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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미친놈-211화 (211/265)

제211화

검은 숲을 빠져나와 전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아더의 등 뒤에 업혀있던 카셀이 놀라 중얼거렸다.

“아더! 라 하르칸의 존재감이 양쪽에서 느껴져!”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그럴 거예요. 라 하르칸… 그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거든요.”

이 말에 카셀의 눈이 치켜 떠졌다.

‘그 괴물이 3마리나 된다고?’

새로이 안 사실에 카셀이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허나 깊이 고민할 수 없었다.

양방향에서 느껴지는 라 하르칸의 기세가 점점 더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카셀이 눈빛을 번뜩이며 제안했다.

“날 여기서 내려주게 아더.”

“여기서요?”

“양쪽에서 느껴지는 라 하르칸의 존재감 중 하나는 하트에서 느껴어. 그리고 검은 숲에서 하트의 거리가 더 가깝지.”

카셀의 설명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오호. 각자 한 마리씩 맡아서 처리하자?”

“자신 없나?”

“그럴 리가요. 카셀 때문에 드래곤의 피를 못 얻어서 안 그래도 아쉬웠는데 이러면 저야 좋죠.”

카셀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 피 타령은 여전하군. 그럼 일단 날 내려주게.”

아더가 비행을 멈춘 뒤 등에 업힌 카셀을 내려주었다.

지상으로 다시 내려온 카셀이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아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별인사는 필요 없지?”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요. 라 하르칸을 죽이고 다시 만나면 되는데, 뭐하러 인사를 해요?”

카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괴물을 죽이기만 하면 돼.”

빙그레 미소지은 카셀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따 보지.”

“이따 봐요, 카셀.”

카셀이 몸을 돌려, 설원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카셀. 라 하르칸을 죽인 뒤로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평생을 뒤쫓던 원수를 죽여서 그럴까?

지금의 카셀은 뭔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정체성에 혼란이 와서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하던 그의 옛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원수를 죽이는 게 효과적이구나.’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자신도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긴 복수를 끝마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흠… 달라질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달라지려나?’

잠시 그 모습을 상상하던 아더는 입맛을 다셨다.

복수를 끝마친 제 모습이 어떤 식으로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묘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그 기분을 떨쳐냈다.

‘지금은 미래의 일보다 현재에 집중해야 해.’

그렇게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아더가 하트에 있는 또 다른 라 하르칸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갯짓을 했다.

방향을 잃은 걱정은 없었다.

드래곤 하트를 먹고 마침내 달성한 10개의 고리.

그와 동시에 변화한 육체의 감각이 잡아낼 수 없는 소리를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저 설원 너머에서 소음이 들려오고 있어.’

그뿐만이 아닌 옅은 피 냄새도 느껴졌다.

아무래도 당초 계획대로 홀란이 악마 들의 군대를 상대로 시간을 벌고 있는 듯했다.

‘그 이야기는 대부님과 라 하르칸이 싸우고 있단 건가?”

아더의 표정이 살며시 굳어졌다.

홀란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라 하르칸은 드래곤이다.

그것도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그 괴물이 내뿜는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을 잘 알고 있던 아더로서는 조바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더 빨리 가야해!”

생각과 함께 아더가 쥴리의 혈통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아더의 신형에 타오르는 벼락이 휘감겼다.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날갯짓한 아더가 놀라운 속도로 허공을 질주했다.

솨악-!

눈앞의 보이는 모든 풍경이 작은 점이 되어 휙휙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코끝으로 맡아지는 피 냄새도 점점 더 심해졌다.

아더는 속으로 제발 자신이 늦지 않기를 빌며 날갯짓에 더욱 힘을 주었을 때였다.

흐릿한 시야 너머.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입을 벌렸다.

‘드래곤?’

대지 위로 우뚝 솟은 검은 형체는 놀랍게도 드래곤의 몸뚱이었다.

그것도 얼굴이 없는 드래곤.

그 사실에 아더가 경악을 숨기지 못하며 소리쳤다.

‘설마! 대부님께서 라 하르칸을 잡아낸 건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쥔 아더가 환호성을 내뱉으려 할 때였다.

흐릿한 시야 너머.

