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15화 (215/265)

제215화

아더 바이에른.

꽤나 신동이라 불렀던 아이였다.

흐릿한 기억으론 세 살 때 이미 읽고 쓰기가 가능할 정도였으니 그 비범함이 상당하였다.

그래서 케인은 아더를 가장 먼저 노렸다.

무언가를 망가트리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것은 희망을 없애는 거였다.

그리고 바이에른 가문의 희망은 아더 바이에른이었다.

하나 뿐인 혈육.

정통한 후계자.

그 아이를 노릴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랬기에 케인은 아더를 벙어리로 만들었다.

원래라면 독살을 하거나 암살을 해야 했지만, 칸의 명령 때문에 죽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바이에른 가문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더의 죽음보다 벙어리가 더 치명적일지 몰랐다.

‘미래를 책임질 기둥이 썩어 문드러졌다….’

망가진 기둥은 집안을 지탱하기는 커녕 모두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그런 케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독에 중독되어 벙어리가 된 아더 바이에른은 그 어떤 치료에도 낫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바이에른 사람들은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이에른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가트린 케인은 다음으로 나아갔다.

바이에른 재정, 인맥, 근본.

그 모든 것들을 내부 외부에서 끊임없이 흔들었다.

무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능하지도 않은 요넬 바이에른은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제국 최고의 명문 가문이라 불리는 바이에른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케인은 칸의 명령을 완수했다 여겼다.

‘바이에른은 다시 일어날 수 없다. 이 사실은 바이에른 혈족들에게 크나큰 고통이 될 것이다.’

결론을 내린 케인이 잠시 바이에른이란 존재를 잊고서 다른 임무를 수행할 때였다.

이변이 일어났다.

‘헤헤….’

벙어리라 불리며 제국 최고의 천지였던 아더 바이에른이 제 셋째 아들의 눈알을 뽑아냈다.

그 있어서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에 격분한 케인은 곧바로 아더 바이에른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칸 마드리드가 그 결정을 만류했다.

‘계획대로 되었다 케인.’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바이에른의 혈통이 꺠어났다.’

‘…!’

케인이 눈을 치켜떴다.

설마 벙어리 아더 바이에른이 제 셋째 아들을 삐꾸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이에른의 혈통 때문이었다고?

그 사이 칸이 설명했다.

‘예정보다 훨씬 일찍 혈통을 개화했어… 내 예상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그만큼 네가 일을 잘 해주었단 거겠지.’

이 말과 함께 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평생 그를 모셔오면서 처음 들어본 기분 좋은 웃음소리였다.

그 탓에 당황한 케인이 잠시 제 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가려진 입꼬리가 흐릿하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케인이 순간적인 충동에 휩싸여 질문했다.

‘…주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케인이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바이에른의 혈통을 개화해야 하는 지… 또 괴물을 만들어야 하는지… 혈통에는 왜이리 집착하시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습니다.’

몇 십년만에 나온 속마음.

그 탓에 케인은 아차 한 마음에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망설임을 억지로 지운 케인이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며 칸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칸이 천천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너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케인의 눈이 치켜떠졌다.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그 때 칸이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며 말했다.

‘모든 생물은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가지….’

이 말과 함께 칸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건 나 또 한 마찬가지다. 내 고향,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바이에른의 날개가 필요하다 케인.’

* * *

과거의 회상이 끝났다.

케인은 그것이 주마등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케인은 낮은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졌군.”

이 말에 그의 옆에 있던 아더가 대답했다.

“그럼 져야죠. 평생을 걸쳐 준비해온 싸움인데.”

케인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네 인생을 이 싸움을 위해 바쳤다는 건가?”

“그렇죠.”

“그럼 질 만하군….”

말을 흐린 케인이 끊어지려는 의식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아직 세상을 떠서는 안 된다.

복수에 성공한 눈앞의 남자에게 아직 물어볼 것이 남았다.

