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경비 드라쿨
52. 경비 드라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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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과 드라쿨 사이에는, 둘에게만 보이는 붉은 피의 실이 연결됐다.
이 맹약은 강하온이 원치 않거나, 둘 중 한쪽에서 죽지 않는 이상 끊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도망갈 수도 없었지만, 도망가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드라쿨은 강하온에게 해가 되는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사실상 피의 맹약은 종을 자처하겠다는 계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하 경매장이 열리는 위치는?”
강하온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라쿨에게 물었다.
“카호올라웨에서 열린다.”
“카호, 뭐라고? 거기가 어딘데?”
강하온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다.”
드라쿨은 투덜거리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대답이 늦거나, 거짓을 말하면 그의 심장에 피가 몰려서 터질 거였다.
“개최 시간은?”
“하와이 기준으로 새벽 2시, 입장은 1시부터 가능하다.”
“누가 쥐새끼 같은 놈들 아니랄까 봐, 시간대도 아주 조용할 때를 골랐네.”
경매장이 열리기까지 12일, 강하온은 지하 경매장이 열리는 곳과 시간을 알아냈다. 그는 곧바로 다른 걸 물었다.
“빛의 교단, 알아?”
강하온에게는 경매장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경매장과 연결이 된 그 종교를 말하는 건가? 그놈들이라면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애초에 나는 물건을 구하려고 경매에 참여한 것뿐이니까.”
“알았으니까, 그냥 그놈들에 대한 거나 전부 말해봐.”
“내가 아는 건 놈들이 이세계의 신을 믿는다는 것뿐이다.”
드라쿨이 아는 것은 강하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몰랐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드라쿨은 교주와 12 사도의 존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경매장에서 직접 찾아야겠어.’
빛의 교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강하온은 경매장의 위치를 확실히 알아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가자.”
“어딜 말이냐?”
드라쿨이 흠칫 놀라면서 대답했다.
“경매장이 열리는 섬, 거기서 경매가 열리면 뭔가가 있겠지.”
강하온은 빛의 교단의 흔적을 직접 찾을 생각이었다.
“소용없을 거다.”
“뭐가?”
“지금 가봐야 아무것도 없을 거다. 나도 몇 번 경매장이 열리기 전에 미리 가봤지만, 경매장이 열리는 당일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네 눈에 안 보였다고,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
강하온의 말에 드라쿨은 말문이 턱 막혔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갖은 지랄을 했을 테지만, 상대는 강하온이었다.
자신이 짐작할 수도 없는 경지에 오른 강하온의 말이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알았으면 가자.”
“······알았다.”
강하온은 드라쿨의 안내를 받아서 지하 경매장이 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카호올라웨, 건조한 환경 때문에 사람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나무조차 없는 황폐한 숲이었다.
“봐라,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
섬에 도착한 드라쿨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섬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수상하네.”
하지만 강하온은 그것을 더 수상하게 여겼다.
분명 요쿠바의 기억에 있는 지하 경매장은 엄청나게 고급스러웠다. 단순히 하루 이틀 만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가 있어.”
“뭐가 있다는 거냐?”
강하온은 드라쿨을 무시하고, 기감을 펼쳐서 섬을 살폈다.
“저, 저 괴물 같은······.”
드라쿨은 강하온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지금 있는 섬은 무인도치고는 큰 편에 속했는데, 가볍게 섬 전체의 범위에 기감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도 강하온의 얼굴은 평온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찾았다.”
강하온의 감각에 이질적인 것이 잡혔다.
본래 섬의 것이 아닌, 익숙한 힘이 느껴졌다.
빛의 교단의 신도들이 썼던 힘과 비슷했다.
“뭘, 찾았다는 거냐?”
“······.”
드라쿨의 물음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강하온은 이미 섬 중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 누구랑 얘기하는 거니······.”
드라쿨은 처량하게 말을 뱉고는, 늦을세라 강하온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봐라, 아무것도 없잖아.”
강하온이 멈춰서 곳을 본 드라쿨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강하온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투신 강하온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자연과 거의 동화되다시피 한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결계, 그 안에는 사람 머리만 한 크기에 처음 보는 글씨가 쓰인 반짝이는 돌이 박혀 있었다.
“역시 건물 자체를 단번에 이동시키는 거였나?”
강하온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저 반짝이는 돌은 이동시켜주는 매개체였다.
“뭐야? 뭐가 보이는 거야? 거기 뭐가 있어?”
드라쿨은 강하온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만히 놔두는 게 좋겠어.”
강하온은 지금 당장 결계를 부수고, 저 돌을 조사해서 빛의 교단을 찾으려고 했지만 참았다.
빛의 교단은 강하온도 처음 보는 수상한 힘을 썼다.
차라리 경매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확실히 잡을 생각이었다.
“이만 가자.”
“······.”
이번에는 드라쿨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되는 무시에 삐친 상태였다.
“죽고 싶은 건가? 원하면 말해라, 어차피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으니까.”
“아, 아니다.”
똑같이 무시를 해주려고 했던 드라쿨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강하온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강하온의 말은 진심이기도 했다.
강하온이 드라쿨을 경비로 쓰려는 이유는 단순 귀찮아서였다.
굳이 없어도 문제가 될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부터 일하는 건가? 보통은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나? 아, 물론 그냥 물어본 것뿐이다. 가자.”
드라쿨은 별장에 먹지 못한 피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가, 강하온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는 말을 바꿨다.
‘원래 저런 놈이었나? 생각했던 이미지랑은 다르네.’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고귀한 밤의 귀족이었다.
