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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02화 (202/315)

202화

사업성이란

결과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촌지구와 인접한 강변북로를 지하화하는 것은 꽤 괜찮은 계획임이 분명했다.

일단 성공적으로 완성만 시킬 수 있다면, 다각도로 보았을 때 여기만큼 많은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진이 반대한 이유는, 당연히 ‘현실성’의 측면에 있었다.

우진은 이 강변북로의 원효대교에서 한강대교 사이 구간 지하화 계획이, 절대 이번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사업성은 분명히 있지만,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너무 두루뭉술한 계획이니까.’

소음과 분진이 가득한 대로를 지하로 매립하여 그만큼 시민들에게 한강공원으로 바꿔준다면, 그것이 다방면에서 도시발전에 큰 이득이 될 것이라는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사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그런 두루뭉술한 미래가치뿐 아니라 확실하게 수치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성 또한 중요하다.

우진은 구윤권 시장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결국은 막대한 공사비의 일부분이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져야 진행이 될 텐데……. 이촌지구는 아마 그게 쉽지 않을 겁니다.”

우진의 말에, 구윤권이 반문하였다.

“이미 많은 유동인구와 인프라가 확보되어 있으니, 오히려 더 쉬운 것 아닙니까?”

우진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와 그것으로 인한 수익구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사업으로 인해 그 수익구조가 얼마나 크게 개선될 거냐는 거죠.”

“음…….”

“기존의 수익구조와 인프라는, 공사비를 투입하지 않아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죠.”

구윤권의 입에서 낮은 침음성이 새어 나왔고, 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촌의 현재 인프라가 100이라면, 지하화 사업으로 그것을 개선했을 때 확장 가능한 인프라는 120 수준일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계속 시너지가 나면서 130, 140, 150까지 증가하겠지만, 그것은 당장 수치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아니죠.”

구윤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그 또한 인지하고 있던 것이니까.

“그러니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그 20퍼센트 정도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서 수 킬로미터나 되는 구간의 강변북로를 지하화하는 것은, 사업성 부족으로 결론 날 확률이 높다는 이야깁니다. 지금 시점에서 알 수 없는 미래의 가치들은, 예비 타당성에 포함되기 힘드니까요.”

우진의 말이 끝나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런 종류의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우진이 던진 이야기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처음 이 침묵을 깬 것은, 구윤권 시장이었다.

“서 대표님의 말씀에 8할 이상 동의합니다. 하지만…….”

“네, 시장님.”

“이촌지구의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마저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구간도 스타트를 끊을 수 없을 겁니다.”

조금 침중해 보이는 구윤권의 말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나마 인프라가 있는 이촌이 아니라면, 그 20퍼센트의 개선 효과마저도 수치화시킬 수 있을 만한 구간이 없다는 말씀이시죠?”

윤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구윤권 시장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오늘 우진을 만나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이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과 관련해서 건축디자인이나 설계와 관련된 부분들이었는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들었을 땐, 우진이 아예 사업 자체가 진행되기 힘들다고 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은 구윤권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네, 시장님.”

“분명히 대표님께선, ‘첫 스타트’를 이촌으로 끊는 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그렇다면 반대로, 이촌보다 더 사업효과가 좋을 구간을 이미 생각해두신 곳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구윤권의 질문에, 우진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맥락이기는 했지만, 질문이 틀렸다.

“아뇨. 인프라 개선 효과가 이촌보다 더 좋을 만한 곳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우진의 단호한 대답에, 구윤권은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우진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업성이 더 좋을 만한 곳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

마치 말장난 같은 우진의 이야기에, 구윤권 뿐 아니라 황종호와 박경완까지도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순간적으로 전혀 알아챌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하자, 그 의문은 풀릴 수 있었다.

“사업성이라는 게……. 사실 인풋과 아웃풋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물 아닙니까?”

구윤권의 눈이 반짝였다.

“인풋이라면, 사업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결과물이 비슷한 수준이라도 들어가는 사업비용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사업장이 있다면……. 사업성은 크게 확보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였다.

* * *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의 첫 번째 사업 대상지로, 우진이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곳은 바로 성수동이었다.

정확히는 <성수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있는, 성수대교 북단에서 영동대교 북단 사이.

그 앞을 지나는 강변북로의 구간을, 사업성을 줄일 수 있는 핵심 사업지로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WJ 스튜디오가 성수동에 지분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심 섞인 제안이 아닌, 확실한 솔루션이었던 것이다.

‘개발계획을, 아예 주거지역까지 통짜로 묶어버리는 거지.’

<성수 전략정비 구역>은, 전 시장이 추진했던 한강 르네상스 사업 중 하나였다.

