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14화 (214/265)

제214화

케인 도르문트.

그는 농부의 자식이었다.

제국의 동쪽, 있는 것이라고는 논과 밭밖에 없는 시골출신이기도 한 그는 갑작스레 닥친 기근과 가뭄으로 가족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닌 야밤에 마을을 덮친 도적들에게 습격을 받아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한 흉터까지 입고 말았다.

‘내 인생은 왜 이런 거지?’

많은 걸 바란 걸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나이를 먹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밭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마음에 맞는 처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

그게 케인이 지향하는 최고의 삶이었다.

허나 신은 그 작은 바램마저도 허락하지 않은 듯 했다.

가족을 잃고 집과 재산을 잃었다.

열다섯 살이란 나이에 삶의 터전을 잃으니 자연스레 닥쳐온 굶주림과 추위가 이를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그 불행한 상황 속에서 케인은 노예로 팔려나갔다.

한 노예 상인이 먹고 재워준다는 조건으로 노예가 되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시골 마을을 떠난 케인은 한 가문의 노예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아이야 넌 참 예쁜 눈동자를 가졌구나.’

그 가문의 이름은 에슐리.

제국의 동부 출신의 남작이자 꽤 큰 영지를 가진 부호.

그리고 남자아이에게만 성욕을 느끼는 변태 소아성애자였다.

‘이리로 오너라. 오늘 밤 너에게 기쁨을 가르쳐주겠다.’

케인은 그런 에슐리 남작에게 공포를 느꼈다.

허나 차마 반항은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에슐리 남작과 달리 힘도 권력도 없었다.

반항을 하다 잘못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결국 두려움을 인내하며 지옥 같은 밤을 매일 같이 맞이할 때였다.

에슐리 남작이 칼을 치켜세우며 중얼거렸다.

‘모든 아름다움은 끝이 있기에 가치가 있는 법이지.’

이 말과 함께 에슐리 남작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너를 죽여 그 아름다움을 여전히 보존하겠다. 이런 영광을 얻은 것을 기뻐해라 아이야.’

영문 모를 말과 함께 에슐리 남작이 칼을 든 채 다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인은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부서지도록 반항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꼴은 아이가 성인 남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온몸의 속박 당하고 에슐리 남작의 칼이 목 끝에 다가왔을 때였다.

귓가로부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잡겠느냐?’

그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나와 손을 잡으면 네가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리게 해주마. 대신 나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그 순간 케인은 두려움에 떨었다.

눈앞의 에슐리 남작에게서 느껴지는 공포와는 다른 두려움이었다.

에슐리 남작이 눈에 보이는 공포라면, 지금의 이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마치 생물학적인 거부 반응처럼.

하지만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충성을 맹세하면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평생을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던 삶.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공포에 떨어야 하는 이 비참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

그 유혹 속에서 고민하던 케인이 입술을 벌벌 떨었다.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선택지가 없었다.

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 말은 즉, 지금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이 악마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케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제안을 받아들일게요.’

이 말에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좋다, 아이야. 이제부터 넌 네 것이다.’

그 순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눈앞의 에슐리 남작의 목이 종이쪼가리처럼 날아간 것이다.

* * *

에슐리 남작이 죽고 등장한 것은 검은 머리칼의 사내였다.

‘내 이름은 칸 마드리드. 제국의 2황자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온 정체에 케인이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제국의 2황자? 그러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란 소리야?’

눈앞의 에슐리 남작도 자신에게 있어 하늘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사내는 그 에슐리 남작에게 있어 하늘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케인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할 때, 칸 마드리드가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라. 그 순간부터 너는 나의 종이다.’

남자의 손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곱디고운 손.

그 손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케인은 홀린 듯이 내밀어진 손을 붙잡았다.

그렇게 케인의 새 삶이 시작되었다.

칸은 케인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검과 지식 정치 상식.

배울 수 있는 학문이란 학문은 모두 배우 배웠다.

그 사실에 케인은 꽤 놀라워했다.

‘내가 이런 쪽에 재능이 있었던가?’

검이며 정치며 학문이며.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배우는 데 딱히 막힘이 없었다.

그 탓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찰나 칸 마드리드가 설명했다.

‘세상엔 천재가 있다.’

그 설명과 함께 칸 마드리드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천재 위에 하늘에게 선택받은 인재(人材)가 있지. 신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잘못 만들어진 인간.’

케인이 놀라 질문했다.

‘그 인재가 저란 소리입니까?’

‘그래.’

‘…그럼 저는 잘못 만들어진 인간입니까?’

‘그건 아니다. 그저 신의 실수일 뿐. 너 개인에게는 아주 좋은 일일 것이다.’

케인은 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그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에슐리 남작 때처럼 똑같은 노예가 되었지만, 칸은 에슐리 남작과 달리 좋은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을 인간처럼 대접해주었고 한 개인으로서 존중해주었다.

그랬기에 칸의 말은 케인에게 있어 하늘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하늘을 거를 수 없었다.

케인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칸의 말을 애써 납득했다.

‘주인님께서 좋은 것이라 하면 좋은 것이겠죠.’

케인의 말에 칸이 손가락을 툭 두들겼다.

‘자… 이제 배울 건 다 배웠고 마지막 하나만 배우면 모든 게 끝이겠구나.’

케인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엇입니까?’

‘야망이다.’

‘…?’

‘넌 지금부터 제국 최고가 될 것이다.’

이 말과 함께 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인간들의 왕이 되어라 케인. 그게 네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다.’

* * *

시간이 흘러 케인은 성인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시골 촌뜨기에, 고아가 아니었다.

칸의 말에 따라 제국의 명문가.

도르문트 가문의 사위가 되었으며 곧 있으면 이 가문의 주인이 될 차기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평범한 출신인 그가 일궈낸 인생역전에 제국 전역이 열광했다.

