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거물 사냥 (3)
오랜 추락 끝에, 나는 서부 대미궁 심층부에 착지했다.
미리 대비했기 때문에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자, 그러면…….’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이 세계의 작가라고 해도, 복잡한 지하 동굴의 구조를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서부 대미궁 심층부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주위에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땅속에서 느껴져.’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땅바닥 아래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지하수가 흐르는 것처럼 땅 밑에서 대지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영맥(靈脈)…….’
이 세상에는 대지의 기운이 밀집되는 곳이 있다.
아카데미 징벌동 지하에 있던 야광초 풀밭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그곳은 대지의 기운이 모여서 작은 연못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훨씬 많은 기운이 큰 강처럼 콸콸 흐르고 있는 장소도 있다.
그런 곳을 영맥이라 한다.
‘서부 대미궁을 제국 정부에서 중요시하는 이유지.’
자연의 기운이 몰려 있다는 건, 엘릭시르의 원료를 확보하기 쉽다는 뜻이다.
영맥이 흐르는 서부 대미궁 심층부에서는 고급 엘릭시르의 원료를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 정부에서 서부 대미궁을 특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맥을 따라가 볼까.’
나는 영맥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이동했다.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하면서 몬스터의 위치를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너무 강력한 몬스터와 마주치면 테오도라를 상대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체력도 아껴야 하고 말이지.’
한참을 걷자 전방에서 은은한 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징벌동 지하에도 있었던, 야광초의 빛이었다.
‘이 근처인가.’
영맥의 흐름 그리고 야광초의 빛을 참고하며 계속 걸었다.
그러다 보니… 기이한 장소에 도달하게 되었다.
‘찾았다.’
지하수가 고여 있는 호수였다.
주위에 다양한 발자국이 있어, 몬스터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주위에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
나는 가볍게 몸을 푼 뒤,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이 닿지 않는 깊이까지 도달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잠수했다.
‘그래듀에이트는 평범한 인간보다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으니… 버텨야 해.’
어두운 호수 안을 살폈다.
마력을 눈에 집중하면서 계속 탐색하자, 호수 바닥에서 시커먼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저거다!’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뿌리째 뽑아냈다.
그리고 신속히 호수 바깥으로 나갔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면서, 내가 뽑아낸 것을 확인했다.
호수 바닥에서 자라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식물’은 들판에서 자라는 풀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게 바로… 흑영초(黑影草)다.’
흑영초.
최고급 엘릭시르인 ‘흑색 엘릭시르’를 만들 때 필수적인 원료다.
물론, 이것 하나만 있다고 해서 흑색 엘릭시르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재료도 필요하고, 특수한 공정을 거쳐야만 흑색 엘릭시르가 완성된다.
‘자세한 방법은 제국 최고의 기밀이지.’
사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고 있다.
‘이 흑영초에 누적되어 있는 대지의 기운을… 인간이 흡수할 수 있게 녹여 내는 방법이 있어.’
나는 교복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으로 둘둘 말아 놓았던 유리병을 꺼냈다.
오크 토벌의 보수로 주어진 청색 엘릭시르였다.
‘아까 욜스 앞에서는 이미 엘릭시르를 복용했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지.’
하인리히와는 달리, 나는 청색 엘릭시르를 보관해 두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
나는 엘릭시르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흑영초를 조심스럽게 유리병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흑영초가 녹기 시작했다.
‘엘릭시르에 사용되는 용매(溶媒)가 흑영초를 녹일 수 있거든.’
흑영초를 입으로 씹어 먹는다고 해서 그 기운을 흡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엘릭시르 용액에 녹여서 복용한다면, 엘릭시르와 함께 내 몸에 스며들도록 할 수 있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흑색 엘릭시르와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제대로 된 공정을 거쳐서 제작된 흑색 엘릭시르와 비교하면 절반… 아니, 절반의 절반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흑색 엘릭시르는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을 위한 것이다.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머물고 있는 내 마나 하트에는 이 정도여도 충분하다.
‘그러면…….’
검게 물든 엘릭시르를 복용했다.
그동안 느껴 본 적이 없는, 지독한 쓴맛이 느껴졌다.
억지로 참으면서 모조리 위장으로 흘려보낸 뒤, 즉각 가부좌를 틀었다.
‘이곳은 영맥이 흐르는 곳… 아카데미 징벌동 지하보다 대지의 기운이 더 많이 모여 있어.’
여기서 마력을 연공하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한 채, 나는 흑영초의 기운을 몸 안에서 순환시켰다.
“크윽!”
전신의 핏줄이 맥동했다.
흑영초의 기운이 혈맥을 휘젓고 있었다.
자칫하면 혈맥이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야!’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흑영초의 기운이 강렬했다.
