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하… 씨발이다…”
숲은 원래 고요하지 않다. 많은 동물들의 소리가 나는 평온한 곳이 숲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수호산맥의 숲은 고요하다.
고요하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고요한 가운데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지고 적의가 느껴진다.
그 상황에서 홀로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망함의 탄성을 내지르고 나서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도축용 단도 하나뿐이었다. 무기는 놓고 가야 한다는 그 말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건량은 2일 치밖에 없고, 식수도 터무니없이 없고, 하… 결국 수원도 찾아야 하고 식량도 구해야 하는 건데… 그것도 이 수호산맥에서…’
천만 다행히 수호산맥에서 무엇을 먹고 조심해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는 점이었다.
졸업까지 모두 수호산맥에서 수련회가 이루어지기에 아카데미에서 1학년 때부터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는 벌써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아는 게 힘이구먼.’
억지로 텐션을 올리면서 단도를 오른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동굴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범을 관찰하는 씨어가 범의 행동을 보면서 평가를 하고 있었다.
“멍청이처럼 냅다 들어가지는 않는다라… 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일단은… 괜찮다인가…”
*
들어온 동굴을 의외로 어둡지 않았다. 미약하게나마 빛을 내고 있는 이끼와 같은 것이 동굴 내부를 그나마 비추어 주고 있었다.
“빛이끼가 있다면… 하… 젠장.”
빛이 나는 이끼를 보면서, 표정을 찌푸리고는 이끼를 주섬주섬 배낭에 담기 시작했다.
“빛이끼… 영양이 높고 수분이 있어 비상시에는 식사 대용으로 무엇보다 좋은 식물… 하지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러 벌레가 치운 이끼들을 보호하듯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독성을 지닌 벌레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젠장. 여기서 잠은 다 잤네.”
벌레들을 보아하니 즉사의 위험은 없어 보였지만 어떤 중독 증상을 나타낼지도 모르고, 그 많은 벌레에게 물린다면 또 다른 이야기이기에 적당히 이끼를 챙겨 동굴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굴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서둘러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숲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더욱 어둑해진 하늘이 보였다.
“하… 빨리 잘 곳을 정해야 하는데…”
아카데미로 향할 때 받은 훈련 아닌 훈련 중에 프란체스코 님의 말씀이 떠오른 범이었다.
‘범아.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곳은 안전한 쉼터란다. 어떤 여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쉬어야 하는데, 그 쉬는 장소가 가장 중요하지.’
문제는 이곳이 수호산맥 내부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장소, 아직도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은 장소, 그것이 바로 수호산맥이었다.
일단은 동굴을 나와서 멀지 않은 장소에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 이래서 이게 있었구나…”
지금 땅을 파고 있는 도구는 삽이었다. 배낭 안에 있던 물품이 바로 삽이었다.
무슨 재질인지 모르지만 튼튼하게 만들어진 소형 삽은 한 면에 톱과 같은 날이 달려 있었다.
“대충 잘 모르겠다 싶으면 비트를 파라고 하셨지… 그때 만들어 본 게 이렇게 도움이 되기는 하네…”
꽤 시간이 걸려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그 위를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마른 가지들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른 가지들을 모은 뒤에 대뜸 돌 하나를 가져다 대자 불이 서서히 나기 시작했다.
“카인 덕에 진짜 편하네…”
방금 가져다 대었던 돌은 ‘파이어 스톤’이었다. 무성의하기 그지없는 이름은 사실 실패작이자 실험작이었다.
그저 가져다 대면 1서클의 가장 기본이 되는 파이어가 발동하는 아이템이었다. 영구히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그저 20회 한정의 아이템.
몇 년 전의 아카데미 축제에서 실험작으로 나온 물품을 보고 냉큼 데스투도 가문의 상단이 물품의 모든 것을 매입하였다.
그것은 용병들에게 꾸준히 많이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 그 거래를 주관한 이가 일개 행수에서 지역장이 되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
그런 ‘파이어 스톤’을 조금 더 휴대성이 좋게 작고 디자인이 있게 해서 나온 것이 지금 들고 있는 물품이었다.
카인에게 작년의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인데 덕분에 정말 편히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피워 놓았던 불 안에 돌을 가져다가 비트 아래에 두니 불안하지만 따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따스했던 잠이. 편히 잔 마지막 잠이었다.
문제는 3일 정도 되었을 무렵에 터졌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던 듯하다.
그저 수호성의 방향으로 가면 조금 나아지겠지 해서 온 방향인데,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숲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늘이 보이지 않으니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고 어느새 방향을 잃었다.
방향을 잃게 되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어둑어둑한 숲, 그것도 온갖 나무와 식물이 무성한 숲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시간 감각을 잃었다는 것. 그것이다. 계속해서 어두우니,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슬기롭게 벗어나고자 했다. 그런데, 걸어가는데 튀어나오는 뱀,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리, 저 멀리서 울리는 포효.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압박하고 또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배 위에 뱀이 누워있는 경험을 해보자. 더 버틸 수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의 동아줄을 잡고 정신을 차리는 것뿐이었다. 프란체스코 님의 한마디를 붙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에서 길을 잃었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나무를 잘라. 나이테를 보거라. 그리고 넓게 난 쪽이 남쪽이다.’
