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저 미친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다.
그 속에서 복근을 훤히 드러낸 탱크탑을 입은 여자가 쾌활한 목소리로 질문한다.
“미친놈? 저 남자가 누구길래 미친놈이라는 거야, 카르페?”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카르페라 불린 남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아니···. 아니다. 착각한 모양이군.”
“…? 뭐야 싱겁게. 진짜 착각한 거 맞아?”
“착각한 거 맞다. 더 이상 떠보지 마, 아즐란.”
아즐란이라 불린 여자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그러니깐 더 궁금하네. 흠···.”
이 말과 함께 시선을 돌린 아즐란이 라보르드를 향해 질문한다.
“그래서 그쪽이 데려온 남자 이름이 뭐야? 우리 카르페 씨가 미친놈이라 부르며 착각한 그 남자 말이야.”
라보르드가 힐끔 아더를 바라본다.
카르페를 바라보던 아더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던. 윌렛 어르신 네 소속 용병이다.”
“던? 처음 듣는···. 어? 그 검은 십자가를 상대로 살아남은 던이야?”
“아마 맞을 거다.”
아즐란의 눈이 커진다.
그건 자리에 있던 다른 용병들도 다르지 않았다.
검은 십자가를 상대로 살아남은 무명의 루키.
이 이야기는 최근 뒷세계에 퍼진 수많은 가십거리 중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그 탓에 아더를 바라보던 용병들의 시선이 달라지던 그때, 아즐란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야···. 난 또 누가 술 취해놓고 헛소리한 줄 알았는데, 진짜 실존 인물이었다고?”
이 말에 아더가 걸어 나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소개대로 윌렛 어르신네 소속 용병 던입니다.”
“반가워. 난 아즐란 C등급 용병이야.”
소개와 함께 아즐란이 손을 내민다.
아더가 그 손을 마주 잡자, 남은 3명의 용병이 각자 이름을 밝혔다.
“하이슨 마찬가지로 C등급 용병.”
“이런 유명인사를 다 보네요. D등급 용병 케라스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장검을 어깨에 걸친 남자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카셀, 미래 최고의 칼잡이가 될 남자다. 기억해라 던.”
“…?”
갑작스러운 선언에 아더가 당황하자, 옆에 있던 아즐란이 충고한다.
“정신 나간 놈이야. 그냥 그러려니 해.”
“…정신 나간 놈이요?”
“우리한테도 저 말을 했거든. 자기 입으로 최고의 칼잡이라 소개하면서.”
아즐란의 설명에 아더가 다시 카셀을 바라본다.
안 보는 척하면서 온 신경을 이쪽을 향해 집중한 짧은 머리칼의 남자가 보였다.
상당히 독특한 모습이었는데 그래서 아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 남자 재밌어 보이는데?’
그때 옆에 있던 아즐란이 은근슬쩍 질문한다.
“그런데 우리 던 씨는 표정이 왜 그래?”
“제 표정이요?”
“뭔가 흐리멍덩한데···. 원래 이렇게 생긴 거야? 아니면 아티펙트야?”
아더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밀이에요. 쉽게 가르쳐주면 재미없잖아요?”
“어라?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밀당을 할 줄 아는데?”
아즐란이 호쾌하게 웃으며 아더의 어깨를 두들긴다.
그때, 침묵하던 카르페가 소리쳤다.
“자 인원도 다 모였으니 그만들 떠들고 일 이야기나 하지. 모여봐.”
이 말에 아더와 라보르드.
그리고 나머지 4명의 용병이 카르페에게로 다가왔다.
그사이 잠시 숨을 고른 카르페가 라보르드를 향해 질문했다.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건 상관없는데, 몫을 늘려줄 순 없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나?”
“이해하고 있다.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일단 약속한 인원도 다 모였으니 바로 움직일 거다. 목표는 마시알 더스트, 놈이 숨어있는 장소를 습격해 붙잡을 거다.”
아즐란이 손가락을 튕기며 질문했다.
“시원시원 한 건 좋은데, 설명을 좀 해줘야 하지 않나? 아무리 당신이 신용 있는 용병이라 해도 정보도 듣지 못하고 움직이는 건 조금 그런데?”
“안 그래도 지금부터 설명할 거다. 재촉하지 마, 아즐란.”
카르페가 손바닥을 펼친다.
그 순간 피어오른 마력이 하나의 도형을 그린다.
그 도형을 이리저리 매만지던 카르페가 손바닥을 다시 쫙 펼쳤다.
그 순간 직사각형 도형이 다른 형태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아더를 포함한 용병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때, 카르페가 설명한다.
“마시알 더스트, 이놈이 숨어있는 장소로 추정되는 건 동쪽 쓰레기 매립장이다.”
아즐란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동쪽 쓰레기 매립장? 그게 끝이야?”
“더 정확한 장소는 일을 끝마친 뒤에.”
“……?”
“설마 미쳤다고 지금 마시알 더스트가 있는 장소를 말하겠나?”