흑영초의 기운을 충분히 정제하지 않고, 청색 엘릭시르에 녹여 흡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이 기운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마력 폭주가 벌어질 것이다.
‘내가 제압해야 한다!’
마나 하트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전신의 혈맥에 마력을 흐르게 하며,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는 흑영초의 기운을 억제하려 했다.
내 마력과 흑영초의 기운이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윽……!”
온몸의 핏줄이 요동쳤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에 공포심까지 느껴졌다.
마음만 같아서는 체내의 혈액과 함께 모든 기운을 쏟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여기서 견뎌 내지 못한다면, 이겨 내지 못한다면… 테오도라를 꺾을 수 없다.
‘에르나스, 버텨라!’
에르나스의 육체를 질타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혈맥을 휘젓고 다니는 막대한 기운을 강제로 짓눌렀다.
강렬한 기세를 억제하여, 마력과 함께 혈맥 안을 흐를 수 있게 만들어 나갔다.
물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최대한 침착하게, 안정적으로.
내 몸에 순응하도록 만들면서, 마나 하트 쪽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한계까지 많은 마력을 저장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래, 나는…….’
문득, 예전에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가짜 천재였던 에르나스의 운명을 바꿔, 진짜 천재가 되고야 말겠다고.
지금까지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더욱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래듀에이트로서 성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
언제부터인가, 고통조차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필요 없는 감각은 모조리 차단한 채, 흑영초의 기운을 순환시키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금 내 영혼과 육신은 오로지 마력을 정제하는 것에만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하여, 테오도라 발트펠트를 쓰러뜨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 * *
‘이쪽이군.’
어두운 지하 공간 안에서, 테오도라는 에르나스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원래 테오도라는 북부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감을 추적하는 기술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피를 흘린 흔적이 없다, 피 냄새도 나지 않고……. 추락하면서 상처를 입지 않은 건가?’
에르나스는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다.
바닥이 무너져 심층부로 떨어졌다고 해도 추락사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군.’
직접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부하들에게 맡겼다가 실패하면 수습하기 어렵다.
지난번 혈검장로회의 암살자들처럼 격퇴당하는 일이 없도록, 직접 움직여서 에르나스를 해치워야 한다.
‘뒷처리를 어떻게 할지도 이미 다 생각해 놨다. 내가 에르나스의 숨통을 끊기만 하면 되는 거다.’
살짝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테오도라는 에르나스에게 꽤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다면,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했을 것이다.
‘네가 발트펠트 가문을 위해 검을 휘둘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생각이다.
에르나스는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이며, 아카데미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발트펠트 가문의 협력자가 되어 줄 가능성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르트를 위해 에르나스의 숨통을 끊는 것뿐이다.’
에르나스는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불과하다.
앞으로 더 성장하여 위험한 존재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해치워 둬야 한다.
‘그 녀석이 현재 어느 정도 실력을 갖고 있는지는 아까 확인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일격으로 숨통을 끊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고 있던 테오도라의 눈앞에, 지하 호수가 나타났다.
에르나스는 그곳에 있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에르나스가 호수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왜…….’
몬스터에게 도망치다가 물에 빠진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정답을 알 수 없었다.
“……!”
그때 에르나스가 호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물에 젖은 몸으로 천천히 호수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뭐지?’
에르나스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젖어 있던 몸이 빠르게 마르고 있었다.
‘몸에서 열이 발생하고 있는 건가? 어떻게 된 거지?’
에르나스의 얼굴은 멀쩡해 보였다.
아니, 아까 바깥에서 봤던 것보다 더 양호해 보였다.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천천히 테오도라에게 시선을 향했다.
“……!”
그 눈빛은 냉정했다.
선배 검사를 존중하는 눈빛이 아니다.
쓰러뜨려야 할 적을 똑바로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에르나스, 네 녀석…….”
테오도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에르나스는 이번 일의 배후가 테오도라라는 것을 이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괜히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
검을 뽑았다.
폭이 넓고 육중한 대검(大劍)이다.
테오도라는 검을 치켜들며 검기를 전개했다.
발트펠트 패검술로 일격에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원망 마라, 에르나스.’
여기서 테오도라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펼치면, 에르나스는 단번에 목이 날아갈 것이다.
괜히 시간을 끄는 것보다 그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하며, 테오도라는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
에르나스도 검을 뽑고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테오도라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저절로 목소리가 나왔다.
시간을 끌지 않고 단번에 해치울 생각이었는데,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어째서 네가… 발트펠트 패검술의 자세를 취하는 거냐!”
에르나스는 대답하지 않고 검기를 펼쳤다.
지금 테오도라가 펼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금색의 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