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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53화 (153/315)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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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떠한 변수도 남지 않아, 사실상 결과가 정해진 확실한 투자.

심지어 2~3개월 안으로 투자금과 수익금을 전부 다 회수할 수 있는, 시간 대비 최고의 성과가 보장된 투자.

우진의 입장에서 지금 시점의 선영아파트는, 바로 그런 확실한 투자처였다.

‘미래를 알고 있다 해도, 이 정도 기회는 다시 오기 쉽지 않지.’

그리고 이렇게 완벽한 기회를 어쭙잖게 날려 먹을 우진이 아니었다.

단순한 시세차익을 보는 것을 넘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

그것이 우진의 목표였고, 그를 위한 준비는 이미 모두 끝났다.

곽홍식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서 대표.”

“예, 조합장님.”

“시드가 대체 얼마가 있길래,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홍식의 입장에서는 의아할 만했다.

아무리 회사의 대표라고 해도 우진의 나이는 20대에 불과했고.

그런 그에게 수십억 이상의 현금이 있다고는 믿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우진에게 십억 가까운 시드 머니가 있다고 치자.

그 정도 금액이면, 전세를 끼고 산다는 전제하에 작은 평수 두 채 정도를 매수할 수 있다.

하여 그 두 채를 모두 비대위의 물건으로 매수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우진에게야 큰 이득으로 돌아오겠지만, 조합장의 입장에서는 큰 의미 없는 일이었다.

현재 선영아파트의 조합원들 중, 비대위 혹은 그 관련 인사로 파악되는 인원만 총 열 명 정도.

그들 중에 두 채를 가진 사람도 몇 있었으니, 최소한으로 잡아도 비대위의 물건만 열두 채는 된다.

그 물건들 중 고작 두 개를 매수하여 부당이익을 막겠다고 해도 대세에 영향을 주기는 힘든 것이다.

“한두 채 매수할 생각으로는, 어림도 없는 계획인 건 아시지 않습니까?”

홍식의 물음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합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요.”

우진의 망설임 없는 답에, 홍식의 동공이 더욱 커졌다.

“그렇다는 말씀은……!”

“파악된 물건이 혹시 몇 개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진이 말하는 파악된 물건이란, 비대위 측이 소유하고 있는 선영아파트를 말하는 것.

잠시 기억을 더듬은 홍식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한 건 열두 채. 그 외에 몇 채 정도는 더 있을 수도 있겠지요.”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수준이군요.”

“허허…….”

“그 물건 전부를 매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확답 드리면, 한번 추진해보실 생각 있겠습니까?”

현재 선영아파트 한 채를 매수하는데 들어갈 평균비용은, 대략 5~7억 정도이다.

전세를 끼고 매수하거나 담보대출을 70%까지 풀로 받아 매수하거나.

그렇게 투자비용을 최소화시켰을 때의 수치가 저 정도인 것이다.

그렇게 12채를 매수한다?

최소 6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필요한 일이었다.

우진의 말이 끝난 뒤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응시하던 홍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서 대표님, 물려받으신 돈이 많으십니까?”

우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한데 대체 어떻게…….”

홍식은 은행장 출신의 금융권 인사였기 때문에, 돈에 대한 감각이 아주 정확하다.

그래서 현금으로 수십억 이상 동원 가능하게 하려면, 회사의 규모가 얼마나 커야 하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연 매출이 60억 넘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지만, 60억을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회사는 별로 없다.

홍식의 눈에 비친 WJ 스튜디오는, 아주 후하게 쳐줘야 20억 이상 동원하기 힘든 규모의 회사였다.

이렇게 갑작스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우진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혼자 그 거액을 전부 감당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

“저는 재벌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돈 있는 지인들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우진의 대답에, 홍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우진이 <우리 집에 왜 왔니>에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다.

유명 연예인들 몇몇이 한 손씩 거들어준다면, 확실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이제야 납득한 홍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 확실히 가능한 전략이겠군요.”

