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혹시 내가 아직 최면 속에 있는 건가?”
“아뇨? 현실이에요, 네크로맨서 씨.”
“그럼 저놈이 진짜로 최면에 빠졌다고?”
“네. 지금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데요?”
아더의 말에 카르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씨발…. 하필 걸려도 저놈이 걸린다고?”
그 순간 아더가 뛰쳐나간다.
그와 동시에 어둠을 가르고 날아온 빛줄기가 아더의 칼날 앞에 막힌다.
카아아앙-!!!
거칠게 반항하는 빛줄기에 아더가 입술을 깨물며 생각한다.
‘참격(斬擊). 검기를 다루는 칼잡이들이 쓰는 원거리 타격기.’
6서클 이상의 칼잡이들이 다루는 지고한 절기 중 하나로, 마법조차 베어 내는 기술 중 하나라 알려져 있었다.
이 기술을 사용했다는 건 테이큰이 예전과 달리 6서클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리.
막아내던 참격을 튕겨 낸 아더가 물었다.
“테이큰 씨 언제 6서클 되신 거예요? 저번에는 5서클이던데?”
정신을 차린 카르페가 중얼거린다.
“…네놈이랑 부딪치고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다고 지랄하더니 폐관 수련에 들어갔어.”
“저랑 부딪쳐서요?”
“그래. 그러더니만 갑자기 나타나서는 상급 영단을 어디서 주워 먹었다더군….”
말을 흐린 카르페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 후로 또다시 폐관 수련을 하더니 6서클이 됐는데…. 씨부럴. 그 6서클 기술을 왜 나한테 쏘고 지랄인 거야!”
이 말에 아더가 혀를 내둘렀다.
전설로만 전해지는 상급 영단을 얻은 것도 신기했지만, 그 영단을 섭취하자마자 벽을 깬 테이큰의 재능이 더 놀라웠다.
‘확실히 테이큰 씨…. 남들과는 좀 다르다 싶었는데 보통 괴물이 아니었어.’
생각과 함께 아더가 시선을 돌린다.
그 속에서 반대편 어둠이 일렁인다.
“….”
“….”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붉은 무언가.
그것이 눈동자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더와 카르페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당한 것 같은데요?”
“정신 나갔어, 저놈.”
이 말과 함께 어둠이 갈라진다.
아더와 카르페는 그곳에 눈을 떼지 않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쾅-!
지면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가 카르페와 아더가 있던 자리에 나타난다.
1000년 전 사라진 트롤의 혈통을 이은 괴물.
테이큰이었다.
휙!
그 테이큰의 일격을 피한 아더는 곧바로 공간 도약을 사용해 목 뒤를 점했다.
그리고 운철검을 내질렀지만, 갑작스레 생겨난 보호막에 칼끝이 튕겨 나가고 만다.
“어라?”
“….”
“마나를 이용해 갑옷처럼 두르고 있네요?”
이 말과 함께 당황한 아더가 테이큰을 바라본다.
전에 보았을 때보다 훨씬 흉측한, 그리고 광기에 찬 눈빛을 가진 괴물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쾅!
폭음과 함께 아더의 신체가 허공을 난다.
“미친놈!! 괜찮아!?”
카르페의 외침과 함께 허공을 한 바퀴를 돈 아더가 깔끔히 지면에 안착한다.
기예와도 같은 그 움직임에 카르페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지만, 아더는 혀를 찼다.
‘빗맞았는데, 어깨가 나갔어. 거기다 저…. 보호막, 이 권총으로는 턱도 없어 보이는데?’
예상보다 테이큰의 경지가 높았다.
이 정도면 웬만한 기사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
그사이 허둥지둥 다가온 카르페가 조언한다.
“인간이 어떻게 괴물을 이겨?! 무식하게 힘으로 싸울 생각하지 마!”
“저도 그러고 싶지 않은 데 그럼 딱히 다른 수가 있어요?”
“목을 노려! 지금 테이큰이 최면에 빠진 건, 뇌에 마력을 주입당했기 때문이야! 즉, 저 머리만 잘라 낸다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거지!”
아더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오…. 네크로맨서 씨. 처음으로 똑똑해 보였어요.”
“네크로맨서 아니야. 카르페다.”
“가명 아니었어요?”
