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사냥꾼과 사냥감
이천시에서 회의가 있었던 그날 이후.
바로 다음 주 초에, 감사담당관으로부터 전화가 바로 걸려왔다.
[안녕하십니까. WJ 스튜디오의 서우진 대표님 번호 맞지요?]
“네, 제가 서우진입니다만.”
[아, 반갑습니다. 이천시 감사담당관 000이라고 합니다.]
예상했던 타이밍에 예상했던 전화가 왔기 때문에, 우진은 담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 담담한 것과 별개로, 약간의 연기는 할 필요가 있었다.
“감사…… 담당관님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감사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제겐 무슨 일로…….”
과하게 당황한 척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너무 태연한 것도 이상한 법.
[이천시에서 진행 중인 개발사업과 관련해서 감사가 진행되는 중인데……. 서 대표님께 협조 요청드릴 부분이 조금 있어서 말입니다.]
[어떤 부분일까요?]
우진은 일부러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며, 담당관과 감사 일정을 잡았다.
“그럼 말씀하신 서류는, 수요일까지 전부 준비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일정이 빠듯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별 탈이 날 일이야 없겠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 감사담당관도, 우진이 감사를 어느 정도 생각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천시 문화국이 감사를 받은 사실을 우진이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니.
확실하진 않더라도 본인에게도 감사가 올 확률이 있다는 정도는 눈치챌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감사 준비 기간을 많이 주지 않은 것이었지만, 사실 우진은 수요일까지도 필요 없었다.
당장 내일 감사가 들이닥친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이미 준비는 끝난 상황이었으니까.
‘이제 시작인가.’
전화를 끊은 우진이 짧게 기지개를 켰다.
이제 미리 준비해 둔 떡밥을 조금씩 풀어줄 때였다.
* * *
건축가협회의 협회장 권주열은, 최근 꽤나 똥줄이 타고 있었다.
연말에 후배 지환과 만나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계획이, 조금씩 삐끗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내부감사가 끝났는데, 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그게……. 일단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선배.]
“표면적? 말장난은 하지 말자고. 대체 이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사실 주열과 지환은, 우진을 직접 감사할 필요도 없을 줄 알았다.
비리 정황이 너무도 확실(?)했으니, 내부감사만 한번 진행하면 우진의 비리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부감사가 끝난 시점에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이미 우진의 비리를 기정사실화 한 채로 모든 플랜을 진행해버린 주열의 입장에서는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진의 비리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 펼쳐질 테니까.
‘설마 그런 상황이 되진 않겠지만…….’
가장 크리티컬한 것은, 이미 각 설계사무소로부터 받아먹은 ‘협회 운영비’라고 할 수 있었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운영비 명목으로 받아 챙겼는데.
만약 우진에게서 비리가 발견되지 않아 사업장을 가져오는 게 어려워진다면, 그 돈을 전부 다시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으음.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나.’
불안해하는 주열의 수화기 너머로, 지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무 걱정 마시죠, 선배. 저쪽에서 생각보다 철저히 준비했나 본데,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흠.”
[선배님께서도 정황은 전부 확인하시지 않았습니까?]
“정황이라면……. 서우진이 땅 산 거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주열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잠시 뜸을 들인 지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서우진이가 돈을 바르지 않았을 확률은 없습니다.]
“그야 그렇지.”
[뭐 끽해봐야 차명계좌에 따로 돈을 돌려놨다거나, 이면계약서를 썼다거나……. 그 정도 수작을 부려놨을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한국 감사기관이 그렇게 녹록치 않거든요.]
“하긴. 요즘 감사 살벌하게 하긴 하더만.”
[아마 수요일부터, 서우진을 직접 털기 시작할 겁니다. 그땐 뭐라도 나올 테니 걱정 마십시오.]
지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주열은 조금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제까짓 놈이 이제 와서 발버둥 쳐봐야, 이미 외통수나 다름없지.’
그가 듣기에도 지환의 말들은, 조목조목 다 맞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철저히 준비해서 헛발질하는 일 없도록 하고.”
[예, 선배님.]
“조만간 또 진행 경과 보고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니, 자네가 죄송할 건 없지. 서우진이 그놈이 생각보다 능구렁이였건 건데 말이야.”
하지만 지환과의 전화를 끊은 뒤.
주열은 감사 결과만 기다리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만에 하나라도 우진이 비리 은폐에 성공하여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는다면, 역풍이 불어올 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주열은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여, 김 기자. 요즘 별일 없지?”
주열이 전화를 건 곳은, 협회에 자주 출입하는 메이저 방송국의 기자.
“내가 괜찮은 소스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주열이 선택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공론화였다.
우진은 이미 일반적인 건축디자이너를 넘어 공인이었고.
그러한 공인이 가장 무서워할 것이, 자신의 치부가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시궁창 싸움이 될 것은 알고 있지만, 우진이 비리를 저지른 게 확실한 이상 주열은 잃을 게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
“자네 내일이나 모레 시간 되나?”
이것은 꽤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그때 보지. 내가 점심 한 끼 사도록 하겠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주열은 알 수 없었다.
이 전화 한 통이, 본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를 말이다.
* * *
WJ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1월이 프로젝트의 진행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달이었다면, 2월은 단어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빡빡하게 들어오는 감사에 대응한다고 페이퍼 웍이 늘어있는 마당에, 주열이 언론 플레이까지 시작했으니 말이다.
사실이 어떻든 우진에 대한 안 좋은 기사와 여론이 퍼지는 것은 회사 차원에서 큰 손실이었고.
때문에 WJ 스튜디오의 마케팅 팀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있는다면, 사실이 어떻든 대중은 언론을 믿게 될 테니까.
