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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01화 (201/315)

201화

Warming up

사실 구윤권은 최근 고민이 꽤나 많았다.

서울시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있으니 어찌 보면 고민이 많은 게 당연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골머리를 썩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들 안에서도 가장 선결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부분 전임 시장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서울시를 선진도시로 만들겠다며 수많은 급진적인 정책을 펼쳤던 전임 시장의 사업들.

전임 시장이 퇴임하고 나자 그가 강제로 밀어붙이던 여러 가지 사업들에 대해 다시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것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시장님. 이번에 새로 지어진 돔구장 말입니다. 도무지 사업성이 나오질 않는다고, 어떤 구단도 들어오고 싶지 않아 합니다.]

[대중교통 접근성도 너무 나빠서,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서해 뱃길 사업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장님.]

[1만 톤 단위가 넘는 대형 선박은, 뱃길을 이용하는 게 불가능하답니다.]

[중국 쪽에서 크루즈 선을 들여와야 관광사업 방향으로 사업성이 나올 텐데……. 이대로라면 크게 적자만 보게 생겼습니다.]

사실 전임 시장의 정책들이 근본부터 나쁜 정책들이었다면, 구윤권이 이렇게 고민할 일도 없었다.

이제 갓 부임하여 창창하게 임기가 남아있는 서울시장에게는 잘못된 사업들을 바로잡을 만한 힘이 충분히 있었고, 컴플레인이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조치를 취하고 있었을 테니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에는 분명히 출혈이 따르겠지만, 그것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컴플레인이 들어오고 있는 이 사업들의 방향성 자체가 구윤권이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급진적으로 밀어붙여 시 예산을 낭비하고 여러 가지 부정적인 사이드 이펙트를 터뜨렸을 뿐.

구윤권이 원하는 도시정비 사업과 거의 일치하는 방향성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구윤권이었다면, 이렇게 의욕만 앞서 일을 그르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첫 단추는 잘못 꿰였지만……. 이걸 되돌린다면 아까운 예산만 더 쓰고 남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도시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것이, 꼭 건설에만 들어가는 건 아니다.

철거 또한 상황에 따라 어지간한 공사보다 더 큰 돈이 들어갈 수 있었으니, 전임 시장의 프로젝트를 무턱대고 엎을 수가 없는 것.

이번에 반포 한강공원에 있는 세빛섬의 2차 공사를 천웅건설에 맡긴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제대로 된 활용계획안을 세우지 못한 세빛섬은, 완공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허하게 비어 있었는데.

구윤권이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행정조치를 취하여 개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윤권은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정무를 살피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난제들은 산더미같이 많았다.

그래서 골치가 아팠다.

“시장님께서 머리가 아프실 만하군요.”

“그렇지요. 지금 시에서 추진 중인 사업들이 다들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사업들인데…….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있으니까요.”

구윤권의 이야기들을 듣던 우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속으로는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새로 부임한 그의 입장에서는 전임 시장을 욕할 만한 것들이 꽤나 많이 보였는데, 그런 이야기는 일절 없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와 대화를 오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그릇이 보인달까.

그리고 재밌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구윤권이 꺼낸 이야기들이 미래에는 대부분 잘 해결된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우진이 회귀하기 전,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미래에서 구윤권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훌륭히 이 문제들을 해결했었다.

‘아니, 다른 건축가나 전문가에게서 해답을 얻었을지도.’

하지만 그런 미래가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자리는 우진에게 있어 더없이 완벽한 기회였다.

지금 구윤권이 고민 중인 문제들은 우진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고.

이것들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미래에 가장 훌륭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을지까지도, 우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구윤권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 문제점들을 해결했다면, 우진에게는 그러한 시행착오마저도 최소화시켜 줄 수 있는 미래지식이 있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론적인 정보든, 기술적인 부분이든 말이다.

그래서 우진은 가만히 구윤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자신에게 어떤 부분에 대한 의견을 먼저 구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하나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우진의 그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슬슬 식사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구윤권이 드디어 본론을 꺼내 들었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던 중 <한강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일 때.

구윤권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지만, 사실 이 ‘한강 르네상스’만큼은 제가 꼭 완성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매력적인 사업이지요. 한강이야말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랜드마크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계 수많은 도시에도 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강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강은 찾기 힘들지요.”

잠시 뜸을 들인 구윤권이 다시 말을 이었고…….

“그래서 말입니다, 서 대표님.”

“말씀하세요, 시장님.”

그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우진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 시장님께서 추진하시던 사업들 중,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을 먼저 한번 가속해볼까 하는데…….”

“네……?”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쭤보고 싶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구윤권의 말이 끝난 순간, 우진은 순간적으로 벙찐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임 시장이 추진했던 사업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머릿속으로 예상했던 프로젝트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 구윤권의 입에서 나온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잠시 당황했던 우진이,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킨 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 * *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이란, 말 그대로 한강 변의 북측 대로인 강변북로 일부를 지하로 매립시키는 사업이었다.

