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누군가 쓰러졌다.
가슴팍에 흉측한 자상을 입은 아더였다.
“쿨럭!”
무릎을 꿇은 아더가 피를 토해 낸다.
그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던 카르페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미, 미친놈!! 쓰러지면 안 돼!”
아더가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대답했다.
“카르페 씨! 저 말고 테이큰 씨!”
“…?’
“저 말고 테이큰 씨 보라고요!”
카르페가 눈을 끔뻑이다,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
그 괴물과도 같은 테이큰이 어딘가 이상했다.
느껴지는 오라나 기세.
그것들은 전혀 변함이 없지만 조금 전까지 모든 것을 때려 부수던 과격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저놈이 전투 중에 멍을 다 때리고?’
그런 생각과 함께 카르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인 순간이었다.
테이큰의 어깨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놀란 카르페가 자신도 모르게 물러서는 그때, 테이큰이 고함을 지른다.
“크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피가 솟구친 상처로부터 거친 정전기가 튀어 오른다.
지켜보던 카르페가 경악하며 입을 벌린다.
“감전됐다고? 저 괴물이?”
“감탄하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봐요. 카르페 씨!”
아더가 가슴팍의 상처를 짓누르며 닦달했다.
“저 상태 오래 지속 못 해요! 그 전에 준비하던 마법을 쏴야 해요!”
이 말에 카르페가 허둥지둥 두 손을 움직인다.
동시에 그의 몸 주위로부터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변을 느낀 테이큰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너, 미친놈.”
“어라? 테이큰 씨 정신 차리셨어요?”
“너 내 몸에…. 뭘 박아 넣은 거냐?”
물음에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정신 좀 차리시라고 따끔한 벼락을 쑤셔 넣었어요. 이제 정신 좀 드세요?”
“개 같은 놈이…. 어딜 이상한 걸 배워와서!”
외침과 함께 테이큰의 흰자위가 다시 붉게 물든다.
지켜보던 아더가 움찔 놀라는 그때, 카르페의 마법이 완성된다.
[테이큰 도어.]
영창과 함께 땅밑에서부터 솟아오른 4개의 문이 테이큰을 가로막는다.
화가 난 테이큰이 그 문을 부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콰앙-!
결계에 가까운 주박 마법.
테이큰의 마나를 기반으로 해 만든 고유 마법 중 하나였는데, 테이큰의 폭주를 막기 위한 방어책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소용이 없지만, 테이큰을 한정으로 해서는 이보다 효과적인 방어 마법이 없지.’
그 증거로 검기마저 두른 테이큰이었지만 끝내 문을 부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고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개발해 둔 마법이었는데….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생각과 함께 카르페가 한숨을 내쉰다.
제 마력이 끊기지 않는 한 이 문은 해체되지 않고, 그렇다는 건 테이큰의 폭주를 막아냈다는 소리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연히 만난 아더 덕을 의도치 않게 본 셈이다.
‘그런데…. 저 미친놈, 대체 뭘 배워 온 거지? 벼락이라니? 저 녀석 마법도 쓸 줄 알았나?’
카르페가 파악한 던의 기술은 총 4가지.
정령과 칼질.
그리고 피부를 껍질로 변화시키는 혈통 능력과 공간도약이 가능한 아티펙트였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다시 만난 아더는 갑작스레 벼락을 다루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벼락이 맞나? 놈의 몸이 벼락이 휘감길 때 마력을 못 느꼈는데?’
거기다 벼락을 몸에 휘감았는데 어떻게 멀쩡하단 말인가?
그런 일이 가능한 건 마법사뿐이다.
그 탓에 카르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저 녀석…. 진짜 위험한 놈 아니야? 마법사도 아닌데 벼락을 일으키고, 조금 전 보여 준 그 일격과 전투도 그렇고….’
말을 흐린 카르페가 떠올린다.
물의 정령을 이용해 테이큰의 몸을 흠뻑 적시고, 일격을 교환한 순간 벼락을 그의 몸속에 박아 넣는 윌렛 사무소 소속 용병 던.
그 판단이 전부 의도된 거고, 이 상황을 예지해 만든 거라면 솔직히 말해 놀랍기보다는 두려웠다.