하지만 케인은 기뻐하지 않았다.

‘난 그저 그분의 말일 뿐이다.’

칸 마드리드.

제국의 2황태자.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은 그의 노력과 재능 덕이지 제가 이뤄낸 성과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기뻐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 속에서 칸은 더 많은 것들을 자신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케인. 지금부터 쉬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라.’

제국 황태자의 독살.

혈통에 대한 실험.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조작해 만들어낸 괴물의 탄생.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을 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위험천만한 요구들이 쏟아졌다.

‘…도대체 이분의 목적은 뭐지?’

제국의 황태자.

그는 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며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 보았지만 케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

제국의 황태자를 독살하고, 혈통을 가진 인간들을 데려와 실험에 돌입했다.

그뿐만이 아닌 인체실험을 강행해 기괴한 괴물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제 주인이 내려준 명령을 하나씩 착실히 이행할 때쯤, 기적이 일어났다.

응애-!

제 핏줄을 이은 아이.

이안 도르문트.

그의 첫 번째 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 순간 케인의 하늘이 변했다.

‘아아….’

제 목숨을 구해준 칸 마드리드가 아닌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작은 핏덩이.

이 핏덩이가 새 하늘이 된 것이다.

그 사실은 케인의 가치관은 물론이고 삶, 그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 때 칸 마드리드가 찾아왔다.

‘때가 되었다 케인.’

이 말과 함께 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부터 바이에른을 집어삼켜라. 정확히는….’

말을 흐린 칸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그들의 핏줄의 힘을 일깨워라. 그게 우리의 최종 목표다.’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전 하늘의 명령이었다.

* * *

바이에른.

제국 최고의 명문 가문.

황실을 제외하면 그들은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문이었다.

그 탓에 처음에는 바이에른을 집어삼키라는 명령이라 생각한 케인이었다.

바이에른은 독살을 당해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현 황태자의 편.

어떻게 보면 칸 마드리드의 적이었다.

그 탓에 케인이 바이에른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칸은 고개를 저으며 그 행동을 저지했다.

‘집어삼키는 게 아니다 케인.’

이 말과 함께 칸이 방긋 웃었다.

‘바이에른을 살려둔 채 집요하게 괴롭혀라.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칸의 말에 케인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집요하게… 괴롭히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주군?’

‘신에게는 두 명의 천사가 있었다.

‘…?’

‘그 두 명의 천사는 신에게 명령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왔다. 한 명의 천사는 인간에게 지식을 전수했다. 한 명의 천사는 인간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난데없는 설명.

그 속에서 황자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그런데 한 명의 천사가 인간에게 배신을 당했지. 그래서 하늘로 다시 올라가려 했지만 이미 그 천사는 날개를 잃은 뒤였다. 인간들에게 제 지식을 전수하는 대가로 받친 날개였지.’

케인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칸 마드리드를 만난 뒤로 매번 그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이해조차 못했다.

그 사이 황자가 설명을 끝마친다.

‘연어가 다시 제 물길을 찾는 것처럼 모든 존재는 제 자리가 있을 곳을 찾는다… 그건 천사도 다르지 않아. 그리고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지. 그 준비물이….’

황자가 방긋 웃었다.

‘바로 바이에른의 혈통이다.’

‘….’

‘그러니 그들의 혈통을 일깨워라. 바이에른의 혈통이 눈을 뜨기 위해서는 바이에른의 혈족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말을 마친 황자가 몸을 돌렸다.

‘그들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괴롭혀라 케인. 그게 네가 해야 할 임무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케인은 생각했다.

‘내가 평생을 노력해도 저 분을 이해 할 수 없겠구나.’

그랬기에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장기말.

주인이 두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그리고 꼭두각시 인형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케인은 황자의 명령대로 작업에 들어갔다.

바이에른 가문을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무너트리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 일은 매우 순조로웠다.

제국의 황태자마저 독살시킨 그였다.

제아무리 바이에른 가문이 명문가라 하지만 그의 작업실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바이에른의 내부와 외부.

모든 것을 장악한 그는 천천히 바이에른 혈족들을 압박해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 제 장남.

이안이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축하한다 아들아.’

‘감사합니다, 아버지.’

덤덤히 대답하는 제 첫 번째 아들을 잠시 바라보던 케인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안. 내 아들.’

자신을 똑 빼닮은 성격과 얼굴.

허나 가짜로 만들어진 야망과 욕심을 가진 자신과 달리 이안은 타고난 야망가였다.

그랬기에 케인은 생각했다.

‘나는 꼭두각시 인형이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평생을 살다 죽겠지. 하지만 저 아이는 다를 것이다.’

이안은 자신과 달리 야망이 있고 삶의 목표가 있다.

즉 누군가에게 하늘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란 소리다.

그랬기에 케인은 이안에게 모든 것을 쥐여 줄 생각이었다.

‘나는 부모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저 아이에게 모든 것을 물려줄 것이다.’

권력과 돈 명예.

이 세상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여 줄 것이다.

그 순간 케인의 마음속에 작은 소망이 피어올랐다.

목표도 꿈도 야망도 아닌 그저 작은 소망이었다.

저 아이의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

처음으로 인생에서 생존이 아닌 원하는 것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그 사실에 케인은 기쁨과 전율에 몸을 떨었다.

‘내 인생에도… 빛이 들 날이 오는구나.’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바이에른에서 일어난 이변만 아니었다면.

‘빌---!!’

제 셋째 아들 빌 도르문트.

그 녀석의 오른쪽 눈이 난데없이 사라졌다.

‘헤헤.’

그 범인은 놀랍게도 아더 바이에른.

자신이 벙어리로 만든 바이에른의 혈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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