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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51화 (151/315)

151화

정보를 돈으로 만드는 방법

세 사람은 마음 편히 먹고 마시며 떠들었다.

술집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게 꿀꿀했던 분위기는, 일단 술자리가 시작되고 나니 싹 다 사라진 것이다.

물론 조합장의 전화를 받은 우진이 재엽에게 문제없다며 확답을 준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어쨌든 세 사람은 평소처럼 신나게 웃고 떠들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오랜만에 취기가 오를 정도로 마신 우진은, 열두 시가 다 되어 갈쯤이 돼서야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뒤에는, 그대로 아침까지 푹 잠에 들었고 말이다.

하여 그렇게 숙면한 뒤, 개운하게 눈을 뜬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른 우진은,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확히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아, 예. 사장님. 청담 선영 매물 알아보려고 전화 드렸는데요.”

[아, 그러시군요! 전화 잘 주셨습니다. 어떤 물건 알아보고 계시죠? 대단지다 보니, 평형대가 워낙 다양해서요.]

“네. 33평형이나 29평형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50평대 이상 신청해둔 물건이면 더 좋고요.”

[오……! 29평형은 마침 어제 매물이 좀 나온 게 있는데……. 50평대 신청한 물건은 아쉽게도 없고요.]

“혹시 가격 브리핑 좀 받아볼 수 있을까요?”

[음……. 일단 물건 하나는, 시세대로 나왔고요, 다른 하나가 좀 싸게 나온 녀석이 있는데……. 34평 신청 물건입니다.]

“추가 분담금 포함해서 총 매수가가 얼마죠?”

[일단 매매가는 11억 초반 정도……. 추가분담금이 4천만 원 정도 나올 테니, 11.5~7억 사이가 되겠네요.]

“그렇군요.”

[전세가 6억 정도 껴 있어서, 초기투자금은 5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우진은 출근길에, 검색포털에서 찾을 수 있는 청담동의 부동산이란 부동산은 전부 전화를 돌렸다.

청담 선영의 시세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역시 아직까지 크게 싸게 나온 물건은 없네.’

주식 판에서는 어떤 호재나 악재에 대한 찌라시가 돌기 시작하면, 보통 그것이 시세에 거의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평범한 개미 투자자가 찌라시를 접하고 정보를 얻었을 시점이면, 해당 정보가 이미 시세에 반영되어 있을 정도로 시장의 움직임이 빠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은 주식과 정 반대였다.

주식처럼 거래 절차가 간단하지 않고 액수가 한 번에 크게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호재와 악재가 반영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렇게 급작스러운 악재가 생겼을 경우, 첫 한 주 정도는 매수 대기자와 매도자 사이의 눈치싸움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오늘 우진이 전화를 돌린 것은, 당장의 시세 변동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네, 사장님. 매수 의향은 있는데……. 급매가 나올 때까지 조금만 더 지켜보겠습니다.”

[하하, 그러도록 하십시오, 대표님.]

다만 부동산들로부터 지속적인 연락들 받음으로써, 앞으로의 시세 동향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괜찮은 물건 나오면, 꼭 좀 브리핑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매수 대기자로서 여러 곳의 부동산에 번호를 뿌려 놓으면, 부동산에서 물건이 나올 때마다 알아서 문자를 넣어 주니.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시세 파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좋아, 그럼 밑밥은 뿌려 놨으니……. 조합에 한 번 찾아가 볼까?”

사무실에 도착한 우진은, 이번에는 조합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바로 조합에 찾아갈 생각이었기에, 약속을 잡은 것이다.

“네, 조합장님. 그럼 오늘 저녁 식사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합시다. 설계변경 건 때문에 여쭙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한번 뵙고 싶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제가, 4시까지 조합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저녁이라기엔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식사 전에, 몇 가지 여쭙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말이지요.”

[흠, 그럼 넉넉히 네 시 반까지 오시지요. 오후에 약속이 하나 있는데, 4시까지는 끝나지 않을지도 몰라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합장과의 전화를 끊은 우진은, 이번에는 컴퓨터를 켜서 엑셀 파일을 열었다.

청담써밋의 평형 별 조합원 분양가부터 시작하여 각 타입 별 감정평가 금액 등을 표로 정리하여.

어떤 물건을 어떤 가격에 샀을 때 가장 많은 차익이 남을지,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한 것이다.

‘단기간에 크게 먹을 수 있는 기회야.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

딸깍- 딸깍-

우진은 마치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 연신 마우스를 클릭하였다.

하여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정도가 더 지났을까?

우진은 메신저를 열어, 진태를 대표실로 불렀다.

“형, 우리 지금 여유자금 얼마나 확보 가능하지?”

“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단기적으로 투자할 만한 투자처가 생겨서.”

“경영지원실에 확인해 봐야 되긴 하는데……. 이번에 패러마운트 쪽에서 계약금 입금됐으니, 한 20억 정도는 확보 가능할걸?”

“순수 잔고만 얘기한 거지?”

“그렇지. 운영자금 삼사억 정돈 빼고 얘기한 거고.”

“오케이, 알겠어. 경영지원실 가서 정확한 데이터 좀 뽑아서 메신저로 보내줘.”

“알겠어. 그럴게.”

오랜만에 분주히 움직이는 우진의 모습 때문인지, 진태 또한 덩달아 행동이 빨라졌다.

우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다닥 경영지원실로 가서 재무 데이터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분주한 것은, 우진의 머릿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딱 두 달짜리 투자야. 빨리 준비해야 해.’

