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69화 (169/265)

제169화

아이린은 참담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7년만에 돌아온 제 오빠, 아더 바이에른이 정신을 잃고 혼절한 요넬을 납치해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1년째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데리고 갑자기 하이넨 호수로 가버리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허나 깊이 고민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 경위를 따지기 보다는 사태의 수습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재빨리 상황을 정비한 아이린은 곧바로, 하이넨 호수로 향했다.

10년 전, 제 오빠와 함께 들렀던 그 호수는 여전히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다.

그 탓에 잊고 있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지만, 아이린은 애써 그 감성을 떨쳐냈다.

그 추억을 제 오빠인 아더 바이에른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오빠를 찾게되면… 반드시 주의를 줘야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그러기 위해서는 아더와의 추억을 곱씹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은 아이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익숙한 뒷태가 시선에 들어왔다.

‘찾았다-!’

주먹을 꽉 쥔 아이린이 말에서 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뒤따라 달려온 바이에른 가신들도 차례로 말에서 내렸다.

그 속에서 잠시 심호흡한 아이린이 눈꼬리를 억지로 치켜세웠다.

“…오라버니. 이제 끝입니다. 포기하세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방긋 웃어보이며 말했다.

“네. 이제 됐어요.”

“…?”

“아이린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끝마쳤어요. 고마워요, 내 동생.”

아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을… 수월하게 끝마쳐?”

저게 무슨 소리지?

설마 이곳에 와서 진짜로 요넬을 치료했단 소리인가?

그 때 너무나도 듣고 싶던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아더?”

눈을 치켜뜬 아이린이 그대로 굳어졌다.

“…?”

그녀는 잠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눈을 끔벅였다.

뭐지? 왜 이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설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때 조금 전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아더… 맞니?”

아이린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어, 어머니?”

놀랍게도 기절해 있어야 할 요넬이 깨어나 있었다.

그 어떤 명의가 와도 깨우지 못했던 바이에른 공작가의 가주이자 제 어머니가 말이다.

그 뒤에 선 가신들도 뒤늦게 요넬을 발견하고서 경악해 소리쳤다.

“세, 세상에….”

“무슨!!!”

“가주님-!!!”

바이에른 가신들의 외침과 함께 요넬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앞에 선 아더가 눈물을 흘리는 요넬을 조심스럽게 껴안으며 속삭였다.

“못난 아들이… 너무 늦게 돌아왔네요. 죄송해요, 어머니.”

이 말에 아더의 품 안에 안겨있던 요넬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린을 물론이고, 바이에른 가신들이 작금의 상황도 잊은 채 탄성을 터트렸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도 절대로 일어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기적이.

* * *

깨어난 요넬을 대리고, 바이에른 사람들은 즉각 저택으로 복귀했다.

“가주님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모두 속도를 늦추고 경계를 강화해라!”

“저택에 미리 연락을 넣어, 의원들을 미리 대기시켜놔!”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잠에서 깨어난 요넬은 안전하게 저택에 복귀했다.

아더는 아직 기력이 부족한 그녀를 향해 방긋 웃었다.

“의원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깐, 진찰한 뒤 대화를 나누죠, 어머니.”

아더의 말에 요넬은 천진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꾸나… 들을 말도 할 말도 많은데, 굳이 급할 필요가 없지.”

그녀의 대답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였다.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요넬에게서 느껴져왔다.

‘어머니… 뭔가 이상하게 침착한데?’

아이린처럼 기절하는 모습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지금의 요넬은 제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차분했다.

자신이 아는 요넬이라면, 조금 더 호들갑을 떨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탓에 잠시 고민에 빠진 아더였지만, 곧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되었건 어머니가 깨어났다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중요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아더가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이 눈치를 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하고 아이린하고 거기서 뭐해요?”

아더의 말에 두 사람이 똑같이 어깨를 떨며 황급히 대답했다.

“…그,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공자님.”

“마, 맞아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오라버니!”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짓했다.

“그래요? 그럼 이쪽으로 와서 이야기하죠. 굳이 서서 대화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이린과 안나가 서로를 힐끔 바라보다, 결국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그러고도 입술을 한참을 오물거렸다.

