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흰 수염의 설명에 아더는 생각했다.
‘카셀 씨의 기억이 되돌아오는 데 고통이 문제라면, 그 고통을 없애면 되는 거잖아?’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없애냐는 것이다.
고민하던 아더는 어렵지 않게 방법을 떠올렸다.
‘바이에른의 혈통. 그 힘으로 내가 고통을 가져와버리면 그만이잖아?’
고통을 나눌 수록 힘이 된다.
오래 된 격언을 떠올린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이에른 혈통의 힘도 실험 해보고 카셀 씨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겠어.’
거기다 고통을 참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
트롤의 혈통을 얻은 뒤, 매일 같이 사지 한군대가 잘리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웬만한 고통에는 면역이 생겨버린 것이다.
결정을 내린 아더는 곧바로 바이에른 혈통을 일깨웠다.
파앗-!
그 순간 새하얀 두 날개가 어두컴컴한 지하감옥 안을 밝혔다.
그 광경에 흰수염이 놀라 소리쳤다.
[자, 자네? 왜 갑자기 바이에른 혈통을 일깨운 건가?]
흰수염의 말에 아더가 대답했다.
“카셀 씨의 고통을 좀 나눠 받으려고요.”
[…뭐? 저 놈의 고통을 자네가 나눠받는다고?]
“네. 그러면 카셀 씨가 원래대로 되돌아올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어요?”
흰수염이 기겁해 만류했다.
[이 사람아! 저건 그냥 고통이 아니야!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이라고! 그런 고통을 뭐하러 자네가 가져가나!]
섬뜩한 경고이기도 한 그 말에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인재를 얻으려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네. 예전부터 뛰어난 군주들이 말해왔잖아요? 인재들을 얻기 위해 몸소 뛰어다녀야 한다고. 그러니 저도 그 말에 따라야죠.”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이에른의 가주가 되었으니 이 한몸 불살라 인재들을 모아야죠. 그래야 다가올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을 테니깐.”
흰수염이 경악해 중얼거렸다.
‘그 말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라는 뜻은 아닐 텐데?’
뛰어난 인재를 얻기 위해 정성을 들이란 소리지, 어느 군주가 미쳤다고 죽음과 비슷한 고통을 겪으려 한단 말인가?
역사를 뒤져보아도 그런 미친놈은 매우 드물었다.
허나 흰 수염은 곧 눈을 치켜뜨며 납득 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눈앞의 바이에른 가주도 미친놈이었기 때문다.
그것도 천 년을 산 살면서 본 최고의 미친놈.
그 미친놈이 카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카셀 씨, 당신의 고통. 제가 나눠받을게요.”
그 순간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 이변에 아더가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존재시여.’
카셀 브리드.
영혼이 쪼개진 칼잡이의 목소리였다.
* * *
눈앞의 광경에 아더의 눈이 커졌다.
‘뭐지 여긴?’
거대한 동굴.
낮게 가라앉은 어둠.
그리고 회색 머리칼의 소년.
어딘가 뒤틀렸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광경에 아더가 중얼거렸다.
‘저 머리색… 설마 여긴 카셀의 기억인가?’
그 탓에 아더의 눈이 끔뻑여졌다.
‘난 기억이 아니라 카셀의 고통을 가져간건데?’
잠시 곰곰히 고민한 아더가 끔뻑이던 눈을 치켜떴다.
카셀이 고통 받는 원인은 그의 기억 때문.
즉 그의 고통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의 기억을 가져간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오오… 그럼 카셀이 왜 우리 가족을 암살하려 들었는지 해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그의 기억을 보면 된다는 말이잖아?’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운이 좋군.
그 때 회색 머리칼의 소년.
카셀 브리드가 엎드려 절을 했다.
‘존재시여.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이 말과 함께 어둠이 일렁거렸다.
뒤늦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가 흠칫 몸을 떨었다.
‘…뭐야 저게?’
어둠 속에 가려진 무언가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것이 기억이라는 걸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존재감이었다.
그 탓에 아더가 긴장감을 일깨운 순간 세상이 뒤흔들렸다.
[카셀. 용의 아이야. 오늘도 수련을 하고 왔느냐?]
그 흔들림 속에서 카셀이 웃었다.
‘예. 오늘도 검을 휘두르고 왔습니다.’
대답과 함께 카셀이 걸어나갔다.
동시에 어둠 너머 붉은 비늘이 번쩍였다.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드래곤….’
지상의 수호신.
모든 마법 주종이자 생물을 관리하는 왕이라 일컬어지는 지고한 존재.
