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100여 명의 용병들이 같은 말을 되뇐다.
“죽인다….”
“막는다….”
“여길 지나갈 수 없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보르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저게 환각이라고? 아니···. 대마법사도 아니고 어떻게 100명에게 환각을 걸어?”
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가공해 만든 가짜 기적인 마법.
그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은 허공에서 불꽃을 일으켰고, 때로는 벼락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 마법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을 하나 꼽으라면 ‘환각’계열 마법이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파고들어 조종하는 환각 마법은 시전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네···. 이 정도로 대량의 환각 마법을 걸 정도면, 흰수염. 저번에 보았던 그 전설적인 흑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설마 그 흰 수염이 이번 일에 참여한 걸까?
고민하던 아더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상 작은 가능성도 배제 할 수는 없었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운철검을 뽑아 들자, 카르페가 소리쳤다.
“일단 죽이고 봐! 환각에 걸린 이상 스스로 빠져나오는 게 아닌 이상 풀 방법은 없어! 쓰러트리고 간다!”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서 거대한 불구덩이가 솟아난다.
그걸 신호로 마시알 더스트를 잡기 위해 모인 4명의 용병이 자리에서 뛰쳐나간다.
퍽-!
아즐란이 상당히 독특한 재질의 건틀릿을 손에 낀 채 덤벼드는 용병들의 머리를 후려친다.
피가 튀길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는 것이, 이런 전투에 익숙지 않아 보였다.
퍽!
반대로 D등급 용병이라 소개한 케라스는 이런 대인전에 매우 익숙한지, 뽑아 든 권총으로 용병들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더는 카셀과 하이슨.
두 명의 C등급 용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힘없는 자를 베어 내는 것은 괴롭지만, 이것 또 한 내 숙명이겠지······.”
이 말과 함께 카셀의 거대한 장검이 용병들의 몸을 갈라버린다.
“이 업보. 언젠가 돌려받겠다. 부디 편히 잠들어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용병들을 베어내는 카셀의 칼솜씨는 아더의 기준에서도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그냥 얼빠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력이 썩 괜찮은데?’
마지막으로 바라본 하이슨은 무지막지하게 큰 방패를 둔기마냥 휘두르며 용병들을 후려치고 있었다.
왜 방패로 저런 비효율적인 전투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이 좋은지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 방식이 다 다르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사람은, 카셀 정도인가?’
만약 저들 중에 적으로 돌아선다면, 누굴 먼저 처리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한 아더가 마지막으로 라보르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총포상에 보았던 샷건으로 환각에 걸린 용병들을 다진 육고기로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까지 시야에 담은 아더도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죽여야···. 한다!”
외침과 함께 덤벼드는 용병의 머리를 깔끔히 잘라 냈다.
칼날이 번쩍일 때마다, 정확히 머리 하나가 날아갔는데 그 광경을 훔쳐보던 카셀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상대군! 하지만 지지 않는다!”
이 말과 함께 전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얼마 안 있어 100여 명의 용병들 전부가 죽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환각에 걸린 상태라 그런지 몰라도 용병들은 기계적인 움직임밖에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투가 막이 내리자, 용병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쓴 아즐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시발···. 이거 맞아? 그냥 민간인을 학살한 기분인데? 그냥 기절시키면 안 됐나?”
이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닌 척했지만, 그들도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었다.
아무리 뒷세계에서 살인이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지만, 학살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 침묵하던 아더가 운철검에 묻은 피를 휘리릭 털어내며 조언한다.
“기절시키는 게 오히려 더 안 좋을 걸요, 아즐란.”
“…왜? 어차피 환각을 풀면, 제정신으로 돌아오잖아.”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는 하죠. 반쯤 미쳐서, 혹은 백치가 돼서.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결말은 대게 두 가지에요.”
아더가 시체가 되어버린 용병들을 가리 켠다.
“하나는 스스로 자결하거나, 혹은 주변 사람이 죽이거나. 자결하는 건 미쳤을 때, 주변 사람이 죽이는 건 백치가 된 사람을 감당하지 못해서.”
“…….”
“그래서 환각이 흑마법이라 불리는 이유죠. 걸리는 순간, 그냥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깐. 그러니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말아요.”