아침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기사를 확인한 진태가, 출근하자마자 대표실로 달려왔다.
“우진아, 기사 봤어?”
“당연히 봤지.”
“이거 이놈들 진짜 악질인데?”
“그러게. 나도 언플까지 할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처음 기사를 봤을 때, 우진도 혀를 내둘렀었다.
건축가협회에서 언론 플레이까지 할 것이라고는, 우진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기사는 제목부터가 꽤나 자극적이었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도 이미 감정적이었다.
[WJ 스튜디오 서우진 대표. 이천시 관광산업 개발에 부당이익 취득?]
[이천시 <천년의 그대> 세트장 인근 수천 평 토지, WJ 스튜디오의 ‘서우진 대표’ 명의로 알려져…….]
└ 와, 서우진 그렇게 안 봤는데, 대박이네.
└ 어린 나이에 벌써 하는 꼬라지 하고는…….
└ 이십 대에 좀 유명해지더니, 결국 너도 똑같은 토건 적폐구나.
하지만 그렇다 해서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그들에게 자충수라는 것은, 누구보다 우진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지능 문제 같은데…….’
물론 당장은 괜찮은 전략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언론 플레이는, 감사가 들어온 시점에서 우진에게 꽤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선택지였으니까.
“너 그런데 왜 이렇게 태연하냐.”
“뭐가?”
“이거 꽤 큰일 난 거 아냐?”
“왜?”
“댓글에 벌써부터 악플 달리고 난리던데.”
진태의 걱정에, 우진은 웃어 보였다.
당장이야 불쾌하고 타격도 있을지 몰라도.
결국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지금 우진에게 쏟아진 이 화살이 그대로 건축가협회에 돌아갈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게다가 이렇게까지 이슈화된 상황에서 우진의 완벽한 결백이 밝혀진다면.
대중들의 그 부정적인 관심들은 긍정적인 여론으로 변할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흡수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분노하며 열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우진은 언제나 그래왔듯, 지금의 이 상황을 가장 이상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 방법을 찾을 뿐이었다.
“마케팅 회의 한번 열자, 형.”
“회의?”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가이드를 잡아줘야 할 것 아냐.”
“흠…….”
우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내 분위기는 어때? 설마 내가 진짜 비리를 저질렀다고 믿는 분위기는 아니지?”
우진의 물음에, 진태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사내에서 네 인기가 얼마나 좋은데.”
“그럼 다행이고.”
진태가 한 마디 덧붙였다.
“다들 걱정하지.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대표님 마음 상하실까 봐 걱정된다고 말이야.”
진태의 답에 우진은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불쾌한 감정조차 싹 날아갔다.
우진에게 중요한 것은, 그와 관련 없는 불특정 다수의 비난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들이 우진을 믿고 지지해 준다는 것만으로 우진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보다시피 난 멀쩡하거든?”
우진의 말에, 진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 보인다. 걱정돼서 뛰어온 게 민망할 지경이야.”
우진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다들 걱정 말고, 회의나 소집해 줘. 기왕 판 깔린 거, 제대로 한 번 붙어보려니까.”
“오케이.”
“그리고 오늘 회의는 최소 실장급 이상으로만 소집해 줘.”
“왜? 실장급으로 제한하면 다섯 명뿐이잖아?”
“오늘 논의할 내용들 중에, 대외비가 좀 있을 예정이거든.”
“알겠어. 그렇게 할게.”
진태가 대표실에서 나선 뒤, 우진은 컴퓨터 앞에 앉아 빠르게 타자를 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는 거의 혼자 계획하고 고민하였지만, 이제는 그가 그려놓은 그림을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협회 놈들……. 아주 뿌리까지 태워버려야지.’
하루, 이틀. 그렇게 일주일.
WJ 스튜디오를 향한 감사는 더욱 집요해졌고, 매일 매일 언론은 활활 불타올랐다.
처음에는 우진을 비난하던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제 기사들을 보면 반반 정도로 여론형성이 되어 있었다.
WJ 스튜디오의 마케팅 팀이 밤샘 근무까지 마다치 않으며 최선을 다해 대응했기 때문.
재밌는 것은 이렇게 우진의 비리에 대한 떡밥이 활활 타오르는 와중에도, 오히려 <천년의 그대>의 시청률은 계속해서 상승했다는 점.
의도치 않게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 서우진이 이 새끼. 진짜 보통 놈이 아닌데?”
[이제 진짜 다 왔습니다, 선배.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뭘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거야? 언플도 이제 한계야. 저쪽에서 이렇게 버티고 있으면 답이 없다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뭐가?”
[서우진이 스페인에 터놓은 해외계좌를 찾았거든요.]
“……!”
[계좌 까기만 하면 끝납니다. 이놈이 끝까지 숨기려는 것 보니까, 여기 다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내심이 한계까지 다다른 권주열은, 드디어 본인의 손으로 완벽한 외통수를 두기에 이르렀다.
[건축가협회 회장 권주열. WJ 스튜디오 서우진 대표에게 고소장 던져.]
[‘투명하게 진행돼야 할 국책사업에 비리와 특혜는 용납할 수 없다.’]
[‘이번 유착행태로 인해 설계 공모에서 피해를 본 중소 설계사무소들을 대표하여 서 대표를 고소하겠다.’]
건축가협회장이 직접 나서 고소장까지 던지자, 겨우 균형을 맞추던 여론은 다시 우진을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그 기사가 뜨고 바로 다음 날.
[WJ 스튜디오의 서우진 대표, 건축가협회를 ‘무고죄’로 고소.]
참고 참았던 우진이, 드디어 칼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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