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14화 (114/265)

제114화

지켜보던 카르페가 놀라 입을 벌렸다.

“테이큰이… 정신을 차렸어?’

도대체 어떻게?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던 테이큰의 저주 아니던가?

‘설마… 조금 전 흘려 보낸 피 몇 방울 때문인가?’

말이 안 되는데, 지금으로서는 이렇게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아더 바이에른의 피가, 테이큰의 저주를 풀었다.

그 탓에 카르페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할 때, 테이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친놈 오랜만이군.”

아더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에요 테이큰 씨. 호되게 당하셨다면서요?”

“크큭… 그 말투도 여전하군.”

웃음을 터트린 테이큰이 잠시 숨을 골랐다.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라? 아직 다 안 나으신 건가요?”

“통증은 제법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가슴이 쑤시는군.”

“아… 그래서 눈을 감고 있는 거군요.”

“그건 아니야.”

“…?”

“눈을 뜨면 네 놈을 죽여버리고 싶을 것 같아서 감고 있는 거야.”

아더가 옅은 탄성을 터트렸다.

“테이큰 씨… 미친놈이었군요?”

“네놈 한테 그 말을 들으니 신선하군.”

“죄송한데 전 제정신이에요. 테이큰 씨와 달리 은혜를 갚을 줄 안다고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깐 지금 은혜를 베풀고 있잖아?”

“어떻게요?”

“네 놈을 살려두고 있는 게 은혜를 베푸는 거지.”

“…….”

둘의 대화에 지니와 레온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지금 뭘 듣고 있죠?”

“저도 좀 곤혹스럽군요.”

미친놈 둘이, 서로 정상인으로 우기다니.

상당히 진귀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테이큰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쿵-!

워낙 육중한 육체 탓에 광장이 한 차례 들썩였다.

그 속에서 테이큰이 손짓했다.

“가까이 와.”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큰 씨한테요?”

“해줄 말이 있다. 안 그럼 내가 갈까?”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환자한테 오라 가라 할 수 없죠. 제가 갈게요.”

걸음을 옮긴 아더가 주저앉자, 테이큰이 천천히 속삭였다.

“너, 어째서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거지?”

테이큰의 질문에 아더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흠? 그게 무슨 말이죠? 테이큰?”

“모르는 척 하지마라.”

“진짜 모르겠는데요?”

“그 머리를 반쯤 짓이겨야, 제대로 대답할 테냐?’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실 수 있겠어요?”

“…뭐?”

“그러기 전에 테이큰 씨가 죽을 것 같은데?”

아더의 말에 테이큰이 입을 다물었다.

눈을 감은 상태라 그런지 몰라도, 입까지 다무니 명상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자세가 되어버린 그였다.

그 상태로 잠시 침묵하던 테이큰이 돌연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놈… 이 6서클이라고?”

아더가 방긋 웃었다.

“후후… 제법 강해졌죠?”

“드래곤이라도 삶아 먹었나?’

“비슷한 걸 먹었죠.”

“드래곤 하트?”

“네.”

아더의 대답에 테이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꼬리를 살짝 떨었다.

‘처음 만났을 때, 2서클. 그 다음 만났을 때는 4서클.’

이제는 6서클이 되었다고?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발전 속도였다.

그 탓에 몸을 움직여 직접 확인하려는 찰나였다.

“음? 테이큰 씨?”

고개를 갸웃거린 아더가 제 손바닥을 테이큰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하지만 테이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그는 정말로 명상에 빠진 것인지, 숨소리마저 평온해져 있었는데 지켜보던 아더가 혀를 내둘렀다.

“잠들었네? 와….”

그때 어느 사이엔가 옆으로 다가온 카르페가 시선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흠… 아직 상처가 다 안나아서 잠이 든 모양이야.”

“그래도 그렇지… 대화 중에 잠이 들다니. 테이큰 씨 진짜 독특하네요.”

“…네 놈한테서 그런 말이 나오니 조금 그렇군.”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어떻게 테이큰을 치료한 거야?”

카르페의 질문에 아더가 웃었다.

“영업비밀이에요.”

그 미소에 카르페가 다시 입을 열려다 멈칫했다.

‘말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군.’

그런 미친놈에게 다시 한번 물어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카르페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후우… 네놈만 보면 머리가 아파.”

“어라? 편두통을 앓고 계셨던 거예요?”

“네놈만 보면 머리가 아프다니깐… 일단 가자고.”

