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12화 (212/265)

제212화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 순간 검의 손잡이가 으득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평소라면 검을 쥘 때 이렇게 힘을 주지 않을 것이다.

검을 다룸에 있어 하수는 검을 쥘 때 힘을 주고 일류는 검을 내지를 때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아더는 그 간단한 상식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눈앞의 모든 것이 핑핑 돌았다.

세상이 일그러지고, 모든 것이 기괴한 형태로 변화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정신병.

그 정신병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세상에 아더가 웃었다.

“하하….”

모든 생각과 잡념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충동과 분노.

그리고 뭔지 모를 쾌락.

그 기묘한 상태에 아더가 잠시 몸을 떨었다.

‘아아… 오랜만에 맛보는 광기네.’

지금이 아닌 과거.

또는 미래.

현재의 아더 바이에른이 아닌 이미 죽어버린 아더 바이에른이 가족을 잃고 느꼈던 정신병.

그 정신병이 다시금 도져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만큼 내게 홀란 레버쿠젠… 대부님이 소중한 사람이었단 건가?’

고민하던 아더는 반쯤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시간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홀란은 좋은 사람이었다.

대부로서 자신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다.

만약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더 깊은 관계를 나누었을지 몰랐다.

‘어쩌면 내게 있어 또 다른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몰라.’

허나 홀란이 단순히 좋은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분노를 느끼냐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 좋은 사람을 케인 도르문트에게 잃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내게 또다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갔어.’

다시는 잃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는데, 한순간의 경솔함으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그 사실에 아더는 분노했고 슬퍼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과거의 자신을 죽여버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후회가 아니라 복수.’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간의 인생 목표, 눈앞의 케인 도르문트에게 집중해야 했다.

그랬기에 아더는 웃었다.

실로 가식적인 웃음이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치켜들었다.

채앵…

아버지가 남겨준 검.

그 검에 새겨진 글귀가 하얀 설원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인이 중얼거렸다.

‘눈앞의 진실에 흔들리지 마라….’

말을 흐린 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수의 검에 새겨진 글귀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진실에 흔들리지 마라… 그래… 맞아.’

아더 바이에른은 철천지원수다.

하나뿐인 아들을 죽인 원수.

그 원수를 앞에 두고 그 어떤 동요나 불안에 떨 필요가 없었다.

그저 원수의 목을 따고, 그 원수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죽여 저승에 있을 아들의 혼을 달래주는 게 제 의무였다.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해라 케인 도르문트… 저 놈은 네가 만나본 그 어떤 적보다 강한 자다.’

생각과 함께 케인도 검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검을 치켜든 두 사내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기묘한 대치 상황을 지켜보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을 때였다.

두 사내가 동시에 사라졌다.

“…!”

깜짝 놀란 레버쿠젠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전방을 주시하던 기사들은 경악해 입을 벌렸다.

‘모습이 보이지 않아?’

도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잔상조차 보이지 않는다 말인가?

그 때 엄청난 광음이 울려퍼졌다.

쾅-!

그와 동시에 흩뿌려지는 달빛이 세상을 격동시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소드마스터끼리의 싸움… 이라니.”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의 결투.

그 싸움이 놀랍게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 *

맞부딪친 두 개의 검이 거친 소음을 냈다.

그 속에서 케인 도르문트와 아더 바이에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눈동자와 새빨간 눈동자가 광기에 차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생각했다.

‘불쾌하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원수.

그 원수의 눈빛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탓에 묘한 혐오가 끌어올랐다.

어서 빨리 이 놈을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끓어오르는 혐오가 보내는 그 경고 속에서 두 남자의 검이 멀어지고 다시 부딪친다.

챙-!

그렇게 시작된 검무 속에서 레버쿠젠 장군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가주님을 구해라-!”

그 외침에 넋을 놓고 있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움직였다.

다행히 두 칼잡이의 영역에서 벗어난 곳에 홀란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안전하게 홀란을 구출한 뒤, 다시 시선을 돌려 아더와 케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게 무슨….”

두 사내가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렀다.

아니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흩뿌려지는 달빛이 아니었다면 검을 휘두른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정도로 두 칼잡이의 표정은 평온했다.

