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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21화 (221/265)

제221화

거대한 제단에 불꽃이 치솟았다.

그 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7마리의 드래곤이 수놓았고 별들이 타오르는 제단을 밝혔다.

그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던 하트의 시민들은 눈물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가주님…. 가주님…. 위대한 하트의 수호신이시여.”

그 구슬픈 울부짖음에 제단을 지키는 병사들도 눈물을 흘렸다.

그 위에선 기사들도 묵념을 한 채 소리 없이 오열했다.

전쟁이 터져 가족과 친구를 잃었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레버쿠젠의 기사들이었기에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허나 그 누구도 그 슬픔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하트의 위대한 수호신.

제국이 자랑하는 소드마스터.

북부를 지키는 창이자 방패이며 가장 위대한 기사인 홀란 레버쿠젠이 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으니.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지만 그 인연이 하트를 지탱하던 홀란 레버쿠젠이었기에 모두가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 속에서 엘린이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말을 흐린 그녀가 타오르는 제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짓말이죠? 지금 모든 게 꿈이죠?’

중얼거림과 함께 엘린이 홀란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허나 타오르는 제단 위에 누운 그는 그저 편안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린이 그제야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유일한 혈육.

이 세상에서 레버쿠젠이란 이름을 같이 사용하던 마지막 가족이 방금 눈을 감았다.

그 사실에 엘린의 두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작은 돌풍이 일었다.

[…슬퍼하지 말라 나의 기사야.]

푸른빛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랬기에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하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위로와 함께 드래곤이 두 날개를 펼쳐 엘린을 감쌌다.

북부의 설풍도 커다란 두 날개를 뚫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다.

그 속에서 엘린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허나 그마저도 지금의 심정을 달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이별을 할 건 알고 있었어요.”

엘린의 말끝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별을 할 줄 몰랐어요. 저는… 저는… 아직 할아버지에게 못다 한 말들이 너무 많아요….”

그녀의 말에 푸른빛 드래곤이 잠시 고민하다 속삭였다.

[…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네?”

[내 능력이라면 아주 잠시지만 레버쿠젠이 낳은 가장 위대한 기사의 영혼과 접촉할 수 있다.]

엘린의 눈이 커졌다.

그사이 푸른빛 드래곤이 속삭였다.

[하지만 나의 기사야. 이걸 명심하거라. 원래 산 자와 죽은 자는 만나서는 안 된다. 그 규칙을 어긴 만남이니 분명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부작용?

엘린이 푸른빛 드래곤의 말을 잠시 되뇌며 생각했다.

자신의 할아버지.

홀란 레버쿠젠과 다시 만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고작 부작용이 문제인가?

엘린이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감수할게요! 만나게 해주세요 할아버지를!”

엘린의 말에 드래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대신 명심하거라 절대로 삶의 의지를 놓지 않겠다고. 죽은 자는 산 자를 끌어들이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

“명심할게요!”

드래곤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낮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

그 빛과 함께 엘린의 시야가 잠시 멀어졌을 때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제는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엘린?]

할아버지.

홀란 레버쿠젠의 목소리였다.

* * *

엘린이 울부짖었다.

“할아버지!!”

그 구슬픈 외침과 함께 엘린이 달려 나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홀란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엘린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갔다.

지금이 아니면 홀란을 붙잡을 수 없다.

그런 묘한 예감 속에서 엘린이 발버둥 칠 때였다.

침묵하던 홀란이 입을 열었다.

[엘린. 내 사랑스러운 손녀야.]

이 말에 엘린이 발버둥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 사이 홀란이 웃으며 말했다.

[또 나쁜 장난을 저지른 모양이구나. 만나서는 안 되는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고 서 있고.]

엘린이 입을 뻐끔거리다 울먹이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 간절한 외침에 홀란의 표정이 아주 잠깐 어두워졌다.

허나 곧 고개를 저으며 다시 환히 웃었다.

[요 녀석. 나이가 몇인데 그리 할애비를 부르느냐?]

