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그때 한창 놀릴 때 범이가 한 말이 걸작이었지. 그때 이 꼬마는 꼬마가 아니구나 했다니까? 범아 뭐라고?”
한참을 자신을 가지고 씹고 즐기던 용병들과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죽어서 영웅이 되느니, 똥쟁이가 되어서라도 살아남는 게 좋다.”
“크하하하하하! 이 봐 얼마나 용병다운 대답이냐! 진짜 넌 태생이 용병인가 보다!”
수호 용병들의 자부심, 특히나 씨어의 자부심이 큰 만큼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찬사였다.
“헹,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께서, 처음 저를 봤을 때 왜 그렇게도 툴툴대고 반대를 하셨을까?”
“아니! 범아! 내가 누차 말하지 않았던! 남자라면! 어! 딱 과거의 일은! 딱! 어!”
악의 없이 장난을 치며 노는 두 사람을 보면서 아이들은 부러운 눈길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불스용병단의 문양은 단순했다. 우람한 불스가 서 있는 모습이 다였다. 다만, 각 대원이 패용하고 있는 문양이 다를 뿐이었다.
문장에서 불스의 왼쪽 뿔에 있는 숫자는 대대를 나타내고 오른쪽 뿔에 있는 숫자는 소대를 나타내었다.
거기에 소대원이라면 발굽의 색이 하얗고 소대장은 뿔의 색이 하얬으며 부대대장은 꼬리가 하얬다. 대대장은 불스 자체의 색이 하얬다.
오롯하게 아무런 표시 없이 하얀 불스의 문장은 부발을 나타냈다. 기본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씨어가 1번 대대의 부대장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높고 높은 사람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범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아이들이었다.
한참을 장난을 치면서 아이들을 소개하던 자신에게 씨어가 진중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질문했다.
“그래서. 막둥이 준비는 다 되었냐. 이번에는 더 빡세다.”
“네! 자신 있습니다! 교육도 열심히 받고 훈련도 받았으니 저번과는 진짜 다를 겁니다!”
절로 각이 잡혀서 대답하게 되었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도 공부에 열중하기도 했고, 수련회에 올 때마다 용병단에서 교육과 훈련에 매진했다.
아직도 수호산맥은 멀고도 멀었지만, 초입의 부분에서는, 그리고 블레어성 주변에서만큼은 이제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래. 너 정도라면 괜찮겠지… 내일 아침 출발이니 적당히 놀고 준비해라.”
씨어의 말이 끝나자 다시 왁자지껄 해지는 식당이었다. 다들 자신을 꽤나 지켜봤기에 장난으로 말을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교육받았으면 그 고생을 안 했을 텐데! 와라! 술이나 먹어라!”
“저는 아직 아카데미 학생이고 15세가 안 되어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말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 작년에 내가!”
“아니 아니! 왜 그러십니까. 선배니임.”
실제로 아카데미 규율에는 15세의 미만 학생들의 음주가 금지되어 있었다. 15세가 된다고 하더라고 과한 음주는 체벌의 대상이었다.
이미 작년부터 부어라. 마셔 라를 배우며 몸소 실천했기에 그 즐거움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보이는 시선이 있었다.
한껏 놀림을 받다가 포기하고 이내 자리를 잡았고, 다른 아이들은 이미 거절할 수 없는 잔들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렇게 신고식 전날은 광란의 파티로 시작이 되었다.
*
동이 터 올 무렵 씨어와 함께 정문에 나와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와 같은 시간에 같은 준비였지만, 또 달랐다.
그때에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 맺힌 몇몇 용병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용병과 아이들의 응원을 들으며 출발하는 길이었다.
“막둥이. 참 사회생활 기가 막히게 한단 말이지.”
“헤헤. 다 그냥 어리니까 잘 봐주시는 거죠.”
한없이 걱정 어린 얼굴로, 전쟁터에 낭군을 보내는 표정인 카인을 보자 씨어는 이어 말했다.
“막둥아. 남자는 아니 된다.”
“저도 여자 좋아합니다!”
그렇게 같이 걸어가는 씨어마저도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상황으로 나아가는 길은 꽤나 즐거웠다.
북문을 나와서 도착한 동굴. 그때와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의 동굴에 도착하였다.
“막둥이. 저번에는 2주 생존이 끝이었다면, 이번에는 3주 안에 이곳으로 오는 것이 시험이다.”
말과 동시에 하나의 지도를 건네주는 씨어였다. 지도는 애매했다. 명확하지도 불명확하지도 않은 지도는 목적지가 찍혀 있었다.
“만약에 늦게 되면 탈락인가요?”
“뭐…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탈락이지. 거기에 도착하는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 더 있다.”
긴장 어린 표정이 절로 나왔다. 도착만 하면 되는 것과 과제가 하나 더 있는 것은 천지 차이.
“초입에서 나타나는 몬스터가 뭐가 있다고 했지?”