아즐란이 눈이 커진다.
그건 옆에 있던 용병들도 다르지 않았다.
“음… 제가 혹시 틀린 말을 했나요? 왜 다들 그런 눈으로 절 바라보는 거예요?”
아즐란이 망설이다 질문한다.
“던, 너 환각에 걸려본 적이 있어?”
“네. 예전에 경험해봤거든요. 자세히 설명하는 건 그러니깐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이 말과 함께 아즐란이 입을 다문다.
그 사이 현장을 수습하던 카르페가 소리친다.
“그만둘 사람 있나?”
“…….”
“이건 예상 밖의 상황이야. 그만둘 사람은 지금이라도 그만둬. 이제 앞으로 나아가면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을 테니깐.”
카르페의 설명에 D등급 용병 케라스가 질문한다.
“예상 밖이라는 게 무슨 소리인가요 카르페?”
“내가 듣기론, 마시알 더스트. 놈에게 이런 경지가 이른 마법사가 있다는 걸 듣지 못했어.”
“…그 말씀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틀렸다는 거야. 아무리 1000골드짜리 현상 수배범이라 하지만, 왜 아케인 전역의 사무소가 이곳에 용병들을 투입했겠나?”
“…….”
“마시알 더스트, 놈의 실력이 1000골드짜리 현상 수배범에 걸맞지 않아서야. 그런데 이런 마법사가 같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카르페가 경고한다.
“이제 예측이라는 게 쓸모가 없어져 버렸어. 그러니 지금 여기서 결정하지. 날 따라 마시알 더스트, 놈을 잡으러 갈 사람 혹시 있나?”
아더가 제일 먼저 손을 든다.
“저요!”
“…….”
“저요! 카르페 씨!”
카르페가 잠시 침묵하다 중얼거렸다.
“어디 소풍 가나?”
“아뇨?”
“…아니 됐네. 그럼 다른 사람은?”
아즐란이 고민하다 손을 든다.
카르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질문한다.
“자네 괜찮겠나?”
“이러고 여기서 빠져버리는 게 기분 더 줫 같애.”
“…….”
“뭐 상관없겠지. 알겠네.”
이 말과 함께 카셀과 케라스가 손을 든다.
“이하동문.”
“저도 여기서 빠지면 찝찝할 것 같네요.”
카르페의 시선이 마지막 남은 용병과 전투갱단 대장.
라보르드와 하이슨에게로 향한다.
“…난 참여하지.”
“라로브드 자넨 좀 위험할 수 있는데.”
“알아. 그래서 위험할 것 같으면 알아서 도망치려고.”
이 말에 카르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하이슨이 입을 연다.
“난 여기서 빠지지. 이런 꼴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거든.”
모두가 눈을 치켜떴다.
아즐란이 빠졌으면 빠졌지, 하이슨이 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하이슨은 이미 결심을 굳혔는지, 몸을 돌려버렸다.
“잘들 하라고. 내가 보기엔 이 임무···. 아니 됐어. 빠지는 마당에 초 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이 말과 함께 하이슨이 정말로 자리를 떴다.
지켜보던 아더는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오···. 존재감이 가장 없던 사람이었는데, 막판에 탁 튀어버리네.’
그렇게 하이슨이 사라지자, 카르페가 손을 든다.
“자 그럼 출발하지. 여기만 넘으면 이제 목적지가 코앞이야.”
이 말과 함께 용병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긴장들 하라고···. 내가 보기엔 이제부터가 진짜니깐.”
* * *
카르페가 다시 앞장서 뛰쳐나간다.
망설임이 없는 걸 보니, 지금 가는 길에 확신이 있는 듯했다.
그렇게 쓰레기 매립장 안을 한동안 뛰쳐 다닐 때였다.
카르페가 뜀박질을 멈추더니 입맛을 다셨다.
“씁···. 여기 안으로 이어져 있군.”
옆에 있던 아더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여기 하수구 아니에요?”
“맞아. 왜 이런 쓰레기 매립장에 숨어들었나 했더만···. 쥐새끼처럼 하수구 안에 숨어있었구먼.”
“헤에···. 카르페 씨는 마시알 더스트란 사람과 친분이 있어요?”
