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익스퍼트에 오른 후에는 더욱더 쉬워진 시험이었다. 애초에 실버등급의 용병을 기준으로 세운 시험.
익스퍼트에 오르면 웬만한 사고뭉치가 아니고서야 골드등급이 되는 (전쟁 용병은 그 사고뭉치에 속했다) 것으로 보아 체감상 시험의 난이도가 확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주가 조금 넘어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몸에 마나를 순환하는 것이 더욱 원활해진 지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힘들지만도 않았다.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있었다. 바위에는 불스용병단의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고 그 옆에 씨어가 있었다.
“우리 미친 막둥이. 축하한다. 여러모로.”
“아! 씨어 님! 도저히 못 찾겠던데…”
“막둥이 너한테 들통나면 나가 죽어야지. 그나저나 15살 아니 14살인가… 성인식 전에 익스퍼트라…”
“헤헤… 역시… 보셨어요? 그건 비밀로…”
“단장님과 데마르 님께는 보고할 거다. 새로 들어온 막둥이가 괴물이라니…”
“에이~ 괴물이라뇨. 제가 최초도 아니고”
“그래… 최초는 아니지. 5대 영웅이나 역사에 남는 인물들이 같은 선상에 있으니 괴물이지.”
“헤헤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나요?”
“원래… 막둥이가 들어가게 되는 대대가 나와서 축하해 주는 게 관례긴 한데… 네가 너무 빨리 끝내서. 용병단으로 가자.”
“네! 진짜 씻고 싶고 자고 싶고 먹고 싶어요…”
그렇게 신고식은 무사히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용병단으로 바로 향했다.
*
씨어와 함께 빠르게 돌아오자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아서 복귀할 수 있었다. 명확한 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컸다.
두 사람이 용병단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어떻게 연락을 한 것인지 몰라도 용병단 앞에 용병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호를 받으면서 들어가는 길은 꽤나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친구들도 함께 섞여 자연스럽게 환호하는 걸 보아 잘 적응한 듯싶었다.
“막둥이? 너? 설마?!”
역시나 부발 님의 눈을 속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자마자 알아차리셨다.
“헤헤헤…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당분간은…”
“하하하하하하! 진짜 우리 막둥이 아주 실한 놈으로다가 들어왔구만! 최단기간 신고식도 그렇고!”
“”후오오오오!””
“오늘은 축제다! 내일 임무는 미뤄 버려!!”
“하아… 이 단장 새키… 내가 죽고 말지…”
예상했다는 듯이 환호를 지르는 용병들 사이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 데마르가 보였다.
모두가 함께 흥을 한껏 올리며 식당으로 가자 이미 성대한 만찬인 음식들과 함께 각종 술과 음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모든 테이블이 붙여져 있는 채로 비어 있었고 음식은 한 편에 진열이 되어 있었다.
모든 용병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 불스용병단이 모두 모인 자리는 자신도 처음이었다.
각자 따로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모든 인원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모두 모이니 인원이 꽤 되어 보였다.
1대대 12명 2대대 16명 3대대 11명으로 총인원이 39명이나 되었다. 슬쩍 들은 말이지만, 이후 5번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면 더 많은 사람을 소개받는다고 했었다.
그리고 사이사이 아이들이 끼어 있었다. 량이는 특히나 데마르의 옆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아끼나 보다 싶었다.
“쿵!”
“쿵쿵쿵!”
부발 님의 선(先)발 구름 후에 모두가 발을 굴렀다. 꽤나 울림이 오는 느낌이었다.
“모두! 우리 불스 수호 용병단에 새로 들어온 신입을 보라! 나오거라 범!”
그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씨어의 눈짓을 따라서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테이블 중앙에 섰다.
“보아라! 저 용병이 우리의 막내가 되었다. 나이는 14살! 누가 데려가겠는가!”
실상 이미 정해져 있기는 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 욕심이 나면 데리고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고 순간 말을 꺼내려는 소대장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부발의 압력이 시작되었다.