“지금 상황에서 그게 궁금해? 닥치고 일어나. 보조해 줄 테니깐.”
아더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르페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일렁이는 마력이 마법이 되고, 그 마법이 아더의 신체를 감싼다.
그 속에서 카르페가 소리친다.
[오버 파워.]
[헤이스트.]
[매직 가드.]
…
터져 나오는 빛과 함께 아더의 몸이 마력에 휩싸인다.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 상태에 아더가 놀라 질문한다.
“보조 마법이에요, 카르페 씨?”
“맞아. 지속 시간은 대략 10분. 그 이상은 버텨 내지 못하니깐, 그 전에 승부를 내야 해.”
아더가 눈이 반짝였다.
“제가 시간을 끌고 카르페 씨가 테이큰 씨의 목을 노리는 작전?”
“그렇게 가야지. 큰 거 한방 준비할 테니깐 어떻게든 버텨 봐.”
카르페의 주문에 아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되면…. 해 볼 만한데?’
카르페가 걸어 준 마법의 성능은 체감상으론 프라킬의 혈통 능력보다 위.
여기에 트롤의 힘과 정령, 그리고 쥴리의 능력을 더한다면 이기지는 못할망정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는데 흠….”
말을 흐린 아더가 탈골된 어깨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 번 붙어 보죠, 테이큰 씨. 저번에 내지 못했던 승부를 가릴 겸해서.”
* * *
아더가 검을 휘리릭 돌려 잡는다.
그와 동시에 테이큰도 어깨에 걸친 대검을 내려놓는다.
그 미묘한 분위기에서 간격을 재던 아더는 생각했다.
‘틈이 없다. 달려들었다가는 단번에 베여.’
그 탓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테이큰은 최면에 당해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저 기세는 그의 본능에서 나온 진짜 모습이란 소리.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기세를 보여 준다는 것은, 그의 검술의 경지가 얼마나 지고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제정신이었다면…. 덤벼들 엄두도 못 내겠네. 불행 중 다행…이라 이건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운철검의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을 때였다.
“…!”
눈앞의 테이큰이 사라졌다.
그 엄청난 거구가 신기루인 양 증발해 버린 것이다.
아더는 거의 반사적으로 운철검을 휘둘렀다.
쾅-!
위에서 등장한 테이큰이 대검으로 아더를 깔아뭉갠다.
입술을 깨문 아더가 프라킬의 혈통 능력을 발동했다.
기기기긱-!
기이한 소리와 함께 테이큰의 대검에 파묻혔던 아더가 사라졌다.
공간도약을 통해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허나 테이큰은 당황하지 않았다.
최면에 갇혔어도, 그의 전투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감각에 따라 테이큰이 검을 크게 휘두른다.
쾅-!
쇠와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아더와 테이큰이 서로를 노려본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검을 밀쳐 내고서 본격적인 수 겨루기가 시작된다.
쾅쾅쾅쾅……쾅-!
때리고 막고, 쳐내고 밀어내고.
피하고 막아내고 지르고.
그 일련의 과정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허나 과정이 유려하다고 하여 그 안에 담긴 살의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매섭기 짝이 없었고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
그 광경을 주문을 준비하면서 훔쳐보던 카르페는 생각하고 만다.
‘테이큰… 저놈이야, 워낙 괴물이니 그렇다 치고 그 괴물한테서 버텨 내는 저 미친놈은 진짜… 뭐지?’
테이큰은 검은 십자가 내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다.
저 북부 설원에서 넘어 피와 싸움을 쫓는 야만 전사.
그런 그에게 교단의 주인은 세기의 칼잡이라는 칭찬을 할 정도였다.
‘소드마스터…. 그 경지는 물론이고, 어쩌면 차기 ‘검성’에 도달할지 모르는 천재.’
그 탓에 (매일 같이 테이큰과 치고받는 카르페였지만, 그렇다 해서 그의 싸움 실력까지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다.
그의 칼질은, 그가 가진 혈통만큼이나 특별한 것이었으니.
그런데 자신조차 인정한 그 칼질을, 저 미친놈은 막아내고 있었다.
쾅쾅쾅-!
이룬 서클은 고작 두 개.
반면 테이큰의 서클은 무려 6개다.
