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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52화 (152/315)

152화

정보를 돈으로 만드는 방법

우진을 만난 홍식은, 꽤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첫 만남이야 조금 얼굴 붉히며 시작됐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진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은 홍식.

때문에 그가 오랜만에 조합사무실에 찾아온 우진을 반갑게 맞은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합장님. 신수가 훤해지셨네요.”

“허허. 서 대표는 여전하십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형식적으로 몇 마디 주고받은 두 사람은, 곧 사업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처음 대화는, 최근까지 있었던 조합의 일들을 홍식으로부터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단 관리처분 인가는 곧 떨어질 예정입니다.”

“호오, 진짜 빠르시군요.”

“미리미리 해 둔 준비가, 이제 빛을 발하는 게지요.”

“예정이라는 건, 서울시에서 확답이 내려왔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담당관이랑 통화는 이미 끝냈고, 고시 뜨기를 기다리는 중이지요.”

홍식은 서류준비부터 시작해서 서울시와 지금까지 오갔던 커뮤니케이션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그 내용들을 흥미롭게 듣던 우진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이 아저씨가, 원래 일을 이렇게까지 잘했나?’

전생의 모든 기억을 통틀어 봐도, 이렇게 깔끔하게 조합 일을 처리하는 조합장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일이 한번 잘 풀리기 시작하자 흐름을 탄 것인지는 몰라도.

만약 이번 주 내로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진다면, 우진의 예상보다도 훨씬 진행속도가 빨라지는 것.

‘나중에 재개발이나 재건축 하나 들어가게 되면, 이 아저씨 꼬셔서 영입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재건축 사업장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그리고 재건축 사업은, 조합장의 능력 여하에 따라 진행속도와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때문에 능력이 검증된 뛰어난 조합장을 영입할 수 있다면,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곧 이득으로 돌아오는 것.

그의 이야기를 듣던 우진은, 청담 선영의 개발이 끝난 뒤 그와 함께 일해 볼 것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앞으로 이삼 년 정도가 지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폭등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때 우진은 본격적으로 투자에 뛰어들 생각이었으니까.

‘청담 선영 완공 시점이랑 얼추 시기도 맞물려 떨어지고 말이지.’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결국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늘 우진은, 이곳에 그저 안부 차온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홍식의 자부심 넘치는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들은 뒤, 우진은 조금씩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조합장님.”

“말씀하시지요.”

“이제 그 소송 건은, 어떻게 진행될 예정입니까?”

홍식이 짐짓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어떻게 진행되다니요. 사실 소송을 거는 것은 저쪽일 테니, 저쪽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

우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송이 들어올 시점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흠, 그게 무슨……?”

“비대위에서 아직까지 소송을 걸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린 이유. 거기에 해답이 있지 않습니까?”

곽홍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호. 서 대표께서는 그 답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관리처분 고시가 난 뒤, 대략 한주 정도가 지났을 시점.”

“그때 소송이 들어올 거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 사이 우진은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말을 쉬지 않고 하다 보니 목이 말랐던 것이다.

그리고 우진이 찻잔을 다시 내려놓자, 곽홍식이 다시 질문하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에 우진은 대답 대신 다시 반문하였다.

“비대위 측 인물들 중, 아직까지 청담 선영 아파트에 지분이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지요?”

“……!”

“이번 소송 건을 위해 함정을 판 조합 대의원들을 포함해서,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그들이 아파트를 팔고 나올 매도 타이밍을, 한 번 가져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

“관처가 떨어지면 일시적으로 가격이 튀어 오를 테고, 그즈음이 저들의 매도 타이밍이겠지요.”

우진은 정확히 핵심을 짚었고, 홍식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비대위들이 가지고 있는 아파트 지분을, 최고가에 팔아치우려 할 것이라는 말이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직까지 소송을 걸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지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진의 얘기를 듣던 홍식은, 결국 그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재건축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어지간히 높지 않고서는, 이런 흐름을 결코 잡아낼 수 없으니 말이다.

‘역시 대단한 인물이야. 조합 내부사정을 여기까지 들여다보다니.’

사실 우진도 처음부터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다각도로 비대위의 입장에서 고민을 해 보며,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그들의 행동 동기까지도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우진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조합장님.”

“예?”

“사실 조합장님이 일부러 소문을 내신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아닙니까?”

우진의 물음에, 홍식의 말문이 순간적으로 막혀버렸다.

지금까지가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이 흥미로움과 감탄이었다면, 이번에 떠오른 감정은 경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오?”

우진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비대위 놈들이, 고가에 아파트를 팔고 빠져나가는 걸 보기 싫으셨겠지요.”

“……!”

“소송을 걸기 전에 최고시세가 형성되는 것을, 일부러 막으신 것 아닙니까.”

“허허…….”

“물론 최대한 완벽하게 비대위를 옭아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저는 이쪽에 비중이 더 실려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보통 재건축 아파트의 값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점은, 재건축의 각 단계가 한 계단씩 넘어가는 시점이다.

처음 재건축의 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 기대감으로 인해 시세가 살짝 오르고.