“고블린과 하운드가 가장 흔하고 가끔 오크가 나타난다. 초입에서 가장 상위는 오우거.”
“그렇지! 네가 들어간 덩어리가 바로 오우거 똥이지. 다시 생각해도 기발했다.”
“하하하…”
“과제는 이거다. 고블린의 귀를 하나 이상 가져올 것.”
“어떤 방식이라도 상관없나요?”
“그래. 운이 좋아 죽은 고블린 시체를 발견하고 가져와도 인정한다.”
“뭔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네요…”
“쉬우면 신고식이 아니지. 참고로 상상 이상일 거다. 저번처럼 생각 없이 초입을 넘어가지 말고.”
“하하하하… 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이 들어간 숲이 초입과 중간의 경계 부근이었다. 정말 자칫하면 죽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럼. 3주 뒤에 보자 막둥이! 기대하마!”
“넵!”
말과 함께 빠르게 사라지는 씨어를 보면서 다짐을 다졌다.
“빠르고 많이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하게 간다.”
이내 씨어가 사라지고 동굴에 들어가서 그 전보다 많은 양의 빛이끼를 채취해 왔다.
“수호산맥에서 식수 채취가 그렇게 어려운 줄 알았나… 이만하면 충분하지.”
그리고 지도를 펼치고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독도법은 용병단에서도 아카데미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배웠다.
미지의 장소에서 길을 잃는 무서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길잡이가 아니더라도 기본 이상은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씨어가 하나 간과한 점이 있다면, 처음 오는 사람들이야 헤매지만 죽을 뻔한 기억이 있던 자신은 동굴의 위치를 최대한 맞추려 찾아보았다는 점이었다.
“직진으로 왔던 길이 직진이 아닐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씨어를 그저 따라가기만 하니 길이 직진이었던 줄만 알고 고생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여기가 대충 블레어성에서 북서쪽이니까… 목표 지점이 동남 정도구나.”
지도를 보면서 자신의 머리에 구겨 넣은 블레어성 주변을 최대한 맞추었다.
*
“하…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했는데? 우리 막둥이… 이러면 조금 달라져야 하는데…”
자고로 신고식이란 생각만 해도 찌릿찌릿하고 심장이 거세게 뛰어야 제맛이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모르는 범이었다.
*
지도를 보고 방향을 정해 나아가는 앞에는 빽빽한 숲은 없었다. 하늘이 보이고 시야가 확보되었다.
“생각보다 쉽고 빨리 끝나겠는데?”
지도의 거리로 생각해 봤을 때, 가는 데 오롯이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수호산맥이라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을 고려해도 10일 정도였다.
다만, 이렇게 방향을 제대로 잡고 나아갈 때의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편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수호산맥이라는 장소가 무색하게 평온하게 길을 가고 있었다. 이제 4일 차이지만, 마주한 몬스터는 전무했다.
자신 혼자 쉴 수 있는 비트를 파는 것은 이제 너무 익숙하기에, 휴식도 충분히 가지면서 갈 수 있었다.
“고블린 귀를 가져가야 하니까… 이 주변에 부락이 하나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이번 신고식은 쉽고 편하게가 모토였다. 사건 사고 없이 얌전하고 편하게 통과하는 것. 그것만이 목표였다.
부락을 침투하거나 섬멸하는 거창한 목표도, 몬스터와의 피가 튀는 대결도 생각하지 않았다.
“시체가 그러면 주변에 하나쯤은 있지 싶은데…”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이 과제가 아니었던 순간부터 목표는 시체였다. 편하고 쉽게 시체에서 수거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포식의 최하위에 존재하는 고블린이더라도, 정면에서 2마리라면 감당할 만했지만 3마리면 위험했다. 그리고 4마리라면 죽어라 도망쳐야 했다.
일반 병사와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고블린이었지만, 이들은 사냥꾼이었다. 비열하고 ‘사냥’을 하는데 능한 이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지금은 그저 시체가 어디에 있나 찾아볼 따름이었다.
그때, 몸이 순간 팽팽한 긴장으로 당겨지기 시작했다.
‘뭔가 있다. 무언가 움직이는 게 걸려. 고블린인가… 일단 나도 숨자.’
기척을 느끼는 범위가 넓어졌다. 20m 안에 있다면 모든 것을, 50m면 대부분을 그리고 그를 넘어가도 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동물의 움직임이 아닌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근처에 숨고 어설프게나마 위장을 한 범이었다.
“키릭. 키리릭?”
“키리릭릭!”
곧이어 고블린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대화를 하는 이들이었다.
‘하… 재수도. 빨리 끝내자.’
천천히 단도를 손에 쥐고 기어서 나가기 시작했다. 기어서 고블린 한 마리 뒤로 천천히 천천히 접근했다.
거리가 적당해졌다고 생각이 되자, 순간 일어나 튀어 나갔다. 그리고 고블린의 뒤에서 튀어 올랐다.
