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210화 (210/265)

제210화

엘린이 고개를 들었다.

“….”

찬란히 빛나고 있는 보석이 보였다.

홀란의 말에 따르면 이 보석은 드래곤 하트.

그것도 최초의 드래곤 하트라 불리는 레버쿠젠의 가보였다.

‘…레버쿠젠의 존재의의가 이 보석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지.’

생각과 함께 엘린이 살며시 입술을 꺠물었다.

이 보석의 정체가 무엇이건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보석 때문에 나는 싸우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홀란은 원정을 떠나기 전, 엘린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자신을 대신해 이 보석을 지키라는 명령이었다.

만약 전시 상황이 아니었다면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임무였을 것이다.

이 보석을 지키는 임무는 대대로 레버쿠젠의 가주가 해왔던 일.

즉, 이 임무를 맡은 시점에서 엘린은 차기 레버쿠젠의 가주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레버쿠젠의 운명이 판가름 날지 모르는 전쟁을 앞둔 지금, 그 사실이 기쁠 리가 만무했다.

‘왜 하필 지금 나한테 이런 임무를 맡기신 거지? 내가 빠진 공백은 분명 치명적일 텐데?’

여태 홀란이 자리를 비운 사이 레버쿠젠의 전쟁을 전두지휘해왔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굳이 이런 임무를 맡기며 성에 남겨 놓은 것은 지휘관으로서의 판단이 아니라 친혈육으로서의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 탓에 엘린이 불만 어린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입술을 질끈질끈 깨물 때였다.

갑자기 눈앞의 보석이 환한 빛을 내뿜었다.

“…!”

깜짝 놀란 엘린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허나 조금 전 빛은 착각이라는 듯, 드래곤 하트는 다시 잠잠해져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빛이 난 거지?”

중얼거림과 함께 엘린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어둠 너머.

세 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

샛노란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 엘린을 지나쳐 드래곤 하트에 고정되었다.

그 순간 어둠을 가르며 거대한 주둥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찾았다 내 심장.]

라 하르칸.

그의 진짜 본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 * *

레버쿠젠의 성벽 위를 지키는 병사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목숨을 걸고 성벽을 사수해라!”

약 천 명에 달하는 그들은 설원 너머로부터 끊임없이 몰려오는 악마들의 공격을 목숨을 걸고 막아내고 있었다.

허나 죽여도 죽여도 밀려오는 악마들의 공세는 투지와 의욕만으로 이겨내기엔 부족했다.

결국 늘어나는 사망자와 함께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은 성벽의 점령으로 이어졌다.

“으아아악-!”

“남쪽 성벽이 점령당했다!”

“지원군을 보내! 한쪽이 뚫리면 모두가 뚫린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께 하트를 수성하는 레버쿠젠 군인들이 수세에 몰렸을 때였다.

설원 너머에서 한 줄기 빛이 등장했다.

“모두 돌격-!!”

그 빛은 한 점이 되어, 설원을 거침없이 돌파했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 병사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바이에른 기사단?”

지금쯤 본대에 합류해 전쟁을 치르고 있을 바이에른 기사단이 놀랍게도 설원 너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사이 바이에른 기사단을 발견한 악마들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끼에에엑-!]

목숨을 내놓은 그 돌진은 꽤나 매서웠다.

허나 기사들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칼에 둘린 검기가 번쩍인 순간, 앞을 가로막는 악마들의 목이 우수수 허공에 떠올랐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 병사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뭔지 모르지만 지원군이 왔다!”

“기사단이 적진을 유린하고 있다-!”

“모두 목숨을 걸고 성벽을 사수해! 저들의 지원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전장의 분위기가 뒤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바이에른 기사단이 적진을 헤집어 주는 사이, 레버쿠젠 병사들이 숫적의 열세를 이겨내고 우위를 점했다.

결국 그 공세를 버티지 못한 악마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악마들의 후퇴에 숨을 헐떡이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한 박자 늦은 환호성을 질렀다.

“크와와와악-!”

“승리했어! 승리했다고!”

“젠장!! 바이에른 기사단! 언제 여기로 지원을 온 거야!”

