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305화 (305/315)

305화

제 2막

2015년 겨울.

한동안 잠잠하던 WJ 스튜디오의 기사가, 툭 하고 수면 위에 올라왔다.

[돌아온 서우진. 2016년, WJ 스튜디오의 행보는?]

우진이나 WJ 스튜디오가 따로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복귀한 우진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가 찾아온 것이다.

심지어 해당 기사는, 순식간에 헤드 라인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난 1년 동안 세계각지의 건축과 공간을 경험한 서우진 대표는, 더욱 의욕적인 모습으로 WJ 타워에 돌아왔다.]

[“앞으로 더 나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기대해도 좋다.” 며 환하게 웃어 보인 서우진 대표는, 이전보다 더욱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중략……

[한편, 최근 성수 전략정비구역과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성수지구)의 완공으로, WJ 스튜디오와 서우진 대표의 역량이 다시 한번 업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디자이너 서우진과 WJ 스튜디오의 2016년 행보, 그 귀추(歸趨)가 주목되는 이유이다.]

국내에서 우진은 수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셀럽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일부러 움직이지 않더라도, 우진의 행보는 자연스레 조명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우진이 활발히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던 때만큼 기사에 반응이 뜨겁진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우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 서우진 기사 떴네.

└ 얘 어디 갔다 왔음?

└ 작년에 일 년 쉬었다더라고. 안식년이라던가?

└ 기사 띄우는 것 보니 뭔가 준비라도 하고 있는 듯.

└ 아, 나도 WJ 스튜디오 입사하고 싶다.

└ 이번에 채용공고 났잖아. 내 친구 이번에 입사함.

└ 구라 ㄴㄴ 아직 면접 날짜도 안 잡힘.

└ 꿈속에서 입사했나보지 뭐 ㅋㅋ

하지만 이 기사는 시작일 뿐이었다.

우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폭탄 같은 이슈가 계속해서 생산되었고, 그에 따라 WJ 스튜디오와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JK금융그룹’ 드디어 여의도에 진출!]

[JK한국지사의 신사옥을 디자인하게 될 건축가는 서우진?]

[여의도 국제 금융로에, 건축가 서우진의 작품 들어서나?]

이번에는 우진의 지시를 받은 WJ 스튜디오 마케팅 팀에서도, 화력을 최대한 지원하였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역대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센터, ‘AT 복합 몰’ 유치.]

[AT그룹 회장 하비에르, 건축가 서우진에게 설계를 직접 의뢰하다!]

[아틀레틱 클루브의 팬 하비에르, 신축된 산 마메스 구장의 위용에 마음을 뺏겨…….]

[스페인의 건축가 마테오 비야(MateoVilla)와 한국의 건축가 서우진, AT 마드리드 복합 몰 공동 설계자로 선정!]

아직 공식화되지 않은 내부 자료까지 기자들에게 뿌리면서, 이슈를 더 크게 증폭시킨 것이다.

[제운자동차와 WJ 스튜디오의 콜라보?]

[시행사는 제운자동차, 시공사는 제운건설. 제운그룹의 스페셜 프로젝트 <제운 오리엔트 레지던스>를 디자인하는 건축가는 누구?]

[자동차 매니아들을 위한 최고의 프리미엄 주거공간. <제운 오리엔트 레지던스>를 말하다.]

[제운자동차의 스타 디자이너 콜튼 테일러. “최고의 건축디자이너 서우진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

[제운자동차 사장 000, “제운 오리엔트 레지던스는, 부산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

그리고 그 결과…….

└ 와, 미친……! 서우진 진짜 월클이네?

└ 그걸 이제 알음?

WJ 스튜디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또다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아니, 무슨 컨퍼런스 어쩌고 하는 건 별로 안 와 닿잖아, 솔직히.

└ 인정.

└ 그런데 마드리드 한복판에 초대형 복합 몰은 대박이지.

하지만 이렇게 WJ 스튜디오에서 폭발적으로 화력을 태우는 것이, 단순히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은 아니었다.

