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86화 (186/265)

제186화

카셀은 어둠을 헤맸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를 그런 어둠이었다.

‘아마 평생을 이곳에 머물겠지.’

누군가 그랬던가.

복수의 끝은 결국 비극이다.

그 말이 지금의 자신과 똑 들어맞았다.

복수에 성공하기는커녕 원수의 손에 붙잡혔다.

그 원수의 조력자들에게 넘겨져 온갖 실험을 받았다.

온몸이 분해되고 영혼이 쪼개지는, 아주 처참한 실험이었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은 카셀의 정신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 그의 머리와 가슴을 뒤흔든 것은 복수에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존재시여… 당신의 원한을 꼭 갚고 싶었는데 실패했습니다….’

미치도록 분하고 서러웠다.

복수를 위해 일평생을 살아왔는데, 그 복수마저 꼴사납게 실패해버렸으니.

결국 카셀 브리드란 한 인간의 삶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그 탓에 카셀은 울음을 터트렸다.

서러움이 담긴 눈물.

지금 상황에 대한 공포가 담긴 눈물.

자신의 한심함이 담긴 눈물.

그렇게 쉼없이 눈물을 흘리던 카셀은 탄식을 터트렸다.

‘…아.’

이 어둠 속을 유일하게 버티게 해주었던 붉은빛 드래곤이 더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 보던 그 따스한 눈빛이 이제는 그려지지 않았다.

그 사실에 카셀의 마음을 지탱하던 마지막 기둥 하나가 마침내 부러져 버렸다.

‘이제… 쉬고 싶어.’

이 말과 함께 카셀이 마침내 무너져내렸다.

주변을 감싸던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 그런 카셀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주 조금 씩, 심연으로 온몸이 빨려들어갈 때였다.

아주 작은 빛이 눈앞에서 터져나오며 속삭였다.

[멍청하네요. 복수를 위해서 살아왔는데, 이렇게 포기 할 거라고요?]

그 순간 카셀의 눈이 커졌다.

‘당신은… 누구?’

[누군긴요. 당신의 부모가 보내온 천사죠.]

카셀의 커진 눈이 끔뻑여졌다.

‘천사? 내 부모가 보냈다고?’

이해가 가지 않은 말에 카셀이 당황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눈앞의 작은 빛은 그 망설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제 손을 잡아요 카셀.]

이 말과 함께 눈앞의 빛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제 몸을 끌어당기던 어둠이 사라지고 커다란 손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린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제 이름과 명예에 대고 맹세할게요.]

그 손은 매우 커다랬다.

마치 자신을 보살피던 누군가의 손처럼.

[당신의 복수만큼은 반드시 완성시켜 드릴게요. 그러니 저와 함께 여기를 빠져나가요.]

이 말에 카셀이 입술을 달씩이며 재차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질문에 빛이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요 천사라고? 흠… 하지만 당신에게는 이게 어울리겠네요. 라이벌.]

카셀의 눈이 커졌다.

‘라… 이벌?’

[네. 저를 그렇게 불렀잖아요? 기억 안나요?]

빛의 말에 카셀의 입이 벌어졌다.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닮았다. 그 녀석의 목소리랑.’

누군가에게 재능의 벽을 느껴본적 없던 자신에게 두터운 벽을 선사했던 천재.

그랬기에 멋대로 라이벌이라 불렀던 검은 머리칼의 소년.

‘던… 전설이 되어버린 그 용병이랑.’

그 순간 카셀은 지금의 상황도 잊어버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치겠군. 갑자기 왜 그 놈의 목소리가 천사가 되어 들리는 거지?’

하지만 그것은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든 걸 잃어버린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는 것.

그것이 지금 상황의 전부였다.

눈빛을 번뜩인 카셀이 빛의 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천사건, 악마건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당신 말대로 딱 한 번의 기회를 제게 더 주십시오.’

이 말과 함께 부러진 줄 알았던 마음의 기둥이 다시 카셀을 지탱했다.

‘제 손으로 부모의 원수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그것을 주신다면 당신이 악마라 해도 따르겠습니다.’

카셀의 말에 빛이 대답했다.

[약속했어요? 제가 악마라 해도 따른다고.]

그 순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 * *

카셀은 눈을 떴다.

“…….”

밝은 햇살이 비처오는 방안이 보였다.

잠시 그 광경을 넋을 잃고 지켜보던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깨어났네요?”

흠칫 놀란 카셀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7년만에 보는 업계 동료가 방긋 미소 짓고 있었다.

