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천사, 마드리드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그는 제 앞에서 두 날개를 펄럭이고 있는 아더의 모습에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머리를 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났지?’
아무리 천사의 피가 뛰어나다 한들 불사의 능력까지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자신이 인간들에게 육체적 죽임을 당했을 리가 없을 테니.
그런데 아더 바이에른은 제 머리를 자신에게 먹혔음에도 살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닌 천년 만에 찾은 제 날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순백색의 날개를 펄럭이며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드리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자연스러운 질문이 던져졌다.
“아들.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마드리드가 제 목소리에 흥미를 듬뿍 담았다.
“분명 머리를 먹었는데 살아있는 것도 모자라 날개가 더 커지다니? 설마 나에게 환각이라도 건 것이냐?”
이 말에 침묵하던 아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적.”
“…?”
“일어날 수 없는 현상,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이 정도면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까요?”
설명을 끝마친 아더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마드리드가 눈을 끔뻑였다.
기적?
그러니깐 지금 머리를 잃었음에도 제 앞에 선 자신의 상태가 기적이라 말하는 건가?
잠시 고민한 마드리드가 한 박자 늦은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천사 앞에서 기적을 논하는 게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죄송하지만 저도 천사인데요?”
“너도 천사라고?”
“네. 지금 이 날개 안 보이세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보란 듯이 등 뒤에 솟아난 날개를 펄럭였다.
화악-!
한 번 거칠게 떨린 날개에서 순백색의 깃털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 광경에 마드리드의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점차 옅어졌다.
“….”
아더 바이에른이 바이에른의 혈통을 개화함으로써 날개를 얻은 것은 이미 일찍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더의 등 뒤에 달린 날개는 그가 보았던 날개와는 뭔가 달랐다.
‘…저 날개는 내 날개와 똑같은 날개다.’
바이에른과 마드리드의 혈통이 합쳐져 만들어낸 진짜 천사의 날개.
인간과 천사를 나누는 구분선이자 천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짜 자격.
그 숭고한 흔적을 놀랍게도 인간인 아더 바이에른이 가지게 된 것이다.
그가 바이에른의 혈통을 이은 후손인 걸 감안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일.
그 탓에 헛웃음을 터트린 마드리드가 중얼거렸다.
“진짜 바이에른의 환생이라도 되는 것이냐?”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저예요. 그 누구도 절 대신 할 수 없죠.”
마드리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아더 바이에른이건 환생한 바이에른이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생각을 좀 달리해봐야겠구나.”
“무슨 생각이요?”
“함께 하지 않겠느냐?”
“?”
“처음 너와 마주쳤을 때 했던 제안과 똑같다 아들아. 나와 함께 하늘로 가자꾸나.”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마드리드가 인자한 미소를 입가에 건 채 속삭였다.
“너라면 충분히 천상에 들 자격이 있다. 천상에 들게 되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육체의 고통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영원한 불멸… 즉, 영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마드리드가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그 영생 속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자꾸나. 아버지와 아들. 언젠가 헤어져야 할 그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히 함께 하자구나.”
아더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마드리드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침묵을 마드리드가 느긋이 기다릴 때였다.
아더가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천천히 열며 대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언젠가 헤어져야 하죠. 하지만 전 그 만남이 딱히 나쁘단 생각하지 않아요.”
마드리드의 눈이 커졌다.
“딱히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고?”
“아버지와 헤어졌기 때문에 아직 있지 않은 제 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죠. 그리고 제 아들은 저와 헤어지기 때문에 손주랑 만날 기회를 얻겠죠.”
“……?”
“만남과 이별. 그게 있기에 저는 새로운 인연도 있다 믿어요. 그러니 저는 딱히 불멸의 삶을 원하지 않아요.”
아더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제게 고통만 주는 아버지와 영원히 살기 위해 언젠가 생길 제 아들과 만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깐요.”
마드리드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졌다.
“나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냐?”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고 제안 하신 거예요?”
“진정한 천사가 되었으니 날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전혀요. 천사가 되어서 더 이해가 못하겠어요.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런 미친 짓은 왜 저지르신 거에요?”
아더가 어둠에 휩싸인 수도를 가리켰다.
마드리드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원래 인간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았다. 나는 그것을 마땅히 돌려주었을 뿐이야.”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인간들이 가꾸고 발전해 나간 세상을 당신이 망친 거죠.”
“그 가꾸고 발전해 나가는 방법을 내가 가르쳐주었다.”
“가르쳐준 건 당신이지만, 그걸 이용해 세상을 바꾼 건 인간들이에요. 당신에게는 그 세상을 빼앗을 권리가 없어요.”
마드리드가 버럭 화를 냈다.
“궤변을 늘어놓지 마라! 하찮은 인간 주제에 어디 날 가르친단 말이냐!”
아더가 씩 웃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는 천사라고 대우해주더니 이제는 인간이라 취급하네요?”
“네 사상이 아직까지 인간이니 그에 마땅한 대접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러니….”
말을 흐린 마드리드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더의 신체가 움찔 떨렸다.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은 마드리드가 눈빛을 번뜩이며 선언했다.
“다시 한번 네 신체의 자유를 빼앗아 뼛속 깊이 가르쳐주마. 인간은 감히 천사를 넘볼 수 없다는 것을.”
마드리드가 조금 전에 수거한 바이에른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더의 가슴팍을 겨냥한 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신체의 자유를 잠시 빼앗겼던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신체가 휘리릭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마드리드의 두 눈이 커졌다.