그 거친 함성을 성벽 밑에서 지켜보던 바이에른 기사단이 살며시 미소지였다.

“…우리가 아무래도 제 때 도착한 것 같군.”

고개를 끄덕인 바이에른 기사단이 도망치는 악마들을 바라보았다.

물러난 악마들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지, 하얀 점이 되어 사라져 있었다.

그 속에서 한 기사가 입을 열어 제안했다.

“지금은 물러났다 하지만 다시 몰려올 수도 있으니 이곳을 지키는 게 낫겠지?”

이 말에 반대편에 있던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쪽의 전쟁에서 승패가 갈리면 이곳도 위험하네.”

“그럼 이곳을 버리자는 말인가?”

“그건 아니지만…다른 쪽의 상황도 생각해야 한단 거네. 그쪽이 무너지면 이곳을 지키는 의미도 없어져.”

두 기사의 말에 나머지 바이에른 기사들이 고민했다.

양쪽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었다.

이쪽을 지키자니 저쪽의 상황이 마음에 걸렸고 저쪽의 전장을 택하자니 이쪽 상황이 마음에 걸렸다.

고심하던 바이에른 기사단은 짧은 토론 끝에 결론을 냈다.

“이곳의 싸움은 끝났다. 지금이라도 본대에 합류해 힘을 실어줘야 돼.”

지금의 이 전쟁은 쉬어서는 안 됐다.

시간을 뺏긴 쪽이 결국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쪽의 상황이 다소 걱정되더라도 본대의 전장에 합류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다시 잠시 떠났던 전장에 합류하려는 순간이었다.

한 기사가 갑자기 말머리를 멈추며 중얼거렸다.

“…응?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이 말에 다른 기사들이 멈추어서 재촉했다.

“자네 뭐 하는가? 어서 빨리 고삐를 쥐지 않고?”

“…자네들, 이 소리가 안 들리는 건가?”

“무슨 소리?”

“비명소리 말이네. 레버쿠젠 성에서 옅은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나?”

바이에른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장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게 이상할 일인가?”

“남은 적이 있더라도 레버쿠젠 병사들이 처리할 거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해. 어서 빨리 고삐를 쥐게.”

동료들의 재촉에 말머리를 멈추어 세운 기사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 그러지…내가 잘못…”

그 순간이었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레버쿠젠에서 가장 높은 크기를 자랑하는 고성이 폭발해 사라졌다.

“…!”

그 광경에 바이에른 기사단이 입을 벌리고, 성벽을 지키던 레버쿠젠 병사들도 놀라 자빠졌다.

“저, 저게 무슨 일이야!”

당황 섞인 외침과 함께 사라진 고성에서 무언가 기어 나왔다.

넋을 놓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바이에른 기사단이 몸을 떨었다.

“라 하르칸-!”

“드래곤을 잡아먹는 괴물!”

놀랍게도 지금쯤 레버쿠젠 본대와 전쟁을 치르고 있을 괴물이 하트의 고성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 사실에 레버쿠젠 기사단이 경악을 감추지 못할 때, 라 하르칸이 소리쳤다.

[내 심장을 내놔라-! 계집!]

천지를 진동시키는 그 외침에 정신을 차린 바이에른 기사단이 표정을 굳혔다.

“…아무래도 우리의 전장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인 것 같군.”

이 말과 함께 다시 칼을 뽑아든 바이에른 기사단이 눈빛을 빛냈다.

“바이에른 기사단. 지금부터 우리는 저 괴물을 막는다.”

새로운 국면, 새로운 상황이 레버쿠젠의 고성에서 펼쳐졌다.

* * *

홀란은 제 배를 꿰뚫은 검을 바라보았다.

‘반응하지 못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전성기를 훌쩍 뛰어넘는 반응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허나 그 예민한 감각을 지녔음에도 지금 제 배를 꿰뚫은 검에는 반응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검의 주인은 누구지?’

생각과 함께 홀란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케인 도르문트?”

검의 주인은 놀랍게도 지금쯤 수도에 있어야 할 제국의 수호가문의 수장.

케인 도르문트였다.

그 사이 홀란의 배에 검을 찔러넣은 케인이 중얼거렸다.

