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84화 (184/265)

제184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어라, 이분은….”

그 모습에 헤이치가 질문했다.

“아시는 분입니까?”

“…네. 홀란 레버쿠젠 대부님이잖아요?”

헤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가주님의 대부이자, 전전가주님인 레오 바이에른 님의 절친한 친우. 두 분께서는 술잔을 나누며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건 알고 있는데 헤이치. 왜 홀란 레버쿠젠 대부님이 전쟁에 필요한 거죠?”

“그야 레버쿠젠 가문이 저희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가문의 부족한 것을… 레버쿠젠 가문만이 채워 줄 수 있다?”

“예. 가주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희 가문은 지금 전쟁을 치를 병력이 없습니다.”

이 말과 함께 헤이치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한 장의 양피지였는데 수많은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들을 가리키며 헤이치가 설명했다.

“바이에른 고성 영지를 포함해 수도 호위 병력까지 합치면 현재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1,000명. 그 외 기타 자원까지 끌어모으면 한 200명 더 늘어나겠군요.”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공작가의 병력이 고작 천 명이 다라고요?”

“예. 전부입니다.”

“…좀 적긴 하네요?”

“많이 적은 편이죠. 일개 백작만 해도 거느린 사병의 숫자가 2천은 넘어가는 데 말입니다.”

“그럼 도르문트 쪽은 얼마나 되죠?”

헤이치가 어깨를 으쓱였다.

“2만.”

“…!”

“저희에 딱 스무 배군요. 뭐, 이것도 제 예상 수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보다 더 많은 숫자가 징집되겠지요.”

헤이치의 설명에 아더가 입이 벌어졌다.

차이가 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따지면… 사실 붙어 볼 것도 없겠네.’

거기다 상대는 정복 전쟁을 하느라 이미 단련이 끝난 정예군들이다.

현시점에서 최고의 군을 뽑으라면, 모두가 도르문트 군대를 뽑을 정도.

그런 의미에서 바이에른 병사들이 도르문트 군대를 이기는 건 기적이 일어나도 불가능해 보였다.

허나 차이가 나는 것은 군 병력뿐만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기사단입니다.”

헤이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사실 현대 전쟁에서 군 병력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군사 숫자가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전쟁 승패는 기사단에서 판가름이 나거든요.”

아더의 눈이 커졌다.

“저희 기사단 숫자가 몇 명인데요?”

헤이치가 한숨을 퍽 내쉬며 대답했다.

“…현시점에서 기사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을 겨우 끌어모으면 정확히 33명. 그리고 도르문트 쪽 기사단의 숫자는 300명입니다.”

“…!”

“솔직히 말해 병사들은 돈을 풀어 용병을 고용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기사들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헤이치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기사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은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보유한 기사들의 숫자는 곧 가문의 힘. 지금 저희 가문과 도르문트의 전력 차이는 33 대 300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이 말에 아더의 표정이 황망해졌다.

‘흠… 스무배 차이보다는 낫지만, 10배도 만만치 않은데?’

기사 300명이면 검기를 뽑을 수 있는 칼잡이가 300명이란 소리다.

‘과연 지금의 내가 기사 300명을 상대로 이길 수가 있나?’

곰곰히 고민하던 아더의 눈이 커졌다.

‘오? 못할 건 없어 보이는데?’

단순히 검만을 가지고는 힘들겠지만 혈통을 비롯한 흰 수염의 도움을 빌린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 탓에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지만, 헤이치는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대신 조금 전 설명에 이어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저희가 레버쿠젠 가문과 손을 잡는다면 그 격차를 단번에 줄일 수가 있게 되죠.”

헤이치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레버쿠젠 가문은 제국의 북부를 지키는 군사 가문. 그들의 전력은 도르문트와 비견됩니다. 만약 가주께서 그들과의 동맹을 이끌어 내신다면 이번 전쟁에서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호… 그래서 레버쿠젠 가문이 필요하다?”

“그렇습니다. 현시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수죠.”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좋은 의견이긴 한데, 과연 대부님께서 저희와 손을 잡고 전쟁을 치를까요?”

“승산이 없는 건 아닙니다. 홀란 레버쿠젠 각하께서는 가주님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으니깐요.”

“제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요?”

헤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레오 바이에른 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홀라 레버쿠젠 각하께 가주님을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한 번도 받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헤이치가 눈빛을 빛냈다.

“최근 레버쿠젠 가문의 상황도 썩 좋지 않습니다.”

아더의 눈이 커졌다.

“레버쿠젠 가문의 상황이 썩 좋지 않다니요?”

“정확히는 도르문트와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게 맞겠군요.”

헤이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레버쿠젠 가문은 북부 대공 직위를 두고 도르문트와 설전을 벌이는 중입니다.”

“…북부 대공 직위요?”