‘뭐? 내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경악한 마드리드가 뒤늦게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돈 아더가 그의 가슴팍에 진실이를 휘둘러 상처를 냈다.
파앗-!
허공에서 튄 핏줄기와 함께 마드리드의 눈이 함박만 하게 커졌다.
그 속에서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레온의 피가 정답이었어요. 아버지의 마법에서 벗어나게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아더가 진실이에 묻은 마드리드의 피를 털어내며 선언했다.
“그러니 모두를 위해 당신을 죽이겠어요, 마드리드. 천 년이나 살았으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마요.”
* * *
엘린이 울음을 터트렸다.
화악-!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맑은 눈물이 찬찬하게 빛나는 보석을 적셨다.
그 모습을 고요히 지켜보던 푸른 빛 비늘의 드래곤이 속삭였다.
[울지 말거라 나의 기사야… 이것이 정해진 운명은 아니지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미래다.]
엘린이 거칠게 반박했다.
“누군가를 희생시켜 얻는 미래가 최선이라는 말입니까!”
[희생은 슬픔과 고통이다. 하지만 가능성과 성장이란 미래를 지니기도 했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기서 죽지만 너는 아닐 것이다.]
드래곤이 고개를 숙였다.
엘린은 그런 드래곤을 피해 물러섰지만 그 거리만큼 훌쩍 다가온 드래곤이었다.
결국 시선을 마주친 엘린이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새파랗게 빛나는 드래곤의 눈동자가 오한을 서리게 만들었다.
[삶을 갈구해라 나의 기사야.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고 앞을 보며 달려나가라. 너의 등 뒤에는 너를 따르는 수많은 인간과 너의 도움을 기다리는 나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엘린이 목소리 끝을 떨며 중얼거렸다.
“왜 제게… 이런 막중한 책임을 쥐여주시는 겁니까?”
[나의 기사이기 때문이다.]
“저 말고도 뛰어난 기사는… 많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있지만 나의 기사는 오로직 너 하나다. 천 년전에도 그랬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푸른 빛 비늘의 드래곤이 웃었다.
[레버쿠젠의 이름을 단 이들. 날 지켜주고 친구라 불러준 고마운 인연들. 그 이름을 이어받은 너는 이 세상 유일한 나의 기사다.]
엘린이 고개를 떨구었다.
“…살아나실 방도는 없으신 겁니까?”
[죽음을 피한다면 나는 저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나의 기사야.]
드래곤이 엘린의 머리 위에 제 턱을 조심스레 기대었다.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 그 자체나 다름 없다. 그러니 나는 너의 심장의 한켠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허나 네가 죽으면 나 또한 이 세상에서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소멸하겠지.]
엘린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허나 조금 전과는 조금은 의미가 다른 눈물이었다.
그 의미가 무엇이냐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변함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속에서 드래곤이 나직한 소원을 엘린에게 빌었다.
[살아남아서 나에게 세상을 보여주거라. 네가 바꾸어나가는 세상. 네가 중심이 되는 세상. 그 세상을 가슴 한 켠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못난 내게 허락해주길 바라마.]
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점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드래곤의 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드래곤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작게 이어져 오던 마지막 고동이 꺼졌다.
그와 동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 엘린은 제 목을 움켜쥐었다.
‘질식할 것 같아.’
이대로 목을 조른다면 저 어둠과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한 엘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어둠과 하나가 되기는커녕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죄책감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었으니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더 이상 죽음도 실패도 두렵지 않았다.
남은 것은 제게서 모든 것을 앓아간 저들에 대한 짙은 분노뿐.
엘린은 차오르는 그 광기를 거부하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내가 죽던지, 저들이 끝이 나는지.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엘린은 두 눈빛을 번뜩이며 제 손에 쥐어진 드래곤 하트를 씹어 물었다.
콰직-!
과즙처럼 터지는 피가 그녀의 입가를 적셨다.
그 순간 그녀의 심장에서 거친 고동이 일었다.
화악…
옅게 퍼져나가는 마나의 향기와 함께 엘린이 검을 치켜들었다.
콰직-!
주변을 감싼 어둠이 그 검에 따라 반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고요함이 깨지며 소란스러운 전장의 비명소리가 귓가를 훔쳤다.
엘린은 귀를 찢을 것 같은 그 소음에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라 하르칸… 이 괴물아.”
이 말과 함께 엘린의 두 눈에 귀기가 어렸다.
“너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베어주마.”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함께 엘린이 치켜든 검을 또 한번 휘둘렀다.
그 순간.
콰앙-!
대기가 갈라지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반으로 쪼개졌다.
그 기이한 광경에 전투를 하던 기사도 병사도, 심지어 악마들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푸른 마나에 휩싸인 한 전사를 발견하고서 중얼거렸다.
“저건… 가주님?”
이 말과 함께 엘린의 검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
시리도록 푸른 달빛.
그 착각 할 수 없는 유일한 색에 기사들이 경악해 소리쳤다.
“저, 저건!! 검강!”
그 외침과 함께 기사들이 전율에 떨었다.
“탄생했다… 새로운 소드마스터가.”
그것도 소드마스터를 잃고서 휘청이던 레버쿠젠 가문에.
그 사실에 기사들의 가슴이 기대감으로 벅차오를 때였다.
하늘이 갈라지며 무언가 내려왔다.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라 하르칸이었다.
[…레버쿠젠.]
라 하르칸의 나직한 읊조림에 엘린이 검을 고쳐잡으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죽여주마. 이 쓰레기 같은 괴물아. 이건 예고도 허언도 아닌 선언이자 미래다. 너는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기사와 괴물.
그 기이한 존재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