“…홀란 레버쿠젠. 아더 바이에른은 어디 있나?”

이 말에 홀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아이를 찾아서 어쩌려는 것이냐?”

“죽여야지.”

“…!”

“사지를 찢어 그 영혼까지도 분해 할 거다. 그러니 놈의 위치를 말해라 홀란 레버쿠젠.”

케인의 일갈에 홀란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도르문트와 바이에른의 관계를 모르는 거 아니지만… 이건 이상하다.’

그 철두철미한 케인 도르문트가 아더를 찾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습하다니?

그것도 라 하르칸이라는 괴물을 막 쓰러트린 시점에서 말이다.

‘수호 가문의 자리를 얻기 위해 그토록 평판에 신경 쓰던 사람 아니었던가?’

하지만 홀란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은 잡념보다는 움직여야 할 때다.

그 생각과 함께 홀란이 제 배를 꿰뚫은 칼을 잡은 채로 왼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

눈을 치켜뜬 케인이 그 일격을 기예와도 같은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허나 홀란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연이어 날아오는 그 일격에 케인이 홀란의 배를 꿰뚫은 검을 뽑아냈다.

촤악-!

흩뿌려지는 피와 함께 케인의 검이 홀란의 검을 막았다.

그 순간 홀란의 입에서 검은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그 틈을 케인은 놓치지 않았다.

촤악-!

케인의 검이 사선으로 홀란의 가슴팍을 갈랐다.

눈을 치켜뜬 홀란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화악…

그의 전신에 둘러져 있던 푸른 빛의 불꽃이 물러선 걸음만큼이나 사그라들었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고서 소리쳤다.

“가주님-!”

그와 동시에 레버쿠젠 기사단이 말머리를 돌렸을 때였다.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가슴팍을 부여잡은 홀란이 소리쳤다.

“모두 다가오지 마라-!”

“…!”

“다가오면 죽는다! 모두 물러서!”

이 말과 함께 비틀거리는 몸을 수습한 홀란이 심호흡을 내쉬었다.

‘내 검과 속도가 똑같다… 그렇다는 말은.’

케인 도르문트.

이 사내가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밟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에 홀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더도 그렇고… 소드마스터라는 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나?’

100년에 한 명.

그 수많은 칼잡이 중 한 명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소드마스터의 경지인데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홀란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칼로 베인 가슴팍의 상처를 급한 대로 임의로 지혈했다.

허나 심장의 고동소리가 느려지는 것까진 제어할 수 없었다.

두근… 두근…

라 하르칸과의 일전에서 불태운 생명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낮은 한숨을 토해낸 홀란이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했다.

“…아더에게 들었다. 네놈이 이번 전쟁과 관련이 있다지?”

케인이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관련? 글쎄…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주도한 전쟁이 아니란 소리다.”

홀란의 눈이 커졌다.

“그럼 또 다른 배후가 있단 것이냐?”

케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가 그걸 알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이 말과 함께 케인이 검을 휘둘렀다.

그 날카로운 일격을 전장에 있는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저 바람이 가르는 소리만이 귓청을 찌르르 울렸을 뿐이었다.

그 기분 나쁜 소음이 사라졌을 때는 홀란의 가슴팍에 또 다른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파앗-!

터져 나오는 피분수와 함께 홀란이 걸음을 비틀거렸다.

‘반응이 늦다… 내 머리대로 몸이 따라가질 못해.’

한계에 달한 육체는 망신창이었다.

이제는 칼로 베어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 사실에 홀란은 절망보다는 다급함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이 사내는 레버쿠젠의 영웅들을 노릴 것이다.’

아더를 찾고 있지만, 자신을 죽인 이 사내가 레버쿠젠 사람들을 가만 둘리 없었다.

그 사실에 홀란은 점차 멎어가는 심장의 박동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조금만 더 움직여라 내 육체야… 눈앞의 적이 이제 마지막이다.’

그 의지와 함께 홀란이 마지막 생명까지 불태웠다.

그 순간 케인의 일격이 다시 한 번 쇄도했다.

솨악-!

역시 이번에도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일격이었다.

