다.

*

“만인의 스승! 깨달음의 현자! 이시대의 진정한 스승! 악!”

“그만해라. 닭살 돋으니까.”

개인 연무장으로 배정된 곳에서 머리를 감싸 안은 아젠스.

“모두가 그렇게 부르는걸요! 특강에 들어오려고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데요!”

4학년 이상으로 제한을 두었지만, 학장님에게 찾아가 제한을 낮춰달라는 학부모들이 많았다고 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탑에서도 다들 들으려고 강의실을 확장시켜달라고 하고!”

특강을 시작 한 첫날에만 수십 명의 인원이 경지가 오르거나 완숙해졌다.

그 소식은 흑색거성을 가히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강의가 되었다.

“거기에! 그 자리에서 경지가 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련을 하면서 가르침도 내려주셨다면서요!”

“가르침이라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었을 뿐이지. 그걸 받아들이는 건 그들이 잘한 거고.”

강의하고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대련을 통해서 그리고 무예에 대해서 가르친 경험은 있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로사도 그렇고.’

상념을 지우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아젠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잘 파고 있어? 반응은 어때.”

“치르체는 조금씩 파고 있어요. 생각 이상이라고 들었어요.”

흑색거성을 뒤흔든 특강의 여파는 치르체가 운영하는 동아리에도 강하게 미쳤다.

“그리고 다음 주 주제가 주제다 보니까.”

“하긴. 대놓고 저격하는 느낌이려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걸요? 진짜 교수님 의외로 두뇌파?”

경지에 대해 말한 첫날의 특강.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중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때마침 학장님의 호출이 눈에 들어왔다.

“가자. 너도 같이 오라고 하시네.”

“하아. 진짜 난 평범하고 평범한 학생인데 말이죠.”

“웃기고 있네. 빨리 따라와.”

한 층 올라선 학장님의 사무실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 말도 안 돼….”

아젠스는 누구인지 알고 있는지 얼이 빠져 있었다.

“흑색거성의 스승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특강. 꼭 해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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