케인은 떨어지지 않은 입술을 억지로 열어 질문했다.

“내 아들의 마지막은 어땠지?”

이 말에 아더가 침묵했다.

조바심을 느낀 케인이 재촉했다.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나? 원수가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생각한다면?”

케인의 말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되물었다.

“이안 말이에요?”

“그래.”

“…….”

아더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안 도르문트.

그의 마지막이 어떘더라?

옛 기억을 천천히 되새기던 아더가 곧 적당한 답을 떠올리고서 대답했다.

“후회가 많아보였어요.”

이 말에 케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집착도 남아 있었고요. 그게 제가 본 이안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케인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많은 걸 이룰 아이였다… 그 꿈많던 아이를 네가 죽여버린 거야.”

아더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꿈 많은 아이가 저를 죽이려 했죠. 더불어 제 가문도.”

케인의 인상이 왈칵 찌푸려졌다.

허나 끓어오르는 가슴 팍의 울분과 달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제 삶은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 사실에 케인이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바뀌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돈 명예 권력.

이 세상 모든 걸 가진 케인 도르문트.

허나 그 본질은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때 그 시절 시골촌뜨기의 울보.

부모님을 잃고 세상이 무너진 그 시절의 케인과 똑같았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케인은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열망과 투지가 가득 찼던 그의 눈동자가 공허해졌다.

그 변화와 함께 그의 피부가 검은 색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

그 이변에 깜짝 놀란 아더가 다시 비스트를 움켜쥐었다.

한계에 달한 고리도 진동시켰다.

‘이안도 마지막 순간에 괴물로 변했어.’

그렇다면 눈앞의 케인 도르문트도 충분히 괴물로 변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탓에 아더가 긴장감을 일깨우려는 순간, 케인이 중얼거렸다.

“걱정마라 아더 바이에른… 나는 더 이상 너와 싸울 생각이 없어.”

아더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런 것치고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데요?”

“…이건 장치다. 만에 하나의 장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신의 힘으로 그 뜻을 이어가려는 의지지.”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저게 무슨 소리래?’

신의 힘?

그럼 케인 도르문트가 신에게 힘을 하사받은 신자였다고?

그때 악마로 점차 변화하던 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되나?”

그의 질문에 아더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뭐가 궁금한데요?”

“자네는… 황자, 아니. 칸 마드리드 황태자에게도 복수할 생각인가?”

아더의 눈이 치켜떠졌다.

설마 케인이 칸을 언급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당황했지만, 곧 표정을 수습하고서 대답했다.

“…뭐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단호히 선언했다.

“이 일과 연관된 사람들 전부를 죽일 생각이에요. 그건 이 나라의 황태자도 다르지 않아요.”

케인이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나쁘지 않군.”

그 웃음과 함께 케인의 육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

정확히는 먼지가 되어 휘날린 것이다.

그 이변에 아더의 눈이 커진 그 때, 케인이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렸다.

“운명이란 때론 가혹한 법이오… 결국 업보는 돌아갈 것이다.”

이 말과 함께 케인이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아더 바이에른. 너의 끝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마.”

그 순간 케인의 육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 * *

아더는 침묵한 채, 먼지가 된 케인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

평생을 쫓던 원수가 죽었다.

인생을 걸고서 달려가던 목표지점에 마침내 도달한 것이다.

그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 순간 진한 탈진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아더는 그 상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

잠시 넋을 놓은 채 침묵했다.

그 속에서 아더는 생각했다.

‘지금 이 일이 현실이 맞나?’

잘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케인 도르문트를 죽였나?

마지막 순간 악마로 변한 케인 도르문트가 환각이라도 건 게 아닐까?

그 탓에 아더는 작금의 현실을 부정했다.

아더 바이에른의 인생에 있어 케인 도르문트는 벽이다.

어딜 보아도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

그 벽이 처음으로 사라지자 아더는 방향을 잃고 당황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일 때였다.

왼손에 들린 비스트.

