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내 이름은 바로톨······, 바오다.
60. 내 이름은 바로톨······, 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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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다섯 왕이 지배했던 대수림은 이제 하나의 왕, 제왕으로 인해 통제되고 있었다.
그 제왕은 킹팬더 바로톨로 오카르스였다.
바로톨로는 자신의 보금자리인 황금 대나무 숲에서 몸을 뒹굴면서 나뭇잎을 먹고 있었다.
황금 대나무는 대수림의 모든 기운이 모이는 중앙에 존재하는 곳으로, 잎만으로도 엄청난 마나를 품은 영약이었다.
바로톨로의 취미이자 일상은 그런 영약을 숨 쉬듯 먹는 것이었다.
이러니 그 어떤 경쟁자도 생기지 않고, 거대한 대수림을 지배할 수 있는 거였다.
바로톨로는 오래간만에 맑은 푸른 하늘을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하온이를 만났을 때도 이렇게 날씨가 좋았었지.』
바로톨로는 강하온이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며 옛 기억을 회상했다.
30년도 전에 일이었다.
당시, 대수림의 왕 중에서 최약체였던 바로톨로는 다른 대수림의 왕, 자이언트 포레스트 피그와 전투에서 패배해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때, 나타난 것이 강하온이었다.
강하온은 자이언트 포레스트 피그를 가볍게 처리했다.
『무슨 인간이······.』
상처라고 해봤자, 아주 가벼운 상처였다.
자신은 왕 중에 최약체였고, 상대는 서열 2위였으니까.
사실 이때, 강하온의 강함은 이미 대수림의 왕들을 웃돌고 있었다.
“역시 기다리길 잘했네, 어부지리만큼 좋은 것 없단 말이지.”
강하온은 이미 대수림의 다섯 왕은 전부 파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대수림의 왕끼리 전투가 벌어진 것을 확인한 강하온은 둘 다 상처가 입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부 그건 뭐냐? 아니 그보다 잠깐만 기다려라!』
바로톨로는 섬뜩한 살기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강하온을 보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응? 너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아니 의지를 전달하는 건가?”
강하온은 긴장이 조금 풀리자, 이상한 것을 느꼈다.
자신이 바로톨로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때 강하온은 판게아로 넘어온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 대화를 하는 거였다.
『그, 그건 나도 모른다.』
바로톨로는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반쪽짜리 초월종이었다.
돌연변이로 두뇌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것이 이유였고, 이로 인해서 대수림의 왕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래서 전투 능력이 다른 왕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거 였다.
『일단은 그 손에 든 무시무시한 것부터 내려놓고 얘기하자.』
바로톨로는 강하온에 손에 있는 날카로운 뼈 칼을 보며 말했다.
바로톨로는 대수림의 왕 중에서 유일한 초월종이었다.
“으음, 알았다.”
강하온은 뭔가를 고민하다 칼을 집어넣었다.
대수림에서 투쟁을 해온 강하온의 성격상 원래였다면 바로 죽였겠지만, 몇십 년 만에 누군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탓에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
『어······.』
그 모습에 바로톨로는 어리석은 강하온을 보며, 자신의 무기인 죽창을 들어서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톨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허튼짓하는 순간 죽는다.”
강하온은 서늘한 목소리가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어,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나? 가고 싶은 곳만 있으면 말해라, 나는 대수림의 지형을 모르는 곳이 없다.』
바로톨로는 곧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그래? 마침 잘됐네. 앞으로 나랑 같이 다니자.”
그게 강하온과 바로톨로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바로톨로는 강하온의 심부름꾼과 대화 상대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도망치면 귀신같이 찾아내서는, 자신을 위한 거라면서 대련해서 하루 종일 얻어맞았다. 그런 생활을 강하온이 대수림을 완전히 정복하고 떠나기 전까지 계속됐다.
그래도 바로톨로한테 마냥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
“킹팬, 선물이다.”
강하온은 떠나기 전, 일부러 모든 왕을 잡았다.
대수림 중앙에 있는 황금 대나무 숲을 바로톨로한테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그 덕에 바로톨로는 육체까지 강화되면서 완전한 초월종이 될 수 있었다.
『인간 놈! 다시 만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괴롭힘을 당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물론, 강하온은 괴롭혔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당하는 팬더의 입장은 달랐다.
바로톨로는 강하온을 만나면 자신이 당한 만큼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금방 사라졌다.
『투, 투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군.』
숲으로 들어온 인간들에게 강하온의 소식을 들었고, 자신이 강해진 것보다 훨씬 더 강하온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냥, 대나무나 먹으면서 편하게 살자.』
바로톨로는 복수 따위는 전부 접어두고, 오래오래 편안하게 살기로 다짐했다.
『응? 다른 차원과 연결이 된 건가?』
그렇게 매일 대나무 잎이나 뜯고 살아가던 중, 대수림에 거대한 포탈을 발견했다.
『다른 차원이라, 재밌겠군.』
궁금함에 바로톨로는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봐선 안 될 것을 봐버렸다.
『저, 저 인간 놈이 여기에 왜······.』
그곳에는 자신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강하온이 떡하니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대체 뭘 먹었길래······.』
바로톨로는 강해진 만큼, 현재 강하온이 강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강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멈춰라,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디를 가려고?”