점심 식사도 거르며 회사 업무를 빠르게 정리한 우진은, 세 시 반쯤 다시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당연히 청담 선영의 조합 사무실.

부르릉-

시동을 거는 우진의 표정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 * *

청담 선영의 비대위원장 권순현은,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선영아파트의 조합원이었다.

심지어 40평대 아파트 한 채에 180평 규모의 커다란 상가지분까지 갖고 있던 대지분의 소유자였던 것.

그랬던 그가 개발을 반대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상가조합과 아파트 조합원들 사이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부터였다.

원래 선영아파트 재건축 계획에는 상가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상가 조합원들이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생길 영업 손해에 대해 비용을 청구하자 아파트 조합에서 갈라 서버린 것이다.

물론 아파트 조합에서 처음부터 상가 조합원들의 요구를 거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상가까지 포함되어 더 큰 규모로 재건축되는 게 좋은 방향이었으니, 처음에는 최대한 다독여 함께 가려고 했었으니까.

“공사기간동안 발생했을 매출의 80퍼센트를 모든 상가 조합원에게 보전해 주셔야 합니다.”

“허…….”

“상가 비례율도 너무 낮게 잡혔습니다. 최소 20퍼센트는 높게 산정해 주셔야 하고요.”

“논의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 수치들은 너무 높습니다. 조정이 좀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가 조합원들도, 아파트를 똑같이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그건 안 됩니다! 가뜩이나 일반분양분도 부족한데…….”

하지만 상가 조합원들은 전혀 양보하지 않았고, 덕분에 갈등의 골은 갈수록 더 깊어졌다.

“이건……. 아파트 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너무 큰 역차별입니다.”

“상가 조합원들은 생계가 달린 문제입니다. 역차별이라니요!”

“2년간 주거를 강제로 옮겨야 하는 아파트 조합원들은 손해가 없겠습니까?”

“대신 시세차익을 보지 않습니까!”

“아파트만 새 건물로 짓습니까? 상가도 전부 다 신축되어 가치가 올라갈 겁니다.”

“아무튼! 이 조건들을 전부 수용해주시지 않는다면, 상가 조합원들은 개발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아…….”

그래서 결국 선영아파트 조합에서 선택한 것은, 아예 상가를 분리시키고 아파트만 재건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사업 방향성을 선회하는 것.

상가 조합원들을 끌고 가기 위해 조합 차원에서 큰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단지 규모가 조금 작아지더라도 빠르게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습니다.”

“뭐요?”

“사업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수립하겠습니다. 그렇게 개발을 반대하시니, 상가는 재건축에서 완전히 빼 드리도록 하지요.”

“그게 무슨……!”

덕분에 상가 조합원들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것.

사실상 상가 조합원들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면 얼마나 좋아!”

“이기적인 아파트 조합원 놈들! 이대로 사업이 진행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노한 상가 조합원들이 세입자들과 똘똘 뭉쳐 비대위를 결성하게 된 계기였고 말이다.

상가 대지주였던 권순현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는 당시 아파트 지분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마저 팔아버리고 비대위원장으로 나섰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그가 팔아버린 청담 선영의 가격이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30퍼센트 이상 상승했으니.

권순현의 입장에서는 더욱 배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 야비한 놈들.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권순현은 몇몇 비대위원들과 함께, 사업을 엎어버릴 계획을 일 년 동안 치밀하게 구상했다.

그리고 지금 조합원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그 소문이 바로, 이 설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위원장님.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지 않습니까?”

권순현의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소송 건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권순현의 상가에 모인 비대위원들은,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합에선 지금 똥줄이 타고 있을 겁니다.”

“당연하지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마 소송이 걸리면 합의 비용부터 조율하려고 할 텐데…….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절대 합의해 줄 수 없습니다.”

“인당 최소 이십억 이상은 받아내야 합니다. 그 이하로 몇 푼 받고 발 빼느니, 사업을 아예 엎어버리는 게 낫죠.”

“옳습니다!”

흥분한 비대위원들과 함께 소송 일정에 대해 논의하며, 권순현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후후,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지. 소송이 시작되고 나서, 곽홍식 그 늙은이의 면상을 한 번 봐야 하는데…….’

그가 절치부심하며 기다려왔던 그 날이 정말 목전으로 다가왔으며.

이제 그들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든 아파트 조합원들에게 한 방 크게 먹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생각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아파트에 지분 가지신 분들은, 이제 슬슬 파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소송결과가 나오고 나면, 값이 엄청 떨어질 테니까요.”

비대위원들은 신이 나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공유하였다.

이 소송의 결과가 그들만이 알고 있는 미래라고 생각하니,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다들 마지막까지 파이팅 하십시다.”

“고생하십니다, 위원장님.”

“소장은 그럼 언제 날아가는 거지요?”

“다음 주가 지나기 전엔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이달 말엔 법정에서 뵐 수 있겠군요.”

권순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날 아마 우리 조합장님도 봴 수 있을 겁니다.”

“흐흐, 우리 잘나신 곽 선생님 표정이 궁금합니다, 그려.”

합의금으로 받아낼 거액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저마다 기분 좋게 웃는 비대위원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알 수 없는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지금 그들이 웃고 떠들고 있는 바로 이 상가 호실 앞에,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둘째로는 그 남자가 그들의 이러한 계획을 이미 오래전부터 다 알고 있었고, 그 계획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조합 사무실을 찾아왔다는 사실.

마지막으로는 그로 인해 이 모든 계획이 산산 조각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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