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리차드 헨더슨
64. 리차드 헨더슨
#
집으로 찾아올 손님, 리차드 헨더슨과 이미소를 기다리고 있던 강하온은 쇼파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다가오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구의 헌터는 전부 힘을 숨기는 게 특기인가?”
강하온은 리차드 헨더슨으로 추정되는 기운을 느끼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세계적인 헌터는 모두 그랬다.
가토는 물론, 마석도와 협회장 박노식, 김복남, 그리고 지금 오고 있는 리차드 헨더슨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욱 강했다.
“판게아랑은 전혀 다르군.”
판게아는 오히려 자신의 힘을 드러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힘보다 더 과장했다.
강력한 힘은 그만큼 훌륭한 자신의 보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리차드라는 놈, 뭔가 있기는 한가 보네.”
리차드가 세계 10대 길드의 마스터이긴 하지만, 그의 헌터 랭킹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TOP 50안에 겨우 발을 거치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리차드의 힘은 길드에서 나오는 것이지 개인의 강함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강하온이 리차드한테 느끼는 힘은 가토보다 더 강했다.
“최소 SS급이라는 말인데······, 역시 수상해.”
테이머의 특성상, 테이밍한 마수가 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지금 단순히 느껴지는 리차드의 힘만으로 너무 강했다.
“일단 봐봐야 알겠군.”
강하온은 리차드를 기다렸다.
#
강하온의 집 앞에 도착한 리차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미소한테 물었다.
“응? 이미소 씨, 안에 있는 거 맞습니까?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아, 그건 결계 때문에 그럴 거예요, 저도 정확한 건 모르지만 강하온 헌터님이 그러셨어요.”
“결계요? 신기한 힘을 쓰시는군요.”
리차드는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강하온 헌터님은 참 대단하세요, 마치 신 같다고 할까요?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분 같다니까요.”
“신이라······.”
리차드는 혼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응?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요?”
이미소는 갑자기 바뀐 리차드의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신기해서요. 그나저나 이제 오시는 거 같군요.”
리차드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문 쪽을 쳐다봤다.
덜컥-!
그리고 리차드의 말대로, 문이 열리면서 아무도 없던 곳에서 강하온이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하세요, 강하온 헌터님!”
이미소는 강하온을 보자,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녀에게 강하온은 하늘에서 내려온 금 동아줄이었다.
덕분에 진급도 할 수 있었고,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도 우연에 일치로 강하온이 근처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미소가 일이 해결된 식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강하온을 신앙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이미소 씨.”
강하온은 씩씩한 이미소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면서 화답했다.
“이 분은?”
강하온은 하얀 머리가 멋들어지게 자란 중년의 백인이 리차드 헨더슨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이미소를 보며 물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비스트 길드를 운영하는 리차드 헨더슨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리차드 박사라고 부르면 됩니다.”
“아, 리차드 박사님이었군요?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전부 박사님 얘기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저는 강하온입니다.”
강하온은 리차드한테 악수를 요청했다.
‘어디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까.’
그는 일부러 손등에 새겨진 교단의 문장이 잘 보이도록 했다.
“갑작스러운 얘기였을 텐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차드는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받았다.
‘으음, 아닌가?’
강하온의 예상과 다르게, 리차드는 그 어떠한 미세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손등에 문장을 봤음에도.
“일단 들어가죠, 리차드 박사님이 보고 싶다는 바오는 딸 나래랑 마당에서 놀고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강하온은 리차드와 이미소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 마당에서 바오와 화장 놀이 중이던 나래가 뛰어왔다.
“안녕하세요, 미소 이모!”
나래는 이미소를 보고 인사했다.
이미 몇 번이나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나래는 낯을 가리지 않았다.
“나래야, 이모가 아니고 언니라니까?”
이십 대 초반이었던 이미소는 억울하다는 듯, 나래를 보며 말했다.
“헤헤, 이모야.”
하지만 나래는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면서 이모라고 할 뿐이었다.
이미소는 억울해했지만, 사실 나래의 말이 맞았다.
둘 사이의 나이 차이는 스무 살 정도가 났으니 이모가 맞았다.
“······누구세요.”
이미소와 인사를 나눈 나래는 곧바로 강하온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리차드를 보면서 말했다.
여전히 모르는 어른은 낯을 가리는, 정확히는 경계하는 나래였다.
“아, 이쪽은 리차드 박사님이야. 나래가 키우는 바오를 보러 오신 분이야.”
이미소는 그런 나래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바오를요?”
나래의 긴장을 푼다고 한 말이, 오히려 나래를 더 긴장하고 경계하게 했다.
마치, 바오를 데려간다는 말로 들렸다.
그도 그럴 게, 나래의 기억 속에 있는 기억 때문이었다.
한빛나가 있을 때, 나래는 팬더를 아기 팬더를 보고 키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한빛나는 모든 팬더는 중국의 소유이기 때문에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다고 나래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줬다.
지금보다 어렸던 나래가 모든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팬더는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알아들었다.
그 때문에 처음 바오를 봤을 때도, 벨루가 호이 때처럼 집에서 키우자고 떼를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나라 사람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서 바오를 보러 왔다고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억, 숨 막힌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바오가 숨이 막힐 정도로 품에 안고 있었다.
바오는 괴로워했지만, 바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래와 강하온뿐이었다.