당장에 도망가려는 바로톨로였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강하온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톨로메오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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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에 나타난 게이트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용인 동물원에 나타난 측정 불가 게이트 등장!』
『한국의 자랑인 강하온 헌터와 마석도 헌터의 활약으로 어떠한 인명 피해도 없이 막아내다.』
『대한민국 헌터 최강국으로 우뚝 서나?』
국내 외 할 것 없이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기사가 터져 나왔다. 그로 인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고, 결국 강하온 일행은 원래 예정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래, 동물원 다 못 봤는데 괜찮아?”
며칠 전부터 동물원을 노래 불렀던 나래였다, 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강하온은 혹시 나래가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하지만 나래는 강하온의 걱정과 달리, 실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물원을 가기 전보다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나래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이유는 품 안에 있는 두 마리의 팬더 때문이었다.
한 마리는 강하온이 만든 인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하온의 친구인 킹팬더였다.
“헤헤, 팬돌이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지금은 임시로 팬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킹팬더였다.
자유자재로 몸의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킹팬더는 인형과 같은 크기로 변해 있었다.
“그치, 팬돌아?”
나래는 팬돌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좋아하고 있었다.
『이 몸은 팬돌이가 아니고, 위대한 대수림의······.』
바로톨로는 짜증난 음성으로 자신이 위대한 대수림의 제왕 바로톨로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에 들리는 강하온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너 제법 강해졌더라? 이제는 대련해도 재밌겠어, 만약에라도 나래 기분이 안 좋아지면 오랜만에 대련을 해보자.』
전혀 적의가 없는 강하온의 의념이었지만, 듣는 바로톨로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몸은······, 위대한 대수림의 팬돌이다.』
결국, 바로톨로는 빠른 대세전환을 보여줬다.
“헤헤, 팬돌아.”
『왜 부르냐?』
나래의 품에 안긴 바로톨로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꼬박고박 대답은 잘했다.
쇼파에 앉아서 쳐다보고 있는 강하온의 시선 때문이었다.
‘다시는 그 지옥을 구경할 수 없어!’
바로톨로에게 가끔 이뤄지는 대련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 덕분에 무력으로도 대수림을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해지기는 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는 대련이 끝나고 흐느끼며 대나무 잎을 먹는 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우리 소꿉놀이할까?”
『소꿉놀이? 그게 뭐냐?』
“나래랑 팬돌이랑 노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알았다. 하자.』
묻고 따지려던 바로톨로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온이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본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뼛속까지 새겨진 공포로 인한 착각이었다.
‘모기가 아직도 있군, 드라쿨한테 더 열심히 잡으라고 시켜야겠다.’
강하온이 미간을 찌푸린 이유는 단순히 모기 때문이었다.
“헤헤, 나래는 미용 선생님이고 팬돌이는 손님이야. 잠깐만 기다려.”
소꿉놀이의 테마는 미용실이었다.
정확히는 메이크업이었다.
최근에 티비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고, 나래가 가장 많이 빠진 놀이었다.
‘저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군.’
이미 나래의 손님 역할을 몇 번이나 해봤던, 강하온은 바로톨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강하온이 나래와 놀아주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서투른 나래에게 얼굴을 맡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예로 노아스를 한 번 소환했다가, 소꿉놀이가 끝나고 촉촉해진 노아스의 눈을 봤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라!』
“응? 팬돌아, 왜?”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몸을 팬돌이라 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있다.』
바로톨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팬돌이라는 우스운 이름으로 불릴 수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대수림을 지배하는 제왕이었으니까.
왕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왜? 팬돌이가 아니야?”
『그, 그래! 이 몸의 이름은 따로 있다.』
강하온이 뚫어지라 쳐다보는 시선에 몸이 좀 떨리기는 했지만, 바로톨로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팬돌이라 불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이름은 뭐였지? 그대 대충 들었던 거 같은데. 바로 뭐였다는 거 같았는데.’
바로톨로의 생각과 달리, 강하온은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바로톨로에 대한 감정이 좋았다.
외로웠던 그에게 말동무가 되어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실버드래곤 아이실라를 귀찮아서 은순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바로톨로가 처음 이름을 말할 때 귀찮다는 이유로 킹팬더를 줄여 킹팬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뭐냐?”
“팬돌이, 이름 뭐야?”
궁금해진 두 부녀는 동시에 물었다.
강하온의 허락이 떨어졌다 생각한 바로톨로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이 몸의 이름은 대수림의 위대한 제왕······.』
“사족이 길다, 이름.”
『크흠, 알았다. 이 몸의 이름은 바로톨로 오카르스다.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부를 때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란다.』
잠시 멈칫하기는 했지만, 바로톨로는 말하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당연한 팬더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바오! 바오다!”
“그러게 바오가 맞네.”
이름 줄이는 것 하나는 똑 닮은 강하온과 나래였다.
『바오가 아니다! 내 이름은 바로······.』
“너무 길어, 그냥 바오해. 싫으면 말해, 좋게 만들어줄테니까.”
『······바오다.』
강하온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바로톨로, 아니 바오는 곧바로 수긍했다.
대수림을 지배하는 제왕의 자존심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다.
물론, 강하온 한정이었다.
“헤헤, 바오야. 조금만 기다려. 나래가 금방 화장해줄게.”
나래는 신나서 방으로 들어가 각종 색연필, 싸인펜을 들고 나왔다.
“손님, 가만히 있어 주세요.”
그리고 나래는 바오의 얼굴에 화장하기 시작했다.
『흐어어······.』
그날 밤, 나래가 잠들고, 바오는 푸른 달빛 아래서 흐느끼며 잡초를 뜯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