성수동 한강 변의 낙후된 빌라촌을 깔끔하게 재개발하여, 전부 다 50층 높이의 고층 하이엔드 주거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

이곳은 강변북로 지하화와 달리 가시적인 사업성이 충분히 있는 곳이었고, 시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 사업지도 아니었다.

재개발 지역에 새로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들은, 조합원들의 분담금과 일반분양 수익으로 건축비 충당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우진이 기억하기로 이곳 전략정비구역은, 완공 이후에 강남 서초나 청담만큼이나 고가의 시세가 형성될 만큼 사업성 있는 곳이었다.

“시장님. 지금 성수 전략정비구역 사업이 더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소 뜬금없는 우진의 질문에, 구윤권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하였다.

“이 또한 당연히 사업성 문제 아니겠습니까. 부동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으니…….”

구윤권의 말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정도만 지나도 부동산 시장이 타오르기 시작할 테지만, 2011년 말인 지금은 침체기의 끝에 도달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새롭게 지어진 아파트의 시세에 대한 기댓값이 높아야 조합원들도 분담금을 수용하고 개발을 진척시킬 텐데.

미분양 기사만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선, 개발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곳의 사업성을 개선해 준다면, 당연히 진행이 빨라지겠지요?”

우진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구윤권이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였다.

“어떤 방법으로 말입니까?”

“3종 주거지역인 전략정비구역을, 종 상향을 해 주거나 특례법을 적용하여 용적률 상한을 올려주는 겁니다.”

용적률 상한이 올라간다면, 같은 땅에 더 많은 세대수를 뽑아낼 수 있다.

조합원 숫자는 같은데 세대수는 많아지니, 일반분양할 수 있는 세대의 숫자가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것.

일반분양이 많아졌으니 당연히 개발이익도 커지게 되고, 이것이 바로 사업성 증가인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구윤권이 곧바로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한강 르네상스라 해서 성수 전략정비구역만 용적률 상한을 올려준다면…….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미 50층 허가를 내준 것만 해도 큰 특례이고요.”

층수제한을 올린다고 해서, 세대수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용적률 상한이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50층짜리 두 동을 100층짜리 한 동으로 지을 수 있게 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용적률이 오르는 것은 일차원적으로 땅의 가치 자체가 오르는 일이었고.

때문에 성수동의 용적률 상한을 올려준다면, 서울 내 수많은 개발구역이 자신들도 그렇게 해달라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용적률 상한이 올라가는 것은, 곧 조합원의 이익 상승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니까.

그럼 전부 다 용적률을 올려주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너도나도 같은 넓이의 대지 안에 빼곡히 집을 짓다 보면, 서울시의 경관이 망가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때문에 용적률이라는 것은 함부로 올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당연히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으며 대답하였다.

진짜 핵심은 바로 지금부터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명분입니다 시장님.”

“명분이요?”

“이곳 성수 전략정비구역만 용적률을 올려줘도, 다른 개발구역의 조합원들이 태클을 걸 수 없을 만한 명분 말입니다.”

구윤권과 눈이 마주친 우진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발사업의 공사비용을……. 이 성수 전략정비구역의 조합원들에게 부담하게 한다면 어떻습니까?”

“……!”

“서울시가 용적률 상한을 올려서, 전략정비구역에 세대수를 더 많이 지을 수 있게 협조해 주겠다. 대신 조합원 너희들은……. 그로 인해 늘어난 개발이익의 일부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입해라.”

우진이 씨익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거야말로 서울시와 조합원들이,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강변북로와 바로 붙어있는 성수동의 전략정비구역은, 어차피 강변북로 지하화로 인한 주거환경 개선 효과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게 될 지역이다.

때문에 공사비를 충당하는 대신 그만큼 개발이익을 늘려주겠다고 제안한다면,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조합원들은 소음과 분진이 없는 더욱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는 것이고, 공사비는 늘어난 일반분양 수익으로 충당이 가능할 테니까.

반대로 서울시는, 용적률 상한을 좀 더 풀어주는 것으로 막대한 공사비를 아낄 수가 있게 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명분도 확실하게 있으니, 크게 거리낄 것도 없고 말이다.

우진의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다시 한번 세 사람은 침묵하였다.

하지만 이번의 침묵은 아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종전에 우진의 이야기가 세 사람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줬다면, 이번에는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솔루션을 보여줬으니까.

박경완은 감탄한 나머지 입을 쩍 벌리고 있었으며, 감정이 표정에 잘 나타나지 않는 황종호 또한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리고 우진에게 이야기를 꺼낸 당사자인 구윤권은, 우진의 솔루션을 구체화시키느라 바삐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예비타당성은 생각할 필요도 없지. 사업 결과가 어떻게 예상되든, 사업비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어 버릴 테니까.’

하여 잠시 후, 모든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다시 우진과 눈이 마주친 구윤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구윤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네?”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해야 떠올릴 수 있는 겁니까?”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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