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28화 (128/217)

[128화]

“근데 저를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저택으로 들어간 것을 본 후 이어진 카인의 질문에 할머니께서 대답하셨다.

“흐음. 쌍놈이 말을 안 했나 보구나. 뭐 그럴 만도 하지. 이제는 내려놓을 것이니 상관이 없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쌍놈이 카인의 아버지 같단 말이지.’

“한참 내 해적을 만들고 있던 시기란다.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구나. 벌써 40년도 전의 이야기니. 그때도 꽤 유명했단다.”

하긴, 30년간은 여타 활동이 없으셨으니, 그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시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 웬 어린 꼬마가 나간 해적이 되고 싶다고 찾아왔지. 아니 꼬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뛰어났지. 머리도, 능력도.”

과거 이야기를 하시는 중에도 그 순간이 회상되었던 듯 그윽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를 하셨다.

“사실 처음에는 웃겼지. 너무 어렸거든, 15살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지. 그런데 어느 순간 항상 내 옆에 서 있는 그런 아이가 되었지. 우리 해적의 부선장은 그 아이가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었지.”

‘응? 부선장?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는데?’

“우리 해적단에 들어와서 얼마 안 돼서였을까. 얼굴 보고 찝쩍대는 것들이 많다고 가면을 쓰기 시작했지. 참 그 가면이 마음에 안 들었단다.”

그렇게 평온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던 할머니의 톤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가끔 대륙에 놀러 다니는 취미를 붙이더니 어느 날엔가 자기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고 하더구나.”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면서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할머니.

“근데 그놈이 하필이면, 삭풍일 줄 누가 알았겠니. 거기에 왜 난 황제가 되어가지고. 그래서 놓아주어야 했단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그 쌍놈을 죽이고 싶었는데 그 아이가 싫어할 게 뻔해서 그만두었지.”

“저희 엄마가 해적이었어요?! 그것도 로즈님 해적단의 부선장인?”

카인의 놀라는 비명성과 자신의 어벙벙한 표정과는 상관없이 할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렇게 1년에 한 번쯤 얼굴을 보다가 10년이 지난 무렵 쌍놈이랑 같이 왔더구나. 그 아이 품에 안긴 너를 데리고. 똑같은 상아색의 아름다운 머리를 가진 아이였지.”

그러면서 카인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표정은 정말로 애틋했다.

“그래서 그나마 쌍놈이 된 거란다. 원래는 죽일놈이었는데 말이다.”

웃으면서 말씀하시긴 했지만, 죽일 놈이라는 것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마 카인의 아버지도 무서워서 못 오신 게 아닐까.’

“우와! 저는 엄마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에요! 조금 더 이야기 해 주시면 안 돼요?”

“그럼. 더 이야기하고 말고.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동생인데 말이다. 에사가가 얼마나 말괄량이였는지 알고는 있니?”

그렇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카인과 자신이었다.

‘진짜 카인 성격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어머니랑 완전히 빼다 박은 거였구나.’

그리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하기 했다. 사용인이 부르러 오기 전까지도.

*

로즈님의 배려로 오이겐, 칼라 그리고 량은 작은 방에 따로 다과와 함께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고 뵙고 싶었습니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먼저 말 문을 연 것은 오이겐이었다. 그동안 할 말이 정말 많았던 듯하다.

“제 스승들이 언제나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디비네를 찾아라. 너에게 없는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차가 아닌 물을 마시고 나서 말을 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산과 같은 이들인데 언제나 디비네를 높이고 찬양하더군요. 저의 부족함을 채워 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량과 칼라는 오이겐 하는 말을 그저 침묵으로 들어주기 시작했다.

“저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디비네가 무엇인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그렇게 칼라를 힐끔 바라보는 오이겐에게 괜찮다는 듯 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이었다.

“찾으면서도 이런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 사제의 회고록에 등장하더군요.”

그 말에 사뭇 놀란 듯이 눈을 뜨는 량이었다.

“그의 교훈서를 읽었나 보군? 남아있는 것이 많지도 않을 터인데. 용케도 구했어.”

“학술원의 도서관은 세계 제일을 다툰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한 장을 걸쳐 디비네라는 곳에 대해 설명하고 있더군요.”

“뭐. 나쁘지 않게 설명해 놓았지.”

“그중에서도 제 뇌리를 관통하는 구절은 ‘비의(祕意)를 구하는 자, 본질을 궁구하는 자 그들에게 가서 물어라. 길을 가르쳐줄 것이니.’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제가 그렇게 쓴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뭐. 축하한다고 치지. 그런 의미에서 묻고 싶은 걸 물어보게나. 대답해 주지.”

“저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왜 세상은 저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오이겐은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 듯, 그의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었다.

그리고 사용인이 부를 무렵에는 마치 량을 수종(隨從)하는 듯 뒤에 서서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는 오이겐을 볼 수 있었다.

*

에사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자신도 카인도.

사용인이 와서야 저녁이 준비되었음을 알고 응접실에 도착했을 때, 아직 량이네는 오지 않고 있었다.

“카인. 근데 연금회가 뭐야? 연금술사가 회를 이룰 만큼 사람이 많았어?”

“아! 본래는 명맥만 겨우 이어지고 있었는데, 파울로님 덕분에 다시 성세를 회복했지. 그냥 천재들의 모임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거야.”

“흠. 조금 이따가 더 말해줘야 한다?”

곧이어 들어오는 레핀들을 보면서 황급히 마무리하는 카인에게 조용히 따로 말을 했다.

모두가 들어왔는데, 아직도 량이네는 오지 않아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이겐이 저렇게 얌전한 사람이었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량의 뒤에서 얌전하게 마치 상사를 모시듯 오는 오이겐은 영 어색했다.