‘그 테이큰을 상대로…. 가지고 놀았단 거잖아? 그것도 힘의 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생각과 함께 마른침을 삼킨 카르페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
조금 전까지 숨을 헐떡이던 아더가 보이지 않았다.
눈을 끔뻑인 카르페가 뒤늦게 입을 벌렸다.
“…이 미친놈이!!”
외침과 함께 카르페가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악! 저 개 같은 놈-!!”
조금 전 테이큰이 걸어 나왔던 통로.
그 통로에서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테이큰을 카르페에게 맡긴 채 현장을 빠져나온 아더가 중얼거렸다.
‘운이 좋았어. 조금만 옅게 베었어도 테이큰 씨의 그 피부…. 갈라내지 못했을 거니깐.’
5서클에 이른 칼잡이들은 검기만 다루지 않았다.
그에 걸맞은 방어 기술 또한 다룰 줄 알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테이큰이 선보였던 마나 디펜스(mana defense)였다.
‘육체 강화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방어 기술…. 마나 그 자체를 몸에 둘러 마법사들의 결계처럼 쓰는 아주 까다로운 기술이지.’
그 탓에 경지가 높은 칼잡일 수록, 그 육체에 흠집을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전 테이큰과의 결전은 운이 따랐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제아무리 운디네의 능력을 사용해 테이큰의 몸을 적시고 그 상태에서 벼락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마나 디펜스를 두른 테이큰의 몸에 상처를 낸다는 생각은 아더 자신이 생각해도 도박에 가까웠다.
‘여러모로 운이 따른 결과였어. 베어 내지 못했다면…. 당하는 건 나였을 거야.’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테이큰의 대검에 의해 난 자상 때문이었다.
운디네가 허겁지겁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지만, 검기가 둘린 검에 맞은 상처라 그런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아,아더….]
“괜찮아, 운디네. 겁먹지 말고 치료에 집중해.”
운디네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물의 정령의 도움으로 가슴팍의 상처를 치료하며 계속해서 걸어갔다.
‘테이큰 씨가 여기로 걸어왔다는 건…. 저 끝이 목적지란 소리겠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흐트러지는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을 때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으로 맡아진다.
“어?”
눈을 끔뻑인 아더가 걸음을 멈춘다.
그와 동시에 아치형 공간이 드러났는데, 수십 개의 시체가 구정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한 소녀가 누군가의 목을 비틀어 붙잡고 있었다.
“예니카?”
“공자님?”
서로를 알아본 소녀와 아더가 흠칫 놀란다.
“어떻게 아셨어요?”
“예니카는 어떻게 알아차렸어요?”
“제 능력 때문이죠. 공자님은요?”
“예니카 목에 걸린 목걸이 때문에요.”
“…?”
“검은 십자가, 제가 아는 사람 중 그 단체에 속하고 그런 목걸이를 걸 만한 분은 예니카밖에 없거든요.”
예니카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또…. 짐작이었네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후 시선을 돌려 예니카의 손에 붙잡혀 있는 사내.
자신을 최면에 빠트리고 뒤통수를 친 케라스를 바라보았다.
“하아…. 꼴을 보니 한발 늦은 모양이네요.”
이 말에 예니카가 입꼬리를 올린다.
“커, 컥!”
그와 동시에 예니카의 손에 붙잡힌 케라스가 신음을 내뱉었는데, 그 순간 놀랍게도 그의 얼굴이 허물어져 내렸다.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이 허물어져 내리고 등장한 것은 실눈의 사내.
윌렛이 건네준 전단지에 그려진 마시알 더스트와 똑 닮은 생김새를 가진 남자였다.
“거, 검은 십자가의…. 공주가 여긴 어떻게?”
정체를 드러낸 마시알 더스트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예니카가 아더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천천히 알려 줄게요. 어차피 저희는 진득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깐요 마시알 더스트.”
이 말과 함께 마시알 더스트의 몸 전체가 피로 감싸졌다.
그것이 예니카의 피인지, 아니면 마시알의 피인지 모르겠지만 피에 둘러싸인 마시알 더스트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넘겨주는 건 안 되죠?”
“당연히 안 되죠.”