무언의 압박이 한없이 쏟아지자, 이내 볼멘소리들이 나왔다.
“이럴 거면 왜 물어봤수 단장. 그냥 데려간다고 하지!”
“우우우우우 이건 비겁하다! 초인이면 다냐!”
자신도 은근히 무안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는 부발이었지만, 이내 단호하게 외쳤다.
“하! 용기 있는 이가 없구나! 그럼 우리 1번 대대에서 데리고 가도록 하겠.”
“단장! 내가 데려가고 싶소.”
그 분위기에서도 굴하지 않고 입을 연 존재가 3번 대대 대장이었다. 이름하여 섬광의 나수투스.
눈치가 섬광처럼 빠르다고 용병단 내에서 놀림을 받지만, 3번 대대는 마수 사냥에 특화된 대대였다.
몬스터가 아닌 마수 사냥. 그렇기에 인원수가 가장 적다. 3번 대대는 소대별로 다니지 않는다.
3번 대대 모두가 나서서 마수를 사냥하는 것이다. 대대장은 초인을 바라보는 마스터였고, 가장 약한 이가 익스퍼트에 걸친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불스용병단이 50도 되지 않는 인원수를 가지고도 수호 용병단이 될 수 있는 이유이자, 그 수위를 다투는 힘이었다.
전원이 익스퍼트인 괴랄한 용병단. 익스퍼트에 오르면 바로 준 남작이 된다. 그것이 갓 오른 익스퍼트의 기준이었다.
기사단장이 되려면 무조건 익스퍼트여야 했다. 아무리 귀한 혈통이더라도 기사단장은 익스퍼트여야 그 기사단이 진정한 기사단으로 인정받았다.
용병이 된다면 용병대를 바로 만들 수 있는 위치. 그것이 익스퍼트의 위치였다.
군림하는 것은 초인이지만,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익스퍼트,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녔다.
그중에서도 3번 대대장은 마수를 사냥할 정도로 강하고 경험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 말에 냉큼 부발이 대답을 했다.
“안 돼. 싫어 뭘 줘도 안 돼.”
“대장 대신 임무 2번, 수집품도 드리는 조건.”
“그래도 안 돼.”
“필스너 가문 술 1동이. 저번에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것도 얹어드릴게.”
“… 그래도 안 돼.”
“허… 그 정도?”
“하… 하여간 안 돼. 안 돼”
술 한 동이에도 미동이 없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라서 부발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무시하고 부발은 진행을 하였다.
“그럼! 이번 막둥이는 1번 대대에서 데리고 간다! 이의 없지! 그럼 환영식을 시작하자!”
그러자 음식이 차례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각자 원하는 음식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앞에 놓였고, 술도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분량을 가져다주고 나머지는 계속 진열되어 있어 언제든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막둥이! 이리 와라 한 잔 받아야지!”
부발의 부름을 시작으로 미친 듯이 돌아다녀야 했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여러 질문에도 대답해야 했다.
마치, 오늘 넌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술에 빠져 죽는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먹다가 죽을 뻔하고 술을 마시다 기억이 끊기는 경험을 했다.
*
“어…으…. 어….”
시체가 일어나는 소리를 외치며 일어났다. 눈을 들어보니 꿀물이 옆에 놓여 있었다.
“어… 어흐… 시원하다. 살겠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자신은 방 안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 있는 탁자에 곱게 개어진 것이 있었다.
“우와… 멋있다…”
탁자에는 위장이 될 수 있게 염색 된 가죽의 갑옷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상의와 하의로 이루어져 있었고, 상의 가슴에 불스용병단을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기본 지급품이구나… 진짜 용병단은… 다르네… 불스용병단이 다른 건가…”
전생에 가지고 있던 열망이 있었다. 로망이라고 해야 할까 열등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카데미 복은 크게 나누면 4피스로 되어 있다. 리넨 바지와 셔츠, 그리고 코트. 거기에 가죽조끼가 있었다.
