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두 번째 서열 정리, 그리고 함정
66. 두 번째 서열 정리, 그리고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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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방울이었다.
지나치게 정확한 한 방울에 드라쿨은 조금 실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강하온의 핏방울이 자신의 혀에 닿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의 실망은 안도로 바뀌었다.
화악-!
몸 전체로 퍼지는 강렬하고도 거대한 힘, 만약 한 방울이 넘어갔다면 자신의 몸은 강하온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막연하기만 했던 투신 강하온의 힘을 얼핏 엿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계속 투신의 밑에 있어야겠군.”
드라쿨은 힘을 키워 피의 맹약을 깨고, 투신을 벗어나겠다는 목표는 버렸다.
그는 평생 투신 밑에 있으며 피 한 방울씩 모아서 최강의 이인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오늘,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드라쿨은 그 전에 할 것이 있었다.
“빌어먹을 곰탱이 새끼, 서열 정리를 다시 한번 해줘야겠어.”
자신은 장차, 최강의 이인자가 될 몸이었다.
그런데 고작 잡초나 뜯어 먹는 인형 같은 삶을 살아가는 팬더, 바오한테 무시당하면서 살 수 없었다.
『이봐, 곰탱이. 그만 퍼질러자고 일어나라.』
드라쿨은 나래의 품 안에서 코까지 골면서 자는 바오한테 의념을 보냈다.
서열 정리는 무릇, 밤에 해야 하는 법이었다.
특히, 오늘 같은 보름달이 뜬 날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는 고귀한 밤의 귀족, 뱀파이어 로드였으니 말이다.
바오, 그는 대수림의 제왕이었다.
감히 누구 자신의 단잠을 깨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잠을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적이었다.
물론, 강하온은 제외였다.
강하온은 대수림에 있을 때부터 그의 단점을 수시로 깨운 전적이 있었고, 반항했다가 맞은 전적도 많았다.
『어떤 새······.』
하지만 강하온은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었고, 자신을 깨운 자는 적이라는 거였다.
바오는 분노하며 일어나다, 옆에 나래가 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끝을 흐렸다.
혹시라도 나래가 일어난다면, 피곤한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박쥐 새끼 네놈이냐? 내 단잠을 깨운 것이?』
바오는 드라쿨이 자신을 깨운 장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드라쿨한테만 의념을 보냈다.
침착하게 말했지만, 바오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하고 있었다.
적이었어도 분노할 상황인데,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부하라고 생각하는 드라쿨이 자신의 단잠을 깨운 것이다.
이건 대수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깼나? 그럼 자는 투신이나 나래가 네놈을 깨었을까?』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네 놈이 정신이 나갔나 보군, 오늘 내가 네 놈의 정신머리를 똑똑히 고쳐주마.』
바오는 진심으로 분노하며, 다시는 드라쿨이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은 이미 강하온에게 많이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이른바 전문가란 말이었다.
폴짝-.
바오는 작은 몸으로 침대에서 뛰어내려, 마당으로 향했다.
“휴······, 왜들 저러는지.”
강하온은 마당으로 향하는 뱀파이어와 팬더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굳이 두 사람이 놀겠다는데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래가 깨지 않게 소리와 충격을 차단하는 결계만 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굳이 전투의 결과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는 보지 않아도 누가 이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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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상상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저 박쥐 새끼가 감히 나의 단잠을 깨워? 이참에 송곳니 하나라도 부러트려야겠어.』
그는 마당 중앙으로 이동하면서도 드라쿨을 노려보며 입을 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바오는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 대수림 꿈을 꾸고 있었다.
황금 대나무 숲 중앙에 누워서 대나무 잎을 막 먹으려는 찰나, 꿈에서 깼기 때문이다.
“긴장했나? 혓바닥이 길구나. 역시 네놈도 나의 달라진 힘을 느꼈구나.”
드라쿨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그리고 바오가 그토록 분노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역시 바오한테 쌓인 것이 많았다.