강하온이 말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래라고 했니? 아저씨는 바오를 데리러 온 게 아니란다. 그냥 보러 온 것뿐이란다.”
리차드는 나래가 어떤 마음인지 파악하고는 곧바로 말했다.
“······진짜요?”
나래는 그제야 조금 경계를 풀었다.
『휴······, 대체 뭘 먹길래 어린 인간이 힘이 이렇게 센 거야······.』
바오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럼, 잠깐 바오만 보러 왔을 뿐이란다. 참, 아저씨가 바오가 선물도 준비해 왔단다.”
“······바오 선물이요?”
“그래, 바오 선물.”
리차드는 특유의 젠틀한 분위기로 나래의 긴장감을 풀면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상자였는데, 그 안에는 대나무 잎으로 감싸진 떡이 들어 있었다.
“최고급 대나무 잎으로 만든 대나무 젤리란다, 바오가 뭘 좋아할까 생각하다 아저씨가 만들어 본 거란다.”
『대, 대나무? 나래야, 나 저거 먹고 싶다.』
나래의 품에 안겨있던 바오는 눈을 반짝였다. 한동안 먹지 못했던 대나무였다.
그런데 잡초 대신, 대나무 잎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침이 고였다.
“바오가 먹고 싶대요, 바오 줘도 되요?”
나래는 바오가 먹고 싶다는 말에 조금 경계심을 풀고 리차드한테 말했다.
“물론이지, 처음부터 바오한테 주려고 가져온 거란다.”
“······고맙습니다.”
나래는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바오한테 대나무 잎으로 만든 젤리를 바오한테 줬다.
“바오야, 맛있어?”
『으음, 내가 먹던 황금 대나무 잎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다.』
바오는 말과 달리, 이미 한 개를 다 먹고는 다음 것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잘 먹는군요, 비스트 한국 지부에 말해놔서 많이 보내놓으라고 해놓겠습니다.”
리차드는 대나무 젤리는 환장하며 먹는 바오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강하온은 고맙게 받았다.
혹시 리차드가 빛의 교단의 끄나풀이고, 젤리 안에 독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험난한 대수림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던 바오였다.
모든 독에는 이미 면역인 바오였다.
극독을 먹는다고 한 듯, 화장실 한 번이면 끝날 거였다.
‘그러고 보니 바오 녀석 먹는 것도 신경 좀 써야겠군, 황금 대나무까지는 아니어도, 뭐가 괜찮을 걸 먹어야지.’
그리고 여태 바오의 먹거리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도 있었다.
‘맛있게 먹는군, 슬슬 해봐도 되겠어.’
리차드는 정신없이 음식에 빠진 바오를 보고 속으로 웃으면서 교감을 시도했다.
그가 온 목적은 바로 이거였다.
교감, 테이머들이 테이밍할 대상의 심리상태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얼마나 강한지 확인해봐야겠어.’
하지만 리차드의 교감은 좀 특별했다.
그의 교감은 단순히 마음을 읽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대상이 얼마나 강한지도 읽어낼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이런 작은 팬더가 A급 애완동물을 기세만으로 제압했다니.’
그는 궁금해하며, 바오에게 교감을 사용했다.
『응? 이 요상한 기운이 뭐지? 네놈인가?』
바오는 자신에게 들어온 이질적인 힘에 고개를 돌려 리차드를 쳐다봤다.
『내게 더 많은 젤리를 대령하고, 머리를 조아려라!』
리차드에게는 바오의 생각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는 바오의 숨겨진 힘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힘이······.’
거대한 힘과 살벌한 기운, 자신의 몸이 움찔 떨릴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
그는 놀라서 재빨리 교감을 풀었다.
『내 뜻은 잘 전해줬겠군, 매일 이 젤리를 먹는다면 그 또한 행복이겠어.』
바오는 교감이 풀린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젤리를 먹기 시작했다.
“리차드 박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냥 바오가 신기해서 봤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리차드 박사님의 마수는 데려오지 않으셨습니까? 과연 세계 최고의 테이머의 마수는 어떨까 궁금했는데.”
“아, 아쉽게도 녀석들은 덩치가 너무 크다 보니 길드 본부에 놔두고 왔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초대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찾아가 보도록 하죠.”
“네, 저는 이만 밀린 일정들이 있어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리차드는 강하온의 집을 떠났다.
“으음, 착각이었나?”
리차드와 이미소가 떠나고, 집에 남은 강하온은 리차드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에는 빛의 교단의 끄나풀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특별한 연결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손등에 문양을 봤을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조금 더 조사해봐야겠군.”
그래도 강하온은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조판수와 김복남이 찾은 정보를 바탕으로 더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
리차드는 이틀간에 한국 일정을 마치고, 비스트 길드의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마스터,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간단하게 먹을 생각이니까, 오늘은 그냥 퇴근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비사를 퇴근시키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도착한 그는,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닌 책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눕혀있던 샤이닝 로드라는 책을 세웠다.
쿠궁-!
그러자 연구실 한쪽의 벽이 밀리면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생겼다.
리차드는 곧바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그 계단의 끝에는 작은 제단이 있었다.
“바루스님, 찾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제단의 앞에서 말을 했다.
번쩍-!
그 순간, 제단 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빛의 형태 인간, 광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의 교단의 열두 번째 사도, 바루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