2016년 상반기, WJ 스튜디오 경영진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자본이 300억이 넘는 상황이네요?”

“그렇지요. 잉여금까지 합하면 훨씬 더 될 겁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나, 자본 건전성이나……. 믿기 힘들 정도로 오버스펙이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요건이야 차고 넘치네요. 재무제표 깔끔하고.”

“그렇습니까?”

“딱히 걸릴 것 없을 것 같습니다, 이사님. 내년 상반기 중으로 추진하시죠.”

그것은 바로, WJ 스튜디오의 주식시장 상장.

글로벌 기업으로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큰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간 최고 매출액 2350억, 영업이익 379억.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 건축사무소 WJ 스튜디오, 상장 초읽기?]

[상장 앞둔 WJ 스튜디오. 뉴욕 맨해튼에서 해외 투자설명회 개최.]

[서우진의 WJ 스튜디오 연초 상장 예정……. IPO 시장 '들썩' ]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우진이 계획했던 대로 착착 진행되어갔다.

프로젝트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주식시장 상장이라는 큰 산을 넘는 것도 무리 없이 진행된 것이다.

회사가 어느 정도 커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항상 상장을 염두해 뒀던 덕에,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진태 형.”

“응?”

“새로 세팅된 설계팀들은 분위기 좀 어때?”

“분위기라면……?”

“프로젝트 진행 잘 되고 있냐는 거지 뭐. 내가 이제 예전처럼 신경 못 쓰잖아.”

상황이 이러다 보니, 사내 분위기도 여느 때 보다 밝고 활달하였다.

“하하. 뭐, 다들 의욕적이지.”

“그래?”

“프로젝트가 흥할수록, 다 같이 잘 되는 길이니까.”

“뭐 그야 너무 원론적인 얘기 아냐?”

“스톡옵션 말이야.”

“아하.”

“다들 요즘 출근하면 기사부터 확인하던데?”

상장만큼 회사의 성장을 임직원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보니, 모두가 의욕이 넘치는 것이다.

이렇게 연말이 지나 2016년이 되었고, 우진은 회귀 후 여섯 번째 새해를 맞았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

[WJ 스튜디오, 증권 신고서 제출. 늦어도 3월 이내 상장 예정]

[WJ 스튜디오 공모주, 수요예측 경쟁률 수백 대 1 이상으로 업계 최고 수준!]

업계를 넘어 수많은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WJ 스튜디오는 상장에 성공하였다.

[WJ 스튜디오 주가, 상장 이후 일주일 째 고공 행진!]

[디자이너? 사업가? WJ 스튜디오의 상장으로, 순식간에 주식 부자 반열에 오른, 20대 청년 서우진.]

[LTK투자 벤처스, “WJ 스튜디오는 업계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

* * *

연초부터 상장으로 정신없던 WJ 스튜디오는, 2016년을 그야말로 최고의 한 해로 보내고 있었다.

15년부터 벌려놨던 사업들은 전부 아무 탈 없이 진행되었으며, 그렇게 순항한 탓인지 기업 가치도 지속적으로 수직상승했던 것이다.

특히나 마곡 MICE 단지의 시행사인 LTK그룹의 투자사는, WJ 스튜디오의 지분 일부를 비싼 값에 매수하기도 했다.

WJ 스튜디오 전체 주식의 10퍼센트에 달하는 지분을, 천억이 넘는 금액으로 매수한 것이다.

업계는 파격적인 금액 자체보다, LTK라는 세계적인 사모펀드가 WJ 스튜디오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세계적으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실력 있고 규모 있는 금융회사에서 이만한 거액을 투자했다는 건, WJ 스튜디오가 이제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는 방증이었으니 말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래 왔지만, 건축 디자인을 전공한 수많은 실력자들이 WJ 스튜디오의 문을 두들겼다.

WJ 스튜디오의 유일한 주거 브랜드인 <아르코>는 어느새 최상류층의 상징과도 같은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WJ 스튜디오 사업팀에서는 이 브랜드를 해외까지 진출시키기 위해 다양한 사업전략을 구상하였다.