그 비스트에 녹아 들어있던 흰 수염이 중얼거렸다.

[수고했네.]

“…?”

[평생을 쫓던 목표에 도달한 순간이군. 수고했어.]

이 말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수고… 했다고요? 흰수염 씨?”

[그럼 수고했지. 자네가 쫓던 목표에 도달한 순간 아닌가?]

“….”

[큰 목표건, 작은 목표건 결국 그 일을 해낸 인간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어. 그런 의미에서 수고했네, 아더 바이에른.]

아더가 침묵했다.

“….”

그 침묵 속에서 숨을 고르던 아더의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따뜻하면서도 짭쪼름한 무언가.

그것이 눈물이라는 걸 눈치채기 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렸다.

그 속에서 아더가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아….’

눈물이 흘러내린 순간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원수를 죽였다.

케인 도르문트.

평생을 고대하던 복수가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그 순간 아더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

소리 없는 오열 속에서 표정이 일그러졌다.

뒤늦게 찾아온 기쁨 환희.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있는 후회와 슬픔.

그 복합된 감정 속에서 여러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적으로 마주쳤던 사람들.

그 외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맺었던 수많은 인연들.

그들과 함꼐 했던 모든 시간을 떠올린 아더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해냈구나….”

마침내 인생의 목표에 도달한 것이다.

그 사실을 계속해서 되내이던 아더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내가… 해낸 거야. 결국 케인을 죽인 거야.”

그 순간 머릿속이 맑아졌다.

항상 번뇌와 고민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처음으로 개운해진 것이다.

그 감각에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떤 그 때, 레버쿠젠 병사들이 중얼거렸다.

“…끝난 건가?”

치열했던 결투가 끝이 났다.

“아더 바이에른… 저분께서 이기신건가?”

소드마스터.

당대에 딱 한명의 칼잡이만이 달성 할 수 있다는 검의 끝자락에 도달한 경지.

그랬기에 소드마스터끼리의 싸움은 역사의 페이지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싸움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자가 조금 전 가려졌다.

아더 바이에른.

위기에 빠진 레버쿠젠의 도와준 유일한 동맹군.

레버쿠젠의 수장을 엄습한 암살자를 잡아낸 위대한 칼잡이.

그 사실이 모두의 피부 위로 느껴진 순간 거친 함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

그 함성은 홀란 레버쿠젠.

북부의 위대한 칼잡이가 드래곤을 잡아냈을 때보다 더욱 거칠었다.

“와아아아아-!”

홀란 레버쿠젠을 암습한 소드마스터.

그런 그를 치열한 결투 끝에 쓰러트린 아더 바이에른의 모습은 레버쿠젠 병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원이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혔을 때였다.

레버쿠젠의 장군.

그리고 홀란 레버쿠젠을 가장 오랫동안 보필한 부관이기도 한 알마레즈가 중얼거렸다.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이거였던겁니까.”

이 말과 함꼐 알마레즈가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홀란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목숨을 받쳐… 모두를 구한다는 게 이런 말씀이었던 겁니까.”

소리없는 오열과 함꼐 새시대에 가려져 허물어진 옛 시대를 알마레즈가 조용히 끌어안았을 때였다.

태양이 떠오르는 평원 끝.

그곳에서 한 인영이 일렁거렸다.

허나 그 이변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수 천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 인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 속에서 평원 끝에서 선 인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거리가 레버쿠젠 군대와 가까워지자 뒤늦게 드러난 검은 머리칼이 북부 설풍에 시원하게 흩날렸다.

그렇게 레버쿠젠 군대의 근처까지 다가온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홀란 레버쿠젠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알마레즈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뒤늦게 검은 머리칼의 사내를 발견하고서 화들짝 놀라 물었다.

“…당신 누구요!?”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방긋 미소지었다.

“아들을 찾고 있습니다. 아더 바이에른이라고 하는 데 혹시 아십니까?”

그의 질문에 알마레즈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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