그다음은 조합이 설립되면 또 한 번 시세가 오르고.

여기에 사업 시행인가, 시공사 선정. 마지막으로 관리처분인가까지.

이 단계들이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하나씩 제거되는 셈이니, 이때마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관리처분이 난 시점이 청담 선영의 시세가 오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고.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하면 비대위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이 시점에 매도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도 예상 가능한 범위였다.

우진은 여기서 한 번 더 나아가, 조합장의 속내까지 간파해 내었지만 말이다.

“이런. 서 대표님께서는 그동안, 제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계셨나 봅니다. 허허헛.”

너무 당황한 나머지 헛웃음을 짓는 홍식을 보며, 우진은 마주 웃었다.

자신의 추론이 맞았음이 확인되니 꽤나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저 같아도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정말 잘하셨습니다. 그런 악질적인 놈들 손에 한 푼이라도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지요.”

반대로 우진의 칭찬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홍식은 묘한 기분이었다.

조합의 대의원들조차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설계를 외부인인 우진이 정황만으로 파악한 것이었으니.

순간적으로 정말 소름 돋게 놀란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이번에는 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왕 이렇게 칼을 뽑아 드신 거, 더 강하게 나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우진의 물음에, 주름진 홍식의 눈이 다시 크게 뜨여졌다.

“더 강하게 라면, 어떻게 말씀이신지요?”

그런 그를 향해, 이제 우진은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오전에 시세를 좀 파악해 봤는데, 아직까지 전혀 미동조차 없더군요.”

“저희 아파트 시세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예 조합의 대의원들까지 아파트를 팔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을, 슬쩍 흘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

“조합 관계자들이 자신의 물건을 빠르게 처분하려고 한다. 이것만큼 확실한 시그널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진의 제안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소송에 대해 이미 눈치챈 조합 임원들이, 여기서 승소할 자신이 없어 미리 물건을 팔고 빠지려고 한다는 소문을 낸다.

그 소문 때문에 매수 대기자들은 전부 관망으로 돌아서고, 극도로 불안해진 선영아파트의 일반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내놓기 시작한다.

매물은 쌓이고 매수자는 없으니, 가격은 순식간에 떨어져 내린다.

이 상황에서 비대위원들은, 결국 관리처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물건들을 팔아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진의 이 이야기를 전부 다 들은 홍식은, 이번엔 조금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지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잠시 뜸을 들인 홍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첫째로, 그 정도까지 심각한 소문이 퍼져버리면……. 낮아진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기보단, 거래가 잠겨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비대위원들이 물건을 내어놓아도, 그게 안 팔릴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 정도로 강력한 악재가 터져버렸을 땐, 매수 대기자들도 한동안 관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칫하면 사업이 엎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격이 좀 떨어졌다고 누가 십억이 넘는 물건을 사고 싶겠습니까?”

우진은 입에서 반사적으로 ‘사고 싶은 사람 여기 있는데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홍식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둘째로, 이로 인해 평범한 다른 조합원들이 피해 볼까 우려됩니다.”

이번에는 우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는 조합장 홍식이 이렇게까지 정의로운 사람인 줄 몰랐으니 말이다.

‘분명 작지만, 로비도 받아먹고 그랬던 사람인데…….’

우진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홍식은 정의롭다기보다 어떤 자신만의 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작게 로비를 받는 것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 생각해서 크게 거리끼지 않았지만.

비대위원들이 아닌 다른 조합원들이 자신의 설계로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악재로 인해 시세가 순간적으로 폭락했을 때, 분명 눈여겨보다가 매수하려는 사람이 한두 명쯤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들이 만약 비대위원의 물건을 산다면 다행이겠지만, 평범한 조합원의 물건을 산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 될 겁니다.”

“조합장님이 설계한 덫에 평범한 조합원이 손해를 보게 되고……. 비대위원들은 오히려 팔지 못해서 다시 가격이 반등할 때까지 강제로 기다리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홍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우진이 감탄했다.

물론 이 또한 우진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홍식이 이렇게까지 생각이 깊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이 아저씨……. 진짜 다시 봐야겠는데?’

하지만 우진은 이 제안을 접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기에 대한, 확실한 솔루션까지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진은 말했다.

“만약 그 문제들을, 확실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요?”

우진의 물음에, 홍식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런 방법이 정말로 있습니까?”

우진이 웃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와서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 의미심장한 웃음을 본 홍식은, 저도 모르게 다시 소름이 돋았다.

또, 그와 동시에.

우진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너무도 궁금하였다.

“경청하겠습니다.”

“하하.”

“알려주시는 겁니까?”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그 얘기를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우진의 입이, 다시 천천히 열렸다.

“조합장님께서 파악된 비대위원들의 명단을 제게 넘겨주시면……. 아마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

이해하지 못한 홍식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우진이 한 마디 덧붙였다.

“제가 그 사람들 물건만, 골라서 살 생각이거든요.”

“……!”

우진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극도의 공포로 인해 형성된 최저점의 시세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어다가 매수해줄 용감한 투자자.”

우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 역할을……. 제가 한번 맡아볼까 합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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