“그렇지요.”

물론 돈 많은 지인들을 가진 것과 그들을 설득하여 선영아파트를 사게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우진이 혼자 다 매수한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성 있어 보이는 방법이었고.

그간 우진이 보여준 성과들을 생각하면, 그가 허언을 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진이 충분한 자금력을 동원해올 수 있다면, 홍식에게도 한 숟갈 얹을 기회가 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서 대표님. 그럼 말씀하신 대로……. 기왕 뽑아 든 칼을 더 과감하게 휘둘러보도록 하지요.”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우진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홍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이 상황을 이렇게까지 알뜰하게 써먹을 생각을 하시다니……. 제가 한 수 배웠습니다.”

“하하.”

“직접 동원하실 자금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적잖이 수익을 올리시겠군요.”

홍식의 주름진 검지손가락이, 탁자를 빠르게 두들긴다.

그리고 우진은, 지금 홍식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저만 벌겠습니까?”

“예?”

“조합장님께서도, 한두 채 정도는 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

“조합장님 명의로 샀다가는 저들이 눈치챌 테니 그러실 수는 없을 거고……. 자녀분이나 친척분들 명의로 매수할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우진의 반문에, 홍식은 또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그대로 읽힌 탓에, 마치 벌거벗겨진 듯한 느낌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만약 누군가 홍식에게, 우진이 사실 한국의 동방삭*[늙지 않고 수천 년을 살았다는 설화 속 인물.]이라 했다면.

지금은 아마 믿었을 것만 같았다.

‘스물셋……? 내 아들놈보다 어리다고 이놈이? 말도 안 되지.’

홍식은 우진이 조합을 돕는 우군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놈이 비대위 쪽에 붙어 조합을 갉아먹었다면, 지금쯤 공중분해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서 대표님께서는 마치, 제 속에 들어갔다 나오신 것 같군요.”

“후후,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홍식의 속마음과는 별개로, 훈훈하게 마무리된 오늘의 미팅.

대략 이야기가 끝난 듯하자, 우진이 다시 홍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식사나 하러 가시죠, 조합장님. 너무 떠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많이 고픕니다.”

홍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럽시다. 오늘 식사는 내가 사도록 하지요.”

우진이 빙긋 웃었다.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 * *

홍식과 우진은 식사하면서, 몇 가지 계획을 더 구체화 시켰다.

일단 첫 번째 계획은, 함정을 더 깊게 파는 것.

[그럼……. 1심까지는 패소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때까지 녹취파일의 존재를 숨기시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2심까지 숨기는 건 좀 위험할 것 같고……. 1심까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패소했다는 뉴스가 뜨면, 임펙트는 상당하겠군요.]

그리고 두 번째 계획은, 조합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들이었다.

[소문을 퍼뜨림과 동시에, 조합 차원에서 공문을 돌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문이요?]

[지금 이러이러한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그것은 비대위 쪽 사람들이 분란을 조장하기 위해 퍼뜨린 것이며 결코 사실이 아니다. 헛된 소문이니 절대로 믿지 마시라.]

[흠.]

[조합장님께서 지금까지 쌓아오신 신뢰가 있으니, 조합원들은 그 이야기를 대부분 믿어줄 겁니다.]

[일리 있군요.]

[최대한 한 명 한 명 연락을 돌리셔서, 진정성 있게 얘기해주시면 더 좋습니다.]

[저희가 역으로 함정을 팠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본래,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법이다.

같은 공문을 받았다고 해도, 평범한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조합장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재건축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을 앞둔 상태에서, 소송패소라는 날벼락 같은 상황은.

부정하고 싶을 것이 당연하니까.

하지만 반대로 비대위 측 인사의 입장에서는, 조합장의 공문이 거짓말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파 놓은 함정이 성공할 것임을 이미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조합장의 공문을 받는다면, 아마 시간을 벌기 위해 쇼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니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람의 심리였고,

우진의 제안은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우진은 정말 치밀하게 계획을 설계하였다.