“예. 레버쿠젠의 북부 대공 직위는 제국의 탄생과 함께한 아주 유서 깊은 자리입니다. 제국의 초대 황제가 레버쿠젠 가문에게 제국의 북부를 맡김과 동시에 전권을 주었단 의미니깐요. 그런데….”

헤이치가 어깨를 으쓱였다.

“최근 도르문트가 그 북부 대공 직위 해제를 논하면서 두 가문의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즉, 레버쿠젠도 도르문트라는 적을 두었다?”

“흘러가는 상황만 보면 충분히 그래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가주님.”

헤이치가 힘주어 말했다.

“만약 도르문트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레버쿠젠 가문을 섭외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

헤이치의 긴 설명이 끝나고, 아더는 고민에 빠졌다.

‘흠… 레버쿠젠 가문이라.’

인연이 적지 않은 가문이다.

그곳의 가주인 홀라 레버쿠젠도.

그녀의 손녀인 ‘엘린 레버쿠젠’도.

‘그러고 보니 흰 수염 씨의 저주에서 빠져나와 유일하게 못 본 사람이 이제 엘린뿐이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엘린을 떠올렸다.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케 하는 붉은 머리칼의 소녀.

항상 자신을 바라보며 웃어 주던 그 소녀를 떠올리던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엘린도 보고 싶네. 그때 편지에 대한 답장도 궁금하고.”

그런 의미에서 레버쿠젠 가문에 한 번쯤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중요한 동맹을 제안하는 것이니, 편지보다는 직접 찾아뵙는 게 맞겠지.’

오랜만에 두 사람의 얼굴도 보고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 전에… 이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지?’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젯밤 손질해 두었던 비스트를 툭툭 건드렸다.

“흰 수염 씨 깨어 있어요?”

아더의 부름에 비스트가 옅은 진동을 보내왔다.

[나야 항상 깨어 있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아더가 대답했다.

“그 저번에 보았던 영혼이 쪼개진 칼잡이, 그분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혹시 찾으셨어요?”

흰 수염이 말을 흐렸다.

[그 일을 말하는 거면… 나도 고민을 꽤 많이 해 봤는데, 쉽지 않아 보여.]

아더의 눈이 커졌다.

“불가능한 건가요?”

[그건 아니야. 하지만 손상된 영혼을 복구하는 건 힘들 걸세. 하지만….]

비스트가 다시 옅은 진동을 보내왔다.

[그의 기억을 되돌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흰 수염의 말에 아더 눈빛이 반짝였다.

“어? 그럼 영혼을 수복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아요?”

[글세… 기억이 돌아오면 과연 그가 온전해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간단한 이야기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없는데 기억만 돌아왔어. 그럼 보통 사람은 어떻게 될 것 같나? 대부분 정신이 나가 미쳐 버리지. 나라는 감각이 없는데 타인의 기억이 멋대로 들어왔으니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흠… 뭔가 이해가 갈 듯하면서 이해가 안 가네요.”

[그건 자네가 미쳐 있어서 그래.]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가는 거예요?”

[뭐가? 난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아더가 입술을 삐죽였다.

‘어우… 뭔가 모르게 얄밉단 말이지, 흰 수염 씨.’

미치지 않은 사람 보고 미쳤다 하다니.

언젠가 한번 교육을 해야 할 듯싶었다.

그 생각과 함께 아더가 부탁했다.

“그럼 기억이라도 원래대로 되돌려 줘요.”

[그건 쉽지. 그의 영혼에 각인된 정보만 끄집어내면 되니깐.]

흰 수염의 대답에 아더가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바이에른의 영지인 [에덴]에서는 그 흔한 도둑놈도 보기가 쉽지 않아 지하 감옥이라 해 봐야 쇠창살을 친 게 전부였다.

허나 이번에 가두어 놓은 자는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칼잡이.

그 탓에 그의 사지는 물론이고 온몸을 특수한 마법이 걸린 구속구들로 결박해 놓았다.

아더는 온몸이 결박된 카셀 브리드를 바라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오… 이 정도 결박이면 저도 탈출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이 말에 눈을 감고 있던 카셀이 눈을 떴다.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나 참. 그 상태가 되고도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니. 대체 무슨 원수를 져서 그래요?”

“드래곤을… 죽여야 한다.”

“뭐, 마법을 해체하고 기억을 되돌리면 알 수 있겠죠. 흰 수염 씨?”

아더의 말에 비스트가 진동했다.

[날 저자의 머리에 가져다 대게.]

아더가 군말 없이 비스트를 카셀의 머리 위에 올려다 두었다.

그 순간 비스트에서 검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카셀을 순식간에 감쌌다.

그 이변에 아더의 눈이 살짝 커진 순간, 카셀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에 아더가 놀라 물었다.