“할아버지… 할아버지…. 떠나지 마세요…. 절 두고 떠나지 마세요….”

[떠나긴 뭘 떠나? 할애비는 잠시…. 다른 곳에 가는 거다. 평생을 북부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자유로이 여행을 떠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

홀란의 말에 엘린이 결국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 저 말에서 무거운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홀란 레버쿠젠.

제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이걸로 끝이다. 다시는 살아서 그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에 엘린이 다시 무너져 내리려 할 때였다.

기억도 나지 않은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린. 내 딸아.]

엘린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사이 다른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엘린… 엘린…. 내 사랑스러운 딸아.]

엘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 속에서 홀란의 등 뒤로 자신과 똑같은 붉은 머리칼을 가진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유한 레버쿠젠.

엘리스 레버쿠젠.

어릴 적, 사별한 부모였다.

그 두 사람의 등장에 엘린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엄마…. 아빠?”

이 말에 엘리스 레버쿠젠이 울먹거렸다.

그런 그녀를 옆에 있던 유한 레버쿠젠이 다독였다.

[이런 시간을 울면서 떠나보낼 것이오?]

엘리스 레버쿠젠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사이 고개를 돌린 유한 레버쿠젠이 환히 웃었다.

[딸아…. 내 딸. 너무 예쁘게 잘 컸구나.]

아버지의 말에 엘린이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꼭 네 엄마의 아가씨 시절을 보는 것 같구나. 솔직히 말해 몰라볼 뻔했어.]

이 말과 함께 유한 레버쿠젠이 잠깐 망설이다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성격마저…. 닮은 거 아니지? 네 엄마가 하도 말괄량이…. 컥!]

유한 레버쿠젠이 비틀거렸다.

옆에 있던 엘리스 레버쿠젠이 그의 목젖을 쳤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엘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을 때, 엘리스 레버쿠젠이 고개를 돌렸다.

[딸.]

엘리스 레버쿠젠의 말에 엘린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네, 네? 엄마?”

[정신 차려.]

“…?”

[예쁘게 큰 건 대견한데 마무리도 잘해야지. 여기에 네가 있으면 어떻게 해?]

엘린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엘리스 레버쿠젠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감추며 나무랐다.

[지금 너를 그 누구보다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야?]

“…….”

[레버쿠젠 가문 아니야? 그리고 너는…. 그 레버쿠젠의 가주고? 그런 네가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해?]

엘린의 입술이 달싹여졌다.

그 속에서 엘리스 레버쿠젠이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어.]

“…….”

[이번 기적처럼…. 어쩌면 다시 한번 기회가 있을지 몰라. 하지만 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그 기회조차 못 얻을 수 있어.]

엘린이 침묵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홀란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엘린.]

그 나긋한 부름에 엘린이 고개를 돌렸다.

[많이 힘들 거다. 하지만…. 너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다.]

이 말과 함께 홀란이 방긋 웃었다.

[어디서건 뭘 하건…. 너를 지켜보마. 레버쿠젠의 모든 영령들과 가족이…. 너와 함께할 거다.]

그 미소를 보며 엘린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였지만 더는 울지 않는 그녀였다.

그 모습에 유한 레버쿠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래야 우리 딸이지.]

이 말에 엘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

엘린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흔들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 어린아이이고 싶어요.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게 큰 욕심일까요?”

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엘린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엘린이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터트렸다.

“진짜 너무하시네요 다들….”

이 말에 홀란이 대답햇다.

[모두가 다 어린아이란다 엘린.]

홀란이 빙그레 웃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어른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저 어른이라 되뇌며 스스로를 속일 뿐이지. 그러니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된다.]

엘린이 눈물을 그쳤다.

반대로 홀란의 눈가에 옅게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패배자일 뿐이다. 너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냐?]

엘린이 천천히 대답했다.

“…아뇨. 전 항상 승리하고 싶어요.”

[그럼 당장 여기서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거라.]

홀란이 한 발자국 물러섰다.

[우리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너는 패배자가 된다. 그리고 그건 승리자인 엘린 레버쿠젠에게 어울리지 않아.]

