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거물 사냥 (2)
테오도라 님이 상대해 주실 겁니까.
내 도발은 테오도라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흠칫하는 부하들 앞에서 테오도라가 앞으로 나왔다.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가, 에르나스?”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테오도라 님.”
“이것 참…….”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테오도라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에르나스, 자제해라.”
그때 욜스가 입을 열었다.
“테오도라 님은 지금의 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있다. 너 정도는 일격에 제압할 수 있단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
“알고 있다고?”
당연히 알고 있다.
테오도라는 발트펠트 가문의 2인자이고, 나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다.
욜스의 말대로, 일격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한테 제 실력을 시험받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
욜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뿐만 아니라 테오도라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르나스, 너는 상당히 재미있는 녀석인 것 같군.”
“…….”
“좋다, 원한다면 상대해 주마.”
테오도라가 커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테오도라 님, 이러시면…….”
“방해하지 마라, 모하드.”
테오도라의 측근인 모하드가 주군을 제지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이미 나를 상대로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한번 막아 봐라, 에르나스.”
칼날에서 금색 검기가 전개되었다.
발트펠트 가문의 독문 검술 중 하나… 발트펠트 패검술(覇劍術)의 검기였다.
‘발트펠트 가문에서 전승되는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은 여러 가지가 있지.’
가장 우수한 건 발트펠트 금강검술(金鋼劍術)이다.
극강의 파괴력을 지닌 검술인데, 가주와 그 후계자만이 익힐 수 있다.
다음으로 우수한 것이 발트펠트 패검술로, 발트펠트 금강검술보다는 못하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게 강력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테오도라 님.”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비로소 테오도라가 움직였다.
“……!”
쿠웅!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공격 자체는 단순해 보였다.
어떤 궤도로 공격이 들어올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어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윽……!”
콰앙!
굉음과 함께 뒤로 튕겨져 나갔다.
검기를 전개한 검으로 막아 내긴 했지만, 테오도라의 검기와 접촉한 순간 내 검기가 완전히 깨져 나갔다.
‘이것이… 발트펠트 패검술!’
발트펠트 패검술이 강력한 이유가 이것이다.
상대방의 검기를 파괴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의 검기라면 지금처럼 검기를 일격에 깨뜨릴 수 있고, 동격 이상의 상대여도 검기에 흠집을 내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이런 검술을 사용하기에, 나 정도는 일격에 제압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에르나스……!”
“괜찮, 습니다, 교수님…….”
나는 신속히 마력을 수습했다.
깨져 나간 검기의 마력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그만큼 마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때 테오도라가 다가왔다.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맞서려 했던 것, 훌륭했다.”
“테오도라 님…….”
테오도라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내 손을 계속 잡은 채 말했다.
“솔직히 놀랐다. 내가 조금만 더 강하게 공격을 펼쳤으면 바로 목이 날아갈 상황이었는데, 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더군.”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오도라 님은 검술명가 발트펠트를 대표하는 검사이십니다. 그런 분이 저한테 가르침을 주려고 하시는데… 마지막까지 똑바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니, 나를 너무 상냥한 사람으로 생각하는군.”
테오도라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에르나스, 나는 고르트의 숙모다. 너한테 결코 우호적일 수 없다.”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실수인 척 네 목을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생각 안 한 건가?”
“테오도라 님 같은 분이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이없는 놈이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테오도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렇게 좋게 평가해 주다니, 고맙다.”
“아닙니다, 테오도라 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더 고맙죠.”
[인물 ‘테오도라 발트펠트’에 대한 ‘능력 재현’을 시도합니다.]
* * *
테오도라는 에르나스 일행을 대미궁 안으로 들여보냈다.
하인리히는 딱히 시험해 보지 않았지만, 굳이 시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인리히가 어느 정도의 재능을 지녔는지는 이미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자세히 조사해 놨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예상했던 것보다 성격이 좋은 녀석이더군.”
테오도라는 막사 안에서 중얼거렸다.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인 나한테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의외로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에르나스는 테오도라가 자신을 해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처음에 도발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승부가 끝난 뒤에는 후배로서 예의를 갖췄다.
“실력도 뛰어나고, 담력도 있는 것 같았다. 저런 녀석이 우리 발트펠트 가문의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테오도라는 조카인 고르트의 얼굴을 떠올렸다.
발트펠트 가문의 후계자로서 충분히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에르나스에게는 못 미친다.
게다가 오늘 보니… 인격 면에서도 고르트보다 에르나스에게 호감이 갔다.
“고르트가 아니라 에르나스가 내 조카였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
“테, 테오도라 님…….”
테오도라가 에르나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측근인 모하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에르나스를 살려 주실 생각이십니까?”
“모하드,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모하드의 우려에, 테오도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에르나스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르나스를 살려 줄 생각은 없다. 이건 발트펠트 가문을 위한 일이니까.”
“아…….”
“에르나스는 발트펠트 가문의 미래에 장해가 되는 놈이다.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말한 뒤, 테오도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오늘 직접 상대해 보니, 그 생각이 더 강해지더군.”
“테오도라 님…….”
“에르나스는 대단한 놈이 분명하다. 고르트 녀석으로는 쉽게 따라잡지 못하겠지.”
고르트를 반드시 아카데미의 정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르트의 실력이 부족하다면, 경쟁자를 없애 버려서라도 1등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테오도라가 할 일이었다.
“아까 얘기해 보니, 에르나스 녀석은 위기감이 부족하더군. 지난번에 암살자를 보낸 게 나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 안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는 거라면, 우리가 일을 처리하기도 쉬워지지.”