그 망설임을 엿본 아더가 차분히 기다릴 때, 안나가 고개를 숙이며 불쑥 소리쳤다.

“죄송해요, 공자님!”

“…?”

“그… 이번 일은, 진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녀의 사과에 아더가 한 박자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아… 사과 하러 온 거였어요, 안나?”

“…네. 다시 한번 정말로 죄송합니다, 공자님. 감히 집사장인 제가 공자님을 믿지 못하고… 방해하려 들다니.”

그녀의 말에 아더가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이게 뭐라고 사과까지 받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죠. 무턱대고 어머니를 치료하러 간다고 고집을 부렸으니깐.”

안나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아더가 차분히 설명했다.

“그래서 상황을 설명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치료 방법을 도저히 납득시킬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무턱대고 밀어붙였어요.”

“……”

“그러니 제가 안나한테 사과를 드려야죠. 가문의 규칙을 어기고 큰 소란을 끼쳤으니 말이에요.”

아더의 말에 안나가 대답하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그럼… 일부러 나한테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셨단 건가?’

놀람을 숨기지 못한 안나가 탄성을 터트렸다.

동시에 조금 전 제 행동에 더욱 큰 부끄러움을 느낀 그녀였다.

집사장이라는 직책에 앉은 사람이, 가문의 사람을 믿지 못하고 반발하다니?

거기다 만약 아더의 납치를 막아, 요넬이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점까지 고려하니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결국 안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어라? 안나 우는 거예요?”

아더의 질문에 안나가, 화들짝 놀라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눈물샘은 쉽사리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더가 어디선가 꺼내든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 손수건을 공손히 받아든 안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자님. 죄송해요.”

아더가 훌쩍이는 안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뭐가 죄송해요? 제가 더 죄송해요.”

“진짜로… 죄송해요… 저는 집사장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허. 안나가 아니면 누가 집사장 자리를 맡아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더의 다정한 위로에 안나가 다시 한번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둘의 모습에 아이린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안나처럼 똑같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

수치심에 두 귓가를 빨갛게 물들인 아이린이 중얼거렸다.

‘멍청한 아이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누구보다 아더를 믿어줘야 하는 사람이, 되려 의심을 하다니?

그 탓에 입술만 달싹이고 있으니, 안나를 다독이던 아더가 돌연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시선을 마주친 아이린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질문했다.

“그런데 아이린은 왜 왔어요?”

“…….”

“설마 아이린도, 저한테 사과하러 온 거예요?”

아더의 말에 아이린이 고민하다, 결국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네. 사과하러 왔어요, 오라버니.”

그런 여동생의 모습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됐어요. 세상에 동생한테 사과받는 오빠가 어딨어요?”

“하, 하지만….”

“괜찮아요. 결과적으로 아이린 때문에 아무런 사고 없이 어머니를 치료 할 수 있었으니깐,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아더의 말에 아이린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숨길 수 없는 미안함을 아더가 잠시 지켜볼 때였다.

오열을 멈춘 안나가 슬며시 아더에게서 멀어지며 질문했다.

“…그런데 공자님. 도대체 가주님의 병을 어떻게 치료한 거예요?”

“아, 어머니 병이요?”

“네. 그 하이넨 호수에 뭐가 있었길래, 가주님 병을 치료하신 거예요?”

그녀의 말에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뭐가 있는 건 아니고 제가 정령술사거든요.”

“…네? 정령술사요?”

“네. 땅하고 물의 정령하고 계약했는데, 그 중 물의 정령이 엘퀴네스에요. 그래서 하이넨 호수로 갔던 거예요.”

안나가 눈을 끔뻑였고, 아이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오라버니? 엘퀴네스는 그… 물의 정령왕 아니에요?”

아이린의 말에 아더가 방긋 미소지었다.

“오. 아이린? 똑똑한데요? 맞아요. 엘퀴네스는 물의 정령왕을 뜻하는 이름이에요.”

아더의 대답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물의 정령왕이… 엘퀴네스라고?’

‘그렇다는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 100년에 한 번 탄생한다는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술사라고?’

