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서열정리
61. 서열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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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요놈.”
늦은 밤, 경비를 서는 드라쿨은 모기를 잡고 좋아했다.
요새 그는 모기 잡는 낙으로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앵앵거리는 것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요즘에는 모기 덕분에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모기를 잡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흐어어······.』
그렇게 모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던 드라쿨의 귀에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렷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드라쿨은 재빨리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고, 그곳에서 알록달록한 얼굴의 바오를 볼 수 있었다.
바오는 흐느껴 울면서 바닥에서 잡초를 뜯어 먹고 있었다.
“나래의 애완동물이었군.”
당장에 침입자를 처리하려고 했던 드라쿨은 멈췄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앞으로 이 집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들었다.
그리고 잠시 나래와 노는 모습을 추측하건대, 애완동물이 확실했다.
『······.』
드라쿨의 말에 바오는 흐느낌을 멈췄다.
그리고는 뜯어 먹고 있던 잡초를 내려놓고, 말없이 벌떡 일어났다.
“뭐, 뭐냐?”
드라쿨은 움찔했다.
바오한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오는 으르렁거리면서 드라쿨을 노려봤다.
『지금 뭐라고 했냐, 박쥐 새끼야.』
바오가 지금은 알록달록한 얼굴에 잡초나 뜯어 먹고 있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죽음의 숲이라 불리는 대수림을 지배하는 제왕이었다.
그런데 안 그대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드라쿨의 말은 바오의 신경을 자극했다.
“뭐? 박쥐? 이 팬더 놈이 미쳤구나.”
하지만 드라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비록 지금은 강하온의 집 경비를 서고 있지만, 그는 고귀한 밤의 귀족, 용의 심장을 꿰뚫은 뱀파이어 로드였다.
그 역시 어디 가서 무시당할 존재가 아니었다.
사실 두 존재 다 어디 가서 무시당할 존재는 아니었지만, 단지 운이 없게도 강하온이라는 피할 수 없는 재해를 만난 것뿐이다.
『하찮은 박쥐 새끼, 마침 잘됐다. 부하 하나를 둬야겠다.』
“같은 생각이다, 잡초나 뜯어 먹는 곰탱아. 넌 내 시종으로 부려먹어주마.”
어차피 강하온이라는 재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존재는 이참에 제대로 서열 정리를 하기로 했다.
서열 정리를 하기에 앞서, 갑자기 바오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지더니, 작은 인형 크기의 바오가 2m 정도로 커졌다.
원래 키가 큰 드라쿨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상태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오의 손에서 황금빛이 번쩍하면서 손에 황금 대나무 죽창이 생겨났다.
『박쥐 새끼, 네놈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려주마.』
바오는 손에 든 황금 대나무 죽장을 돌리면서 말했다.
단순히 창을 돌린 것뿐인데도, 그 위력이 심상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바오의 창술은 스피어 마스터조차 압도할 정도였다.
강하온한테 배운 창술을 토대로, 언젠가 강하온을 만나면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나야말로 알려주지, 하찮은 미물이 이 몸은 건든 걸 말이야.”
드라쿨은 바오의 모습이 바뀐 뒤로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변신하자마자 느껴지는 힘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자존심을 굽히는 상대는 강하온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겁을 먹었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군. 그래도 칭찬해주지, 박쥐 새끼 주제에 도망가지 않은 것을,』
“뭔 놈의 곰탱이가 혓바닥이 그렇게 길지? 닥치고 덤비기나 해라.”
『먼저 공격이라, 원하는 대로 해주지.』
드라쿨은 지지 않고 맞받아치며 대답했고, 그 순간 바오의 창이 움직였다.
그렇게 경비와 애완동물의 서열 정하기가 시작됐고, 서열은 순식간에 정해졌다.
『고작 이런 힘을 가지고 왜 덤볐는지 모르겠군.』
“······.”
드라쿨은 다시 작게 변한 바오의 앞에서 손을 든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에 멍과 부은 흔적으로 그가 얼마나 맞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예정된 결과였다.
드라쿨 역시 바오와 같이 종을 초월하기는 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엄청난 영약을 숨 쉬듯 먹어왔던 바오에게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실제로 판게아에서 성룡급 드래곤은 굳이 대수림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바오 때문이었다.
『그래, 이 기분이다. 전부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굴복하는 거다.』
바오는 굴복한 드라쿨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대수림에서는 항상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하루 동안 나래의 품 안에 있다가 다시 느끼게 되니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곰탱이 두고 봐라, 그리 웃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드라쿨은 월급으로 받을 강하온의 피 한 방울을 생각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지.’
후에 복수한다고 하더라고, 지금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바오님.”
그는 바오를 엿 먹이기 위해서 존댓말까지 사용했다.
『뭐냐?』
“이참에 제대로 서열을 정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열?』
“그렇습니다. 투신이야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나래한테는 바오님의 위대함을 똑똑히 보여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오늘 했던 소꿉놀이 같은 것을 매일 해야 할 겁니다.”
차도살인지계, 드라쿨은 자신의 힘으로 복수 할 수 없다면 다른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매일? 그럴 수는 없지.』
바오는 오늘 나래와 했던 소꿉놀이를 생각하고는 몸서리쳤다.
“맞습니다, 나래한테 바오님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느꼈겠지만, 투신은 나래의 말이면 꼼짝을 못합니다, 나래를 바오님 부하로 만든다면 투신도 컨트롤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온을? 그거 좋은 생각이군.』
바오는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강하온을 상상했다.
평소였으면 의심해봤을 바오였지만, 이런저런 일로 인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바오는 쉽게 드라쿨의 함정에 넘어갔다.