너무나도 익숙한 사내가 보였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측한 흉터에 붉은 머리칼.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아더 바이에른이란 인간의 모든 것을 박살낸 원수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의아해진 아더였다.

케인 도르문트.

저 남자가 왜 설원에 있다 말인가?

그는 지금쯤 수도에 있어야 정상 아닌가?

그때 케인 도르문트의 검이 움직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푹.

케인의 검이 홀란의 복부를 꿰뚫는다.

그와 동시에 힘없이 쓰러지는 노인의 등을 바라보던 아더의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케인 도르문트.

한때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남자가 또 다시 무언가를 빼앗아간 순간이었다.

* * *

케인 도르문트.

그와의 악연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바이에른 가문을 멸문시켰고 가족을 건드렸으며 아더 자신을 반불구로 만들었다.

그랬기에 아더는 그를 증오했다.

삶의 목표 자체가 이 남자를 죽이는 것을 바뀔 정도로 케인 도르문트에게 복수 할 날만을 꿈꿔왔다.

허나 작은 기적 덕에 부여받은 두 번째 삶에서 그 증오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조금이나마 옅어져 버렸다.

‘이번 삶에 케인 도르문트는… 나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했어.’

정확히는 빼앗으려 한 시도를 자신이 막은 것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저번 삶과 달리 모든 것이 멀쩡했다.

쑥대밭이 되었던 가문은 멀쩡했고 어머니와 여동생도 살아있다.

반불구였던 육체는 건강했고 다른 소중한 사람들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랬기에 아더는 안도하며 안주했다.

이전 삶과 달리 소중한 사람들과 만들어나가는 인연.

그리고 시간.

그것들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안주하고 만 것이다.

‘내 인생을 복수만 보고 달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

무려 기적적으로 부여받은 두 번째 삶이다.

그런 삶을 케인 도르문트란 남자에게만 신경을 쏟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케인 도르문트를 적당히 견제하다 기회가 왔을 떄 제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멍청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린의 약혼 식 날.

케인 도르문트와 마주쳤을 때, 검을 멈추었다.

그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 목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 케인 도르문트를 죽이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뒷일을 도모하자.

그런 핑게를 대며 검을 거두어들였다.

‘레온의 만류가 있긴 했지만 결국 결정을 내린 건 나 자신이었어.’

옛날의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철천지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검을 거두어들이다니?

그 어떤 상황이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인연 친구 가족… 이것들이 날 약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아더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홀란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

주름진 그의 얼굴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뚜껑이 열린 듯 훤한 가슴팍에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참혹한 상태에 아더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대부님… 버틸 수 있나요?”

“….”

“말을 할 기력도 없는 건가요?”

“….”

“제가 물의 정령왕과 계약했어요. 조금만 정신 줄을 붙잡아주신다면 제가 어떻게든 치료해볼게요.”

거짓말이었다.

본능적으로 아더는 알아차렸다.

지금의 홀란은 엘퀴네스를 소환한다 하더라도 치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홀란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아주 천천히.

가느라한 숨결을 내뱉으며 삶을 끝자락을 붙들어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의 눈동자가 흔들린 그 떄, 케인이 중얼거렸다.

“좋은 표정이군 아더 바이에른.”

“….”

“내가 원하던 모습이야… 홀란 레버쿠젠을 죽여놓길 아주 잘했어.”

이 말에 흔들리던 아더의 눈동자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고개를 든 아더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에요 케인 도르문트?”

케인이 제 칼에 묻은 홀란의 피를 툭 털어내며 대답했다.

“널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절 노려야지 왜 대부님을 노린 거죠?”

“그래야 네가 고통받을 테니깐.”

“…?”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제가 고통을 느껴야 해서… 대부님을 노렸다고요?”

케인이 대답하는 대신 제 가슴팍을 툭 두들겼다.

“사람이 느끼는 고통 중 제일 큰 게 뭔지 아나? 바로 가슴이야.”

이 말과 함께 케인의 표정에서 점차 감정이 사라졌다.

“사지 한 군 대가 잘리는 것보다 마음이 꺾였을 때 느끼는 고통이야 말로 진짜지. 세상을 잃어버린 그 기분 그 느낌은… 정말로 말로 설명 할 수 없어.”