바오는 우유랑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나래가 먹고 싶다는 핑계로 수시로 잠을 자는 자신을 깨워 심부름을 시켰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햇볕이 쨍쨍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은 처지에 돕지는 못할망정 나를 더 괴롭혀? 네 놈이 한 짓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는 강하온보다 바오가 너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금 대나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동안 손을 봐주마.』
“나야말로, 네놈이 눈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 때까지 때려주마.”
바오한테 황금 대나무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주식이었다.
그리고 바오의 눈두덩이는 검은색이라 시퍼렇게 변할 수 없었다.
사실상 계속 때리겠다는 말을 하는 바오와 드라쿨이었다.
화악-!
먼저 힘을 드러낸 것은 드라쿨이었다.
드라쿨은 자신의 몸 안에서 고동치는 힘을 깨웠다.
그 순간, 드라쿨의 주위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뱀파이어의 힘인 혈기였다.
강하온의 피로 인해서 드라쿨은 혈기는 10배 이상 강해졌다, 그 결과 혈기가 유형화되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온의 피를 먹은 것인가?』
바오는 순간 멈칫했다, 전에 서열 정리 때와는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드라쿨의 기운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단숨에 드라쿨이 월급은 받았다는 것을 파악했다.
단순히 기운이 강해진 것도 있었지만, 혈기에서 강하온 특유의 투기랄까? 상대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이제 긴장이 되느냐?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는다면 더 잘 때려주마, 이제는 이미 늦었다. 너의 항복은 받지 않을 것이니까.”
드라쿨은 멈칫한 바오를 보고는 신나서 광소를 터트렸다.
그는 지금까지 당한 수모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하온이 나를 볼 때 이런 느낌이었나? 우물 안에 개구리가 따로 없군.』
바오는 드라쿨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이 보였다.
그가 멈칫하기는 했지만, 드라쿨의 예상과 달리 겁을 먹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놀란 것은 하온의 힘에 놀란 것뿐이었다.
단순히 피 한 방울로 모기 녀석을 엄청난 대왕 모기로 진화시킨 격이었으니까.
이건 단순히 종의 초월을 넘어선 문제였고, 그만큼 강하온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드라쿨은 이러한 사실은 모른 채, 아주 오만하게 행동했다.
『들어보니 어차피 송곳니는 하루면 그냥 자란다고 했지? 이참에 그 송곳니로 목걸이나 만들어야겠구나.』
바오는 몸집을 키우면서 황금 대나무 죽창을 꺼냈다.
그는 자만과 오만을 어떻게 고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냥 맞으면 됐다.
“덤벼······커억!”
자신있게 말하던 드라쿨은 순간 눈앞이 번쩍이며 별을 보는 착각을 했다.
분명 바오의 팔이 움직이는 것은 봤는데 거기서 생각이 끊어졌다.
『고작 그 정도 힘을 얻었다고, 대수림의 제왕인 이 몸에게 상대가 될 성싶었냐? 아직 한참 멀었다.』
드라쿨이 강해졌다고 하지만, 바오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그도 그럴 게, 지구에 아마존이 있다면 판게아에는 대수림이 있었다.
대수림은 판게아의 폐, 세계수와 쌍벽을 이룰 만큼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자라는 황금 대나무를 숨 쉬듯 먹은 바오가 무식하게 강했다.
퍽-! 퍽-! 퍽-!
그 시작으로 강하온의 집에서는 한밤중에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제야 드라쿨은 바오가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잠깐! 갈비뼈가 부러졌다.”
『뼈가 사라진 게 아니지 않으냐? 어차피 뼈는 붙는다, 그러라고 부러지는 것이지.』
드라쿨은 상황을 인지하고 전투를 멈추려고 했지만, 바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강하온한테 당했던 대로 공격을 쉬지 않았다.
‘그래, 마음껏 때려라. 다음에는, 그게 안 되면 다다음, 그것도 안 되면 다다 다음에라도 꼭 복수에 성공해주마.’