실제 판게아에서 강하온의 종을 자처했던 로한은 고고한 귀족의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드라쿨은 귀족보다는 푼수 같은 느낌이었다.
강하온은 피식 웃으면서,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경매가 열리기 전까지는 12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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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그대의 집인가?”
드라쿨은 강하온의 집을 보고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강하온보다 나은 것을 찾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게, 판게아에서 살던 드라쿨의 성도, 그리고 마약왕 리카르도의 집도 전부 궁궐이라 부를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그래, 네가 앞으로 일 할 집이기도 하지.”
“······.”
한껏 승리감을 느끼던 드라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승리감은 한순간에 굴욕감으로 바뀌었다.
“네가 할 일은 몰래 이 집으로 들어오는 놈들을 잡으면 된다, 이왕이면 죽이는 것보다는 사로잡는 쪽으로 해라.”
이미 알만한 길드는 요쿠바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레비아탄을 쓰러트리는 모습이 퍼지면서, 요쿠바처럼 미련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강하온한테 호의를 표하는 사람들도, 전부 협회를 통해서 하라고 강하온이 못을 박았기 때문에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미친놈은 어딜가나 있는 법이었다, 지금 잠잠할 뿐이지만 언제 나타날지 몰랐다.
“여기 들어오는 미친놈이 있기는 한 거냐?”
드라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마당을 포함한 이 집 전체에는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웬만한 강자는 결계를 뚫고 들어올 수조차 없었다.
강하온이 요쿠바 사건 이후, 결계를 더 강화해놓은 결과였다.
“그거야 모르지, 미친놈들은 뭘 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근무 시간은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다. 휴일은 없다.”
“······.”
드라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연했다.
밤 10시부터 6시, 뱀파이어인 그가 정확히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참, 그리고 숙식 제공이 있었지. 따라와라.”
“잠깐!”
드라쿨은 강하온을 멈춰 세웠다.
“뭐지?”
“숙식은 필요 없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는 강하온한테 숙식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받아봐야 좋을 게 없었다.
“따라와, 숙식은 제공하기로 내가 먼저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지.”
“진짜 괜찮다, 그 정도 까지는 신경쓰지 않아도······.”
“따라와.”
“······알았다.”
드라쿨은 힘없이 대답하고는 강하온을 따라갔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가 네가 지낼 곳이나.”
“이건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지금까지 참고 있던 드라쿨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이건 해도 너무 했기 때문이다.
강하온이 데리고 간 곳은 마당 한쪽에 있는 창고였다.
그렇다고 잡동사니가 있는 것 아니고 비어있는 창고였지만, 사람이 자기에는 문제가 있는 곳이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럼, 그렇지. 잘 곳은 있어야지.”
드라쿨은 자신이 강하온을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오해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고급 암흑 나무로 만든 거다, 빛을 완전히 차단해서 만족스러울 거다.”
암흑 나무, 빛을 빨아드리는 성질을 가진 나무로 아주 비싼 재료였다. 강하온은 그런 암흑 나무로 순식간에 관짝 하나 만들어냈다.
“······지금 이게 뭐냐?”
드라쿨은 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무 관짝을 보며 물었다.
“뭐긴? 네가 잘 곳이지, 뱀파이어는 원래 관짝에서 자는 거 아니었나? 로한은 그랬던 거 같은데.”
“······.”
드라쿨은 말문이 턱 막혔다.
로한을 비롯한 자신의 밑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관짝에서 잠을 자는 것은 자신이 시킨 일이었다.
당시에 멋있을 거 같아서 시킨 장난이었다.
하지만 그 장난이 길어지면서, 드라쿨을 제외한 뱀파이어들은 자연스럽게 관짝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놈은 그랬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나는 푹신한 침대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그래? 그러면 앞으로 노력해서 바꿔봐.”
“뭐, 뭐라?”
드라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다른 뱀파이어들도 그랬는데, 너도 그럴 수 있겠지.”
“······.”
드라쿨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과거에 자신이 로한을 비롯한 뱀파이어들한테 장난을 쳤던 것을.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강하온은 체념한 표정의 드라쿨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는 사실 로한한테 들어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나름 로한에게 주는 보답이었다.
로한이 집사 역할을 해주면서, 강하온이 편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식사는 하루에 3팩, 여기 옆에다 헌혈 팩으로 준다. 그 외 흡혈은 전부 금지다.”
강하온이 드라쿨을 집에 묶어 두려는 이유는 이것도 있었다.
더는 드라쿨이 죄 없는 인간들을 죽이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게 무슨!”
“싫으면 죽어라, 그러면 어차피 흡혈을 못 할 테니까.”
“······.”
드라쿨은 주먹을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딱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급은······.”
“됐다, 월급은 됐으니까 그냥 휴일이나 하루만 줘라.”
어차피 돈은 차고 넘치는 드라쿨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하루라도 강하온한테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원래 월급으로 내 피를 한 방울씩 줄까 했는데.”
“아니다! 그냥 월급은 받도록 하겠다.”
드라쿨은 다급하게 말했다.
강하온의 피 한 방울이면, 그에게는 그 어떤 보상보다 진귀한 보물이었다.
피는 순순한 처녀의 피를 최고로 치지만,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강한 생물의 피였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강하온의 피는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었다.
“혹시라도 근무 태만이나, 내가 말한 것을 어기는 것이 있으면 그달은 월급 없다.”
“당연한 소리! 열심히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드라쿨은 처음으로 의욕적으로 대답을 했다.
그는 강하온의 피를 먹고, 계속 강해지다 보면 혹시라도 ‘피의 맹약’을 끊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