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아아아아!”
순간 팔이 하운드에게 물렸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몸은 정직하게 하운드 알파의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소리와 함께 알파 하운드의 머리는 깨졌다. 고개를 들어 물린 팔을 보니 이빨 하나 들어가지 못한 채 매달려 있는 하운드가 보였다.
“역시 아카데미 코트! 괜히 평생 입는 게 아니구나. 진짜 큰일 날 뻔했네. 하… 진짜 감 다 잃었네…”
혼자 중얼거리며 매달려 있던 하운드의 목에 정확히 단도를 꽂아 넣는 범이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의 감을 되찾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전생에 전장에서 10년을 넘게 구르면서 만들어진 감.
이따금 기척을 느끼거나 위험을 느끼는 데는 아직 남아 있지만, 몸에 배 있는 순간 순간적인 감은 여전히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기억하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갑갑함을 종종 느낄 때가 아직도 있었다.
“에효… 그렇다고 다시 전장에 갈 수도 없고… 이건 뭐… 차차 나아지겠지.”
자연스럽게 모든 하운드를 처리하고 저녁거리만 도축한 뒤에 일부러 내장을 꺼내두고 자리를 피하는 범이었다.
“일지를 쓰는 게 톡톡히 도움이 되기는 하는구나…”
일지를 통해서 자신이 프란체스코 님에게 배운 것을 완전히 습득한 후 저녁에 일지를 쓰는 것이 그새 습관화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3포인트를 봐 두는 것도 그 때문에 생각해 놓을 수 있었다.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다시 가서 비트를 만드는 모습이 이제는 능숙해 보였다.
작은 모닥불로 고기를 구워 먹고 돌을 구운 후에 비트로 들어가는 범이었다. 따스한 온기가 올라오니 솔솔 잠이 잘 오는 밤이었다.
*
“우리 막둥이가… 예상외로 너무 잘하는데? 그럼… 조금 난이도를 올려 볼까? 흐흐흐”
따스한 온기에 취한 범이 은연중에 몸을 부르르 떨었던 순간이었다.
*
한참을 따스하게 잘 쉬고 있던 범의 귓가에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몸에는 긴장이 가득하였고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뭐지…? 갑자기 이렇게? 분명히 일부러 내장도 꺼내놓고 다른 곳으로 해 놓았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약간 당황해 위장 사이로 밖을 살펴보았다. 눈에 비친 것은 적어도 10마리 이상의 무리가 모인 하운드였다.
‘뭐지…? 저렇게나 갑자기 많이 모였다고?’
머릿속은 복잡하고 당황했지만, 몸은 빠르게 만들어 놓은 횃불에 파이어스톤을 대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내 그 횃불을 위장막에 가져다 대었다. 그 순간 그 위장막에서 거센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량이… 돌아가면 밥 사줘야지.”
이래저래 해서 량이에게 받은 여러 가지 포션이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거센 불길을 만들어주는 포션이었다.
위장막에 미리 조금씩 발라놓은 것이 지금 시간을 벌어주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기어나갔다.
미리 준비해 놓은 방향으로 기어 나온 후에 수풀 하나를 두고 거센 불길에 당황해하는 하운드 무리를 볼 수 있었다.
“하… 살았다. 빨리 가야겠네.”
애초에 비트를 파 놓았을 때 위장막을 자신이 가야 할 반대 방향으로 해 놓았다.
그 덕분에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별이 보이니까 살 거 같으네. 하… 그 숲에서는 진짜…”
위험을 하나 잘 넘기고 밤하늘을 보면서 뛰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순간. 온갖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오려고 하는 하운드들이었다.
“왜? 뭐 때문에?”
자신의 몸 주변을 킁킁대면서 맡아보았지만, 맡아지는 냄새는 없었다.
순간 떠오르는 수업이 있었다. 아카데미가 아니라 용병단에서 배웠던 수업 내용이었다.
*
“막둥이. 이게 바로 달풀이다. 달맞이꽃 주변에 자생하는 풀들이지. 맡아 봐라.”
씨어가 가져다준 풀을 가지고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그냥 일반적인 풀 냄새만이 날 뿐이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나지? 그런데 이 풀 냄새를 하운드들이 기가 막히게 맡는다. 그리고 좋아하지.”
“왜 하운드들이 좋아하나요?”