“…….”

“그리고 마음을 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중한 무언가를 없애는 거야.”

케인이 칼을 치켜세우며 선언했다.

“난 네 소중한 모든 걸 없애버릴 것이다 아더 바이에른.”

그 선언에 아더가 천천히 홀란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가족 친구… 너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베어 죽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 마음도 분명히 나처럼 꺽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케인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제게 원한이 있으면, 절 노려야지 왜 제 주변 사람을 노리는 거죠?”

아더의 말에 케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여기까지 와서 모른 척 할 셈이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제가요? 뭘 모른 척 했다는 거죠?”

케인이 이를 으득 갈며 소리쳤다.

“네가 내 아들을 죽였어-!”

그 외침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놀라 뒷걸음질쳤다.

5서클 이상을 두른 기사들은 놀라운 진실에 입을 벌렸다.

‘…제국에서 제일 가는 천재. 그 이안 도르문트를 죽인 사람이 아더 바이에른이었다고?’

그 속에서 케인이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오열했다.

“네가… 네가… 가장 내 소중한 보물을, 세상을 죽였다! 그 죄값은 네 죽음만으로는 부족해!”

케인의 눈빛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너도 이 고통을 맛봐야한다… 세상이 꺾이는 기분을… 세상이 무너지는 이 기분을 말이야.”

침묵하던 아더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대부님을 노린 거에요?”

“…뭐?”

“아니… 그렇잖아요? 당신이 한 짓을 생각해보세요.”

이 말과 함꼐 아더의 가슴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분노.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그 속에서 아더가 낮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 가족과 가문… 그리고 주변 사람들한테 당신과 당신 아들이 한 짓을 생각해보세요. 당신 아들을 죽이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케인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약자는 잡아먹히는 게 당연하다.”

이번에는 아더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당신 아들도 약자였으니 죽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 아들은 약자가 아니었어.”

“이상한 논리네요. 약자니깐 저에게 잡아먹혔지 않겠어요?”

“네가 이상한 수술을 쓴 거겠지.”

“정당한 대결이였어요.”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지만 그게 진실이에요.”

케인이 소리쳤다.

“닥쳐-!”

두 눈이 광기로 물든 그가 검을 치켜세웠다.

“더 이상 내 아들을 모욕하지마라 아더 바이에른! 감히 너 따위가 모욕해도 되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이 말에 아더가 반박하려다 멈칫했다.

갑자기 느껴지는 두통이 벌어진 입을 절로 닫아 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아더가 생각했다.

‘…내가 뭘 기대한 거지?”

저 남자에게 상식을 바라다니.

그런 사람이었으면 과거의 자신에게 그런 짓도 하지 않았을 텐데.

그 탓에 조금 전의 자신에게 조소를 터트린 아더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세상이 핑그르르르 돌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신병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하하….’

웃음을 터트린 아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거로 돌아와 처음으로 느껴보는 실패와 후회.

그리고 끓어오르는 증오와 분노.

그 모든 것들을 과감없이 폭발시킨 아더가 중얼거렸다.

“대부님의 복수를 해야겠어요.”

케인이 광기에 차 대답했다.

“아들의 복수를 하겠다 아더 바이에른.”

이번에는 아더가 대답했다.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게 죽일 거에요.”

“네놈을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게 죽이겠다.”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의 목을 대부님에게 받치겠어요.”

“네놈의 목을 베어 아들에게 받치겠다.”

똑같은 대답을 한 케인이 검을 뽑아들었다.

촤악-!

검은색 묵빛의 검이 천천히 겨누어졌다.

그 모습을 번들거리는 시야 속에서 지켜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아아. 이렇게 보니 똑같구나.’

우연인지 운명인지 몰라도 지금의 케인 도르문트는 자신과 매우 비슷해보였다.

그 사실에 아더는 묘한 협오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안 되지… 저 남자는 복수할 권리도 없어.’

저 남자에게는 오로지 복수 당할 권리밖에 없었다.

그 생각과 함께 아더가 칼을 뽑아들며 선언했다.

“이제 끝내죠… 오늘은 반드시 당신을 죽여야겠어요 케인 도르문트.”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까지 이어진 긴 악연.

그 고리를 끊어낼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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