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203화 (203/315)

203화

사업성이란

사실 재건축‧재개발의 현장에서, 용적률 완화를 활용한 서울시의 딜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어 왔던 일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는, 바로 임대주택과 기부채납*[국가 외의 자가 재산의 소유권을 무상으로 국가에 이전하여 국가가 이를 취득하는 것]

새 아파트 단지에 일부 세대를 임대세대로 책정하는 대신 그만큼 용적률 상한을 완화 시켜준다거나.

혹은 개발 면적의 일부를 공공시설인 공원이나 도로의 형태로 나라에 기부채납 하면서, 그 대신 용적률을 완화 시켜준다거나.

이런 식으로 서울시가 용적률 완화를 협상의 카드로 써 온 적은, 이미 몇 번이나 전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윤권이 우진에게 놀란 이유는, 전혀 연관성이 보이지 않던 두 가지 프로젝트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진의 순간적인 기지에 있었다.

사실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의 사업성을 확보하는 일과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재개발 사업 사이에는, 겉으로 봤을 때 별다른 연결점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두 사업의 유일한 연결고리라면, 양쪽 모두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이라는 정도.

그런데 우진은 이 두 사업을 하나로 묶어내는 과정에서 완벽한 시너지까지 생각해 내었고, 이것으로 지난 한 달 동안 구윤권이 골머리를 싸매던 부분이 말끔하게 해결되어 버렸다.

결과를 놓고 거꾸로 생각해 보면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진을 만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구윤권은 서울시장이 되기 전에도 수많은 행정업무를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감탄했던 적은 단연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기재부에서 십수 년을 근무했던 황종호 또한, 구윤권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진에 대한 평가는 또 한 번 달라진 것이다.

어느새 입꼬리를 말아 올린 황종호는, 우진을 힐끔 응시하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요놈은 왜 디자이너가 된 거야? 밑에 이런 놈 하나 있었으면 일하기 엄청 편했겠는데 말이지.’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이 훈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표님.”

“네?”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해야 떠올릴 수 있는 겁니까?”

“하……. 하하. 저야 이쪽 업계 사람 아닙니까. 시장님이야 다양하게 행정업무를 보셔야 하지만, 저는 건설 쟁이니까요.”

우진의 대답에, 황종호가 피식 웃으며 박경완을 쳐다봤다.

“야, 박 씨. 너도 건설 쟁이 아니냐?”

“큼, 크흠.”

“시댕이 너도 이런 제안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지?”

“모릅니다, 어르신.”

“아니 대체 천웅에서는 대체 왜 이 시댕이한테 별을 달아 준 거야?”

“그냥 서 대표가 특이한 겁니다아! 아니, 건설 쟁이가 저런 생각을 대체 어떻게 해요. 사업장 딴다고 영업 뛰기도 바빠 죽겠는데.”

“프흐흐흐.”

황종호와 박경완의 대화로 한 차례 가볍게 웃음이 오가는 사이, 주문한 음식들도 전부 세팅되어 나왔다.

그것들을 몇 젓갈 집어 들던 구윤권이, 다시 우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서 대표님 덕에 큰 고민이 하나 해결됐습니다.”

“별말씀을요.”

“아마 실무 테이블에 던져봐야 알겠지만, 무리 없이 진행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 같군요.”

“그럴 겁니다. 딱히 걸릴 만한 부분이 없으니까요.”

“이거 제가 무슨 보답이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

조금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윤권의 말에, 우진은 아주 잠시 멈칫하였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뿐,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였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제가 뭘 바라고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구윤권이 호쾌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 당연히 알지요. 그래도 너무 감사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을 한 모금 홀짝인 우진이, 툭 던지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뭐, 보답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셨다면, 그대로 빠르게 추진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우진의 말에, 구윤권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대표님께 어떤 도움이……?”

우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성수동에 지분이 좀 많거든요.”

“아하?”

“사무실도 성수동, 집도 성수동……. 지금 새로 짓고 있는 사옥도 성수동 아닙니까.”

고개를 끄덕인 구윤권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대표님께선 역시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구윤권과 다시 눈이 마주친 우진이 싱긋 웃었다.

“그래도 제가 드린 제안 자체는, 전혀 사심 없었던 것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이야기들은 아직도 많이 남았고.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오늘의 자리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 * *

우진은 그날, 열두 시가 넘어서야 성수동으로 돌아왔다.

성수동으로 돌아왔다고 곧장 집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구윤권과 황종호는 열두 시가 되기 전에 귀가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박경완이 우진을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성수동 포차에 따로 3차를 간 두 사람은,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다.

“야, 넌 무슨 돈귀신이라도 붙었냐?”

박경완의 말에, 우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상무님. 돈 귀신이라뇨.”

“아니, 그렇잖아. 오늘 시장님 미팅에서 네가 주워 먹은 게 대체 얼만지 감도 잘 안 오는데, 난.”

경완의 너스레에 우진이 어깨를 으쓱 하였다.

“주워 먹다니, 제가 뭘요.”

“일단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 이거 네 말대로 진행되려면, 성수 전략정비구역 통짜로 묶어서 새로 설계 띄워야 되잖아? 그럼 그 설계가 누구한테 가겠어?”

하지만 입가에 은은히(?) 떠오르는 미소까지, 전부 숨길 수는 없는 법.

“흐흐. 누구한테 가다니요. 당연히 설계 공모 공시 뜨지 않겠습니까.”