신들의 대리자라고 불리는 드래곤이 놀랍게도 눈앞에 있었다.
&
카셀이 천진하게 웃으며 드래곤을 향해 물었다.
‘존재시여. 저에겐 왜 마법을 안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너의 운명에는 마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 그럼 저는 평생 마법을 배우지 못하는 겁니까?’
[아니.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닌 바꾸어 나가는 것. 내가 본 것은 네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오오! 그럼 저도 나중에는 마법을 배울 수 있단 소리군요!’
신이 난 카셀이 드래곤의 딱딱한 비늘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드래곤이 낮은 울음을 토해냈다.
마치 고양이가 그루밍을 당했을 때 내는 소리 같았다.
그 탓에 어이가 없어진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
카셀이 실제로 드래곤을 아는 것도 놀라운데, 그 드래곤이 고양이한테 그루밍을 당한 것마냥 울음을 토하다니?
지금 자신이 보는 광경이 정녕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심이 가는 순간이었다.
허나 하나둘 씩 보여지는 지난 카셀의 기억을 보니 또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회색 머리칼의 소년은 드래곤에게 말을 배웠다.
예의를 배웠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웠다.
부모가 가르쳐줘야 할 것들을 회색 머리칼의 소년은 드래곤에게서 배웠고, 그 탓에 드래곤을 부모처럼 여기며 따랐다.
드래곤 또 한 그런 소년을 내치지 않으며 아주 세심히 모든 것을 가르쳤다.
그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광경에 아더는 결국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세상에… 드래곤의 손에 길러진 아이가 정말로 있었다니.’
그 어떤 기적도 지금 눈앞의 광경만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소년이 왜 갑자기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고 되내이는 걸까?
과거에 맞지 않은 현재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돌연 배경이 바뀌었다.
비가 내리는 아주 어두운 밤이었다.
그 속에서 한 존재가 심장이 꿰뚫린 채 쓰러졌다.
[…카셀. 복수를 꿈꾸지 말거라.]
카셀을 돌봐주던 붉은 색 비늘의 드래곤이었다.
그 광경에 아더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그 때, 카셀이 오열하며 소리쳤다.
‘도대체 누가!! 누가!!… 이런 짓을 한 겁니까!’
[누가 저지른 게 아니다. 이것이 내 운명. 그러니 복수를 꿈꾸지 말고 너의 삶을 살거라.]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존재시여!’
카셀의 거친 외침에 드래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복수에 잡아먹힌 네 삶은 불행해질 거다. 그러니 오늘의 일을 잊고 인간들에게로 돌아가거라. 그것이 너에게 있어 가장 행복….]
말을 흐린 드래곤의 숨이 멎었다.
그와 동시에 카셀의 숨도 멎었다.
그 찰나의 고요 속에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오오오-!]
세상이 떠날 갈 것 같은 그 거친 울음소리에 카셀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검은 색 비늘의 괴수가 하늘을 승천하고 있었다.
‘…드래곤?’
이 말을 되내인 카셀의 눈동자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흔들리던 몸은 곧 안정을 되찾았고, 거칠게 뛰던 심장도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 상태에서 카셀은 심장이 없어진 드래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존재시여. 당신은 복수를 꿈꾸지 말라했지만, 안 되겠습니다.’
카셀이 드래곤이 준 칼을 집으며 이를 악물었다.
‘당신을 이런 꼴로 만든 저 드래곤을 제 손으로 죽여야겠습니다.’
한 소년이 복수를 결심한 순간이었다.
* * *
소년은 청년이되었다.
‘존재를 죽인 드래곤을 죽이겠어.’
그는 붉은 빛 드래곤의 복수를 위해 대륙을 해맸다.
방랑자마냥 전역을 돌아다니던 그는 사기도 당하고 죽을 뻔 한 위기도 처했다.
허나 드래곤이 가르쳐준 검술로 그 위기를 넘겨내며 끊임없이 원수를 찾아매했다.
그렇게 복수만을 꿈꾸며 세상을 해매던 그는 돌연 아케인에 정착했다.
‘제가 당신이 찾는 그 드래곤을 찾아줄게요.’
아케인의 중계인이자 카셀의 담당 브로커.
보니였다.
‘대신 절 위해 일을 좀 해주세요. 괜찮죠? 카셀?’
그녀의 제안에 카셀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만나 본 사람들 중, 보니는 꽤나 선한 인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셀은 아케인의 용병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흘러 보니는 카셀에게 약속대로 드래곤의 위치를 찾아주었다.