[만약 조합장님께서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믿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의 물건을 조합장님께서 사겠다고 하시죠.]

[오호…….]

[계약금만 걸어뒀다가 승소 후에 파기해 주셔도 되고. 믿어주지 않는 조합원이 괘씸하시면 배액 배상*[매도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때, 받은 계약금을 두 배로 돌려줘야 하는 법적 의무.]을 받으시면 됩니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군요. 허허.]

[이렇게 하면 아마 일반 조합원의 피해는 99퍼센트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그렇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대위원들의 물건을 살 때는, 배액 배상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계약금도 크게 걸고 잔금 날짜도 빠르게 잡아야겠군요.]

[아, 그러네요. 계약금이 삼사천 정도밖에 되지 않으면, 배상해버리고 계약을 파기하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거래가 수십, 수백 건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모든 거래 사실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악재가 겹친 단지의 거래물량은 보통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우진은 이 방식의 대처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안전장치라 생각했다.

[오늘 서 대표님, 정말 다시 봤습니다 그려.]

[별말씀을요.]

[오늘 이야기한 모든 조치가 끝나면, 다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끝까지 홍식을 감탄하게 만든 우진은, 기분 좋게 귀가할 수 있었다.

머리를 싸매며 계획을 짜고 공부한 만큼.

이번 일은 아주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진짜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준비했어.’

그런데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얘기하는 와중에, 사실 우진은 홍식에게 한 가지 숨긴 것도 있었다.

비대위의 물건을 매수함에 있어서 대부분 외부의 자금력을 빌릴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 우진이 동원하려는 자금력은 무려 30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회사에 보유 중인 현금에 기보*[기술보증기금]에서 끌어당길 수 있는 대출. 거기에 개인적으로 모아둔 돈까지 합하면…….’

이 모든 돈을 ‘올인’ 하여,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자처가 확실한 것과 별개로 투자 기간이 반년 이상이었다면, 절대로 이만한 금액을 동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장 WJ 스튜디오가 굴러가기 위해서라도, 자금 유동성을 남겨놔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 투자는, 조합이 비대위와의 소송에서 승소하는 순간 곧바로 엑싯(Exit)이 가능한 투자이다.

그때까지 길게 잡아도 3개월은 넘지 않을 것이었으니, 리스크는 크지 않았다.

‘30억으로 몇 채나 살 수 있을까? 저점에서 잘 잡으면……. 거의 열 채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매매가 10억에 전세가 5억인 아파트는, 초기 투자금액이 5억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가격이 20% 빠져서 8억에 거래된다면, 초기 투자금액은 3억으로 줄어든다.

아파트 가격은 20%가 빠졌지만, 투자비용은 40%가 빠지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우진은 여기까지 생각했고, 그래서 30억대로 맥시멈 10채까지도 매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조합장이 오늘 얘기 나눈 대로 확실하게 움직여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가격대다.

그가 말했던 대로 일부러 1심에서 패소하는 그림까지 그려준다면.

물건을 팔지 못한 비대위 인사들은 조급함이 극에 달할 테니까.

아마 11~12억인 가격이 9억 밑으로 내려가는 정도는,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었다.

‘관리처분인가에 소송 승소에……. 역으로 호재가 겹칠 테니 목표가는 13억 정도로 잡고……. 그러면 수익률은 못해도 150% 이상 나오겠군.’

30억 정도를 두 달 정도 묻어두면, 그것이 80억 정도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그 정도였다.

‘좋아. 생각도 못 했던 기회 덕에, 꽤 큰돈이 확보되겠네.’

홍식과의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 하는 길.

차 안에서 행복 회로를 돌리던 우진은, 저도 모르게 실실 웃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이번 기회 덕에, 우진이 꿈꾸던 것들 중 하나를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잘하면 올 연말에는, WJ 스튜디오의 사옥을 지어볼 수도 있겠어.’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사옥을,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지어 올리는 일.

건축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그 날이, 아무래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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