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단호하게 정지를 외친 것과 다르게 망토의 문양을 보고 놀라고, 아프를 보고 경악을 하는 문지기.
그 덕분에 무사히 통과하는 것을 넘어서 푸룸 시티를 맡고있는 이를 보러 가게 되었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점점 올라가는 도로, 그에 맞추어 점점 하늘을 향하는 건물들.
“진짜 신기하게 생겼는데?”
[이렇게까지 거대하지 않았는데, 불안하다.]
“응? 뭐가?”
[그나마 신전 중에서 괜찮은 이들이었거늘, 왠지 이상해진 것 같다.]
“난 신전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걸.”
[그건 네가 축복받은 거다. 무지함과 탐욕이 합쳐지면 지금처럼 되는 거다.]
“뭐 이렇게 신들이 많아. 진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이잖아?”
[인간이 보기에는 가히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게다가 권능도 있고.]
“그게 제일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지. 그리고 나에게 경고하신 부분도.”
[알게 될 거다. 이제 조용히 해라. 거의 다 도착해 가는 것 같으니.]
아프의 말대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거의 다 와 갔다. 어느 부분부터는 건물이 없었다.
공터. 마치 이곳은 오로지 저 건물 하나만을 허락한 곳이라고 말하는 듯한 건축.
“이곳입니다. 이 길을 따라가시면 안내인이 나와 있을 겁니다. 그럼 수행자님의 앞에 창공이 굽어살피시길.”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길을 돌아가는 문지기.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조금 이상한데?”
[천공의 신전 인간들은 대부분이 마법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이런 건 별론데?”
도를 뽑지는 않았다. 초대에 대한 나름의 예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넘어갈 만한 아량은 없었다.
불쾌함을 가득 담아서, 기세를 앞으로 쏘아냄과 동시에 손으로 위를 한 번 그어냈다.
“뭐 하는 거지?”
손짓과 함께 깨어지는 듯 주변 세상이 무너지고 아무도 없던 정면에 다섯 사람이 보였다.
그중 한가운데 가장 젊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서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남자.
“너무 오랜만에 등장한 수행자라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 너무 날 세우지 말게.”
“날을 세우는 것으로 보이나 보지?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고?”
말을 꺼낸 주변 이들이 뭐라고 하려는데, 손을 들어 제지한다.
“수행자라 그럴 수 있지. 경지도 그리 낮아 보이지 않고.”
“이 도시의 책임자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당연하게 고개를 숙여야 할 이유는 없지. 그것도 상대가 무례하게 나오는데.”
[오! 처음 보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호쾌한 모습도 있었구나!]
아프가 옆에서 신기하다고 소리친다. 두 번째 세계를 통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답답하게 살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오만한 것은 문제지만, 지나치게 수그리는 것도 문제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저렇게 말이지.’
호탕하게 웃고 있지만, 표정에 금이 가 있었다.
“수행자라면 무릇 그런 패기도 있어야 하지. 스승이 누구인지 참 궁금하군.”
“그래서 이곳으로는 왜 부른 거지? 솔직히 그냥 지나가고 싶어졌는데 말이지.”
신기하기는 했지만, 이 도시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기분이 상한 상황이기도 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수행자가 등장한 것은 꽤나 오랜만의 일이라네. 거기에 영수까지 함께하고.”
아프를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적이지만 강한 욕망이 스쳤다.
‘아프가 골칫거리일 수도 있겠는데.’
“아! 내 소개를 안 했군. 천공의 신전의 알리오츠라고 하네.”
“수행자 범.”
짧은 대답에 도저히 못 참겠는지, 알리오츠라고 소개한 이의 바로 옆에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감히! 천공의 신전에서 7개의 별 중 하나인 알리오츠님에게 무슨 무례냐!”
‘여기는 7성이냐. 진짜 부끄러움이 없는 걸까?’
나는 7성 중 1성이다! 라고 소리치는 걸 상상하자마자 손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7개의 별 중 하나면 당연히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가?”