‘제국의 북쪽에 드래곤과 닮은 괴수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이 말과 함께 보니가 망설였다.
‘하지만 카셀… 굳이 그 괴수에게 가야하나요?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칼잡이라 해도 그 괴수는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괴물….’
말을 흐리는 그녀를 향해 카셀은 고개를 저었다.
‘누님. 제 걱정을 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저는 가야합니다.’
카셀이 이가 빠진 검을 잡으며 몸을 돌렸다.
‘복수를 이루는 것… 그게 제가 살아온 이유니깐요.’
보니는 카셀을 말릴 수 없었다.
이미 결심을 한 남자의 고집은 강철보다 단단했다.
&
카셀은 제국의 북쪽으로 향했다.
아케인의 북쪽 만큼이나 설원으로 뒤덮인 그곳은 거친 산맥과 눈보라가 매일 같이 휘몰아쳤다.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몇날 며칠을 해매던 카셀은 이를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해낼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찾아낼 수나 있을까?
존재를 잃고 인간의 사회로 나온 지금.
세상의 인식에서 드래곤이란 '신화'속에서나 등장하는 몬스터였다.
그런 전설 속 존재를 과연 찾아내 죽일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면 나는 평생 이곳에서 해매야 하나?’
카셀의 굳은 마음이 일순간 흔들렸다.
오랫동안 제국 북부의 차디찬 바람을 맞은 탓에 그의 심신은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그 탓에 고민이 길어졌지만, 곧 다시 마음 다잡았다.
‘복수를 해야 해. 그게 내가 살아온 길이니깐.’
무뎌졌던 마음을 칼날마냥 다시 벼루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카셀은 5년이나 제국의 북부를 해매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낼 수 있었다.
‘…….’
드래곤과 닮은 괴수.
아니 '악마' 그 자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괴물을.
* * *
어둠이 내려앉은 산맥.
소년은 어느사이엔가 건장한 사내가 되어 거대한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가파른 호흡과 떨리는 눈길.
그리고 상처투성이의 몸이 그가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 속에서 어둠이 일렁거렸다.
[…그래 기억났다.]
그 어둠과 함꼐 등장한 것은 괴수였다.
드래곤을 닮은 검은색 괴수.
[레드 드래곤. 파라하 드 카셀의 하트를 뜯어낼 떄, 곁에 있던 애송이였군.]
이 말과 함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세상을 물들였다.
그와 동조해 하늘의 태양도 먹구름에 점차 가려졌다.
그 이변 속에서 카셀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널 찾기 위해 일평생을 해맸다.’
[파라하 드 카셀을 그렇게 시키더냐? 제 복수를 해달라고?]
‘아니 내 의지다.’
카셀이 눈빛을 번뜩이며 검기를 뿜어냈다.
‘내 부모를 죽인 원수. 널 죽여야지만 내 삶의 평온에 찾아올 것이다.’
괴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습구나! 필멸자가 감히 드래곤을 부모라 칭하다니! 이만큼 희극적인 소재가 또 어디있을까!]
이 말과 함께 카셀이 괴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무모한 돌진과 함께 카셀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칼을 휘두르고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한 모든 무기들을 놈에게 쏟아부었다.
허나 드래곤을 닮은 괴수의 비늘 하나 부술 수 없었다.
결국 피투성이가 된 칼잡이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런 카셀을 내려다보던 드래곤을 닮은 괴수가 중얼거렸다.
[너는 곱게 죽어선 안 되겠구나.]
이 말과 함께 드래곤을 닮은 괴수가 의지가 꺽인 칼잡이의 영혼을 틀어잡았다.
[평생을 지옥 속에서 해매게 해주마. 죽지도 못할 고통 속에서.]
복수의 끝은 파멸.
칼잡이의 칼끝이 부러진 순간이었다.
* * *
수 십 가지의 파이프.
이름조차 모르는 과학기구.
그 속에서 한 남자 캡슐 안에 잠들어 있었다.
카셀, 조금 전 괴수를 향해 무모한 돌진을 했던 칼잡이였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한 사내, 아니 뱀이 중얼거렸다.
‘흠… 넘겨 받긴 했는데, 이 놈을 어찌 써먹을꼬?’
그 순간 아더의 눈이 커졌다.
카셀을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리는 뱀은 다름 아닌 도르문트의 13귀의 한축을 담당하는 그 '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조금 전 카셀이 덤벼들었던 그 괴수와 도르문트가 한 패라고?’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아더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뱀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어차피 길들이기는 글렀으니, 영혼이라도 쪼개 봐야겠군.’