“…던?”

“오. 오랜만에 그 이름 들어보네요. 반가워요 카셀.”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손을 내밀었다.

카셀은 당황하다, 그 손을 얼떨결에 마주잡았다.

그 속에서 아더가 조언했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음…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더라고요.”

카셀이 다시 한 번 흠칫 놀랬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내가 왜?

그 흔한 감기마저도 잘 걸리지 않던 육체였는데?

그 탓에 카셀이 눈살이 찌푸린 그 때, 희미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

어두컴컴한 연구소.

그 연구소의 캡슐에 갇힌 자신.

그곳에서 시행되던 온갖 악랄한 실험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실험의 과정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정교하게 그 부분만 도려낸 것처럼 말이다.

그 탓에 다시 한 번 당황한 카셀이 어쩔 줄 몰라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나한테 뭔 짓을 한거야 자네?”

카셀의 질문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설명하자면 긴데 들을 수 있겠어요?”

“…그럼 지금 상황에서 그 설명을 못 들을 건 또 뭔가?”

“밥먹어야죠.”

“……?”

“아침이에요. 그리고 아침 밥은 든든하게 챙겨먹어야죠. 그래야 오래 살고 건강해지니.”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카셀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카셀이 눈을 끔뻑이니, 아더가 손짓했다.

“식당으로 가죠. 소개 시켜 드릴 사람이 많아요.”

아더가 걸음을 옮겼고, 카셀은 당황하다 그 뒤를 일단 따랐다.

‘…뭐지? 내가 아직 꿈속인가?’

그런데 그 꿈속에 왜 7년전에 헤어진 업계 동료를 다시 만난다 말인가?

고민에 빠진 사이 식당에 도착했다.

아주 세련된 식당이었는데, 너무 고급져 보여 순간적으로 멈칫한 카셀이었다.

허나 태연하게 자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앉은 아더의 모습에 결국 그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또 다른 누군가가 등장했다.

요넬.

아더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등장에 카셀이 또 다시 흠칫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요넬이 살며시 미소지었다.

“사정은 들었어요.”

“…?”

“제 의지와 무관하게 도르문트 가문에게 이용당했단 사실을요. 그러니 경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녀의 말에 카셀이 당황하다 질문했다.

“…도르문트? 제가 그들에게 이용을 당했었단 말입니까?”

요넬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옆으로 다가온 아더가 속삭였다.

“저 친구. 아직 정신 좀 맹해요 어머니.”

“…그래 보이는 구나. 지금 내가 사정을 설명하는 건 아니겠지?”

“네. 나중에 제가 다 설명해줄 거예요.”

요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판단을 나는 믿으마.”

이 말과 함께 요넬이 손뼉을 쳤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수십가지의 요리가 세팅되었다.

그 진수성찬에 카셀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짓수나 퀄리티가 웬만한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그 탓에 카셀이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대체… 이게 뭔가? 무슨 일인가? 도저히 하나도….”

그 질문에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식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딸기잼을 듬뿍 받아 카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일단 먹어요.”

“…?”

“먹고 난 뒤에 이야기해요. 당신 때문에 저도 배고파 죽을 것 같으니까 배 좀 채우고 이야기해요.”

아더의 말에 카셀이 망설였다.

“내가… 이런 자리에 껴도 된다고?”

“못 낄 건 뭐가 있는데요?”

“하, 하지만….”

“어휴. 답답해라. 이렇게 시간 끌면, 당신이 원하는 설명을 듣는 것도 늦어져요, 카셀.”

핀잔에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

아더의 표정을 보니 고집을 꺾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카셀은 일단 자리에 앉기로 했다.

‘…밥 먹는 것 정도야, 상관없겠지.’

생각과 함께 카셀이 아더가 건네준 빵을 집어들었다.

그 광경을 아더는 물론이고 요넬과 근처에 있던 요리사들마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 속에서 카셀이 빵의 일부분을 베어물어 삼켰을 때였다.

그의 두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그 눈물에 카셀이 당황해 어깨를 떨었다.

그건 옆에 있던 아더와 요넬.

바이에른의 요리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흠?”

식빵 하나를 베어물었을 뿐인데,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다니?

허나 카셀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 바이에른의 식빵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맛있었나요?”

“어… 우리 에덴의 밀이 좋긴 하지만,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닌데?”

대화를 나눈 모자가 다시 한번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카셀이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빵을… 먹어본 게 얼마만이던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이토록 따뜻한 빵을 입에 댄 것이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실험실에 갇힌 뒤로 그가 먹은 것은 호스로 주입되는 정체 모를 약들.