“수호산맥에 있는 달맞이꽃은 특이하게도 마력을 품고 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이상하게 하운드들에게 잘 맞는단 말이지.”
“그럼, 사람에게는…”
“거의 뭐 효과는 없다. 하지만 하운드들 특히 알파가 먹으면 효과가 좋지. 가장 중요한 건 임신을 했을 때 후대가 강하게 태어난다는 거다.”
“아…”
“그래서 하운드들이 이 달풀의 냄새에 미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하나요? 알 수도 없을 텐데…”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애초에 풀에 닿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뒹굴지 않는 이상 오래가지 않으니.”
“만약에 이미 냄새가 밴 채로 하운드들에게 특정되어 있다면요?”
“그럼… X 빠지게 뛰어야지. 그리고 물을 찾아야 한다. 물에 금방 씻겨 나가는 냄새니까. 아니면…”
*
“달풀에… 닿았다? 그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 물이라… 이 근처에는…”
열심히 뛰면서 생각에 생각을 굴리던 와중에 하나의 방편이 생각이 났다. 부근에 동굴이 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도박이긴 한데… 뭐 뭐가 됐든 지금보다는 낫겠지…”
근처에 고블린이 살던 동굴이 있었다. 토벌되어서 비어 있다고 하지만, 어떤 몬스터가 다시 똬리를 틀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하운드들이 달려오는 소리로 보아서 그리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동굴로 향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하운드들이 눈에 보이는 정도로 따라왔다.
“하운드가… 대충 20마리는 안 되는 것 같고… 진짜 죽어 봐야겠네. 제발…”
‘그래도… 큰 무리는 아니여서 다행이다.’
작은 소망을 가지고 동굴에 진입했다. 그리고 동굴에 진입한 순간.
“씨… 살았다… 아직 안 들어섰구나… 이제부터인가…”
일직선의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는 짧은 동굴이었고 그 안에는 아무런 몬스터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끝에 도착하자마자 힙색에서 아공간을 열어 라이트 스톤을 꺼내 빛을 밝혔다.
어차피 야간에서의 시력은 몬스터를 따라갈 수가 없으니 차라리 밝은 것이 나았다.
그리고 밝힌 순간 하운드들이 차례차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열 입 곱. 그럼 알파는 완숙한 유저 정도인가… 하… 죽겠네.”
이내 들어오는 하운드의 숫자를 세면서 단도를 꽉 쥐고 준비를 마쳤다. 숨을 고르며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한다.
애초에 넓지 않은 동굴이었기에 하운드가 세 마리씩 열을 지어서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하운드들에 맞추어서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끝에 닿는 순간 하운드들이 달려들었다.
하운드들이 달려들자,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하운드를 피하고 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알파 하운드를 지나서 서자 하운드들이 동굴 끝에 모여 있는 형세가 되었다.
그리고 땅에 파이어스톤을 내던졌다. 그러자 등 뒤로 불의 벽이 만들어졌다.
“20분. 숨이 막힐 일은 없는 불이니까 어디 한 번 죽어보자.”
도망을 칠까도 했지만, 이것도 기회라고 생각을 했기에 한 번 죽어보자 한 것이다.
도망을 치더라도 끝이 아닐 것 같기에 차라리 여기서 끝장을 보는 것이 차라리 더 안전하다.
뒤에서 불의 벽이 나타나자 한층 더 흉흉해진 기세를 풍기는 하운드 무리, 다부진 얼굴의 범. 두 진영이 서로 충돌했다.
달려오는 하운드 무리를 상대로 피하지 않았다. 단도를 베고 꽂아 넣었다.
코트로 가려지는 목에서 무릎까지는 괜찮았지만, 점점 다리와 얼굴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처가 늘어나면서 쓰러지는 하운드도 늘어났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이제… 이제 조금씩 감이 살아나고 있구나. 이 느낌이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지쳐가는 육체와는 다르게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 가고 감각 또한 살아나고 있었다.
불의 벽을 지나서 동굴의 끝에 다시 다다르자 남은 하운드는 7마리였다.
‘슬슬 감이 잡힐 것 같기도 한데…’
비척대는 하운드 3마리와 아직 쌩쌩해 보이는 3마리 그리고 알파 하운드.