하지만 맞는 와중에도 드라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 한 방울의 기적을 확인했고, 그 한 방울의 기적은 한 달에 한 번씩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시간은 많았다.
“크큭, 히힉.”
드라쿨은 맞으면서도 언젠가는 뒤바뀔 서열을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이게 진짜 미쳤나.』
바오는 맞으면서 웃는 드라쿨을 보고 움찔했지만,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강하온 왈, 공격은 흐름이라 끊기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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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마당으로 나온 강하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리 잘 해놨네.”
혹시라도 마당이 지저분하게 변해 있으면 잔소리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마당은 아주 깨끗하게 원상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강하온의 성격을 잘 아는 바오가 드라쿨을 시켜서 원상복귀 시켜 놓은 것이다.
“빨리 아침밥 먹이고 등교부터 시켜야겠어.”
강하온은 오늘 나래가 아카데미에 간 동안에 바쁘게 움직일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리차드 헨더슨이 있는 영국, 비스트 길드의 본사를 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 이유는 빛의 교단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위블 레핏이라는 놈. 사도가 맞았어.”
강하온은 김복남한테 추가적인 정보를 얻고 확신할 수 있었다.
우연히 찾아낸 위블 레핏의 사진이었는데, 니우다나 아비네처럼 엘프 같은 모습을 한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
“나래를 아카데미에 보내고 가면 늦은 밤이겠군.”
그는 곧바로 리차드를 찾아가서 사도의 흔적을 찾을 생각이었다.
영국과의 시차는 8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른 아침이지만, 그곳은 늦은 밤이었다.
굳이 눈에 띌 일도 아니고, 움직이기 좋은 시간대였다.
“나래, 오늘도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강하온은 금방 나래의 아카데미 등교를 끝냈다.
“곧바로 움직이자.”
강하온은 곧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우리 측에서 정보를 찾았다는 것은, 상대방도 눈치챌 수 있다는 거였다.
워낙 꼬리 자르고 도망치는 데 도가 튼 놈들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줘서는 안 됐다.
번쩍-!
순식간에 강하온의 시야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맑은 아침이었다면,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우중충한 어두운 밤.
영국의 밤이었다.
“저긴가?”
영궁 런던 상공에 있는 그의 눈에 거대한 빌딩이 보였다.
『Beast』
건물 중앙에는 세로로 길드 이름이 거대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침 있군.”
건물 꼭대기 층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리차드 헨더슨, 그의 기운이었다.
리차드의 기운은 일반적인 마력과는 다른 묘한 이질감이 있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띠링-!
당장 리차드를 보러 움직이려는데, 강하온의 스마트 폰에 전화가 왔다.
“타이밍이 좋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한 건가?”
전화를 건 대상은 그가 지금 만나러 가려는 리차드였다.
-강하온 헌터 안녕하십니까? 리차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리차드 박사님.”
강하온은 능청맞게 전화를 받았다.
-일부러 한국시각으로 아침에 연락은 한 건데, 방해가 된 건 아닐까요?
“방해는요, 저도 마침 리차드 박사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네?
순간, 리차드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뉴스에 나온 인터뷰를 보고 있는데, 좋은 일을 많이 하셨네요.”
-아, 그러셨군요.
강하온이 상황을 설명하자, 리차드의 목소리는 편안해졌다.
“그나저나 갑자기 전화를 주시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게 저를 후원해주시는 분이 있는데, 강하온 헌터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간단하게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요?
강하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함정인가? 좋네.’
강하온은 리차드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하죠, 오늘 점심으로 할까요?”
강하온은 함정인 걸 뻔히 알았지만, 피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놈들이 알아서 다 몰려와 준다는 건, 귀찮은 일이 줄어든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럼 지금 당장 전세기를 보내드리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전세기는 됐고, 장소만 알려주시죠. 제가 그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보도록 하죠.”
강하온은 전화를 끊고, 비스트 건물의 꼭대기 층을 보고는 번쩍이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