빵은 고사하고 물조차 입에 대지 못한 것이 거의 햇수로 3년은 넘어갈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린 카셀이 결국 오열을 토해냈다.

“…허억… 헉.”

그 광경에 바이에른 모자가 놀래고, 바이에른 요리사들도 당황했다.

허나 카셀의 오열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그곳에서 빠져나왔단 사실을 실감했다.

‘마침내… 그 어둠이 끝난 거야.’

그 순간 지독한 공포와 두려움이 빵 한조각과 함께 날라갔다.

그 탓에 이번에는 그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모습에 아더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카셀, 제정신 맞죠?”

이 질문에 카셀이 울며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제정신이야.”

“…제가 보기엔 아닌데요?”

“아니. 제정신 맞아. 단지….”

말을 흐린 카셀이 손안에 든 빵을 다시 한 번 베어물었다.

“지금 이 식빵이 너무 맛있어서 그래…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였다.

“빵은 많으니 울지는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지니깐.”

낯선 손님과의 아침 식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다사다난했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아더는 모든 걸 설명했다.

제 정체부터 시작해 카셀이 저지른 일.

그리고 그를 어떻게 구해냈는 지 까지.

그 과정에서 카셀의 현 상태까지 말해주었다.

“지금 당신은 제정상이 아니에요.”

이 말과 함께 아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영혼이 쪼개진 걸 수복하지 못했고, 몸상태도 솔직히 말해 제정상이 아니에요.”

“….”

“지금 당신 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에요. 그렇게 설계 되어진 몸이니깐요. 만약 무리하게 마나를 끌어올리면 그대로 심장이 멈출거에요.”

아더의 설명에 카셀이 제 가슴을 만져보았다.

두근… 두근…

느릿하게 뛰는 심장의 박동이 어색하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낯선 감각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평생 복수를 꿈꾸며 검을 잡았던 그 육체의 감각이 아닌 다른 타인의 감각이었다.

그 순간 카셀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맞아…이건 내 몸이 아니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가짜몸.

무리하게 마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설계되어진 육체.

그 안에 카셀이란 영혼이 녹아든 것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카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살날도 얼마 안 남았겠군?”

“…그건 당신 하기 나름이에요.”

“뭐, 괜찮아. 오래 살 생각은 없으니깐. 그런데 던?”

“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뭐가 궁금한데요 카셀?”

카셀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지금의 나는 카셀 브리드인가?”

“…?”

“그러니깐… 내가 카셀 브리드가 맞냐 이소리네.”

카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라는 감각이 없어. 육체도 내것이 아니고… 그런데도 나는 카셀 브리드인가?’

그의 말에 아더의 가슴이 시큰거렸다.

‘아아… 카셀. 너무 불쌍하네.’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만 그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불안감과 공포가 절절히 느껴졌다.

그 탓에 아더는 잠시 고민하며 신중히 말을 골랐다.

여기서 어떤 말을 해줘야 눈앞의 사내가 안심할까.

아더는 고민 끝에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 마법이나 이론. 그런 것들로 따지면 당신이 카셀 브리드인가 물으면 아닐 수도 있어요.”

카셀의 눈동자가 또 다시 흔들렸다.

그 속에서 아더가 설명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해요?”

“……?”

“결국 내가 카셀 브리드인가 아닌 가를 결정 짓는 건 당신이죠. 당신이 카셀 브리드라면 믿으면 그게 카셀 브리드죠.”

카셀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커졌다.

“…….”

그렇게 잠시, 침묵한 채 아더를 지켜보던 카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군. 맞아. 누가 나를 단정 짓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결정해야지. 나는 카셀 브리드가 맞아.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어.”

아더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 때, 카셀이 또 다시 질문해왔다.

“그런데 날 살린 이유가 뭔가?”

“…당신을 살린 이유요?”

“그래. 자네가 좀 독특하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닐 테고, 날 살린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 있기야 있죠.”

“그게 뭐지?”

“같이 싸우지 않을래요?”

“……?”

카셀이 눈을 끔뻑였다.

뭐지? 갑자기 같이 싸우자고?

이해가 가지 않은 아더의 말에 카셀이 당활할 때였다.

아더가 눈빛을 빛내며 설명을 이었다.

“당신을 이 꼴로 만든 놈들.”

“……!”

“그 놈들에 맞서 저랑 같이 싸우지 않을래요 카셀?”