그랬기에 케인은 이번 일격으로 홀란이 쓰러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소드마스터라 하지만 육체의 부상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소드마스터도 인간이었고, 육체의 한계를 완벽히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 냉정한 판단 속에서 케인이 결론을 내렸다.

‘이번 일격으로 홀란 레버쿠젠은 죽는다.’

이 생각과 함께 케인의 검이 홀란의 머리끝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제 칼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그 이변에 케인이 눈을 치켜뜬 순간, 홀란이 눈빛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자네는 너무… 위험해."

“…?”

“야망이 아니라 욕심으로 가득차 있어. 그 욕심이 화를 불러 저런 괴물들과 손을 잡다니. 어찌 그런 재능을 지니고도 이렇게 삐뚤어질 수 있다 말인가?”

이 말과 함께 케인의 칼을 막아낸 홀란의 검이 움직였다.

놀란 케인이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일격이지?’

분명 눈에는 보인다.

그런데 지금 내지른 홀란의 일격을 도저히 막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탓에 고민하던 케인은 결국 그 일격을 피해내 달아났다.

허나 물러선 걸음만큼 홀란이 성큼 다가왔다.

그 모습에 케인의 표정에 처음으로 경악이 어렸을 때, 홀란이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자네를 이대로 놔두다간 북부가 아니라 제국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겠어. 그러니 늙은이의 동반자가 되어줘야겠네.”

이 말과 함께 홀란이 검을 내려찍었다.

눈을 치켜뜬 케인이 황급히 검을 올려쳐 그 일격을 막았다.

촤아악-!

두 개의 검이 맞닿으며 불씨가 튀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밀린 쪽은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 케인의 검이었다.

“큭-!”

신음을 내뱉은 케인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가 어디서 이런 힘이…!’

입술을 악문 케인이 간신히 홀란의 검을 튕겨냈다.

반동으로 잠시 몸을 비틀거린 홀란이었지만 그의 검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내려찍어지는 홀란의 검이 세상을 가를 듯한 기세로 케인의 정수리로 향했다.

그 광경에 케인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린 그때였다.

홀란의 온몸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그와 동시에 케인에게 향하던 홀란의 검도 그 힘을 잃어버렸다.

눈을 치켜뜬 케인이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촤악-!

재빠르게 휘둘러진 케인의 검이 홀란의 가슴팍을 다시 한번 갈랐다.

썩은 피를 왈칵 토해낸 홀란이 뒷걸음질 치다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버쿠젠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가주님-!!!”

이 외침에 홀란이 끊어지려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운명도 기구하군. 하필 마지막 순간에 내 생명이 다하다니.’

딱 한 뼘.

그 한 뼘만큼만 칼을 더 뻗었더라면 눈앞의 사내를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 사이 칼을 치켜든 케인이 중얼거렸다.

“…썩어도 준치라고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군.”

이 말과 함께 케인이 눈빛을 번뜩였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목을 베어내 아더 바이에른에게 보여줘야겠군. 잘 가라 홀란 레버쿠젠.”

홀란이 두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홀란 레버쿠젠이란 칼잡이의 끝이 도달한 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홀란이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케인의 검이 움직였다.

솨악-!

날카로운 예기가 허공을 베며 홀란의 목끝으로 향했다.

그 광경에 레버쿠젠 병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가주님!!”

그 다급한 외침과 함꼐 케인의 검이 홀란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온 무언가가 그 일격을 튕겨냈다.

챙-!

날카로운 쇳소리에 모두가 눈을 치켜떴다.

그 속에서 홀란의 목을 향하던 케인의 검을 튕겨낸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대부님 괜찮나요?”

이 질문에 홀란이 눈을 치켜떴다.

새하얀 천사가 제 앞을 가로막으며 서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기적에 홀란이 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괜찮긴… 다 죽어가는데.”

“…죄송해요. 너무 늦게 왔네요.”

홀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네. 아주 중요한 순간에 잘 와주었어… 고맙네. 아더 바이에른.”

이 말과 함께 홀란의 얼굴이 바닥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육체를 가뿐히 받아낸 아더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더 바이에른.”

아더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케인 도르문트.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과거를 뛰어넘은 악연.

그 운명이 마침내 결판이 나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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