그렇게 말한 뒤, 테오도라는 탁자 위에서 지도를 하나 꺼내 들었다.
지도에는 대미궁 표층부의 복잡한 구조가 그려져 있었다.
“욜스는 이쪽 지점에서 대기하면서 학생들을 각각 다른 루트로 진행시키겠다고 했다.”
“양쪽 다, 그래듀에이트 하급 정도면 충분히 진행할 수 있는 루트지요.”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사전에 작업을 해 두면 엉뚱한 루트로 유도할 수 있다.”
에르나스가 어떤 경로로 진행할지, 이미 다 파악해 둔 상태다.
함정을 파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하인리히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되겠습니까?”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중 두 명이 동시에 사망하면 너무 부자연스럽지. 오늘은 에르나스의 목숨만 거둬들이면 된다.”
“알겠습니다, 테오도라 님.”
테오도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녀석들은 전부 자리를 지키도록 해라. 그리고… 욜스가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잘 대처해라.”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녀오지.”
모하드에게 뒷일을 맡긴 채, 테오도라는 움직였다.
다른 출입구를 통해 대미궁 내부로 들어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숨통을 끊기 위해.
* * *
‘테오도라는 지금쯤 나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을 하고 있겠지.’
대미궁 안을 걸으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까 일부러 순진한 척했으니, 그걸 철썩같이 믿고 있을지도 몰라’
아까 테오도라와 얘기하면서, 나는 일부러 테오도라를 신뢰하는 척했다.
이건 그녀를 조금이라도 방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격상의 상대이니, 조금이라도 방심해 주는 편이 나한테 유리하다.
‘어쨌든… 소설하고 비슷한 시추에이션을 만드는 것에 성공해서 다행이야.’
오늘 내가 테오도라를 도발한 건, 테오도라에게 패배한 뒤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소설 속에도 테오도라가 쓰러진 상대를 일으켜 준 뒤 그대로 손을 잡은 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테오도라의 몸에 접촉하는 건 너무 부자연스러우니까 말이지.’
테오도라가 먼저 나한테 악수를 청해 줬다면 좋았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 테오도라는 욜스하고만 악수했다.
내가 먼저 테오도라한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 수도 없고… 결국 이런 식으로 접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지금 필요했던 검술을 손에 넣은 거야.’
나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유스레흐트를 만졌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파르티잔 심판검술(S랭크)]
[발트펠트 패검술(S랭크)]
[발라하일 중검술(A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아틸리온 마력탐측술(A랭크)]
== 영구 귀속 ==
[칼레시우스 창뢰검술(B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발트펠트 패검술.
방금 전에 테오도라가 나를 제압했던 검술이, 그대로 나한테 흡수된 상태였다.
‘물론, 지금 내가 테오도라 수준의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어.’
나는 테오도라보다 훨씬 적은 마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트펠트 패검술을 펼쳐 봤자 테오도라만큼 위력적인 공격을 펼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발트펠트 패검술만으로 승부할 게 아니니까.’
그렇다.
상대방의 검술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격상의 상대를 꺾으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
‘발트펠트 패검술은 테오도라를 꺾기 위한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
지하 던전의 어둠 속에서,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했다.
작은 몸집의 몬스터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개와 비슷한 얼굴을 지닌 2족 보행의 몬스터… 코볼트.’
오크보다 전투력이 약한 몬스터다.
하지만 오크보다 더 많은 숫자가 함께 움직이고, 어두운 동굴에서의 전투에 능숙하다.
지금도 백 마리가 넘는 코볼트가 어둠 속에 숨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테오도라와 싸우기 전에, 몸 좀 풀어 볼까.’
나는 바로 검기를 전개했다.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코볼트들이 깜짝 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카르?!”
먼저 우측으로 움직였다.
숨어 있던 코볼트 서너 마리를 향해 검을 휘둘러, 한꺼번에 목숨을 끊었다.
“카르르!”
“카륵!”
기습에 실패한 코볼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역시 숫자가 많아.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녀석들의 무기가 내 사각을 찌르겠지.’
나는 코볼트들을 해치우면서 계속 전진했다.
발트펠트 가문이 설치해 놓은 표식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카륵……!”
“카르르……!”
100마리가 넘었던 코볼트들을 도륙하고, 다음 구역에 발을 들인 순간.
바닥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래, 여기인가.’
쿠르릉!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지고,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왔던 길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퇴로가 막혀 있었다.
그리고…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이게 테오도라가 준비한 시나리오인 거지.’
에르나스는 실습 루트를 벗어나 위험한 곳으로 들어섰고, 심층부로 추락해서 불행히도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테오도라가 준비한 시나리오다.
현재 서부 대미궁을 관리하는 게 발트펠트 가문이기에, 이런 함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오도라는 전혀 모르고 있어.’
깊은 지하로 떨어지는 함정 앞에서도,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 아래에서 새로운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아칸델이 지하 깊숙한 곳에서 기연(奇緣)을 손에 넣는다는 것을, 테오도라가 알 리가 없지.’
서둘러야 한다.
지금 내 숨통을 끊기 위해 테오도라가 다가오고 있다.
테오도라가 나를 찾아내기 전에 목표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새로운 힘을 손에 넣어… 테오도라 발트펠트를 쓰러뜨린다.’
방금 전에는 일격에 제압당했던 격상의 거물.
테오도라 발트펠트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나는 끝없이 깊은 지하 밑바닥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