“친분? 내가 뭐하러 그런 첩자 놈···.”
카르페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더를 향해 경고한다.
“떠볼 생각하지 마. 어딜 주둥이를 놀려?”
“오···. 역시 쉽지 않네요. 저번에도 그렇더니만.”
“저번?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글쎄요? 이 바닥에 있다 보면, 다들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잖아요?”
카르페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쩌다 이런 놈을 데려와서.”
“그래도 도움은 되잖아요?”
“맞아 도움은 되지···. 그게 끝까지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지만.”
이 말과 함께 카르페가 하수구 안으로 들어섰고, 아더가 그 옆을 지켰다.
그런 둘의 모습을 아즐란과 라보르드가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두 사람 만난 적이 있었나?’
‘꽤···. 친근해 보이는데?’
카르페는 이 바닥에 몇 없는 신용 있는 용병으로도 유명했지만, 누구와도 친분이 없기로도 유명했다.
보기 드문 실력 있는 마법사라는 걸 고려하면, 꽤 특이한 일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던이라는 용병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니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카셀이 중얼거렸다.
“주술쟁이와 가면 쓴 놈이 한패라···. 쉽지 않군.”
“…….”
“뭘 보지? 난 훔쳐보는 걸 안 좋아하는데?”
아즐란이 한숨을 내어 쉰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상이 없네, 없어.”
그 후 다시 내달리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침묵이 내려앉았다.
허나 얼마 가지 못하고 아즐란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토해져 나왔다.
“…하 시발.”
하수구 특유의 악취.
조금 전 뒤집어쓴 용병들의 피.
질척이는 구정물의 질감이 신경을 곤두세웠기 때문이다.
‘돈이고 나발이고, 그냥 샤워하고 씻고 싶네.’
생각과 함께 아즐란이 입술을 깨물 때였다.
앞장서 달리던 아더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괜찮으세요, 아즐란?”
“…솔직히 말하면 죽을 것 같아.”
“좀 도와줄까요?”
아즐란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도와준다고? 뭔 수가 있어?”
아더가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코끝으로 맡아지는 악취는 물론이고 몸을 뒤덮은 피마저 싹 씻겨져 내린다.
마법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은 그 작은 기적에 아즐란이 눈을 치켜뜨며 질문했다.
“너, 너… 마법사였어?”
“아뇨?”
“그럼 이게···. 대체 뭐야?”
질문에 아더가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발을 붙잡고 있던 운디네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운디네의 인사에 아즐란이 탄성을 터트렸다.
“중급정령? 정령술사였어?”
아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에 뒤따르던 라보르드와 케라스가 눈을 치켜떴다.
“마법사보다 귀한 게 정령술사인데….”
“던 씨. 생각보다 재주가 많으신 분이었군요.”
칭찬에 아더가 운디네를 향해 말했다.
“저분들도 좀 씻겨줄래 운디네?”
[네 아더!]
대답과 함께 케라스와 라보르드의 몸 상태도 깔끔해진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그 작은 기적에 케라스와 라보르드도 탄성을 터트린다.
그 속에서 아더가 카셀을 바라보았다.
“…난 필요 없다. 남에게 의지하는 건 약자나 하는 짓이다.”
“아 진짜요? 그럼 알겠어요.”
냉정히 고개를 돌려 버리는 아더의 모습에 카셀의 동공이 흔들린다.
하지만 끝까지 입을 열어 부탁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케라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아더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반신반의했는데, 진짜 검은 십자가를 상대로 살아남으신 모양이네요, 던 씨.”
“음? 뭘 보고요?”
“정령도 그렇고, 그때 테니아치를 쏠 때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아까 테니아치 씨가 최면에 걸린 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감이에요.”
“…감이요?”
“네. 테니아치 씨는 B급 용병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무방비하게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어요.”
아즐란이 질문한다.
“겨우···.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총을 쐈다고?”
“그건 아니에요. 어 조금 더 복잡한 이유가 있는데···.”
아더가 눈을 툭 가리켰다.
“호흡이 일정치 않고, 눈에 초점이 이상했어요. 저희를 바라보는 데 시선은 허공을 향했고 말을 하는 입이 이상했죠.”