이 말과 함께 카르페가 다시 한번 마력을 주입한다.
그 순간 직사각형 모양 안에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건 마시알 더스트와 함께 있던 한 패 중 한 명에게 숨겨둔 마력전송장치다.”
“…!”
“허나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아. 우리 말고도 이 정보를 알고 있는 놈들이 최소 두 팀은 더 있거든.”
D등급 용병 케리스가 질문한다.
“경쟁 관계에 놓인 그 두 팀을 무력화시킨 순간, 정보를 공유하겠다, 이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 정도는 해줘야, 나도 정보를 공유해주는 명분이 서지.”
대답과 함께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속에서 아즐란이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능구렁이네 카르페. 우리를 섭외할 때는 그런 말 없었으면서.”
“칭찬으로 듣지. 그래서 여기서 결정을 내려줬으면 하는데.”
“…….”
“받아들일 사람은 곧바로 떠나고 아닌 사람은 자리를 이탈해. 그리고 경고하는데···.”
카르페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허튼짓할 거면 지금 당장 하는 게 좋아. 뒤통수 때리면 살아도 산 게 아닌 꼴로 만들어 주지.”
그 순간 카르페를 제외한 4명의 용병이 은근한 살기를 내뿜는다.
허나 그 살기를 정면으로 맞는 카르페는 되려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살아난다고 진짜 안 죽는 것도 아닌데, 자신감이 대단하군. 불사신 카르페.”
카셀의 중얼거림과 함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을 때였다.
이 분위기를 조장한 카르페를 바라보던 아더가 중얼거렸다.
‘흠···. 카르페란 저 남자. 날 어디서 봤었나?’
이번 일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카르페라 불린 남자의 조금 전 반응이었다.
처음 자신의 얼굴을 본 순간, 카르페란 남자는 분명 자신을 아는 듯한 뉘앙스를 취했다.
일전 예니카 때도 그랬지만, 이 얼굴을 아는 자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검은 십자가뿐인데.’
그렇다면 눈앞의 남자도 예니카처럼 검은 십자가 소속일까?
던져진 질문에 아더는 고민하다 눈을 끔뻑였다.
“아···. 불사신 카르페.”
“…?”
“그렇구나···. 흠. 이제야 알겠네.”
옆에 있던 라보르드가 의아해하며 중얼거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던?”
“아···. 아뇨. 그냥 혼잣말이에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할까?”
“뭘 말이에요?”
“카르페란 저 남자 믿고 따라갈 거야? 아니면, 물러설 거야?”
이 말에 아더가 시선을 돌려 카르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씩 입꼬리를 올렸다.
“따라가죠 라보르드.”
“…믿을 수 있겠어?”
“아뇨 안 믿어요. 그래서 확실한 것 같아요.”
“…안 믿는데 확실하다고?”
“일단···. 네. 위험하기는 할 것 같은데, 마시알 더스트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아닌 것 같아요.”
라보르드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가 한다면 나도 참가하는 수밖에 없겠네.”
“원한다면 빠져도 돼요.”
“그건 데려온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지. 그리고···. 이런 기회를 놓치기는 싫거든.”
아더는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 사이 나머지 사람들과 결정을 내렸는지, 손을 든다.
“말투가 싸가지 없긴 한데···. 그래도 뭐 한번 믿어보지.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니깐.”
아즐란이 입을 열었고, 나머지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을 확인한 카르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시간이 별로 없어. 다 잡은 물고기 놓치는 것만큼이나 짜증 나는 일 없으니 어서들 움직이자고.”
* * *
용병들이 팀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 해서 팀을 이루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공동의 목표를 두고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그러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관계가 끝까지 어이질 수 있냐면 그건 아니었다.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지···. 그래서 라보르드도 날 데려가려 했던 거고.’
현상금이 1000골드라 하지만 개인으로 마시알 더스트를 잡았을 때 해당하는 이야기다.
인원이 늘어나고 수익을 분배하게 되면 그 몫은 당연하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은 인원이 될수록 유리하지···. 여기서 최소 두 명. 어쩌면 전부 배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용병들이 약속과 신의를 지키는 건 의뢰를 한에서다.
그리고 지금 이 동맹은 의뢰가 아니다.
갱단만큼은 아니지만, 돈에 미쳐 있는 용병들은 천 골드 앞에서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었다.
그 탓에 아더는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를 믿지 않았다.
그건 라보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라보르드. 네 놈이 이끄는 갱단 녀석들은 뒤쪽으로 흘려.”
“이유가 있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지. 이렇게 눈에 띄는 인원이 다 같이 움직이면, 꼬리를 밟는 자들도 있을 수 있어. 그러니깐 네 놈의 갱단을 여기서 이용한다.”
강압적인 카르페의 말에 라보르드가 살며시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굳이 입을 열어 반박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상관없는데,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라는 명령 정도는 괜찮겠지?”
“상관없다. 애초에 시선 분산이 목적이니깐.”
카르페의 말에 라보르드가 마력통신구를 장착한다.