이 말과 함께 잠이 든 카르페를 허공에 띄웠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신전에 도착할 거야. 통로에서 밤을 지새우고 싶지 않으면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 * *

카르페를 따라 지하통로로 움직이기를 한참.

다리가 아파 올 때쯤, 고된 행군이 끝이 났다.

“오….”

탄성을 흘린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통로 끝에 위치한 거대한 광장.

그 광장 안에는 마을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닌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고, 움막의 뒤편으로는 카르페의 말처럼 거대한 신전도 세워져 있었다.

허나 가장 놀라운 것은 조금 전 통로와 달리 이 광장 전체가 대낮인 것마냥 밝다는 점이었다.

놀란 아더가 감탄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여기 지상 아니죠? 지하가 이렇게 밝다니….”

옆에 있던 카르페가 설명했다.

“뱀파이어들은 밤에만 움직일 수 있으니깐 빛을 항상 그리워해. 그래서 마법사들끼리 힘을 모아 인조 태양 하나를 만들었지.”

아더가 고개를 돌려 카르페를 바라봤다.

“그런데 카르페 씨.”

“왜.”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카르페 씨는 뱀파이어 아니죠?”

“아니지.”

“그런데 왜 검은 십자가에 있는 거예요?’

아더의 질문에 카르페가 코끝을 찡그렸다.

“검은 십자가는 뱀파이어만 있는 게 아니야.”

“카르페 씨 말고 다른 사람도 있다고요?”

“당연하지. 애초에 이 종교의 출발은 자선단체였어.”

“자선단체요?”

“그래. 병들고 갈 곳 없는 자들을 도와주는 자선단체. 그게 이 종교의 시발점이야.”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흠. 남을 도와주는 뱀파이어라니. 신기하네요.”

카르페는 아더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서 고개를 돌렸다.

아더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마을에서 나온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카르페가 평소보다 밝은 톤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안심하세요, 여러분. 저희를 도와줄 사람들입니다.”

카르페의 말에 검은 수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테이큰 씨는… 괜찮은 건가요? 마법사님?”

카르페가 허공에 떠오른 테이큰을 툭툭 쳤다.

“아 이 친구 말입니까? 괜찮습니다. 이놈은 지옥에 던져놔도 살아올 놈이니.”

“어이쿠. 또 그런 말씀하신다.”

카르페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훔쳐보던 아더는 생각했다.

‘오호… 카르페 씨가 이런 미소도 지을 줄 아네.’

그 사이 카르페가 걸음을 옮겨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카르페 씨?”

“임무 끝나고 오신 거예요!?”

“와아아아-! 카르페 씨다!”

카르페의 말대로, 검은 십자가에는 뱀파이어만 있는 게 아닌 듯했다.

아이도 있었고 인간도 있었으며 테이큰과 마찬가지로 특이한 피를 이은 자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이곳이 검은 십자가의 지하 도시라는 것만 제외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 같았다.

그 사이 마을 주민들이 아더의 일행을 발견하고, 경계심이 섞인 눈빛을 띄웠다.

“카르페 씨 저 사람들은?”

“저희를 도와주러 온 용병입니다.”

그럴 때마다 카르페가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다.

덕분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며 걷기를 한참.

마침내 카르페가 걸음을 멈췄다.

“오? 교회네요?”

“당분간 자네들이 묶을 곳이기도 하지. 일단 들어와.”

카르페가 교회의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잠시 앉아 있어. 난 이 녀석 좀, 재우고 올 테니깐.”

카르페의 말에 아더가 손을 들었다.

“목이 마른데 물 좀 마셔도 돼요?”

“저기 물통 있으니깐 알아서 따라 마셔.”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카르페가 가리킨 곳에서 컵과 물통을 들고 왔다.

그사이 교회 내부를 둘러보던 레온이 중얼거렸다.

“흠… 지하에 이런 마을이 있는 것도 모자라 교회까지 있다니, 다시 봐도 놀랍군.”

옆에 있던 지니가 눈을 굴리며 질문했다.

“그런데… 여기가 그 검은 십자가의 본거지 맞아요?”

“그러지 않을까요, 지니 양? 이런 설원 지하에, 어떤 누가 이런 도시를 지어놓겠습니까?’

레온의 말에 지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결국 내가 광신도들의 본교로 들어와 버렸구나.’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토록 종교와 남자는 조심하라 일렀는데.