“당연히...”
서서히 끌어올리는 기세에 말을 하던 노인의 말이 끊어진다.
“당연히?”
“허허. 그 정도로 하지. 보아하니 침묵의 숲에서 나온 것 같은데, 세상에 대해서 모를 수 있지.”
가볍게 손을 휘저어 기세를 흩은 알리오츠의 덕분에 신색을 회복하는 노인.
‘침묵의 숲?’
[우리가 나온 숲이 침묵의 숲이다! 멋모르고 들어간 인간들이 다 죽어 나가서 그렇게 불리는 거다.]
“첫 만남에 무례해서 미안하네. 수행자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것도 이런 높은 경지라니. 내가 사과하지.”
‘신전이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신전이랑은 너무 다르단 말이지.’
“그런데 언제 이렇게 시티가 거대해진 거지? 스승님께서는 조그맣게 시작하는 곳이라 들었는데.”
“허. 도대체 스승님은 어느 시대 사람인 건가? 아마 100년도 전의 이야기를 하시는 듯싶은데.”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걸음을 인도하는 알리오츠. 어차피 궁금증도 있었기에 따라 들어갔다.
“글쎄. 스승님의 연치에 대해서는 나도 알지 못하는 바라.”
“하긴. 그대 정도의 수행자를 길러낼 정도라면, 나도 알 수도 있겠군?”
“그나저나 7개의 별이라면 꽤나 높은 것 같은데, 그리 나이가 들어보지 않는데?”
“좀 말해주면 안 되나? 궁금한데. 그리고 7개의 별이면 천공의 신전에서 가장 높은 직위라네.”
“벌써?”
“나이에 따라 받는 것이 아니니 말이네. 그리고 내가 막내가 아니라, 둘이 더 있다네.”
황량했던 공터를 지나서 높게 서 있는 탑과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와. 멋있다.”
탑의 천장은 뚫려있었다.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천장. 그리고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고개를 숙여라! 여기는 신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귀찮음을 덜려면 어서!]
그러고 보니 다른 이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프에 말에 따라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모두 일어선 뒤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행자라 그런 것인가? 도대체 스승이 누구기에 50년이 넘은 협약을 모르는 것이지?”
“협약?”
“50년도 전에 맺은 협약이다. 판테온에서 말이지.”
설사 다른 신을 섬기고 있더라도, 신전에 당도하면 예를 갖추는 협약이 맺어졌다고 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진짜 귀찮아지겠지?’
“루제오. 나에게 알려주신 스승님의 함자이시다.”
“몽상가! 설마 몽상가의 후예일 줄이야!”
“몽상가? 스승님께서 몽상가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야 몽상가가?’
“스승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것 같군? 뜬금없는 잠적 후에 후예를 기르고 있을 줄이야.”
알리오츠의 설명을 들었지만, 왜 몽상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한 사실을 왜 몽상가라고 하는 건지. 그래도 다행이다.’
배려해주신 탓인지, 몽상가라는 인물도 도를 사용했다. 거기에 어느 신전과도 연관이 없었다.
“우리 천공의 신전의 명물을 보여주지. 이리 올라오게.”
몽상가라는 단어 이후에 급격히 태도가 변한 알리오츠였다. 그를 따라 1층 가운에 있는 여러 단상 중 하나에 올랐다.
“그대가 다른 신전에 들리게 되어도 볼 수 있지만, 언제나 원조는 특별한 법이지.”
단상에 오르자 하나의 구가 떠오른다. 알리오츠가 오른쪽으로 돌리니 숫자들이 변했다.
“우리 신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보여주지.”
숫자들이 변하다가 천공이라는 단어에서 멈추고 마나를 불어넣자 단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트라님께서 인간들이 하늘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게 베풀어 주신 은혜지.”
“에트라님이시라면.”
“당연히 한 분뿐이지. 언제나 천궁(天宮)에서 우리를 굽어살피시는 자애로우신 우리의 신(神).”