아카데미 복의 기본 지급품이니만큼 기본적인 가공이 되어 있기에 방어력이 나쁘지 않은 가죽조끼였다.
하지만, 4학년이 되기 시작하면 종종 다른 조끼나 자켓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입은 가죽 갑옷은 왼편 가슴에 하나같이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가문을 밝히는 문양도 있었고, 기사단임을 알려주는 문양도 있었다. 대다수가 귀족의 자제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했다.
평민임에도 색다른 가죽조끼를 입은 학생들이 있었고, 이들은 은연중에 대우를 받았다.
소위 싹이 보이는 학생들, 재능이 출중한 학생들이 자신들을 데려간 곳에서 주는 지급품을 입고 있는 것이다.
각 소속의 입장에서는 이 학생을 우리가 먼저 선점하였다는 의미였고, 학생들은 내가 벌써 이런 단체에 소속이 되었다는 자랑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염없이 부러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켓으로 된 가죽 갑옷이 놓여 있었다.
극히 희귀하게 죽어서 시체를 남기는 마수의 가죽을 가공하여 만든 갑옷. 웬만한 판금 갑옷보다 훨씬 뛰어난 방어와 함께 무게가 가벼운 갑옷.
그리고 그 갑옷에는 수호 용병단이, 불스용병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약간 커 보이던 상, 하의가 옷을 입자마자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듯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코트를 입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우와… 멋있다…”
새삼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게 된다. 옷이 날개라더니.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범아… 너… 조금 별로다 방금.”
“카인?! 아니 그보다 언제??”
“애초에 자기를 여기서 잤는데…”
“맞아! 네가 막 데리고 왔는데!”
그 옆에 량이가 금세 나타나서 말을 이어받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당황하는 자신의 모습에 즐거워하는 량이였다.
“어제는 막 취해서 ‘량이야아아 내가 너 덕분에에’ 이러면서 엄청 고마워하더니 이제는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보고 반하는 범이라니…”
“하… 그래… 미안… 내가… 난 망했어…”
우울해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한참을 같이 웃는 카인과 량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량이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를 띠었다.
“범아. 넌 좀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 당당하라구! 라니우스 님께서도 종종 말씀하잖아.”
의외의 따듯한 말에 감동을 받으려는 찰나 이어지는 량이의 말에 진짜 망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망한 거 아니야. 첫째로 오늘 너 입단식 있는 거는 기억하지? 정오에. 그리고 둘째로 이제 곧 있으면 정오다? 빨리 준비 안 하면 진짜로 망한다 너?”
피식피식 웃으면서 말하는 량이의 모습이 미칠 듯이 얄미워 보였다. 그리고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쟤는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어. 허당에 쭈글쭈글한 모습인지 참…”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는 범의 모습에 량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그래도, 범이가 엄청난 건 사실이지! 아카데미 역사에서 유일하게 학생인데도 수호 용병 단원이 된 건데!”
“그러니까… 그게 더 의문이란 말이지…”
그래도 범이 허당이 아니라고는 차마 말을 못 하는 카인이었다.
*
어제의 입단식이 모든 행사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공식 행사에 겨우 늦지 않게 나와서 보이는 풍경에 늦지 않아서 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용병단의 건물 밖에는 꽤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도 눈에 보였다.
‘와… 파로 님도 오셨네, 거기에 용병사무소장이랑, 헐…! 말도 안 돼 저분은 성주님 아니신가?’
블레어성의 성주는 세습직도 아니었고 귀족이 맡아야 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 특수성에 의해서 용병과 단체들에 의해서 임명이 되었다.
이를테면 중재자인 동시에 행정가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위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고작 내가 입단하는 입단식인데… 이게 불스용병단이라서 그런가…’
여기저기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데마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저희 용병단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이 생겼습니다. 이 자리를 같이 축하해 주러 오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낮은 저음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주변의 소음이 점점 사라지고 모두가 데마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