그 두 가지를 이렇게 어겨버리다니.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진 지니가 한숨을 푹푹 내쉴 때, 사라졌던 카르페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몹시 피로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죽겠구만.”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힘들면 내일 이야기 할까요?”

“아니. 일 이야기는 마저 해야지.”

“오… 좋은 자세에요 카르페.”

카르페가 대답하지 않고서 지도를 꺼내들었다.

아더와 레온.

지니의 시선이 그 지도로 향했다.

잠시 지도를 지켜보던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흠… 카르페 씨? 이거 지도 맞아요?”

아더의 질문에 레온과 지니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게 카르페가 내민 지도에는 기호나 방향, 심지어 지형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카르페의 말에 모두가 납득했다.

“지도 맞아. 북부 설원 지도는 애초에 다 이렇지. 이런 허허벌판에 표시할 게 없으니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이걸 꺼내 든 거예요?”

“지금부터 그 허허벌판에 표시를 하려고.”

“…?”

“잘 봐. 아주 재미난 걸 보여줄 테니깐.”

이 말과 함꼐 카르페의 손끝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그 변화를 아더를 포함한 일행이 가만히 지켜볼 때, 지도 위에 붉은 반점이 떠올랐다.

“오…?”

탄성을 흘린 아더가 눈빛을 반짝였다.

“설마 이거….”

“맞아.”

카르페가 우쭐한 표정으로 거들먹거렸다.

“이안 도르문트, 북부 설원 위를 걷고 있는 놈들을 뜻하는 반점이야.”

* * *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마법은 또 처음 보네요. 어떻게 한 거예요?”

아더의 질문에 카르페가 어깨를 으쓱였다.

“놈들과 싸우던 도중, 그중 한 놈에게 내 각인을 새겼지. 그걸 통해 놈들의 위치를 추적 중인 거야.”

레온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렇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한 실력이시군요.”

카르페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레온이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계획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카르페 씨?”

“계획이라면 놈들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해 묻는 거지?”

“그렇습니다. 저희끼리 이안 도르문트 군대를 막는 건 무리가 있으니깐.”

“그건 말했다시피 걱정하지마. 우리 검은 십자가도 끼어들 거니깐.”

카르페가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몇몇 기사하고 이안… 그자를 제외하고는 우리 쪽에서 막아줄 수 있을 거야.”

“흠… 그럼 저희가 상대해야 할 건 이안 그 자뿐이군요.”

“그렇지. 우리가 틈을 만들고 자네들은 이안만 막으면 돼.”

그 설명에 지니가 손을 들었다.

“기습도 나쁘지 않을까요?”

“좋은 질문이야 귀쟁이. 기습도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일행들이 이안 도르문트 군대와 어떻게 맞서 싸울지 생각하는 사이, 아더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흠… 계속 북쪽을 향해 올라가네.’

붉은 반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말없이 관찰하던 그때, 갑자기 붉은 반점이 사라졌다.

“… ?”

눈을 끔뻑인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설마 고장이라도 났나?

그때 희미한 소음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어… 라?”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심히 토론하던 세 사람이, 대화를 중단하고서 그런 아더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던?”

레온의 질문에 아더가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좁혔다.

“재밌네요.”

“…?”

“보니깐 그 마법, 아무래도 일부러 걸려준 모양이에요.”

이 말에 카르페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부러 걸려줬다니?”

“쉽게 말해서, 카르페 씨 당신이 이용당했다는 거죠.”

카르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이용당해? 그게 지금 무슨….”

아더의 대답 대신 대포 소리가 울려퍼졌다.

쾅-!

울려퍼지는 폭음과 함께 교회의 천장이 날아갔다.

그 광경에 카르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을 때, 아더가 뛰어올랐다.

단 한번의 도약으로, 날아간 천장의 끝에 올라선 아더가 입을 벌렸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지.”

탄성과 함께 아더가 눈을 비볐다.

하지만 바뀌지 않았다.

저 멀리서 휘날리는 붉은 장미의 깃발.

‘붉은 장미는 도르문트의 뜻하는 가문의 문양.’

믿기지 않는데, 이안 도르문트.

그 철천지원수가 아무래도 제 발로 자신을 만나러 온 듯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의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아….”

진한 현기증과 함께 세상이 변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제 정신병이 다시 도지는 걸 느끼며 아더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목소리의 높낮이가 없는, 희한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소리와 함께 아더가 중얼거렸다.

“이안… 드디어 죽을 준비가 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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