반면에 자신은 다리에서는 피가 나고 양손에도 긁힌 상처와 오른쪽 귀 뒤가 베어진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 살겠네 이제 시작해 볼까?”
제대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하고 체력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리한 전투를 이어왔다.
그 느낌이 그 감각이 이제야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전생에서 항상 느끼던 그 감각.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삐끗하면 떨어질 것만 같은 그 감각.
전생에서 항상 느끼고 살아오던 전장의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다.
‘본능에 따라서, 감각에 따라서…’
본래도 날카로웠던 예기가 더욱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비척대는 하운드들과 함께 네 마리가 동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알파와 남은 한 마리마저 달려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하운드의 입에 왼팔을 가져댔다. 그리고 그대로 땅으로 찍으면서 오른손의 단도로 다른 하운드의 목을 찔렀다.
다른 하운드가 어깨를 들이박았고, 간발의 차이로 자신의 목을 노려오는 하운드를 피할 수 있었다.
뒤로 구르면서 일어나자 눈앞에 하운드의 벌려진 입 사이로 이빨이 보였다. 그 안으로 단도를 내려찍고 다시 앞으로 구르자 자신의 위를 날카롭게 지나가는 알파 하운드가 느껴졌다.
‘이제 네 마리. 다 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저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는 사이 단도에 미약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이는 익스퍼트를 상징하는 검기였다.
비록 너무나 미약하지만, 유형화된 검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익스퍼트의 경지를 나타냈다.
다만 일반적인 빛과는 다르게 예기가 서린 빛이 서서히 단도에 입혀지기 시작했다.
전투에 집중하고 있기에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적을 사살하는 루트를 그리고 또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가오는 알파 하운드. 알파 하운드를 지나쳐 다시 한 마리의 하운드의 목을 베어냈다.
‘이 느낌이지!’
베어낸 자세 그대로 돌아 다른 하운드의 목을 베었다. 뒤에서 자신을 들이받는 하운드의 힘을 빌려 앞으로 굴렀다.
그 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다른 하운드의 목에 정확히 단도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알파 하운드.
알파 하운드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남은 것은 자신 하나뿐 그리고 뒤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범을 향해 뛰어 달려 들어가는 하운드. 자신은 느리다 싶을 정도로 움직였다.
날아오는 하운드의 목에 단도를 박은 후에 그대로 베어냈다.
‘툭’
단도임에도 머리가 깔끔하게 잘린 알파 하운드. 전투가 끝이 났다.
“하….”
숨을 고르면서 그제야 긴장을 조금이나마 푸는 범이었다.
“결국, 씨어 님이 말 한대로 피로 목욕을 해서 달풀 냄새를 지운 건가…”
그렇게 고개를 내리자 단도가 보였다. 그리고 그 단도에 미세하게 올라온 검기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 어? 검기가…? 왜…? 어느새?”
전투할 때보다 더욱 놀란, 당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그 동시에 검기가 사라졌다.
“왜? 뭐지? 사라졌…?”
소리를 지르다 말고 다시 정신을 집중하자 단도에는 미약하게나마 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하… 익스퍼트에 오르다니… 벌써? 어쩐지… 설마?”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가지고 있던 괴리가 이번 하운드 무리와의 전투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자 그 계기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벽을 넘어 익스퍼트에 오르게 된 것이다.
범의 나이 14세.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나이에는 유저만 되어도 미래가 기대되는 재목이었다.
익스퍼트. 무기에 자신의 마나를 흘려보내 유형화시킬 수 있는 경지.
이 시대를 움직이는 이들이 오른 경지. 그 경지에 범이라는 아카데미 4학년의 소년이 오른 것이다.
자리에 가만히 서서 검기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재능을 일깨운다. 단도에 서린 검기가 예기를 더해 간다.
“대박…. 대박이다! 재능도! 깨어났어!”
너무도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만 범이었다.
*
“우리… 막둥이가… 미쳤네? 막둥이 나이가… 14살…에 익스퍼트라고? 하… 참… 보석이 아니라 뭔 괴물이였구만. 지가 무슨 영웅 소설에 나오는 영웅도 아닌 주제에…”
들었다면 믿지 않을 소리를 직접 경험하니 할 말이 없어지는 씨어였다.
*
그렇게 대륙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 이를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범과 씨어 단 둘뿐이었다.
*
“우리 미친 막둥이. 축하한다.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