엘린이 가슴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두근두근.

드래곤의 경고대로 죽은 자에겐 산 자를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엘린은 그 유혹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포기하고 저쪽을 향해 가고 싶어.’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

이 일을 일으킨 모든 주범.

그자를 제 손으로 찢어 죽여놔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랬기에 엘린은 가족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아주 느리지만, 엘린은 가족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리스가 입술을 달싹였다.

[딸…. 사랑하는 내 딸….]

하지만 소리 내어 외치지는 못했다.

흔들리던 딸 아이가 겨우 결심을 했다. 부모가 되는 자로서 그 앞길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 탓에 소리 없이 오열만 하던 그때, 유한이 살며시 어깨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애들이 금방 큰다지만…. 이건 너무 가혹하군.]

유한이 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저렇게 멋지게 큰 내 딸아이를….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하다니. 운명이란 건 너무나 가혹하구나.]

그 순간 작은 기적이 끝이 났다.

화악-!

엘린이 마침내 반대편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그 속에서 몸을 돌린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향해 속삭였다.

“사랑해요 내 가족.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세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더 사랑한단다 딸아.]

* * *

장례식이 끝이 났다.

그 속에서 하트는 원래의 일상을 점차 되찾기 시작했다.

물론 평범한 일상은 아니었다.

폭풍전야라는 말이 어울리는 고요함. 그 미묘한 분위기가 하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그 증거로 일곱 마리의 드래곤이 하트의 각성문을 지키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기이한 광경과 분위기 속에서 아더가 백합을 툭 떨어트렸다.

화악-!

그 순간 차가운 북부 설풍이 아더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그 설풍을 맞으며 아더가 묘비에 새겨진 글귀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세상 그 누구보다 위대한 칼잡이 홀란 레버쿠젠.]

잠시 침묵한 채 그 글귀를 수십 번이고 반복해 읽던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대부님다운 묘비명이네요. 죽어서까지 칼잡이 칼잡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더가 묘비를 쓰다듬었다.

갓 만든 묘비라 그런지 매끈매끈한 감촉이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감촉을 한동안 즐기던 아더가 고개를 들었다.

화악-!

푸른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였다.

그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창공을 잠시 지켜보던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멀찍이 서서 기다리고 있던 지니가 다가왔다.

“…공자님. 괜찮아요?”

그녀의 질문에 아더가 방긋 웃었다.

“도대체 그 질문만 몇 번째에요, 지니?”

아더의 말에 지니가 입술을 달싹였다.

솔직히 자신이 봐도 조금 과할 정도로 괜챦냐고 묻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이…. 오열을 하다니.’

자신이 아는 세상에서 제일 미친놈.

그 미친놈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세상이 떠나가라 오열했다.

그런 모습을 코앞에서 봐버리니 괜찮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다시 한번 아더의 안색을 살피던 지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어디 가실 거예요?”

아더가 천천히 대답했다.

“글쎼요….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 것 같아요.”

지니가 눈을 끔뻑였다.

“해야 할 일… 이요? 또 무슨 일이 있는데요?”

지니의 말에 아더가 북쪽이 아닌 남쪽을 바라보았다.

“…….”

제국의 수도가 위치한 남쪽.

그곳을 한동안 지켜보던 아더가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버지를 죽여야겠어요.”

“…?”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답이 없어요. 그래야만 모든 게 정리될 것 같아요.”

지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녀는 아더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러니깐 지금….

아더 바이에른이 제 아버지를 죽인다 선언한 건가?

천천히 그 의미를 되새기던 지니가 뒤늦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경악했다.

“네, 네!? 공자님! 그게 무슨 소리리예요!? 갑자기 아버지를…. 죽인다니요?”

“말 그대로예요 지니.”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걸음은 느리지만 아주 정확했다.

그 속에서 아더의 눈빛에 희미한 광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천하의 후레자식이 되더라도 아버지를 일단 죽여놔야겠어요. 그게 앞으로 제가 할 일이에요.”

한 남자의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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