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72화 (171/212)

172화 초월의 경지 (3)

“다들 무사한가요?”

“네, 1분대 전원 탈출에 성공했어요!”

세리느는 비올라의 목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약 1시간 전, 세리느는 알베리히 대주교의 분신을 쓰러뜨렸다.

슈미츠가 부상을 입는 등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베리스리제 등과 협공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래도 부상자가 많았기에 후퇴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지진이 발생했다.

위험하다 느낀 세리느는 바로 탈출을 지시했고, 전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산이 폭발하려는 걸까요? 왜 이런…….”

“세리느, 뭔가 이상해.”

그때 베리스리제가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산이 무너지고 있어.”

“네?”

“자연적인 산사태가 아니야. 이거 아무래도…….”

쿠쿵!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이어서 무언가가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세리느는 마력을 집중시켜 시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백발의 노인이 폭발 위로 솟구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르나스?!”

후방에서 쉬고 있을 에르나스.

그가 백발의 노인을 쫓아 날아오르고 있었다.

“에르나스가 왜 저기에……!”

“늦지 않았나 보군요.”

그때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 곁을 지키기 위해 후방에 남았던 클로에였다.

“클로에, 에르나스가 왜 저기에 있는 거죠? 쉬고 있는 것 아니었나요?”

“에르나스 님은 쉬고 계셨던 게 아니에요.”

“네?”

“결전을 위해 준비를 하고 계셨던 거죠.”

“결전이라면…….”

“흑천마교의 총대주교를 쓰러뜨리기 위해 준비하고 계셨던 거예요.”

“……!”

클로에의 말에 다들 숨을 삼켰다.

“클로에 유스부르크, 총대주교와의 싸움을 대비해 체력을 온존하고 있었다는 얘기야?”

“아니에요, 베리스리제 님.”

베리스리제의 질문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에르나스 님은 새로운 경지에 도전하고 계셨어요.”

“새로운 경지? 에르나스는 이미 절정급인 것 아니었어?”

그래듀에이트의 경지는 절정급이 끝이다.

그건 그래듀에이트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에르나스 님은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를 추구하고 계셨어요. 마찬가지로 절정급을 넘어서려 하는 총대주교에 대항하기 위해.”

“……!”

에르나스가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를 추구하고 있었다니!

이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검사들도 절정급을 넘어서지 못했는데, 아직 스무 살 정도밖에 안 된 에르나스가?

“클로에.”

세리느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에르나스는 그 경지에 도달한 건가요? 성공한 건가요?”

“그건…….”

클로에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너져 내리는 화산으로 시선을 향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들 눈으로 확인하면 되겠죠.”

다들 숨을 죽이고 화산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지금 화산 위에서는 미증유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으음……!”

용암이 흐르는 화산 위에서 총대주교는 높게 솟구쳤다.

에르나스에게서 거리를 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전, 에르나스는 총대주교의 육체에 공격을 가했다.

총대주교가 미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결국 총대주교는 두 번이나 상처를 입었다.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총대주교는 일단 거리를 벌렸다.

에르나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분석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력으로 천장을 부수고 화산 바깥으로 뛰쳐나오자, 에르나스가 쫓아왔다.

이동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은 건지, 금방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역시 육체는 평범한 인간의 것이다.’

쫓아오는 에르나스를 분석하면서, 총대주교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에르나스는 여전히 인간이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다.

마력을 사용해 육체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육체적 한계가 에르나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정도로 빠른 공격을 펼친 거지?’

충분히 거리를 벌린 시점에서, 총대주교는 다시 마력을 방출했다.

에르나스가 어떤 존재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니, 일단 탐색전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무형검……!’

흑천무형검술은 마력을 사용해 형체가 없는 검을 만드는 힘이다.

실체검을 손에 들고 휘두르듯이 사용할 수도 있지만, 비검술처럼 사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총대주교는 마력으로 검을 만들어 에르나스를 향해 날렸다.

“……!”

쿵!

굉음과 함께 무형검이 튕겨져 나갔다.

에르나스가 산비탈 위에서 발을 멈추고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다만, 에르나스가 검을 휘두르는 동작은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총대주교가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총대주교는 다시 마력을 방출했다.

이번에는 무형검을 여러 자루 만들어 연달아 사출했다.

초고속으로 쏟아지는 무형검의 폭격이 에르나스를 덮쳤다.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산비탈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에르나스는 먼지를 뒤집어썼을 뿐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검을 휘둘러, 무형검을 모조리 튕겨 냈다.

“…….”

딱 한 번 휘두른 것은 아닐 것이다.

에르나스는 여러 번 검을 휘둘렀다. 그 모든 동작이 총대주교가 지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에르나스의 육체는 나보다 열악한 게 분명하다.’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육체가 열약한 에르나스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나스가 총대주교보다 빠르다는 건, 다른 조건에서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마력을 나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건가?’

총대주교는 에르나스의 몸에서 마력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간파할 수 있다.

에르나스의 가슴에 마나 하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막대한 마력을 전신의 혈맥에 전개하여 제어하고 있는 상태다.

이 부분은 총대주교와 동일하다. 어디에 차이가 있는 걸까?

‘아니, 잠깐…….’

총대주교는 뒤늦게 깨달았다.

에르나스가 아니라, 에르나스 주위의 공간에서 느낀 것이 있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너는…….”

무형검을 받아칠 때, 에르나스의 검기에도 자잘한 손상이 생겼다.

그로 인해 흩어진 미약한 마력에서, 총대주교는 예전에 느껴 본 적이 있는 기척을 느꼈다.

