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드라쿨의 월급
65.
#
리차드 헨더슨.
그의 아버지는 유전공학자였다.
유전공학자였던, 그의 아버지의 목표는 병에 무력하게 죽지 않은 강인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 답은 동물의 유전자에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아버지는 동물과 인간의 유전자 결합을 연구했다.
끝내 연구에 성공하지 못하고, 병에 걸려서 사망한 아버지를 본 리차드는 같은 꿈을 꿨다.
그리고 운인지, 운명인지,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바로 게이트의 등장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마수는 인류에게는 재앙으로 느껴졌지만, 리차드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시련이 닥쳤다.
바로 돈, 연구비가 문제였다.
마수나 몬스터는 인류에게 재앙이 맞았지만, 그가 보는 것처럼 무한한 가능성인 측면이 있었다.
그들의 시체는 지구에는 없는 새로운 자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게이트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돈이었다.
리차드가 태어나기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그가 하는 실험은 단순히 유복한 집안의 재산으로는 불가능했다.
몇몇 투자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리차드가 원하는 것과 달랐다.
결국, 리차드는 지금까지 진행됐던 실험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그때, 나타난 것이 빛의 교단, 리차드가 모시는 열두 번째 사도 바루스였다.
“내······,그대의 실험······,후원하도록 하지.”
당시의 바루스는 니우다와 아비네와 달리, 광인의 빙의했을 때 보이는 엘프같은 외형이 아니었다.
푸석한 백발,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 같은 피부, 힘없는 목소리까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빙의된 육체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 힘을 사용했을 때 육체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는 부작용이었다.
바루스는 모종의 사건으로 안정화에 들기 전, 힘을 사용한 대가로 몸이 붕괴하고 있던 것이다.
“후, 후원 말씀입니까? 그 말이 진짭니까?”
“그래······, 강인한······, 육체를······, 만들어라.”
자신의 평생의 걸친 연구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리차드에게 바루스의 제안은, 캄캄한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며 구원이었다.
그때부터 리차드는 빛의 교단, 정확히는 바루스의 지원을 받으면서 인간과 마수의 유전자를 결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때문에 아홉 번째 사도 니우다와 일곱 번째 사도 아비네가 리차드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연구는 거의 끝자락에 와 있었다.
아주 강력한 마수만 있으면 됐는지, 마침 바오를 발견한 것이었다.
“바루스님, 찾았습니다. 바루스님이 만족하실만한 강력한 마수를 찾았습니다.”
『드디어 연구가 끝이 나는 것인가?』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습니다······.”
『어째서인가?』
“그 마수가 강하온, 그놈에게 있습니다.”
『······.』
바루스의 몸을 이룬 빛이 일렁거렸다.
강하온은 교단의 적, 분노한 것이다.
“······.”
리차드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모든 사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루스의 분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놈은 어땠지?』
잠시 후, 진정된 바루스는 리차드한테 물었다.
“제가 가늠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리차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놈에게서 그 마수를 빼앗을 방법은 있느냐?』
“피해가 있기는 하겠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그리고 잘만하면 놈의 약점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교단에서 지원할 테니 준비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리차드는 고개를 숙였고, 바루스는 다시 제단 안으로 사라졌다.
제단 안쪽에는 약품으로 가득한 초록색 물이 있었고, 그 안에는 바루스의 육체가 있었다.
이미 많은 실험으로 다시 젊어진 상태였다.
“크하하, 이제 곧 내 실험이 완성된다!”
자신의 연구실로 올라온 리차드는 광기 어린 눈을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
며칠 뒤, 강하온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띠링-!
조판수와 김복남이 협력해서 보낸 리차드에 대한 정보였다.
리차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알려진 정보 외에 그의 세세한 행적을 알아내려면 꽤 어려웠을 텐데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서 일을 해결한 것이다.
“나야 좋긴 한데······, 이거 지나치게 열심이네.”
강하온은 고맙기는 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부담스럽기는 했다.
그냥 쓰지 않아서 아공간에 잠들어 있는 물건을 줬을 뿐인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니 말이다.
“다음에는 키 크는 약이라도 선물해줘야 하나?”
강하온은 조만간 두 사람에게 보상으로 내려줘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두 사람이 보낸 정보를 읽어내려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조판수와 김복남이 보낸 정보는 엄청 세세했다.
과연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데다 요약해서 정리까지 제대로 되어 있어서, 읽는 것만으로 리차드의 인생을 읽는 느낌이었다.
“역시 이상하네, 수상해.”
리차드에 대한 정보를 읽은 강하온은 더욱 수상함을 느꼈다.
그가 이상하게 느낀 점은 게이트 시대가 열리고 1년 후, 리차드가 마수 연구를 시작한 지 대략 6개월 정도 흘렀을 때였다.
막대한 실험 자금으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함
이때의 리처드는 막대한 빚을 지고, 연구는커녕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나와 있었다.
강하온이 수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다음이었다.
-영국의 백만장자, 위블 레핏의 투자를 받으면서 연구를 재개함.
갑작스럽게 투자를 받은 것이다.
가짜 투자자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명한 투자자였다.
위블 레핏, 영국에 유명 투자자였다.
-위블 레핏의 흔적을 찾아봤지만, 투자 시점부터 종적을 감춤.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준 위블 레핏에 대한 소식은 전부 거짓.