우진과 WJ 스튜디오의 승승장구 덕분인지, 우진의 디자인으로 알려진 <카페 프레스코>와 같은 브랜드들도 덩달아 흥행하였다.

<카페 프레스코>의 창업자인 강석중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기업가가 되어 있었으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석호는 틈만 나면 투덜거렸다.

‘서우진’이라는 브랜드가 성장하기 전, WJ 스튜디오가 스타트업 단계일 때.

운 좋게 우진을 잘 만난 친구가 부러웠던 것이다.

심지어 석중은, WJ 스튜디오의 지분도 제법 가지고 있었다.

WJ 스튜디오가 성장하던 단계일 때, 석중이 꽤 많은 돈을 투자했던 것이다.

“으, 내가 진짜 한국에 일 년만 빨리 들어왔었어도…….”

“일 년 빨리 들어왔으면, 뭐? 네가 우진이를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아?”

“크크, 석호 형님은 빨리 갤러리 부지나 결정하세요.”

“그렇잖아도 조만간 연락할 생각이었다.”

“오, 결정된 거예요?”

“결정은 예전에 됐지. 부지 매입이 안 끝나서 시간을 질질 끌었던 거고.”

“그럼 디자인 의뢰는 언제 주십니까?”

“이번 달 내로 의뢰서 보낼게.”

“네, 형님.”

“너무…… 쎄게 부르진 마라.”

“네?”

“디자인 피 말이야.”

“하하하.”

“이거 네가 삼 년 전에 약속한 건이잖아?”

“그야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지난 정을 봐서라도…….”

“헛소리 하네. 이 자슥이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하하하하핫.”

우진의 덕을 크게 본 것은, 비단 <카페 프레스코>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두 번째 인생을 기준으로 가장 오래된 지인들인 수하나 재엽, 그리고 리아 또한, 우진 덕에 꽤나 큰돈을 벌게 되었으니까.

특히 WJ 스튜디오가 상장하기 전.

가지고 있던 건물까지 팔아 가며 막무가내로 수십억을 투자했던 재엽은, 요즘 매일같이 싱글벙글이었다.

그가 투자했던 돈은 정확히 반년이 지난 지금, 거의 다섯 배가 넘는 액수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진짜 그땐, 이 오빠가 미쳤나 싶었는데…….”

“그러게. 우리가 바보였어. 그치, 수하 언니.”

“으흐흐흐. 그러니까, 인생 한 방이라는 말이 있는 거다. 이 우매한 중생들아.”

“아니, 재엽 오빠.”

“왜?”

“대체 어떻게 그만큼 올인할 생각을 한 거야?”

“야, 임수하. 잘 생각해봐.”

“뭘?”

“지금까지 우진이가 하는 거, 뭐 하나 삐끗한 거 있냐?”

“음…….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사실 그 청담 선영 니들이 매수하던 때, 좀 깨달은 게 있었거든.”

“응?”

“일단 서우진이 하는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 들어가야 된다.”

“…….”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우쳤을 뿐이란 말이지.”

“우진이가 사기라도 치면, 전 재산 홀라당 날려 먹을 오빠네.”

“음……. 그건 아마도 불가항력이 아닐까?”

“…….”

“뭐야, 설마 너흰 아닌 척하는 거야?”

“사실 맞아.”

“나도…….”

5월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을 즈음, 우진은 미국에서 열린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도 초대받았다.

LTK에서 거액을 투자한 뒤, WJ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해외에도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슬슬 국제 건축업계에서도, 서우진이라는 건축가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진의 특별한 이력과 젊은 나이는, 외신들에게도 아주 좋은 기삿거리였다.

비록 한국에서만큼 이슈화되기는 힘들었지만, 이런 특별한 길을 걸어온 젊은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업계의 관심을 받기는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진이, 브루노나 마테오만큼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아직 WJ 스튜디오는, 포트폴리오가 조금 부족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2016년 가을.

우진은 벼르고 별렀던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건물.

그것을 디자인하여, 전 세계인들의 앞에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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