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덫
회의가 전부 마무리된 뒤, 우진과 소정, 그리고 조용현 과장은 시청 뒤쪽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프로젝트 팀과 함께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 시간이 조금 비어서 차라도 한잔할 겸 나온 것이다.
물론 시청 안에도 깔끔한 카페테리아가 있다.
하지만 우진은 굳이 두 사람을 데리고 시청 밖으로 나왔는데, 그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눈과 귀가 없는 곳에서 나눠야 할, 꽤 중요한 얘기들이 있었으니까.
딸랑-
평일 오후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 카페에서도, 우진은 가장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의가 기분 좋게 마무리된 덕에, 화기애애한 세 사람의 분위기.
프로젝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탁자 위에 커피가 한 잔씩 놓였고.
그것을 한 모금 홀짝인 우진이 슬슬 운을 떼었다.
“그나저나 국장님.”
“네, 대표님.”
“감사는 어떻게 돼 가세요? 이제 마무리될 때 다된 것 같아서요.”
우진의 질문에, 조용현이 한숨을 푹 쉬며 대꾸하였다.
“하, 이제 다 끝나가긴 합니다.”
“별 탈 없죠?”
“탈이 있을 리가요. 뭐 잘못한 게 없는데.”
“하하.”
일단 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물론 이천시 문화국에 우진과 관련된 비리는 존재할 수 없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다른 자잘한 건수들이라도 발각되면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천년의 그대> 본편이 전부 다 끝난 지금.
이미 감사로 인해 일정이 몇 주일 밀린 마당에, 여기서 더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해지는 것은 꽤 손실이 큰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택지분양만큼은……. 3월 안에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우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용현 국장이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생각해보니……. 직원 한 놈이 어쩌면 징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왜요?”
“회식비용 30만 원을 실수로 누락시켰다더라고요.”
“…….”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소정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 정도로도 징계 먹어요?”
용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모르죠. 저희도 감사는 처음 받아보는 거라…….”
징계라는 말에 살짝 놀랐던 우진이 소정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한국에서 손에 꼽는 대형 기획사의 대표가 된 그녀였건만, 이렇게 한 번씩 백치미를 보여줄 때가 있었다.
‘뭐, 그게 소정 씨 매력이지.’
어쨌든 이천시가 내부감사를 무사히 통과했음을 확인한 우진은, 이제 슬슬 준비해 온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국장님께서 저번에, 갑자기 감사가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었죠?”
우진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조용현의 두 눈이 반짝였다.
“네, 그랬었죠.”
“그 이유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려볼까 하는데요.”
“……!”
지난 한 달 동안.
우진은 가지고 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건축가협회와 국토교통부.
성수지구 통합설계에 손을 뻗쳤던 두 집단이, 이번 감사의 배후라는 그 추측 말이다.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배경은 간단했다.
그들의 움직임.
즉, 정황을 확실히 발견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우진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다진건설의 사장 임중우였다.
[대표님 말씀대로, 협회에서 이천시 개발 사업에 참여할 업체를 내부선정 중이라 하더군요.]
[역시…….]
[공공으로 큰 건이 세 개나 나온다면서요?]
[관광인프라 쪽으로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던 곳에 주춧돌부터 쌓아 올리는 사업이니까요.]
[자잘한 것까지 다 해서 참여업체 스무 곳을 선정하고 있던데…….]
[재밌네요.]
[예?]
[국가에서 공모를 통해 선정해야 할 업체선정을, 협회 내부에서 하고 앉았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뭐, 모든 사업장이 이렇지는 않았겠지만, 협회는 이제까지 많은 사업장을 이런 방식으로 따냈으니까요.]
협회 소속 여러 사무소들과 거래하는 다진건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협회 내부 정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협회를 통하지 않으면 공공 설계 쪽은 입찰조차 넣기 힘든 형국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이런 일이 완전한 대외비도 아니었고, 업계 내에서는 공공연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다진에서도 입찰 한 번 들어와 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하하, 그렇지 않아도 협회에서, 저희 쪽으로도 연락이 오더군요.]
[오……?]
[사업장 한 곳 정도 저희 쪽에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 있냐고 묻더이다.]
[…….]
[당연히 저희는 거절했으니, 오해는 마시지요.]
[음? 거절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비리야 그쪽에서 저지르는 거고, 다진건설 입장에선 그냥 일거리가 생기는 건데…….]
[허헛.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피(Fee)라도 요구하던가요?]
[정확하십니다.]
[징글징글하네요.]
[뭐, 명목이야 협회 운영비 충당 같은 이유인데……. 누구 주머니 속으로 피가 들어갈진, 뻔히 보이지요.]
우진이 볼 때, 건축가협회의 계획은 간단했다.
그들이 생각할 때 우진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부분이었고.
하여 그 비리가 밝혀지는 순간, 무주공산이 된 사업장을 협회에서 싹 다 점령하려는 것이다.
공모에 참가한 업체 하나의 비리가 밝혀졌다고 해서 어떻게 협회에서 사업장을 다 먹을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이치였다.
우진의 비리가 밝혀졌다는 사실은 그와 연루된 이천시청 직원들의 비리도 같이 밝혀졌다는 이야기겠고.