“어? 흰 수염 씨? 이거 맞는 거죠?”

[내가 경고했지 않나? 나라는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 기억이 되돌아오면 미쳐 버린다고.]

아더가 볼을 긁적였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해 보이는데요?”

비명을 내지르는 카셀의 표정은 지옥에서나 등장할 법한 악귀와 닮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져 오는 그 모습에 아더가 잠시 할 말을 잃었을 때, 비스트에서 다시 한번 거친 폭발이 일어났다.

쾅-!

그와 함께 카셀의 머리 위를 떠난 비스트가 저절로 아더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동시에 흰 수염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기억은 되돌려 놨네. 나머지는 저 친구의 정신력을 믿어야지.]

이 말에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고통을 느끼고 있는 카셀이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아더가 질문했다.

“카셀. 저 알아보겠어요?”

아더의 질문에 카셀이 턱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너는… 내… 라이벌?”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 맞아요. 라이벌은 아니지만, 당신과 함께 일했던 동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건 제가 묻고 싶네요. 당신 왜 그렇게 됐어요?”

카셀이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드래곤을 죽이려… 북부 산맥으로 갔다… 그곳에서… 도르문트.”

아더의 눈빛이 반짝였다.

“도르문트? 그들과 연관이 있는 건가요?”

“도르문트… 도르문트… 도르… 크아아아악!”

카셀이 움찔거리다 비명을 질렀다.

이전보다 훨씬 큰 비명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눈살을 찌푸리며 비스트를 흔들었다.

“흰 수염 씨 방법 없어요? 저러다 상황을 듣기도 전에 죽겠는데요?”

비스트가 회답이라도 하듯 진동했다.

[어쩔 수 없어. 저건 영혼이 쪼개진 것에 대한 반동이야. 지금 느끼는 저 고통을 이겨 내면 그다음은 괜찮아지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네.]

“그럼 저 고통만 없어지면 된다는 거예요?”

[뭐, 그렇지. 그런데 왜 저놈에게 집착하나? 저놈은 자네 가족을 암살하려고 든 암살자 아닌가?]

아더가 고통에 찬 카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래서 대답에 따라 죽이려 했는데,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생각이 바뀌었다고?]

“네. 카셀의 힘을 이용하고 싶어졌거든요.”

흰 수염이 잠시 침묵했다 중얼거렸다.

[암살자의 힘을… 이용한다고? 설마 저놈을 길들이려고?]

“정확히는 고용이죠. 아직 모든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예상대로 카셀 씨도 도르문트에게 이 꼴을 당한 것 같아요.”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일단은 살려 두고 상황에 따라 그의 힘을 이용하려고요. 지금 우리 가문에는 확실한 기사, 칼잡이들이 필요하거든요.”

흰 수염이 탄성을 터트렸다.

[허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자넨 진짜 독특하군.]

“그래서 지금의 저 고통만 넘기면 된다는 거죠?”

[일단은 그래. 저 고통만 넘기면 그다음은 편안해질 거야. 기억이 쪼개진 영혼에 다시 새로 각인되었을 테니깐.]

흰 수염의 말에 아더가 생각했다.

지금 바이에른에는 믿을 수 있는 칼잡이가 필요하다.

‘그것도 수준 높은 칼잡이.’

헤이치의 말에 따르면 가문의 기사는 고작 33명.

그들조차도 기사라 부르기 애매한 수준인 이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카셀 같은 사람이 다시 가족을 암살하려 들면 곤란해지지.’

그래서 아더는 상황에 따라 카셀을 제 사람으로 영입하고 싶었다.

‘만약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면, 확실한 전력이 되겠지?’

오망성의 눈동자가 있으니 진실된 대답은 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즉 상황만 좋게 흘러간다면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칼잡이를 고용할 수 있단 소리다.

문제는 지금의 저 고통을 카셀이 이겨 내야 하는데 상황만 놓고 보면 불가능해 보였다.

카셀이 아무리 수준 높은 칼잡이라도 영혼이 쪼개진 상태의 그의 정신은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대로 가면 저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하고 카셀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탓에 고민하던 아더는 곧 방법을 떠올렸다.

‘…흠.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인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제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파앗-!

아더의 등 뒤로부터 두 장의 날개가 치솟으며 펄럭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흰 수염이 깜짝 놀라 질문했다.

[천사의 날개? 그걸 왜 갑자기 꺼내는 거지?]

아더가 두 장의 날개를 퍼덕이며 대답했다.

“카셀을 고통에서 구원하려고요.”

비스트가 옅게 진동했다.

저게 무슨 말이지? 카셀을 고통에서 구원하다니?

그때, 아더가 손을 뻗어 카셀의 머리 위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살며시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카셀. 당신의 고통, 제가 가져갈게요.”

그 순간 거친 빛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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