기존의 지상에 있는 도로를 지하로 통하게 만듦으로써, 정체 구간을 더 원활하게 만드는 도로정비 사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도로 지하화 사업이라는 것은, 교통 정비 효과만을 위한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단순히 교통상황을 조금 나아지게 하겠다고 멀쩡한 대로를 지하로 매립하는 것은, 공사비 대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대로를 지하화하는 것에는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한강 변의 경관을 훨씬 아름답게 가꿀 수 있고.

둘째. 도로를 지하화함으로서 확보된 공간을, 한강 생태공원으로 만들어 자연을 되살릴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로변 주거지역의 주거환경을 급격히 개선 시킬 수 있다.

대로의 소음과 분진 때문에 고통받는 한강 변 주민들의 주거의 질을, 크게 개선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순조롭게 진행되기만 한다면,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그만한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는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

그렇다면 우진은 구윤권 시장이 진행했던 수많은 사업들 중, 이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실 한 가지였다.

이 사업은 우진의 기억에, 아직 추진되려면 한참은 멀었던 사업이었으니 말이다.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은, 구윤권 시장이 임기가 다 끝날 때쯤에야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던 사업이었다.

심지어 이번 임기도 아니고, 재선에 성공한 뒤 두 번째 임기의 마지막에서 진행했던 사업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대화 주제의 후보군에서 처음부터 이것을 빼 두었던 우진이 당황한 것은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강변북로 지하화라……. 진짜 생각도 못 했네.’

하지만 놀람이 가시고 나자, 우진의 머리는 다시 팽팽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점에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이유.

그것부터 먼저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전생에서도 구윤권 시장은, 이 강변북로 지하화 사업을 임기 초부터 밀어보려고 했을 수도 있어. 다만 어떤 상황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수도 있고…….’

사업의 우선순위가 밀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업성에 대한 문제 때문일 것이다.

국가기관이라 해서 돈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서울시장 또한 예산에 맞춰서 일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아무리 취지가 좋은 사업이라 해도, 사업성에 따라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진이 처음 구윤권을 향해 물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일단……. 생각해두신 구간이 어딘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강변북로는 길이만 거의 30km에 달하는 대로이다.

때문에 지하화 사업을 한다고 해서 이 모든 구간을 전부 다 지하로 밀어 넣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구윤권도 이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을 예상했고,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예타(예비타당성조사*[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해 우선순위와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하도록 하는 제도])가 나와봐야 하긴 하겠지만, 일단 생각 중인 구간이 한곳 있기는 합니다.”

“혹시 그곳이……. 이촌지구는 아닙니까?”

우진의 반문에, 구윤권 시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대화하는 동안에도 우진의 식견에 여러 번 놀랐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기가 막힐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우진이 읽어버린 느낌이었으니.

구윤권의 입장에서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던 것.

하지만 구윤권이 놀라든 말든, 우진은 담담히 다시 말을 이었다.

“원효대교에서 한강대교 사이. 이촌한강공원과 맞닿아 있는 구간……. 저라도 여길 가장 먼저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이지요.”

마른침을 집어삼킨 구윤권이, 우진을 향해 다시 물었다.

“서 대표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시장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본 겁니다.”

“제 입장이라니요?”

“최근에 반포 한강공원이 정비되면서, 그 인근 상권이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세빛섬을 새로 정비하시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겠고요.”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구윤권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반포 한강공원만큼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바로 이촌한강공원입니다. 매년 불꽃 축제가 열릴 때면, 돗자리 깔고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이지요.”

이제는 우진의 다음 말을 예상하고 있는 구윤권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만약 강변북로 지하화의 스타트를 끊는다면, 여기만큼 성과 내기 좋은 곳도 없을 겁니다. 이촌동 자체도 반포만큼이나 부촌인 데다 원래부터 정비되어 있는 곳이니……. 지하화 사업으로 인해 공원이 더 넓고 좋아진다면 그 시너지가 상당할 테죠.”

구윤권 뿐 아니라 황종호와 박경완까지도, 우진의 말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우진의 이야기가 한 차례 일단락되자,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레 구윤권에게로 향했다.

둘은 구윤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다 보니, 우진의 말이 맞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구윤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 대표님께서 제 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줄 알았습니다.”

우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시장님도 역시 저와 생각이 비슷하셨군요.”

윤권이 다시 한번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거의 그대로가 맞아요. 지금 예타 들어가 있는 사업장도, 바로 이촌지구이고요.”

구윤권의 두 눈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진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걸 확인했으니, 뭔가 업계 실무자이자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어떤 조언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윤권은, 잠시 멈칫해야만 했다.

당연히 이 이촌지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줄 알았던 우진의 말이, 갑자기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틀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지하화 사업을 이촌지구로 첫 스타트를 끊는 건……. 어쩌면 좋지 않을 선택이 될지도 모릅니다.”

“예? 그게 갑자기 무슨……?”

당황한 구윤권을 향해, 우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

“괜찮으시다면, 제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렵니까?”

우진은 목이 타는지, 탁자 위에 놓여있던 냉수를 벌컥 벌컥 들이마셨다.

탁-

이어서 그것을 다시 내려놓은 우진이, 다시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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