그렇게 되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실무자들까지 줄줄이 엮여 들어갈 수밖에 없을 터였다.
‘프로젝트 진행하던 실무진들이 짤려 나간다고 해도, 이천시는 이 프로젝트를 결코 포기할 수 없을 테지. 천년의 그대가 워낙 대박이 터진 상황이니까.’
관광특구 지정은 이천시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실무진 몇이 비리를 저질렀다 해서 프로젝트를 포기한다?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가 시를 살살 꼬드기면, 자연스레 주도권은 그쪽으로 넘어갈 거야. 이때 협회가 슬쩍 한 다리 걸치면……. 빈집 터는 건,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겠지.’
우진은 자신의 추측들이, 9할 이상 맞아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오늘 회의가 끝난 뒤, 이렇게 조용현 국장에게 운을 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저들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응할지 완벽하게 그림이 그려진 상황이었으니, 그 대응을 위해 함께 호흡을 맞춰줘야 할 조용현 국장에게 정보를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우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그러니까 이걸 어디부터 설명 드려야 하나…….”
성수지구 설계 공모 때 있던 일부터 쭉 이야기를 들은 조용현은, 곧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조용현은 무척이나 불쾌한 표정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로서도 정말 열정을 다 해 준비한 사업이었고.
그런 그의 노력에 오물이 튄 기분이었으니, 기분이 나쁜 건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이렇게 감사가 나올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우진이 웃었다.
“결과적으로는 어차피 문제 될 것 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그들이 생각하는 비리 같은 건……. 애초에 존재치도 않았으니까요.”
조용현의 푸근한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이 무의미한 감사 때문에 지난 삼 주 동안 했던 야근부터 억울했지만.
가장 짜증 나는 것은 프로젝트가 지체됐다는 점이었다.
건축가협회가 아니었다면, <천년의 그대> 본편이 방영되기 직전에 택지분양까지 마칠 수 있는 최고의 일정이었으니까.
항상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던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진은 오늘 처음 알았다.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조 국장님.”
“예, 대표님.”
“혹시 얼마 전에 통화할 때,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조 국장이 뭔가 기억난 듯 탁자를 살짝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아, 한 방 먹여주시겠다고 하셨던……?”
우진이 웃었다.
“네.”
조용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뭔가 계획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불쾌함이 가득했던 조용현의 두 눈이, 어느새 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사실 그 ‘한 방 먹여준다’는 것이 업무 외적으로 귀찮은 일들을 감수해야 할 확률이 높았지만.
그럼에도 협회에 한 방 먹여줄 수 있다면, 그 귀찮음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저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너무 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진의 물음에, 용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우진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그 길목에 덫을 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 * *
덫에 사냥감이 걸려들게 하려면, 두 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사냥감이 이동할 길목을 미리 예측하여, 그 위치에 덫을 놓을 것.
둘째.
그 덫 안에 먹음직스런 먹이를 놓아, 사냥감의 걸음을 붙잡을 수 있을 것.
사냥감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았으니 첫 번째 조건은 충족되었고.
그래서 우진이 고민했던 것은 덫 안에 어떤 먹음직스런 먹이를 놓을 것이냐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
우진이 내어놓은 해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저들이 가장 먹음직스러워할 미끼는 바로 ‘돈’일 것입니다.”
우진의 말에, 조용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경우라……. 그럼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들이 돈에 움직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당연히…….”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이유가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아마 저 때문일 겁니다.”
“……!”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크게 이득을 챙기는 것보다도, 제 몰락을 보고 싶은 것이 저들의 가장 큰 행동 동기라는 겁니다.”
“그렇게 쪼잔하다고요?”
용현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우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만한 위인들입니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번 사업장에 제가 연관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겠지요.”
우진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이런 개발 사업의 경우 국가기관에 고시가 되긴 하지만, 그 고시에 우진이나 WJ 스튜디오와 관련된 내용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까 우진이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면 우진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건축가협회쯤 되는 커다란 단체가 우진을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면 그 이유는 당연히 우진에 대한 앙심일 터였다.
조용현이 생각에 잠긴 동안,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이천시 감사가 끝났으니, 제 쪽으로 화살이 넘어올 차례 아닙니까?”
용현이 대답했다.
“그렇지요.”
“저는 이번 감사에서, 미끼를 던져 놓고 낚시를 한 번 해볼 생각입니다.”
“낚시라면……?”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제가 스페인 건축가와 일을 할 때 터놓은 해외계좌가 있는데, 핑계를 대면서 그 계좌를 한동안 숨겨 볼 생각이거든요.”
“음……?”
우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해당 계좌의 입출금 내역은, 아마 10회도 채 되지 않을 겁니다. 당시 설계 수수료를 받는 데 사용한 것 외에는, 계좌를 열어보지도 않았으니까요.”
우진의 입에 걸린 웃음이 짙어졌다.
“하지만 저들은 그 계좌 안에, 최소한 몇억 이상의 비자금이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우진의 계획을 이해한 조용현이,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제게 보내려고 빼놓은 돈인가요?”
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우진이 대답하였다.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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