용병들이 눈을 치켜뜬다.
그 속에서 아더가 손가락을 튕겼다.
“숙련된 용병이라면 이런 상태일 리가 없죠. 그래서 총을 쏴봤어요. 만약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제 사격을 피했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깐.”
대답과 함께 침묵이 내려앉는다.
“…….”
그 속에서 아더를 바라보던 용병들의 눈에 또 한 번 이채가 담겼다.
그때 앞장서 달려가던 카르페가 걸음을 멈춘다.
갑작스러운 그 정지에 용병들이 긴장감을 일깨운 순간, 카르페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 어딘가 비굴한 표정으로 아더를 불렀다.
“어이 미친놈.”
“저요?”
“그래. 나도 좀 씻겨줘 봐.”
“…?”
“아니 나는 뭐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야? 악취 때문에 나도 죽을 것 같다고.”
이 말에 모두가 눈을 끔뻑였다.
그 속에서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카르페 씨는 음흉해서 안 돼요.”
“음흉하다니? 나보다 착한 사람이 어딨다고?”
“안 돼요 당신 음흉해요.”
카르페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그 모습에 잔뜩 긴장한 체 신경을 세웠던 아즐란이 탄식을 터트렸다.
“…뭐야 이 조합. 진짜 미쳐버리겠네.”
옆에 있던 라보르드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케라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질문했다.
“앞으로 몇분 더 달려야 합니까?”
“이제 곧이야. 10분만 더 달리면 끝이 보일 거야.”
이 말과 함께 일행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를 달렸지만, 카르페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일행들 중 누구도 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감각으로 아직 이렇다 할 이변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다시 10여 분 정도를 달렸다.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겼음에도, 카르페는 멈추지 않았다.
그 탓에 의아해진 아더가 침묵을 깨고서 질문했다.
“10분 달렸는데, 아직 멀었어요, 카르페 씨?”
“…….”
“음? 왜 대답이 없으세요? 혹시 운디네 능력 공유 안 해줘서 삐지셨어요?”
카르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치켜뜬 아더가 뜀박질을 하던 걸음을 멈춘다.
탁! 탁! 탁!
허나 옆에서 나란히 내달리던 라보르드와 아즐란은 여전히 뜀박질을 계속했다.
그 기이한 광경에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어라? 이게 뭐지? 시간이 멈춰버렸다고?”
그 후 최대한 감각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하수구에서 기생하는 정체 모를 쥐와 벌레.
그들의 작은 기척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이런 감각도 느껴지지 말아야 하는 데 그 쥐와 벌레들은 분명 느껴지고 있었다.
‘그럼 환각인가? 아니···. 이걸 환각이라 부를 수 있나? 이런 정신계열 마법은 직, 간접적인 접촉을 해야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대마법사라 불리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사람조차 이 조건을 어길 수 없다 들었다.
그 탓에 아더는 긴장감을 일깨운다.
뭔지 모르지만, 상황이 발생했다.
그것도 매우 안 좋은 쪽으로.
그렇게 온몸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릴 때였다.
기억 속에 파묻혀 있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놀랍네. 설마 바이에른의 아이가 이곳에 있을 줄이야.”
이 말에 아더의 어깨가 크게 떨린다.
‘뭐?’
동시에 심장도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 박동이 귓가를 넘어 머리를 울려댈 때 어느 사이엔가 나타난 기척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탁. 탁. 탁.
그 일정한 걸음걸이에 맞추어 아더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도 침착했던 아더였기에 이 감각을 더욱 생생히 느꼈다.
‘긴장 공포···. 아니 이걸···. 뭐라 불러야 하지?’
중얼거림과 함께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가 멈춘다.
그 순간 아더의 감각이 한계를 넘어, 최고조에 이른다.
얼마나 예민하게 곤두섰는지, 제 속눈썹이 커다랗게 보일 정도였다.
그 탓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린 순간, 발걸음의 주인이 질문한다.
“아더 바이에른.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이 말에 아더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눈을 치켜떴다.
“칸 마드리드…?”
제국의 2황자이자 차기 황제가 될 남자.
그리고 전생의 자신을 죽인 모든 일의 원흉.
그가 놀랍게도 멀찍이 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