그 순간 뒤쪽에서 따라오던 20명의 갱단이 그림자처럼 흩어진다.
그 기척을 느낀 카르페가 손짓한다.
“자 미끼도 뿌려놨으니 속도 좀 올려보자고. 이 이상 지체되면 곤란하니깐.”
이 말과 함께 아더를 포함한 6명의 인원이 속도를 올린다.
그렇게 폐촌을 타고 내달리다 보니 쓰레기 특유의 악취가 코끝으로 맡아졌다.
D-42구역, 동쪽 쓰레기 매립장.
아케인에서 가장 더러운 지역에 도착한 것이다.
그 속에서 속도를 늦춘 카르페가 조금 전 일으켰던 마법을 다시 일으켰다.
마시알 더스트의 위치를 확인한 카르페가 중얼거렸다.
“한 10분 정도를 더 달려야겠군. 가자고 다들.”
이 말과 함께 멈추었던 행군이 다시 진행되려는 찰나였다.
카셀이 들쳐메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매복이다. 누군가 있어.”
그와 동시에 아즐란을 비롯한 나머지 용병들이 재빨리 각자의 무기를 치켜든다.
앞장서 달리던 카르페도 움찔 놀라 멈추어 선 그때, 저 멀리서 태닝을 한 금발의 남자가 유유자적하게 걸어 나온다.
“오···. 거기 소년. 감이 좋은데? 단번에 알아차리다니?”
이 말에 카르페가 시선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테니아치… 네 놈이 여긴 어쩐 일이지?”
“어쩐 일이긴, 그쪽이랑 똑같은 이유지. 이곳에 천 골드짜리 현상 수배범이 숨어 있잖아?”
테니아치라 불린 남자가 씩 웃으며 새하얀 건치를 드러낸다.
무척이나 정갈한 건치였는데 그래서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할 때였다.
옆에 있던 아즐란이 혀를 차며 중얼거려다.
“아니···. 저 양아치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아더가 고개를 내밀며 질문했다.
“아시는 분이에요 아즐란?”
“어? 아니···. 솔직히 안다기보단···. 저 양아치 꽤 유명하잖아? 남자건 여자건 지 맘에 들면 일단 들이대고 보는 변태, 그런데 꼴에 실력은 좋아서 B등급 판정을 받은 놈으로.”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테니아치를 바라보았다.
‘실력이 좋다고?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실력이 좋다기보다는 허술해 보였다.
혹여 잘못 봤나 싶어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테니아치란 남자는 허술했다.
B등급 용병치고는 너무나도.
그 탓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테니아치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건넨다.
“어때 카르페? 동맹을 맺는 게?”
“…동맹?”
“그래! 저 떨거지들 버리고, 나한테 와! 그러면 배분을 5대5로 할게! 굳이 여러 명에게서 나눠 먹을 필요 없이, 딱 두 명에서 분배하자고!”
이 말에 카르페가 움찔 몸을 떤다.
동시에 아더의 옆에 있던 아즐란이 표정을 굳히며 소리친다.
“카르페! 설마 저 말 믿는 거 아니지!? 저놈을 어떻게 믿고?”
“왜 못 믿어 예쁜 아가씨? 더 나은 쪽과 팀을 이루는 거,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양아치 새끼가. 말은 번지르르하네.”
“칭찬으로 듣죠 레이디.”
테니아치가 건치를 다시 드러내며 웃는다.
입술을 깨문 아즐란이 다시 무어라 소리치려 할 때였다.
옆에 있던 아더가 손가락을 튕긴다.
“아 알겠네.”
“…?”
“허술한 게 아니고, 정신이 나간 거였어. 음···. 독특한 증상인데?”
난데없는 중얼거림에 아즐란이 눈을 끔뻑인다.
그 사이 상황을 파악한 아더가 권총을 꺼내 든다.
그리고 테니아치의 머리를 겨냥한 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테니아치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을 끔뻑인다.
“어?”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테니아치의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동시에 드러난 건치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보르드가 놀라 아더를 불렀다.
“더, 던?”
허나 꺼내든 총으로 테니아치의 머리를 날려 버린 아더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카르페를 향해 물었다.
“깜짝 속을 뻔했네요. 안 그래요 카르페 씨?”
“…….”
“시체는 아닌 것 같고, 환각 같은 데 대단한 실력이에요. 당신이 보기엔 어때요?”
질문에 넋을 놓고 있던 카르페가 대답한다.
“나, 난 모르는 일이야! 그, 그런데 환각에 걸렸다고?”
질문에 방긋 웃은 아더가 걸어 나온다.
그와 동시에 쓰레기 매립장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려온다.
시선을 돌린 아즐란과 용병들이 눈을 치켜뜨며 경악한다.
“막는다···.”
“이곳에는···. 누구도 못 들어온다···.”
“들어오면 다 죽인다···.”
100여 명 정도 되는 용병들이 같은 말을 되뇌며 좀비마냥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가 다시 총을 장전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네요. 저희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온 사람들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