더 신기한 것은 마니에르를 분명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니에르도 알아본 것이 확실했다. 마니에르의 놀란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만으로 인사를 대체했다. 마니에르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근데 누나는요? 형이랑?”

“아. 그 둘은 당분간 할 일이 있어서 내보냈단다. 회의가 시작하고 나서야 볼 수 있을 거란다.”

장내를 한 번 돌아보던 할머니께서 피식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역천이랑 철혈이 같이 있는 꼴을 보면 눈이 뒤집힐 인사가 한 둘이 아닐 텐데 재미있구나.”

모두가 멍한 상태에서 량과 카인은 미소를, 마니에르와 오이겐은 움찔할 뿐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으니 프라우였다,

“너무. 너무. 영광이에요. 그 골드 로즈님을 뵙는 거로 모자라 한 식탁에 있다니. 정말.”

할머니가 이야기를 끝낸 것으로 보이자 바로 치고 들어오는 프라우였다.

“제 평생의 목표가 로즈님을 한 번이라도 뵙는 것이었는데. 너무 영광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할머니는 마치 손녀를 바라보는 인자한 할머니의 미소로 화답을 해 주셨다.

“마치 자유섬의 아이처럼 말하는구나.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 나를 목표로 삼지 말렴. 분명 너는 나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 될 거란다.”

살짝 준비된 대사 같았다. 마치 꿈을 꾸는 소년 소녀에게 해 주는 대사 같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프라우에게는 족했던 듯했다.

그 말에 감탄해 거의 기절할 지경인 프라우를 두고 할머니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그럼. 소개를 해주지 않으련? 내 할 일이 있어서 너희들의 인사를 받지 못했구나. 미안하게.”

레핀과 일리야 그리고 프라우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항상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특색이 넘쳤던 이들이 순한 양처럼 변한 모습은 신기했다.

“우선 제 옆으로 레핀과 일리야. 이 둘은 자유섬 출신이에요.”

“안다. 미안하구나. 내가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너희들에게 슬픔을, 아픔을 겪게 했구나.”

그 말에 일리야는 대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레핀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대모님을 원망하기도 많이 했습니다. 대모님께서 활동하시던 때에는 이런 일 따위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할머니의 얼굴에 서린다.

“하지만, 그것이 대모님의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다만 다시는 저희 마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만 해주십시오.”

그렇게 감정이 조금 추스러지고 분위기가 환기될 무렵 프라우를 소개했다.

방금의 분위기 때문에 과하게 표현은 못 하지만, 행복해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다음 차례는 마니에르였다.

“이 친구는 [무투의 탑]에서 만나 함께 하게 된 마니에르라고 해요!”

“그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마니에르는 처음 들어보는구나.”

“바다의 황제를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넘어가 주시는 할머니. 그리고 때맞춰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

식사 자리가 끝나고 프라우와 함께 레핀과 일리야는 구경을 하겠다며 저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저택의 정원으로 량을 데리고 오자 오이겐과 마니에르, 카인이 함께 다 같이 왔다.

“칼라님은?”

“어머니랑 이야기할 게 있다고 나갔어. 그나저나 마니에르 넌 무슨 일인데?”

오랜만에 보는 마니에르의 적대적인 시선. 마치 처음 진나라는 이름을 담았을 때의 표정 같았다.

“저자가 어찌 구역주님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지요? 행실을 보아하니 이곳을 나설 생각인 것 같은데.”

그 말에 오이겐이 나서려고 했지만, 량이 만류했다.

‘손짓 하나에 저렇게 조용히 한다고? 그 오이겐이?’

할머니에게도 할망구라고 하면서 바락바락 대든 오이겐이었다. 자신의 할 말은 언제나 하고 보는 오이겐이 저렇게 조용히 있는 모습.

‘도대체 량은 무슨 수를 써서 저렇게 온순한 양으로 만든 거지?’

“그걸 왜 네가 신경을 쓰는 거지? 상관없을 텐데?”

“아니. 그렇다 하더라고 저 사람을 데리고 간다면 별로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텐데요?”

“왜. 자유섬과 한 제국은 상관이 없는데? 그리고 네가 불편한 것은 아니고?”

그 말에 잠시 말이 없었던 마니에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가를 무시한 사람을 곱게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 말에 피식 웃는 것은 카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카인의 냉막한 표정.

“황가 대단하지. 하지만, 진짜 황제가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넌 지금 황자야 아니면 마니에르야?”

그 말에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는 마니에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오이겐의 표정이 묘했다.

은근히 량의 눈치를 보던 오이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철혈이라는 별명을 가진 황자님이 이렇게 주눅 든 것은 처음 보는군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근데 저렇게까지 날 선 태도를 보일 이유가 있나?’

그렇게 날 선 태도에도 여전히 웃으면서 다시 이야기하는 오이겐이었다.

“세상이 모르는 일이지요. 철혈의 후계라 불리는 황자님께서 사실은 형님을 그 무엇보다도 아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니에르의 표정이 변하며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오이겐이 빨랐다.

“이해는 합니다. 지금의 황제는 실로 완벽하지만, 황태자는 우유부단한 점이 있어 제 이론이 몹시 마음에 안 드셨으리란 걸. 마치 황태자를 욕하는 이론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 말을 마치고 나서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사과를 하는 오이겐을 보며 오히려 마니에르가 놀랐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 역천의 현자가 이렇게 변한 겁니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량을 바라보는 마니에르.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오이겐이 저렇게도 정중하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그 질문에 표정을 푼 량이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