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뱀파이어 로드, 드라쿨 체페슈
51. 뱀파이어 로드, 드라쿨 체페슈
#
강하온은 판게아로 소환됐을 당시, 그는 판게아 3대 금지(禁址) 중 한 곳인 대수림(大樹林)에 떨어졌다.
금지된 구역인 만큼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고, 원주민들조차 살지 않은 그곳에서 강하온은 오로지 한빛나를 보러 돌아가겠다는 집념 하나로 살아남았다.
그렇게 10년.
강하온은 대수림의 왕을 쓰러트리고, 대수림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대수림 밖은 오히려 더 지옥이었다.
마족들이 쳐들어온 상황이었고, 강하온은 다시 살기 위에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20년, 강하온은 모든 전투에서 이기고 살아남으면서 투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막 투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던 강하온은 어느 도시의 성을 들렸다. 성의 이름은 블러드 캐슬, 최상급 마족, 뱀파이어 로드 드라쿨의 성이었다.
“성녀가 도시에 왔다고? 그 녀석들의 종은 과연 어떤 맛일지 궁금하구나.”
드라쿨은 강하온의 동료인 성녀를 노렸다.
“투신? 인간 주제에 신이라 부르다니 오만하게 그지없다, 쓰레기 같은 놈들을 쓰러트리고 얻은 허명이 분명하다. 미개한 인간들은 부풀리는 것을 좋아하니 말이다.”
부하였던 마족이 투신이라는 무시무시한 인간이 있다고 말했지만, 당시 자신감으로 넘쳤던 드라쿨은 부하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당장에 성녀의 피를 맛보기 위해서 움직였다.
“역시 인간들은 부풀리기를 좋아하는군.”
드라쿨은 강하온의 일행을 보고 자기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성녀를 포함한 강하온의 동료들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제법 강했다.
반면에 투신이라 불린 강하온한테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드라쿨은 몰랐다.
가늠도 할 수 없는 만큼 거대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오호라, 인제 보니 저 인간은 왕인가 보군.”
드라쿨은 다른 인간들이 강하온을 의지하는 것을 보고, 전투 능력은 없는 상징적인 존재로 생각했다.
순간, 드라쿨은 머릿속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 인간을 나의 종으로 만들어야겠어.”
드라쿨은 강하온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서, 다른 인간들을 절망 속에 빠트릴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는 강하온의 뒤로 천천히 접근했다.
“이거 죄다 꼭두각시들이네.”
“일단은 죽이지 말아봐요, 혹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있잖아요.”
드라쿨은 안개화로 모습을 감추고, 자신이 만든 반쪽짜리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강하온 일행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강하온의 뒤로 가서 그대로 목을 물었고, 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머노의 모미 이러케 다다다냐.”
그의 이빨은 강하온의 피부를 제대로 뚫지도 못하고 그대로 박혀버렸다.
“이 모기 새끼는 뭐야?”
강하온은 싸늘한 눈으로 드라쿨을 쳐다봤다. 그게 드라쿨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드라쿨은 강하온에게 단칼에 목이 베여서 죽음을 맞이했다.
뱀파이어 로드치고는 허무한 죽음이었다.
“무엇이지? 나는 죽은 게 아닌가?”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의 정신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머물렀다.
“빌어먹을 인간 놈, 만약에 내가 살아 나간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드라쿨은 강하온을 증오하며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흥분이 진정된 그는 생각을 달리 가졌다.
“그 빌어먹을 인간 놈은 상종하는 게 아니다, 똥은 무서워서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그는 스스로 강하온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핑계를 만들며 복수를 접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드라쿨의 앞에 반짝이는 빛이 나타났고, 그 빛을 따라가자 판게아가 아닌 지구라는 처음 보는 차원으로 이동했다.
“리카르도 산체스? 쓰레기 같은 몸이지만, 금방 힘을 되찾을 수 있겠어.”
드라쿨은 그곳에서 새로운 인간의 몸에 빙의했다.
그리고 리카르도의 막대한 재산을 사용해서, 강해지기 좋은 젊은 처녀들을 구해 힘을 회복했다.
순식간에 모든 힘을 회복한 드라쿨에게, 지구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굳이 인간과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원하는 대로 맛있는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만의 미식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불청객이 등장했고, 불청객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흥분이 아닌, 공포였다.
불청객의 정체가 자신을 죽인 투신 강하온이었기 때문이다.
“투, 투신······흡!”
리카르도는 반사적으로 나온 말을 막기 위해서 재빨리 입을 막았다.
“응? 나를 알아?”
강하온은 신기하다는 듯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는 리카르도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게, 지구에서 그가 투신이라는 것을 아는 존재는 없었다.
“내, 내가 네놈을 어찌 아냐.”
리카르도는 격하게 고갤 저으며 말했다.
“조금 전, 투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누, 뉘신 지라고 한 거다.”
강하온은 스스로 변명하고 뿌듯해하는 리카르도를 보고, 자신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거 같네.’
리카르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이 지구의 언어가 아닌 판게아의 언어를 쓴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하온은 리카르도가 누군지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거 안 그래도 집을 지키는 경비가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군.’
강하온은 운이 좋게 야간 경비 희망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일단 보는 눈이 많으니까, 둘이서 얘기해보자고.”
강하온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떨고 있는 여자들의 몸을 전부 치료하고, 슬립 마법으로 잠을 재웠다.
‘저, 저 녀석 마법도 사용할 수 있었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리카르도는 움찔했다.