나이테를 확인하고 무작정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그리고 묵묵히 걸었다. 물을 구할 도리가 없어 그저 빛이끼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걸었다.
천만다행으로 포효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심적인 안정감이 들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2주가 지난 것 같은데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자신을 찾아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렇게 숲에서 버림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래도 초입이니까… 찾을 수 있을 거야. 다만, 그게 내 시체일지 아직 살아있는 나일지 모르지만…’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며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잠은 쪽잠으로 잘 수밖에 없었다.
비트를 파고 보금자리를 만들 정신 따위는 없었다. 그저 나무 밑동에서 쭈그려 자거나 나무에 기대어 잠깐잠깐 잠을 잤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점점 암울해지는 현실이 자신을 옥죄어 왔다.
당당하게 말을 꺼냈던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자신이 너무 멍청했다.
어떻게 다시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물소리다! 살았다!’
꽤 많이 담았는데도, 아끼고 아끼며 먹었는데도 이제 바닥으로 보이는 빛이끼였다.
물이 없어지는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초조함이었는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조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따라 그 물을 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갔다.
조금 달려가자, 눈앞에 물이 흐르는 하천이 보였다. 너무나 기뻐 생각도 없이 하천에 얼굴을 박았다.
“하… 살았다…”
순간, 너무 함부로 먹었나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물을 한껏 마신 뒤에 드러누웠다.
“하… 죽겠네, 죽고 싶다. 아니 살고 싶다…”
여전히 올려다본 하늘은 어두웠다. 빽빽이 솟아난 나무들 사이로 빛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계속되는 광경에 결국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객기를 부렸던 자신이 너무도 미웠다.
그저 쉬고 싶었다.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싶었다. 어찌 되든 조금이라도 쉬어야 나아가든 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조금 쉬자…’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고 힘을 빼는 순간이었다. 오소소 온몸에 닭살이 올라옴과 동시였다.
“크우와앙!!”
거대한 포효 소리와 함께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일단 일어나 뛰었다. 수호산맥에서 자신이 겨룰 수 있는 생명체는 몇 없다, 이길 수 있는 생명체는 더더욱 적다.
더욱이 저런 포효를 내뱉는 몬스터나 마수라면 자신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따라잡힐 것만 같은 느낌이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범이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달리던 범의 눈에 들어오는 덩어리가 있었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 덩어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질척이고 죽을 것 같은 냄새가 났지만, 진짜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눈을 감고 덩어리 사이에 박혀서 밖의 일에 감각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을 지나쳐 가는 거대한 울림을 느꼈다.
‘살… 살았다…’
살았다는 그 생각에 긴장이 턱 풀렸다. 다만, 풀린 긴장에도 모든 긴장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때였다, 불현듯 없던 인기척이 옆에서 나기 시작했다. 극도로 긴장이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똥쟁이. 고생했다. 통과다.”
그 말과 함께, 그 말을 한 것이 씨어임을 확인한 순간. 모든 긴장이 풀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살았다는 생각과 앞의 씨어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으허허헝헝 씨어니임…”
덩어리에서 벗어나면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씨어에게 달려갔다.
“야! 야! 꺼져. 오지 마! 이 새끼야 너 지금!”
그렇게 온몸에 무엇인가를 묻히고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코에서 콧물이 흐르는 범이 달려들고 그를 피해 다니는 씨어의 모습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수습이지만, 불스용병단의 단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동안 똥쟁이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
그날의 그 사건이 정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음을 알기에, 추억이 되었다.
그 시점을 이후로 자신이 교만했음을, 그리고 그 가졌던 교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전생에 자신이 소드마스터와 그래도 자웅을 겨룰 수 있었다는 무인이라는 자부심. 돌아와서는 아카데미에서 그 찬란한 재능의 로사에게 져보지 않았다는 자부심.
이것들이 모여서 어느새 자신이 자신 스스로가 꽤 대단한 사람이라고, 무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호산맥에서 그때 죽음을 앞두었을 때. 철저한 무력감에 빠진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객관적인 상태를 알게 되었다.
전생의 힘은 전생이었을 때 있던 것이고, 로사를 이기고 아카데미에서 온갖 칭찬을 받는 것은 어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자, 더욱 죽을 듯이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라는,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더욱 치열해질 수 있었다.
더욱이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자 자연스럽게 유저의 경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전생의 모습을 그리면서 했던 동작들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에서 벗어나니 발전이 더욱 빨라졌다.
그 후에 에밋의 덕분에 다녀온 던전을 통해서 13세에 익스퍼트를 내다보든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아카데미에 초인들이 있기에 익스퍼트가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대륙에서 힘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익스퍼트라는 점을 본다면.
그 익스퍼트 내에서도 격차가 있지만, 그 경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13세에!
한참을 회상에 빠져있는 때에, 씨어가 범의 이름을 크게 말하는 내용에 회상에서 돌아왔다.
“그때 한창 놀릴 때 범이가 한 말이 걸작이었지. 그때 이 꼬마는 꼬마가 아니구나 했다니까? 범아 뭐라고?”
한참을 자신을 가지고 씹고 즐기던 용병들과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