아무리 특별한 혈통을 지녔다고는 해도, 저것이 말이 되는 광경인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에 카르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만큼 아더가 테이큰을 상대로 버텨 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테이큰이 검을 크게 쳐올린다.
쾅!
폭음과 함께 아더의 신체가 허공에 날아 벽면에 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쥐고 있던 운철검이 바스러졌는데, 아무리 거칠게 휘둘러도 이상이 없던 검이었던지라 아더는 눈을 부릅떴다.
“아…. 설마 검기인가?”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표정을 굳혔다.
어느 사이엔가 테이큰의 검은 칼잡이들의 절기에 둘러쌓여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라 이거네.’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을 끌어 줘야 할지 모르지만, 그리 길지 않을 듯했다.
저 검기가 발현된 이상, 아직 검기를 방출하지 못하는 자신이 버텨 낼 수단은 없었다.
그 불길한 예감 속에서 아더가 검을 고쳐 잡는다.
검기를 두른 테이큰은 그런 아더를 여유작작하게 기다려 주었다.
강자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그 태도에 아더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시 시작할까요, 테이큰 씨?”
“…….”
테이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휘둘렀다.
아더는 그 일격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운디네 노움 씨!’
외침과 함께 테이큰의 발판이 크게 휘청인다.
기울어진 몸 상태와 함께 그의 검로도 크게 비틀어진다.
그와 동시에 파고든 아더가 검을 내지른다.
턱-!
하지만 테이큰의 왼손에 가로막혀 버리고 말았다.
마나를 갑옷처럼 두른 테이큰의 손이 놀랍게도 운철검을 움켜쥔 것이다.
전투를 지켜보던 카르페도 그 광경에는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 새끼!”
이 외침과 함께 아더가 몸을 회전시킨다.
운철검을 붙잡은 테이큰의 손을 지지대 삼아, 한 바퀴를 돈 아더가 그의 얼굴을 걷어찬다.
고개가 돌아간 테이큰이 일순간 멈칫했지만, 타격은 없어 보였다.
물론 아더도 이 일격으로 피해를 줄 생각은 없었다.
‘운디네!’
[네! 아더!]
검을 쥐지 않은 왼손에 물 회오리가 솟구친다.
마법이 일으킨 가짜 기적과는 비교되지 않은, 진짜 재해가 테이큰을 덮친다.
“…!”
깜짝 놀란 테이큰이 뒤로 물러선다.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인 양 젖어 버린 그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뒤흔든다.
그 짧은 틈 속에서, 아더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패를 꺼냈다.
파지지직-!
손끝에서 피어오른 벼락.
그 벼락이 아더의 몸을 감싸고, 운철검을 뒤덮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르페가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뭐…? 마법이라고?”
그사이 아더는 운철검을 고쳐잡으며 중얼거렸다.
‘기회는 단 한 번…. 절대 실수해서는 안 돼.’
예상이지만 저 상태의 테이큰이라면, 딱 한 번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이 통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일격이라면 저 괴물을 쓰러트리지는 못할망정, 단 한 순간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테이큰 씨가 제정신이었다면…. 이마저도 통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가정이 아닌 확신.
바이에른의 피가 보내오는 일종의 미래 예지와도 같은 그 예감 속에서, 아더는 자세를 낮춘다.
무릎은 45도 허리는 60도.
마지막으로 뒤로 빼낸 검은 30도.
그 어떤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근육과 연골.
더 나아가 핏줄의 혈액마저도 통제한다.
제 몸에 존재하는 모든 변수를 통제한 아더가 테이큰을 향해 말했다.
“이게 지금 제가 낼 수 있는 최고 일격인 것 같네요. 그러니깐 쓰러져 주세요, 테이큰 씨.”
이 말에 다시 중심을 잡은 테이큰이 검을 치켜든다.
물을 뒤집어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크와와와악-!”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거대한 포효와 함께 테이큰이 달려든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더는 숨을 멈춘다.
‘왼쪽 대각. 그 경로로 검을 내지른다.’
판단과 함께 운철검이 움직인다.
그 순간.
파지직-!
타오르는 벼락이 한줄기 섬광(閃光)이 된다.
지켜보던 카르페의 눈이 그 한줄기 섬광에 감겼을 때였다.
테이큰과 아더가 교차한다.
“….”
내려앉은 침묵.
툭.
그와 동시에 누군가 쓰러졌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카르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