허나 그들이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 검에 대기가 찢어져 나갔다.

흩뿌려지는 달빛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레버쿠젠의 영웅.

홀란 레버쿠젠이 죽인 라 하르칸이라는 괴물의 브레스도 놀라웠지만, 지금의 저 검무도 똑같은 수준이었다.

‘저것들이… 인간이라고?’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의 육체를 초월한 소드마스터라 해도 저런 식의 싸움은 상식 밖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두 사람의 검무에 넋을 놓은 그때 아더가 중얼거렸다.

‘케인… 이 사람. 소드마스터가 됐구나.’

흩뿌려지는 달빛.

그것은 착각이 아닌 진짜 소드마스터의 검강이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소드마스터가 아니었어. 그런데 언제 이 경지에 이른 거지?’

고민하던 아더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 흠. 뭐, 상관있나?’

생각해보니 케인이 소드마스터건 10서클의 칼잡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건 반드시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더의 칼질이 더욱 거세졌다.

쾅-!

단순히 내려찍기인데 망치가 내려치는 듯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그 엄청난 힘에 짓눌린 케인이 웃었다.

‘강하다.’

인정 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아더 바이에른은 강하다.

그 강함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자신이 만나본 사람 중 제일이라 부를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걸까?’

분명 독에 중독된 벙어리였는데.

그 벙어리가 소드마스터가 되어 제 아들을 죽여버린 천하의 원수가 되어버리다니.

그 탓에 케인은 잠시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다.’

생각해보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제와서 아더 바이에른이 소드마스터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칼잡이건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눈앞의 검은 머리칼의 사내는 오늘 제 손에 죽는다.

그 사실만이 전부이고 진실이자 진리였다.

그 순간 케인의 칼질이 달라졌다.

쾅-!

그의 칼질에서도 조금 전보다 더욱 묵직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그 이변에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짜증나네요.”

케인이 대답했다.

“마찬가지다 아더 바이에른.”

이 말과 함께 두 사람의 검무는 더욱 격렬해졌다.

쾅! 쾅! 쾅!

모든 잡념을 던져버린 두 사람이 서로의 목에 칼을 꽂기 위해 온 사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아….’

재밌다.

이 감정이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몸과 머리는 이렇게 느꼈다.

지금의 이 싸움이 너무 재밌었다.

그 사실에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린 두 사람이 눈빛을 번뜩였다.

“반드시 죽여주마.”

오늘 이 싸움에서 누구 한명은 죽는다.

그리고 케인과 아더는 그 죽음이 상대가 될 것이라는 걸 전혀 의심치 않았다.

* * *

고성이 무너진다.

그 속에서 드러난 거대한 주둥이가 엄청난 포효를 내뱉었다.

[내 심장을 내놔라 계집-!!!]

그 굉음에 하트의 시민들이 놀라 소리쳤다.

“저, 저게 뭐야 대체?”

하트의 상징과도 같던 고성에서 웬 괴물이 튀어나왔다.

세 개의 눈동자와 검은색 비늘.

그리고 두 장의 날개와 거대한 주둥이.

그 외형만 놓고보면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드래곤’과 닮아 있었다.

그 탓에 하트의 시민들이 경악을 감추지 못한 그때, 뒤늦게 달려온 레버쿠젠 수비대가 소리쳤다.

“모두 대피! 대피!! 실시간 재난입니다! 모두 대피하십시오-!”

그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린 하트의 시민들이 뒤늦게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 사이 고성에서 튀어나온 라 하르칸이 소리쳤다.

[어딨느냐 계집!! 내 심장을 내놔라-!]

그 외침과 함께 성에서 기어나온 라 하르칸이 하트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수백 년 간 증축을 반복하며 북부의 유일한 삶의 터전이 되었던 하트의 가옥들이 그 난동으로 박살이 났다.

그 광경에 성벽에서부터 달려온 수비대가 창을 꼬나쥐었다.

허나 창을 잡기만 했을 뿐, 저 난동을 막을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제, 젠장…!”

용기를 내는 것도 어느정도 근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트를 향해 달려들었던 악마들은 그 근거가 조금이라도 있었지만, 눈앞의 괴물은 달랐다.