“키이이이이익!”
자신을 본 고블린이 무엇인가를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고블린의 뒤를 잡고 단도로 그대로 목을 베었다. 깔끔하게 잘려져 나갔다.
‘확실히… 재능도 많이 발전한 것 같기는 한데…’
목을 그은 고블린을 옆으로 치우고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자신을 보며 뱉는 고블린의 침을 몸을 옆으로 틀면서 피하고 오른손의 단도로 고블린의 왼쪽 목을 베었다.
순식간에 끝난 전투였다. 단도를 두 번 써서 고블린 두 마리를 해치웠다. 큰 힘을 들이지 않은 효율적인 전투였다.
“아효… 귀찮게…”
고블린의 귀를 자르고 난 후에도 범은 필요한 부분을 채취했다. 그리고 힙색에 넣는 척을 하면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뭔가… 계기만 있으면 발아한 게 자랄 거 같은데… 그게 뭔지를 도통 모르겠네…’
죽을 뻔한 기억 이후에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자신이 아공간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공간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어찌나 멍청이 같았던지,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아공간에 1달 분량의 건량과 식수는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렇기에 더욱 거칠 것이 없었다. 고블린의 채취를 끝내고 난 후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저녁이 가까워져 올 무렵, 비트를 팔 장소를 물색하던 중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어? 설마…”
잠시 눈을 감고 집중을 하니 가벼운 발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옴을 알았다.
“아나…”
지체하지 않고 단도를 쥐고 횃불 대용으로 만든 튼튼한 나무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순간 눈앞에 하운드 무리가 나타났다.
‘하나, 둘, 셋, 넷, 다섯…이면 나쁘지는 않네. 그래도 왜… 갑자기…’
하운드는 단일 개체로는 위협이 되지 않는 몬스터였다. 다만 그 무리가 커질수록 위험해지는 몬스터였다.
무리가 커질수록 그 무리의 알파는 홀로 오크를 상대할 만큼 강해지고 그 밑의 하운드도 강해졌다.
문제는 절대 홀로 덤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운드가 홀로 싸움을 할 때는 오로지 알파에게 도전할 때뿐이었다.
만일 놓치게 되면 다른 무리를 끌고 오기에 빠르게 모든 하운드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강한 알파를 먼저 잡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알파가 먼저 죽으면, 대게 도망치기 때문이었다. 도망을 치게 되면 그때부터 온갖 무리를 몰고 와 지옥이 펼쳐졌다.
“알파… 알파가 누구냐…”
하운드 무리에서 중심에 볼에 상처가 있는 녀석이 보였다.
“찾았다. 천천히 천천히 한 마리씩.”
하운드를 상대할 때의 요령을 기억해 낸다. 압도적으로 순식간에 모두를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아슬아슬한 것이 포인트였다.
자신이 계속 사냥감으로 인식이 돼야 했다. 사냥감이지만 조금 귀찮고 날카로운 사냥감이 되어야 했다.
‘다리를 노리라고 하셨지. 죽이지 말고 다리만 기동성만 자르고 마지막에 알파를 죽인 뒤 죽이라고.’
불이 붙은 나무를 땅에 박아 넣고 천천히 앞으로 나가는 범이었다. 앞으로 슬금슬금 나아가다 옆으로 방향을 튼 순간, 두 마리의 하운드가 자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목과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두 하운드. 나가던 반대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 목을 노리는 하운드의 뒷다리를 깊이 베었다.
그러자 허리를 노리고 들어오던 하운드가 다시 목을 노렸고 다른 4마리의 하운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 은근히 어렵네 이거…’
하운드는 개인 주제에 나무를 타기도 했기에 섣부르게 나무를 등 뒤에 댈 수도 없었다.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하운드를 피해 자신에게 다가오던 다른 한 마리의 하운드의 엉덩이 깊게 단도를 박고 튼 뒤에 빼내었다.
‘이제 세 마리… 아슬아슬하여지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
순간 뒤에서 날아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먼저 목을 노렸던 하운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대로 턱 밑으로 단도를 관통시켰다. 그리고 그 시체를 알파에게 날려 보냈다.
‘씨… 죽이면 애매해진다고 하셨는데…’
알파 앞에 떨어진 하운드가 무리의 여성이었는지, 알파가 분노 어린 눈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낮지만 큰소리로 으르렁거리면서 남은 하운드와 함께 달려오기 시작했다.
직선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럭키다!’
도망가지 않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이 오히려 더 기뻤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날아오는 두 하운드.
왼편의 하운드의 목에 왼손으로 옮긴 단도로 깊이 박은 동시에 오른손으로 알파의 목을 잡고 땅에 박으려는 순간.
“크앙!”
일전에 달리 하나를 베어놓고 신경을 껐던 하운드가 갑자기 날아와 팔을 물었다.
“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