그 웃음과 함께 뱀의 혀가 날름거렸다.
‘수준 높은 칼잡이의 영혼을 쪼개어 또 다른 육체에 담으면… 과연 그 실력을 똑같이 발휘 할 수 있을까? 만약 성공한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 소재가 되겠어.’
이 말과 함꼐 뱀이 온갖 약물과 주술.
그리고 마법을 카셀에게 주입했다.
그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고, 카셀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은 더욱 끔찍했다.
허나 실험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명이 터져나오는 만큼 더 악랄한 마법과 주문.
그리고 약들이 카셀에게 주입당했다.
그것들에 의해 카셀의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은 찢기고 찢겨 그 원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끔찍한 실험을 참지 못한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 뱀의 머리를 후려쳤다.
후웅-!
하지만 주먹은 뱀의 머리를 통과 할 뿐.
카셀에 대한 실험은 여전히 계속 되었다.
결국 그의 영혼은 찢겨지고 육체는 사지가 분해 되어 또 다른 육체에 각기 담겼다.
그 속에서 카셀이 중얼거렸다.
‘어디었어요 존재시여. 절 구원해주세요.’
어른이었던 그는 어느사이엔가 소년이 되어 있었다.
그 소년은 드래곤을 만나기 전과 똑같이 울음을 터트리며 붉은 빛 드래곤을 찾아해맸다.
그 광경에 아더가 거칠게 소리쳤다.
허나 목소리가 안 나왔기에 소리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더는 고함을 지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의 분노에 의해 세상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그 속에서 아더가 중얼거렸다.
‘당신들이… 도대체 어떻게 같은 인간일 수가 있지?’
한 인간을 이토록 망가트려놓다니.
한 인간을 이토록 비참한 꼴로 만들다니.
도저히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그 짓에 아더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가.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카셀은… 나와 닮았어.’
둘 모두 도르문트에게 인생이 망가졌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래서 복수를 꿈꿨지만 더 비참한 인생을 맞이한 쪽은 카셀이었다.
‘나는 적어도 죽을 수 있었지만… 카셀은….’
그는 죽지도 못한 채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을 매일 같이 겪으며 지금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 카셀이 너무 불쌍했고, 도르문트에 대한 복수심은 더욱 커졌다.
그 교차된 감정 속에서 아더의 두 눈빛이 번뜩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저 불쌍한 영혼이자 한 사내를, 구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아더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스쳐지나갔다.
‘이대로 카셀을 죽이면… 그는 저 고통 속에서 해방이 되는 걸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 탓에 아더는 망설였다.
죽음이 과연 카셀에게 있어 진정한 구원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울고 있는 카셀에게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 거대한 울림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천사여. 소원을 비나이다.]
카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던 다정한 드래곤의 목소리였다.
그 탓에 깜짝 놀란 아더였지만, 그 어디에도 드래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부디 자비를 배풀어 저 아이에게 손을 뻗어주십시오. 그것이 저 아이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더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넋을 잃었다.
‘기적? 마법? 뭘까?’
어떻게 죽어버린 드래곤의 목소리가 제 귓가로 들려오는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그 모든 것이라 판단내렸다.
‘드래곤의 마법인 용언은 기적. 그는 죽어서도 카셀을 보호하기 위해 마법이자 기적을 걸어둔 거야.’
종족을 뛰어넘는 그 부모 자식간의 정에 아더의 가슴이 시큰해졌다.
동시에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제가 카셀을 구원할게요. 걱정마세요.’
이 말에 레드 드래곤.
파라하 드 카셀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부디 저 불쌍한 아이를 굽어 살피시길….]
말을 흐린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아더의 등 뒤에 두 날개가 치솟아 올랐다.
펄럭-!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울고 있는 카셀에게 다가간 아더가 손을 뻗었다.
그 손길에 깜짝 놀란 카셀이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아더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카셀, 당신의 부모가 보내온 천사에요.”
카셀의 눈이 커졌다.
‘부모라면….’
“파라하 드 카셀. 당신의 하나 뿐인 부모죠.”
카셀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제 부모님이 보내온 천사….’
그 속에서 아더가 재차 손을 뻗었다.
“제 손을 잡아요. 제가 당신을 구원할게요.”
소년이 된 카셀이 망설였다.
하지만 곧 눈빛을 빛내며 그 손을 잡았다.
‘당신을 믿을 게요 천사님.’
그 순간 빛이 터져나오며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파앗-!
그 기적은 너무나도 작지만 충분히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