“숲에서만 살다가 나오니 전혀 모르는 세상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워.”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스승께 배운 것은 있지 않나?”
“있지. 다만, 네가 말했던 50년 전의 협약도 모르는 상태니 문제지. 거기에 스승님께서 날 봐주신 세월이 그리 길지도 못 했고.”
“허? 혼자서 그러면 그 경지에 올랐다는 말을 하는 건가?”
“혼자서 이 경지면, 말도 안 되는 천재 아닐까. 그저 배움을 받고 나서는 떠나셨지.”
“떠났다라. 그리 표현할 수도 있겠군. 아쉽군. 에트라님께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던 이였는데 말이지.”
“에트라님께서는 언제 신위에 오른 거지?”
“하긴, 몽상가의 후예면 그럴 수도 있지. 잠적한 때와 비슷하니. 하프 엘프라 수명도 길었을 것이고.”
‘저건 또 무슨 소리래. 진짜 좀 자세하게 알려주시지.’
리퀴두스님에게 은근히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머리에 들리는 목소리.
[미안하다. 깜빡했다. 이렇게 빨리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단 말이다!]
범인이 밝혀졌다. 몽상가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어야 할 놈이 안 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영수도 스승님께서?”
“아니. 숲에서 지내고 있을 당시에 정말 우연치 않은 기회로 함께 하게 되었어.”
“하! 진짜 다 가졌구나. 젊은 나이에 경지에 오르고, 영수까지 지녔다니.”
“너도 젊잖아? 거기에 무려 7개의 별 중 하나고.”
“나야 에트라님의 성은을 입어서 그런 것이지. 자. 도착했다.”
단상이 멈춰 선 곳은 다름 아닌 탑의 가장 꼭대기. 사람 세 명은 충분히 설 수 있는 두께였다.
“어때? 우리 신전의 최고의 경치가 있는 곳이지.”
확실히 자신할 만한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티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자신할 만하네. 대단하다. 어떻게 한 거야?”
“호? 한 번에 알아차린 건 대단한데?”
“이렇게 대놓고 있는데도 모르면 그게 머저리인 것이지.”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단 한줄기의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럼 대부분이 머저리라는 건데? 우리 신전의 능력이지. 천공은 고요하니까.”
“그래서 이곳까지 부른 이유는?”
“사실 수행자도 수행자지만, 영수가 함께하는 수행자이기에 꼭 만나보고 싶었다랄까.”
“아프가 좀 아름답기는 하지.”
“아프? 이름 또한 아름답군. 맞아. 아름다워. 가지고 싶을 만큼. 거기에 신전 소속이 아닌데도 영수를 지니고 있는 수행자는 처음이니까.”
“영수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는 신전이 있나 보지?”
“그래 봐야 한 손에 꼽지. 아쉽게도 우리 신전에는 존재하지 않고.”
그 말이 마치 너를 죽이고 아프를 빼앗을 거라는 소리로 들렸다.
“다행이네. 조금 더 이르게 나왔으면 세상 구경도 못 해보고 사라질 뻔했어.”
“뭐.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할 말이 없네. 게다가 몽상가의 후예이니.”
“스승님은 왜?”
“너에게 말 해 주지 않은 것이 많으시네. 하긴. 아무리 몽상가라고 해도 시간이 많지는 않았겠지.”
몇 신전에 은혜를 입혀 놓았기에,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진짜 두고보자 아프.’
“그리고 여기.”
알리오츠가 건네준 것은 하나의 패였다. 하늘이 그려져 있고 6개의 홈 그리고 하나의 보석.
“내 손님이라는 뜻이니, 푸룸 시티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공짜야.”
“흠. 이런 친절을 베푸는 이유는 뭘까?”
“지금 당장 신전에 소속되라고 하면 들릴 리 없으니까. 이왕 하는 거 좋은 인상이라도 만들어야지. 다만, 하나 부탁만 들어주면 돼.”
“들어보고 받아야겠는데?”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