대마도사보다 위대하는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술사?

경악한 두 사람이 뒤늦게 소리쳤다.

“그, 그게 사실이에요? 공자님!?”

“지, 진짜… 정령왕과 계약했다고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 그래서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못 믿는데, 두 사람한테 어떻게 이 이야기로 설득하겠어요?”

&

안나와 아이린이 충격을 받아, 넋을 잃었다.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술사가… 우리 오빠라고?’

‘그런데 공자님을 두고… 우리 가문 사람들은 소드마스터라 부르던데.’

‘그럼 우리 오빠가 소드마스터에다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술사?’

안나와 아이린의 입에서 동시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가?

두 사람 모두, 정령과 검에 관해서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정령왕의 계약과 소드마스터가 되기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한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는 것을.

그 탓에 두 사람이 오묘한 시선으로 아더를 바라보았다.

‘두 눈으로 봤으니 이걸 안 믿을 수도 없고.’

‘대체… 오빠는 지난 7년 사이에 뭘 한 거야?’

‘진짜… 우리 공자님이 맞나?’

그때 요넬을 진찰하러 들어갔던 의원이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깜짝 놀란 아이린이 소리쳤다.

“어머님의 상태는 어떤가요, 의원님!”

아이린의 외침에 의원이 빙그레 웃었다.

“지금 단계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안 되지만….”

“……”

“제 짧은 소견으로는 몸 상태가 완전히 호전되셨습니다.”

“…!”

“신의 은총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가주님께서는 완전히 완치되셨습니다.”

의원의 말에 아이린이 비틀거렸고, 안나는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쓰러지려는 아이린을 부축했다.

고개를 돌린 아이린이 눈물을 글썽였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아더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때 의원이 예기치 못 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리고… 가주님께서, 아더 바이에른 공자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저도 빨리 어머니랑 대화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대화 할 정도로 상태는 호전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장시간은 무리지만 짧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옆에 있던 안나가 대신 아이린을 부축하며 말했다.

“공녀님은 제가 보살필 테니, 다녀오세요, 공자님.”

“고마워요, 안나.”

고개 숙여 인사한 아더가 걸음을 옮겨 요넬이 있는 방문 앞에 섰다.

그 후 가벼운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 방문을 두들겼다.

“어머니. 저 아더에요. 들어가도 되나요?”

요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려무나 내 아들아.”

아더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렸다.

그 순간, 침대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요넬이 시야에 담겼다.

요넬도 똑같이 아더를 발견하고서 양팔을 벌렸다.

“우리 아들이 맞구나… 한 번 안아 보자꾸나.”

아더가 망설이다,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요넬이 그런 아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무 보고 싶었단다 아더.”

아더가 작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저야말로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너무 늦게 돌아와서 죄송해요.”

“아니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당연히 늦을 수밖에.”

“…네?”

“사악한 흑마법사의 저주에 갇혀 있었잖니? 그러니 당연히 늦을 수밖에 없지.”

아더의 눈이 커졌다.

‘…뭐지? 이게 무슨 소리지?’

어떻게 요넬이 흰 수염의 저주에 관해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누군가 이야기해줬나?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바이에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데?’

그 때 놀라운 사실이 요넬의 입에서 전해졌다.

“이 어미는 다 보았단다. 너의 모험, 노력, 업적… 그 모든 것들을.”

“…!”

“줄곧 잠들어 있던 꿈속에서 네가 걸어온 길을 누군가 보여주었단다…. 그러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거라.”

요넬이 아더의 머리칼을 다정한 손길로 쓸어넘기며 짓궂게 웃었다.

정신을 차린 아더가 황급히 질문했다.

“어… 어머니? 도대체 누가 그 사실을 알려준 거예요?”

요넬의 두 눈동자가 빛났다.

“믿기 힘들겠지만… 네 아버지가 보여주었단다.”

“…네?”

“네 아버지, [레오 바이에른]이 보여줬어.”

아더의 눈이 커졌다.

그 사이 요넬이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0년 전에 가 버린… 네 아버지. 레오 바이에른이 나타나 꿈속에서 보여주었단다. 네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아더의 입이 경악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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