그에 경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음흉한 시키. 공모야 뜨겠지. 근데 니가 서울시장이면 그걸 누구한테 시키겠냐?”

“뭐, 팔이 안으로 굽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와, 서우진이 이거. 못 본 새에 얼굴에 철판이 두 배로 두꺼워졌네?”

“아니, 그러는 상무님은요. 이거 시공사 입찰 뜨면, 클리오 들고 가서 바로 엉덩이부터 깔고 앉으실 분이…….”

우진이 정곡을 찌르자, 경완의 입에서 절로 헛기침이 나왔다.

“큼. 크흠! 그건 이거랑 좀 다르지, 짜샤. 시공사 선정이야 조합원들이 하는 거고.”

“설계 공모 심사에도 아마 조합원들 지분이 있을걸요?”

“그…… 렇긴 한데…….”

“어디까지나 저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겁니다. 설계 짱짱하게 해 가서 디자인으로 승부 볼 거라고요.”

그리고 결국 말빨로 우진을 이겨내지 못한 경완은,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후우. 진짜 요놈. 말이나 못 하면…….”

“짠이나 하시죠.”

“그래, 짠이다 인마.”

쨍-!

우진과 소주잔을 부딪친 경완은 단숨에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고,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계속 잘나간다고 이 박경완이 모른 척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상무님 하시는 거 봐서요.”

“야 이……!”

우진은 건설업계 사람 치고 술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경완과의 술자리만큼은 항상 즐겁고 유쾌했다.

사실 술맛이라는 것은 술자리의 분위기와 함께 마시는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법.

우진과의 술자리가 좋은 것은, 경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거 성수동 사업장이야 그렇다 치고.”

“예, 상무님.”

“마지막에 얘기 나누던 그 리빙페어 관련된 얘기들은…….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는 거냐?”

경완의 물음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 미팅 내용 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이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원래 서울시장과 이야기하려 했던 본론은 반년쯤 뒤에 있을 리빙페어에 관련된 부분이었으니까.

경완은 그 내용 또한 흥미롭게 들었지만 전후 사정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몇 가지 궁금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 <천년의 그대>라고 했나?”

“맞습니다. 그 이름.”

“그 드라마는 이미 찍기 시작한 거야?”

“세트장이 완공돼야 찍기 시작하죠. 아마 3월부터 찍을 겁니다.”

“세트장이 이천에 있다며?”

“정확히는 세트장이 있는 게 아니라 부지가 있는 거죠.”

“부지?”

“강소정 대표가 들고 있던 땅인데, 이번에 제가 매입했습니다.”

“야, 아무리 세트장 부지라 해도 그렇지, 그런 촌구석 땅을 샀다고?”

“그만큼 싸게 샀으니까 괜찮습니다.”

“뭐, 이런 거야 네가 어련히 알아서 더 잘하겠냐만…….”

경완과의 대화는 계속해도 끝이 없었다.

이제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는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니.

거의 모든 주제가 두 사람의 공통분모가 됐던 것이다.

“청담 클리오 써밋 분양 일정은 어떻게 돼갑니까? 그거 지난번에 한두 달 밀린 것 같던데.”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소송 마무리하고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딜레이가 좀 됐는데, 아마 한 달 내로는 분양승인 떨어질 거다.”

“청약 넣으신다고요?”

“네 말대로 큰 평수 한 번 도전해 보려고.”

“이번에도 저 몰래 홀라당 팔아버리시면 안 됩니다?”

“야, 진짜 내가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번엔 절대로 안 팔아. 무조건 입주할 거야, 무조건!”

흥분한(?) 경완이 과장된 표정으로 날뛰자, 우진은 낄낄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진 몰래 홀라당 팔아버린 분양권이란 당연히 마포 클리오를 얘기하는 것이었고.

이제 슬슬 중공이 가까워지고 있는 마포 클리오는, 경완이 팔아넘긴 시점보다 무려 1억 가까이 프리미엄이 붙어있었으니 말이다.

아직도 그 일로 와이프에게 주기적으로 혼나는 중인 경완에게는, 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는 것.

몇 년 더 지나면 이 프리미엄이 3억 이상까지도 오를 것이라는 얘기는, 굳이 더해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상무님.”

“왜.”

조금 심통난 박경완의 목소리에, 우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청담 조합장님은 요즘 잘 계십니까?”

우진이 꺼내 든 조금 의외의 이야기에, 경완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반문하였다.

“음? 조합장 양반? 곽 씨 말하는 거야?”

“네. 곽홍식 조합장님 말이죠. 상무님이 그쪽 담당이시니까, 종종 연락하시지 않습니까?”

“그 냥반은 왜?”

오래도록 우진을 알아 온 경완은, 그의 표정만 봐도 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곽홍식이라는 이름을 갑자기 꺼내든 것부터가 의미심장했지만, 지금 우진의 표정 자체가 뭔가 꾸미고 있을 때의 딱 그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경완의 그 기대(?)를 져버리지 않겠다는 듯, 우진이 씨익 웃으며 한마디 말을 이었다.

“조만간 자리 한 번 마련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냥반이야 너도 연락처 다 있잖아?”

“제가 갑자기 연락하는 건 그림이 좀 이상하잖아요.”

“딱히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왜?”

들고 있던 소주잔을 가볍게 홀짝인 우진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좀 더 깔끔하게 진행되려면, 아무래도 ‘용병’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죠.”

“뭐……? 용병……?”

알 수 없는 우진의 이야기에 경완이 고개를 갸웃하였고, 우진이 본격적으로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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