그리고 드라쿨이 자극한 것은 바오의 욕망이기도 했다.
‘저런 멍청한 놈한테 지다니······.’
드라쿨은 히죽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바오를 보고 속이 부글거렸다.
“으응? 바오야, 어디 있어?”
그때 마침, 잠시 잠에서 깬 나래가 거실로 나왔다.
품에 있던 바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오다!”
나래는 베란다에 있는 바오를 발견하고는 베란다로 뛰어왔다.
“지금입니다, 투신이 자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드라쿨은 바오을 부추겼다.
『알고 있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박쥐 같은 놈아.』
“알겠습니다.”
바오가 인상을 찌푸리자, 드라쿨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바오야, 왜 여기 있어? 나래랑 같이 자자.”
나래는 웃으면서 양팔을 벌렸다.
『싫다.』
“바오, 나래······싫어?”
바오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나래는 울먹였다.
‘됐군.’
드라쿨은 뒤에서 미소를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래, 나는 네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흐아아앙!”
나래가 우는 순간, 바오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느새 나타난 강하온이 바오를 보며 물었다.
싸늘한 목소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이건 잠시 오해가 있어서다, 안 그러냐 드라······.』
바오는 뒤를 돌아보고, 드라쿨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래, 괜찮아?』
바오는 재빨리 나래의 품에 안겼다.
『우, 울지마라. 나는 나래가 좋다.』
“나래, 좋아?”
나래는 울음을 그치고 바오를 보며 말했다.
『물론이다, 그냥 장난 친 거였다. 내일 또 소꿉놀이라는 걸 하자.』
“진짜?”
『진짜다, 그러니 얼른 가서 자자.』
그제야 나래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바오는 나래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떨어진다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툭툭-!
공포에 떨다 잠에 든 바오는 누군가 건드리는 기척에 눈을 떴다.
바오를 깨운 사람은 강하온이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까 나와라.”
『시, 싫다. 그냥 여기서 얘기해라. 또 나래가 깨면 어떻게 하냐?』
바오는 당연히 거절했다. 여기서 따라 나간다면 자신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잠들었으니까 일어날 일은 없을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
바오는 결국, 강하온을 따라서 마당으로 나가야 했다.
『자, 잠깐만 기다려라. 뼈가 부러진 거 같다! 꾸웨엑!』
“괜찮다, 부러진 거지 사라진 게 아니잖아? 뼈는 다시 붙이면 된다.”
그리고 바오는 달밤에 강하온과 대련을 해야 했다.
다음 날, 바오는 나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래의 품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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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거요!”
아카데미가 끝나고, 집에 도착한 나래는 가방에서 편지 봉투를 꺼냈다.
“이게 뭘까?”
“영기가 줬어요! 토요일에 생일 파티한다고 했어요!”
“생일 파티?”
“네!.”
강하온은 나래가 준 초대장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랑스러운 복길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합니다.』
초대장에는 영기가 아닌 다른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래야, 복길이라고 적혀 있는데.”
“네! 복길이 맞아요.”
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온은 혹시 잘못 나온 게 아닌 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듯 했다.
이런 강하온은 혼란스러움을 해결해 준 것은 나래 품에 안긴 바오였다.
『그 영기라는 애가 키우는 애완동물이라고 하더군.』
“아······.”
강하온은 그제야 복길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주말, 강하온은 나래와 함께 복길이의 생일 파티에 참여했고, 영기네 집에 도착한 강하온은 어이가 없었다.
“참······, 거창하네.”
영기네 집은 강하온네 집보다 더 넓은 저택이었는데, 마당에서는 화려한 파티가 이미 진행중이었다.
무슨 애완동물 파티가 칠, 팔순 잔치 저리가라였다.
“나래 아버님이랑 나래 왔네요, 안녕하세요.”
“어머머, 나래 너무 예쁘다.”
“나래 아버님도 아주 멋지세요.”
강하온과 나래가 도착하자, 파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다가와서 인사했다.
사실 여기 온 사람들은 복길이의 생일을 축하하기보다는 강하온과 인맥을 쌓고 싶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오셨어요? 나래 아버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파티의 주최인 영기와 영기 엄마의 목적도 같았다.
복길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강하온과 친분이 더 중요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선물입니다. 이런 파티에는 처음이라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강하온은 미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애완동물의 생일 파티는 처음이라, 애견 명품 가게에 가서 산 개껌이었다.
마침, 영기네 복길이도 개라고 했었다.
“오, 복길이가 자주 먹는 개껌이네요. 아주 좋아할 거에요.”
강하온이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영기 엄마는 아주 좋아했다.
“그나저나 복길이는 어디 있나요?”
강하온은 이 파티의 주인이 궁금했다.
“아, 저쪽에 있어요. 저기 가운데 있는 흰색 개가 복길이에요.”
영기 엄마는 마당 한쪽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늑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거대한 개가 있었다.
강하온은 복길이를 보고 멈칫했다.
‘길들여진 마수인가?’
복길이는 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참석자들이 데려온 동물들도 많았는데, 전부 같았다.
특히, 복길이라는 제법 강한 마수였다.
이미 다른 마수를 굴복시켰는지, 전부 복길이를 둘러싸는 형태로 있었다.
강하온은 몰랐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트렌드 같은 것이었다.
“나래도 저기에 애완동물을 놔두고, 친구들하고 노는 건 어떠니?”
영기 엄마는 바오를 보고는 말했다.
“맞아, 나래야. 바오는 잠깐 저기 두고 친구들하고 놀고 있어.”
“바오야, 저기서 있을래?”
나래는 바오한테 물어봤고, 바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수림의 제왕 바오는 씨익 웃으면서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