그 형형한 눈빛에 카셀이 놀라 질문했다.

“날 이꼴로… 만든 사람들과 같이 싸우자고?”

“네.”

“…자네가 왜?”

“그야 저도 그자들에게 원한이 있기 때문이죠.”

카셀이 숨을 참았다.

“진심인가?”

“그럼 진심이죠?”

“그자들의 정체는 알고 있고?”

“알고 있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가문이자 흉측한 괴수를 거느리고 있어. 그런 그들과 진심으로 맞서 싸울 거라고?”

“네.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아더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은 줄곧 혼자서 그들과 싸워왔잖아요?”

“…!”

“그러니 이번엔 같이 싸워요. 같은 목적을 가진 복수자들. 동기도 이유도 충분하죠. 그런 우리가 힘을 안 합칠 이유가 없어요.”

아더의 말에 카셀이 입을 다물었다.

“…….”

설마 이런 제안을 받을 줄 몰랐기에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맞서 같이 싸우자고?’

드래곤마저 죽일 수 있는 괴물.

그 괴물과 협업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가문인 도르문트.

이 정도면 세상을 적으로 돌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여태 홀로 싸워왔는데, 눈앞의 사내가 놀랍게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 탓에 기쁘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한번에 일어나, 머리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 때 아더가 투덜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누군가 당신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카셀의 눈이 커졌다.

“누가 자네에게 날 부했다고?”

“네. 당신의 부모님이요.”

“…내 부모님?”

“카셀 드 프라하. 그러한 이름을 가진 드래곤이 제게 부탁했어요.”

“…!”

카셀의 입이 벌어졌다.

그 사이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나 뿐인 아들. 잘 부탁한다고. 그러니 저와 함께 하시죠 카셀.”

카셀이 그런 아더의 미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 기사가 되어줘서 적들의 목을 베어줘요.”

정신을 차린 카셀이 중얼거렸다.

“…나 같이 인간도 아닌 괴물이 자네의 기사가 되어도 되는 것인가?”

“못 할 거 뭐가 있어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저부터가 인간이 아니라 천사의 후손인데.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아더의 말에 카셀이 눈을 끔뻑이다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로 재미없는 농담이군.’

하지만 그 재미없는 농담덕에 잊고 있던 기억이 천천히 떠올랐다.

어둠을 해매던 자신.

그 자신을 끌어주던 거대한 손.

그와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

‘…날 구원한 건 아더 바이에른. 눈앞의 사내가 맞아.’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 어둠을 매해던 자신을 구원한 건 눈앞의 아더 바이에른이 맞았다.

그 순간 카셀의 흔들리던 마음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갔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눈앞의 사내에게 목숨의 빚을 졌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다.

결심을 한 카셀이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아더의 눈이 커진 그 때, 카셀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긴 말할 필요가 없겠군.”

“…….”

지금 이 순간 부터 나 카셀 브리드는 아더 바이에른의 기사가 될 것을 맹세한다. 이 맹세는 네가 날 버리지 않는 한 지속 될 거다. 그러니 던. 아니 아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린 카셀이 살며시 미소지었다.

“부디 날 배신하지 말아주게. 이제 내 목숨은 네 것이니깐.”

카셀의 말에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 말을 진심이죠? 당신 목숨 제거라는 거.”

“물론이지.”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에요?”

“한 번 내뱉은 말을 나는 번복하지 않는다.”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그 부분은 저랑 똑같네요. 저도 한 번 내뱉은 말을 번복하지 않아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요. 카셀 브리드. 아니, 이제 카셀 브리드 경이라 불러야 하나요?”

그 손을 카셀이 잠시 빤히 바라보다 마주잡았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아더 바이에른 공작 각하라 불러야 되겠군?”

카셀의 말에 두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속에서 아더가 생각했다.

‘아아… 카셀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져온 보람이 있네.’

카셀 브리드가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했던 그 일들.

그 일들을 카셀 브리드의 영혼에 기억을 주입하는 대가로 가져온 아더였다.

‘그러니 잘 써먹어야지. 기껏 힘든 일을 다거치면서 살려놨으니깐.’

그렇게 바이에른의 가주가 되어 첫번째 기사를 얻게 된 아더가 벅찬 오르는 심정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거의 준비가 끝나가…남은 건.’

고개를 돌린 아더가 북쪽을 바라보았다.

‘전쟁을 위한 든든한 동맹군. 그들을 얻으러 가야 해.’

무대는 다시 바뀐다.

제국의 북쪽.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는 설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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