그가 기억하는 강하온은 무식하게 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거뿐이었다.
“으음, 그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드라군이었나?”
“드라쿨 체페슈다! 용을 꿰뚫는······흡!”
리카르도, 드라쿨은 자신의 이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자였다. 흡혈 능력을 타고난 변변치 않은 하급 마족이었던 그가, 우연히 용의 심장을 꿰뚫고 그 피를 마시고 강해지면서 얻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발끈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래, 그 이름이었지. 내 목을 물었던 모기 새끼 이름이. 그런데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 이름을.”
“······.”
리카르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판게아 말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
강하온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리카르도의 얼굴은 창백한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그제야 자신이 판게아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하온이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 이 몸이 드라쿨 체페슈다! 모른 척 넘어가지 않은 것을 평생의 후회로 생각하거라!”
리카르도는 모든 걸 들킨 마당에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는 판게아에서도 보다 더욱 강해진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강하온을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간다면, 내 넓은 아량으로 그냥 넘어가······.”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그보다 이번 송곳니는 단단한가?”
“······.”
드라쿨은 당시 느꼈던 고통이 떠올랐고, 반사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송곳니는 드라쿨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곳이었던 만큼, 부러지는 통증은 끔찍했기 때문이다.
강하온은 그런 드라쿨을 보며 말했다.
“마냥 그렇지도 않은가 보네, 그나저나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그래, 내 제안만 수락하면 굳이 죽이지 않으마.”
“감······.”
강하온의 말에 드라쿨은 발끈했다.
감히 미개한 인간이 어디서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말하냐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에 턱 걸려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본능이 그랬다가는 죽는다고 알렸기 때문이다.
“감, 뭐?
“감사하다고······.”
강하온은 시선을 피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드라쿨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제안은 두 가지다.”
“······말해라.”
“일단 지하 경매장과 빛의 교단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말해라.”
“알았다. 다음은?”
드라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온이 지하 경매장과 빛의 교단하고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해주는 것은 상관없었다.
주요 단골인 그로서는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대로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런 제안이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혹시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면 어쩌나 생각을 했던 드라쿨은 안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제안을 듣는 드라쿨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우리 집을 지킬 야간 경비가 필요하다, 야간 수당에 숙식까지 제공해주지. 어차피 너 밤에 잠도 안 자잖아.”
“지금 농담하는 거냐?”
드라쿨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농담까지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
“꺼져라! 그게 말이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드라쿨은 열 분을 토해내며 말했다.
자신은 판게아에서 뱀파이어의 왕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약왕이라 불렸다.
자신은 어디에서나 왕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경비라니? 드라쿨은 이런 치욕적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 뒤지던가.”
강하온은 무심한 눈으로 드라쿨을 보며 말했다.
이 순간 강하온은, 강하온이 아닌 투신이었다.
“!!!”
강하온의 달리진 분위기에 드라쿨은 눈을 크게 뜨고는 뒤로 몸을 뺐고, 곧바로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만들었다.
그가 생존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괴물 같은······.’
그는 강하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비벼볼 수준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래? 죽을래? 경비할래? 참, 선택지는 두 개가 전부다. 만약 두 가지 선택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후회하게 될 거야. 궁금하면 해봐.”
생명이 아닌, 마치 물건을 보는 것 같은 무심한 눈으로 강하온의 말에 드라쿨을 몸서리쳤다.
그리고 그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휴일은? 그래도 휴일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의 선택은 경비로 취직이었다.
그는 여기서 자존심을 챙긴다고 거절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을 할 생각이 없었다.
‘기회를 틈타서 도망가든지 해야지.’
하지만 그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드라쿨은 마음먹고 숨으면 누구한테도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은 대답하고, 도망가서 숨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몇백 년 정도 숙면을 취하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나도 네놈처럼 오래 산 놈의 기억을 읽기는 싫었거든.”
그제야 투신이 아닌, 원래의 강하온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서서 뭐해?”
“뭐가 말이냐?”
갑자기 다그치며 묻는 강하온을 보고, 드라쿤은 고개를 갸웃했다.
“피의 맹약, 해야지.”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피의 맹약, 뱀파이어가 할 수 있는 약속으로 지키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서 죽게 되는 계약이었다.
뱀파이어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페널티만 있는 계약이었다.
그래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피의 맹약은 철저한 비밀 중 하나였다.
그런데 강하온은 피의 맹약을 알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기는, 네가 죽은 것을 본 로한이 피의 맹약으로 내 종을 자처했으니까 알지.”
“그 빌어먹을 개자식이······.”
드라쿨을 이를 갈았다.
로한, 한때 그가 제일 신뢰하는 부하 뱀파이어였다.
“뭐야, 그 반응은? 설마, 도망갈 생각을 했던 건 아니지?”
“아, 아니다!”
드라쿨은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 강하온을 보고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래? 아쉽네, 재밌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드라쿨은 아쉽다는 듯 말하는 강하온을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뭐가 재밌는 건인지는 몰라도,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드라쿨은 이제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체념했다.
“뭐해? 빨리 시작해.”
“······그 전에 휴일은 없나?”
“있겠냐?”
“······알았다.”
그는 강하온인 악덕 고용주라는 것을 깨닫고, 피의 맹약을 시도했다.
괜히 말해봐야 상황이 더 안좋아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귀한 피의 주인인 나, 드라쿨 체페슈는 그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피에 걸고 맹세한다.”
그 순간 붉은빛이 번쩍였고, 강하온의 집에는 야간 경비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