말 그대로 재앙.

지금 저 괴물은 병사들의 입장에서 형거 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연재해는 인간의 몸으로 거를 수 없는 것이다.

하트의 수비대는 분함과 설움을 집어삼키며 수십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을 박살내는 라 하르칸을 지켜보기만 할 때였다.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비켜서라-!”

깜짝 놀란 하트의 수비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도로 한복판을 질무하며 한 무리가 달려왔다.

그들의 갑옷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한 레버쿠젠 병사들이 뒤늦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바이에른 기사단!”

레버쿠젠의 유일한 지원군이자 동맹군인 바이에른 가문.

그 가문의 기사단이 또 한번 하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 사이 라 하르칸도 바이에른 기사단을 발견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칼쟁이들이 여기도 있구나. 네 놈들이 내 심장을 가지고 도망친 계집을 숨겼느냐?]

그 외침과 함꼐 라 하르칸이 꼬리를 휘둘렀다.

바이에른 기사단의 선봉에 선 기사가 검을 높게 치켜들며 소리쳤다.

“모두 산개! 양쪽에서 놈의 시선을 교란한다!”

그 명령에 질주하던 바이에른 기사단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채찍마냥 휘둘러진 라 하르칸의 꼬리가 그 중심부를 정확히 타격했다.

그 여파에 도보가 박살이나고 하트의 거리가 엉망이 되었지만 양갈래로 나뉘어진 바이에른 기사단은 무사했다.

그 틈에 검기를 뽑아든 바이에른 기사단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말라! 반드시 저 괴물을 저지한다!"

결의가 담긴 외침과 함께 기사와 드래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말을 탄 기사들은 드래곤의 시야를 농락하고 그 마법을 엄청난 승마술로 피해내며 칼을 휘둘렀다.

그 선전에 라 하르칸이 당황해 소리쳤다.

[이 벌레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몸을 던져 되는 기사단은 생각보다 성가셨다.

더군다나 저들의 칼에 둘린 검기가 제 비늘을 뚫지 못하지만, 그렇다 해서 고통까지 느껴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기사들의 검이 비늘에 닿을 때마다, 따끔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픔이 산개한 기사들이 찌르는 칼 곳곳에서 느껴지자 결국 흥분한 라 하르칸이 거칠게 소리쳤다.

[벌레들을 싹 쓸어버리고, 심장을 찾아야겠구나.]

이 말과 함꼐 허공으로 날아오른 라 하르칸이 주둥이를 벌렸다.

화악-!

뜨거운 열기가 그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와 대기를 가열시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바이에른 기사단이 눈을 치켜떴다.

‘드래곤이 주둥이를 벌리는 건 단 하나 뿐이다.’

오로지 드래곤만이 쓸 수 있는 마법.

드래곤 브레스.

그 사실을 떠올린 바이에른 기사단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모두 피해!! 재앙이 내려온다!”

허나 그 외침은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쾅-!

라 하르칸의 벌어진 주둥에서 거대한 불꽃이 쏘아졌다.

세상을 멸할 수 있다 알려진 그 불꽃에 바이에른 기사단은 물론이고 하트의 시민들도 입을 벌렸다.

‘…죽는다?’

죽음의 직감.

도망도 반항도 그렇다 해서 피할 수 도 없는 재앙 그자체였다.

그 탓에 모두가 얼어붙은 채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불꽃을 바라볼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한 줄기의 빛이 그 재앙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

깜짝 놀란 바이에른 기사단이 눈을 치켜떴다.

그건 드래곤 브레스를 쏘아낸 라 하르칸도 다르지 않았다.

[뭐? 내 브레스를 갈라냈다고?]

라 하르칸이 순수히 놀라 자욱한 먼지 속에서 번쩍이는 빛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휘날리는 재와 비슷한 회색머리칼이 천천히 드러났다.

“…지긋지긋하군. 드디어 네 놈을 죽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을 줄이야.”

이 말에 라 하르칸이 눈을 치켜떴다.

그 사이 검강을 두른 검을 치켜세운 카셀이 눈빛을 번뜩였다.

“그러니 다시 한번 죽여주마 괴물아. 이번에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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