그것은… 철혈검제의 후예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던 ‘철혈의 마력’이었다.

“철혈검마심법을 익힌 것이냐?”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철혈검마심법은 황위 계승자에게만 전승된다.

제대로 터득하려면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다.

에르나스는 대체 어디서 철혈검마심법을 배운 걸까?

설마… 에르나스의 아버지인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이 관여한 걸까?

“마력을 혈액과 조화시키는 철혈검마심법으로… 마력의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냐?”

철혈검마심법은 체내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연공법이다.

마력은 혈맥 안에서 혈액을 타고 흐르는데, 마력과 혈액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면 마력의 효율이 극대화된다.

혈맥에서 평범한 피가 아니라 칼날과 같은 철혈이 흐르게 하라… 철혈검제는 그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마나 하트를 해체하고 모든 마력을 혈맥 안에 전개한 건 우리 둘 다 똑같다. 하지만 너는 철혈의 마력을 전개한 상태이기 때문에… 나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거냐?”

“내가 철혈의 마력을 손에 넣은 건 맞다, 총대주교.”

에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터득했는지는 알려 줄 수 없지만… 네 예상대로, 나는 철혈검마심법으로 철혈의 마력을 손에 넣은 상태다.”

“역시……!”

“하지만, 총대주교.”

에르나스의 차가운 눈동자가 총대주교를 응시했다.

“철혈검마심법과 흑천마인대법을 조화시킨다고 해서 이런 속도를 얻을 수는 없어.”

“뭐라고?”

“마나 하트를 해체하는 것도, 철혈의 마력을 손에 넣는 것도… 그냥 최저 조건에 불과하니까.”

“……!”

총대주교는 즉각 이해했다.

지금 당장 총대주교가 철혈의 마력을 손에 넣으면 더 빨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나스처럼 아예 차원이 다른 속도를 손에 넣을 수는 없다.

그런 속도를 손에 넣으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대체 무엇일까?

“말해 봐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

“대체 조건이 무엇이냐.”

방금 전, 에르나스는 말했다.

흑천급은 정답이 아니라고.

절정급 너머의 경지가 흑천급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총대주교는 헛소리로 치부했다.

하지만 헛소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에르나스가 진실을 말한 것이라면… 흑천마교는 오랫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 된다.

“말해 보란 말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급기야 총대주교는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이제는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어떤 마력 연공법을 익힌 거지? 특별한 약이라도 먹었나? 무엇을 통해 그런 경지에 도달했냔 말이다……!”

“총대주교.”

에르나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게, 너희들의 한계다.”

“뭐라고?”

“너희 흑천마교는 줄곧 그런 방법만 고민해 왔지.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의 육체를 어떻게 바꿔야만 할지만 고민한 거야.”

“그게…….”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고 하는데, 육체를 바꾸지 않고 어쩌란 말이냐.

“흑천급의 한계는 그거야. 인간의 육체만 바꾸는 것으로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려고 했지.”

“……?”

“총대주교, 검사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육체만 바꾸는 걸로 충분할까?”

그 말을 들은 순간.

총대주교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진정한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려면…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거야.”

인간의 육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정답이었다는 말인가?

“원래 그래듀에이트라는 건 격상(格上)의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해 도달한 경지였어. 생물로서 더 우수한 존재인 마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래듀에이트가 된 거지.”

“…….”

“하지만… 육체를 아무리 강하게 만들어 봤자, 더 우수한 육체를 지닌 존재에게는 패배할 수 없어.”

에르나스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천급은 격하(格下)의 존재를 학살할 때는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거야. 하지만 격상의 존재에 맞서 싸울 때는 무력하겠지.”

“…….”

“인간이 진정한 초월적 존재가 되어, 자신보다 훨씬 격상의 존재를 쓰러뜨리려면… 육체의 한계가 아니라 정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던 거야.”

육체의 한계가 아니라, 정신의 한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총대주교는 짐작할 수 있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총대주교는 흑천마교 천 년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흑천급에 도달한 인물이다.

그만큼 우수한 자질을 지녔고, 세상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런 총대주교이기에… 에르나스의 말이 허황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은…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대주교가 에르나스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에르나스가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흑천마교의 총대주교로서, 여기서 패배를 수용할 수는 없었다.

“네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총대주교.”

“나는 여기서 너를 꺾고… 제국을 무너뜨려 흑천마교의 이상향을 건설할 것이다.”

투쟁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흑천마교의 비원을 달성하기 위해.

총대주교는 모든 마력을 방출했다.

“흑천무형검술 절기(絶技)… 흑천종언(黑天終焉).”

하늘이 검게 물들어, 흑천이 되었다.

흑천급의 마력을 모조리 투입하여, 공간 전체를 무형검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검게 물든 하늘은 총대주교의 혈맥과 일체화된 상태로, 극한의 속도와 위력으로 적을 소멸시킬 것이다.

“네 모든 것으로 저항해 봐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알겠다, 총대주교.”

에르나스의 몸에서 철혈의 마력이 솟구쳤다.

그런 에르나스를 향해, 총대주교는 흑천무형검술의 절기인 흑천종언을 쏟아부었다.

거대한 흑색의 무형검이 에르나스를 집어삼키려던 순간.

“이것이 바로 검제급(劍帝級)의 그래듀에이트가 펼치는… 의념(意念)의 심검(心劍)이다.”

에르나스에게서 뻗어 나온 푸른색 검기가, 흑색의 하늘을 뚫고 총대주교의 가슴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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