문제는 그 뒤로 종적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는 개인 투자자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죽으면 죽었다고 하면 될 것인데, 굳이 죽음을 숨길 필요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사라졌음에도, 가짜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는 게 수상했다.
“니우다, 광인이 빙의하는 조건이 각성하지 않은 육체라고 했지?”
강하온은 니우다의 영혼석을 꺼내서 물었다.
『그렇긴 하지만 단순하지는 않다, 광인들은 특유의 파장이 있는데 그것이 맞는 인간이어야 한다.』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실제 이 파장이 맞는 육체를 찾지 못해서, 아직 빙의를 하지 못한 사도도 있었다.
“혹시 위블 레핏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
『안다, 영국의 유명 투자자 아니냐?』
“그래, 그 녀석이 사도일 확률을?”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우리 사도끼리도 빙의한 육체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지.』
니우다한테서 긍정적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하온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100% 아닌 건 아니라는 말이네?”
강하온이 살짝 걸렸던 것은 니우다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위블 레핏 정도의 유명한 인물이라면, 같은 사도였던 니우다가 알지 않았을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알 수 없다는 말에, 위블 레핏이 사도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본사면은 영국인가?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네.”
강하온은 리차드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똑똑-!
그때, 베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야간 경비 드라쿨이었다.
드르륵-!
강하온은 마법을 이용해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가?”
드라쿨은 잔뜩 기대한 얼굴로 대답했다.
“무슨 날인데?”
강하온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이 몸에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날이다. 즉, 월급을 받는 날이라는 거다.”
드라쿨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그렇게 됐나?”
“그러하다, 이제 월급을 내놓아라. 정당히 일한 대가를 받아야겠다.”
“그래? 그런데 보통 월급은 그달에 주는 게 아니라, 다음 달에 날짜를 정해서 주는데?”
“······.”
드라쿨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농담이다, 농담.”
“하하······, 나도 알고 있었다. 얼른 월급을 줘라, 최근에 안 좋은 피만 먹다 보니까 빈혈이 온 거 같다.”
농담이었다는 사실에 드라쿨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으음, 그런데 문제가 있다.”
강하온은 그런 드라쿨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또, 뭐! 뭐 때문에 그러······냐야······.”
순간 화가 나서 소리를 높였던 드라쿨은 강하온을 보고 재빨리 소리를 낮췄다.
강하온이 나래가 자는 방을 보고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기 때문이다.
“미, 미안하다. 이건 내 실수다.”
드라쿨은 혹시라도 근무 태만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월급을 주지 않겠다고 할까 봐, 먼저 사과를 했다.
만약 이런 드라쿨의 생각을 누군가 알았다면, 강하온이 무슨 쓰레기도 아니고 그런 행동을 하겠냐고 하겠지만, 강하온은 쓰레기가 맞았다.
당연히 그런 행동을 하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물론, 이건 드라쿨이 직접 겪어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 그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뱀파이어어 특성상, 피가 아니면 식사를 할 수가 없고, 웬만하면 햇빛을 쬐지 않게 해달라고 하니 강하온이 한 말은 체질을 바꾸라는 막말을 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나저나 이게 조금 문제긴 하네.”
강하온은 아공간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서 자신의 손가락을 찔렀다.
그러자 단검은 천천히 누르는 속도대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저, 저런 무식한······.’
드라쿨은 한눈에 봐도 명단검이라 불러되 될 정도의 단검이 젓가락 구부러지듯 구부러지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드래곤의 비늘도 아니고, 사람의 피부인데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나는지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상처가 안 난다, 어떻게? 네가 직접 목이라도 물어서 먹을래?”
강하온은 셔츠 한쪽을 풀어헤치며 목을 보여줬다.
“좋······.”
당장에 좋다고 얘기하려고 했던 드라쿨은 끔찍했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어찌나 피부가 질기고 단단한지, 근육도 제대로 뚫지 못하고 이빨이 그대로 박혔던 기억이다.
“좋지 않다, 그런 생각은 좋지 않아. 됐으니까, 얼른 그 역겨운 목덜미나 치워라.”
드라쿨은 뱀파이어로서 처음으로 사람의 목덜미를 거절했다.
그것도 최고급 특 상품의 피가 있는 목덜미를.
“농담이었다.”
강하온은 잔뜩 실망한 드라쿨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드라쿨은 웃지 못했다.
“······넌 농담을 잘못 배운 거 같다. 어디 가서는 농담 같은 거 하지나 마라.”
대체 저 살벌한 말을 농담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드라쿨이었다.
“자, 여기.”
강하온은 마력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손가락 끝에 상처를 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끝에, 피가 맺혔다.
“그 아까운 것을 흘리면 어쩌려고.”
그 모습에 드라쿨은 다급하게 무릎을 숙이고 강하온의 손가락 밑에 얼굴을 들이미는 우스운 꼴이 됐다.
“별걱정을 다하네.”
하지만 드라쿨이 걱정한 일은 안 일어났다.
정확히 한 방울만 허공에 또 오르더니, 붉은 진주처럼 뭉쳐있었다.
“여기, 월급이다.”
강하온은 드라쿨한테 자신의 피 한 방울을 건넸다.
그날 밤, 드라쿨은 만월을 보며 광소를 터트렸다.
“······.”
물로, 나래가 깰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리는 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