“그런데 도대체 그 남자가 뭐길래, 검은 십자가도 끼어든 거예요?”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요?”
“좀 봐줘요. 조금 전까지, 최면에 당한 테이큰 씨를 직접 막아 줬는데.”
예니카가 눈을 깜빡였다.
“테이큰이 최면에 당했어요?”
“네. 그래서 네크로…맨서 씨가 아니라 카르페 씨를 덮치려 해서, 함께 싸워 주고 왔다고요.”
아더가 보란 듯이 가슴팍의 상처를 들이밀었다.
지켜보던 예니카는 아더의 말이 진짜임을 알 수 있었다.
‘테이큰의 피 냄새가 나. 그리고 카르페의 마력도.’
허나 더욱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기에 예니카는 마력 통신 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카르페에게 연락해 아더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했다.
[그, 그 미친놈이 공주님한테 간 겁니까!?]
그 확인까지 끝마치고서야 예니카는 시선을 돌려 아더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아더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공자님이 도와주긴 했나 보네요.”
“네. 그러니깐 목적 정도는 말해 줘요. 왜 붙잡으려 하는 거예요?”
“이 자가 뭘 훔쳤는지 정도는 알고 있지 않나요?”
“듣기로 마도 공학의 핵심 기술을 훔쳤다는데? 그런데 그거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면서요?”
예니카가 입꼬리를 올린다.
“진짜라면요?”
“….”
“황실이 쫓고 있는 산업 스파이. 그중에서 진짜 마도 공학의 핵심 기술을 달아난 사람이 마시알 더스트. 이 사람이면요?”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오…. 그거 대박이네요. 황실이 독점하고 있는 돈 되는 기술을 정말로 훔쳤다면.”
“네. 혹시 뭐 더 듣고 싶은 거 있나요?”
“아뇨? 그리고 말해 줄 생각도 없잖아요.”
예니카가 샐쭉 웃는다.
왠지 모르겠지만 매우 얄미운 미소였다.
허나 아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예니카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새빨간 피 한 방울이 아더의 코앞으로 날아왔다.
“이건 카르페를 구해 준 보상이에요.”
“….”
“그럼 학교에서 봬요, 공자님.”
이 말과 함께 예니카가 기절한 마시알 더스트를 대리고 유유자적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그녀가 건네준 핏방울을 날름 받아먹고서 중얼거렸다.
“진짜 얄밉네, 저 여자…. 언젠가 목을 베야 하는데.”
입맛을 다신 아더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체가 흘러넘치는 하수구를 지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뚝뚝…….
안으로 들어서자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금 전 있던 곳이 마지막 격전지였던 모양이었다.
대신 배수로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졌는데, 덕분에 구정물 특유의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만약 운디네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며칠을 씻어도 안 빠질 악취였다.
그렇게 지하 배수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 폭포라고?”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내민다.
콰콰콰콸-!!
넓은 배수로를 타고 흘러넘치던 구정물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D-42 구역의 한 셉터 중 하나인 서쪽 호수였다.
정화되지 않은 구정물들이 거대한 구덩이에 쉴 틈 없이 꾸역꾸역 떨어져 거대한 호수를 이룬 것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아더는 훌쩍 뛰어내렸다.
[…아,아더!]
놀란 노움이 재빨리 발판을 만들어 준다.
아더는 자연스럽게 그 발판을 이용해 추락 속도를 늦추어 안전하게 착지했다.
툭.
인근 호숫가로 떨어진 아더가 시선을 돌린다.
“….”
오염된 호수 근처라 그런지, 그 흔한 풀벌레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더의 예민한 기척은 그 침묵 속에서 옅은 숨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중얼거렸다.
“마시알 더스트 씨?”
“….”
“숨어 있는 거 아는데, 나오시는 게 어때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더는 뽑아 든 권총으로 제 반대편 나무를 조준해 쏴 버렸다.
쾅-!
강화된 총탄이 명중한 나무가 부러진다.
그 속에서 실눈의 남자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눈치채셨습니까?”
“그게 중요해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운철검을 뽑아 든다.
“지금부터 당신 죽일 건데,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마세요. 고생한 만큼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낼 생각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