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테이큰이 검을 휘두른다.
그에 맞서 아더도 고리를 회전시켰다.
챙-!!
그 순간 대검과 검이 교차한다.
그 힘겨루기 사이에서 아더는 눈을 치켜떴다.
‘…무슨 힘이지, 이건?’
검을 잡은 손이 떨린다.
아니 검 자체가 흔들렸다.
이대로 힘겨루기를 계속했다간, 운철검이 부러질 수도 있을 듯했다.
판단을 내린 아더는 곧바로 물러났다.
‘운디네, 노움 씨.’
부름과 함께 운디네가 물벼락을 쏘아 낸다.
파앗-!
허공에서 뿜어져 나온 거친 물줄기가 돌진해 오는 테이큰을 막아선다.
쿠크크크-!
그뿐만이 아닌 딛고 있던 지면이 갈라지며 테이큰의 육체가 바닥에 파묻힌다.
그 기이한 변화를 지켜보던 네크로맨서가 놀라 중얼거렸다.
“뭐? 정령도 사용할 줄 안다고?”
이 말과 함께 그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그것도 하급이 아니라, 중급이군… 허. 이런 일이 가능한가?’
공간 도약에 웬 이상한 혈통.
그리고 고리에 비해 말도 안 되는 칼 솜씨.
이제는 정령까지 다루는 정체불명의 용병.
그 탓에 아더를 지켜보는 그의 두 눈에 진한 호기심이 깃든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났을까?
이 정도로 특이한 용병이라면 분명 이름을 떨쳤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네크로맨서가 고민에 잠겼을 때였다.
천지가 개벽한다.
“크하하하! 제법 칼을 쓰는군, 네놈!”
테이큰의 외침에 아더가 검을 사선으로 빗겨 든다.
그 순간 뻗어진 주먹이, 정확히 아더의 검으로 향했다.
경로를 보고서 미리 준비된 방어.
그래서 아더는 이번 일격을 흘려냈다 생각했다.
직접 맞아보기 전까지는.
“…어라?”
탄성과 함께 육체가 뒤로 쏠린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아보려 했는데 이미 늦은 뒤였다.
허공을 날은 아더가 그대로 반대편 벽면에 처박힌다.
쾅-!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잔해.
그 속에서 피 한 움큼을 토해낸 아더가 중얼거렸다.
“와… 아프네, 이거.”
그리고 고개를 들어 테이큰을 바라봤다.
이제는 거의 완벽하게 초록 피부가 된 사내가, 어느 사이엔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더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공간 도약을 사용했다.
쾅!
먼지바람과 함께 조금 전 아더가 쓰러진 자리가 함몰된다.
쇳덩이나 다름없는 대검이, 대리석을 베는 게 아니라 후드려팬 것이다.
허나 그 과격한 일격 덕에 빈틈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빈틈을 아더는 놓치지 않았다.
푹!
공간 도약을 사용해 그의 목덜미에 안착한 아더가 운철검을 꽂아 넣었다.
“흠… 이 정도로 안 죽겠죠?”
“말이라고.”
대답과 함께 테이큰이 고개를 돌린다.
그와 동시에 아더가 다시 공간 도약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
테이큰의 목덜미에 꽂아 넣은 운철검이 뽑히지 않았다.
놀란 아더가 힘을 주었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어라라?’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그 순간, 운철검을 꽉 부여잡고 있는 살점과 뼈가 보인다.
“오… 이건 진짜 놀라운데요?”
“더 놀라운 걸 보여주지. 네 놈 머리가 터져 나가는 마술이다.”
이 말과 함께 테이큰이 주먹을 휘두른다.
아더가 어쩔 수 없이 운철검을 버리고 공간 도약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쾅-!
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테이큰의 주먹이 멈칫한다.
아더와 테이큰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지니를 바라봤다.
“더, 던 님!! 죽으면 안 돼요!!”
“….”
“죽으면 저도 죽는다고요!! 반드시 이기셔야 해요!”
외침에 아더가 탄성을 터트렸다.
‘지니, 알고 보니 진짜 좋은 사람이잖아?’
생각과 함께 아더가 온 힘을 다해 운철검을 뽑아 든다.
그 사이 테이큰이 다시 주먹을 휘둘렀지만, 이미 빠져나간 아더였다.
기회를 놓친 테이큰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저 귀쟁이 년. 마크 안 하나?”
“살아날 수 있는 횟수가 이제 두 번뿐이라서 곤란해.”
“죽이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끼어들게는 하지 마. 한 번 더 이러면 네놈 머리부터 터져 나간다.”
경고에 네크로맨서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 언데드들을 향해 명령했다.
“저 무식한 놈의 말을 들어주거라. 내 귀여운 종들아.”
끼엑!
100마리의 언데드들이 움직인다.
그 광경에 지니가 입술을 깨물며 저격 총을 든다.
그렇게 또 다른 싸움이 펼쳐진 것을 확인한 테이큰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너 뭐 하냐?”
“네?”
“뭐 하냐고.”
아더가 운철검의 칼날에 묻은 핏방울을 혀로 핥으며 답한다.
“당신 피 맛 좀 보고 있는데, 더럽게 맛없네요.”
“….”
“제가 먹어 본 피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맛없어요. 음… 그래도, 먹을 가치는 있어 보이네요.”
대답과 함께 입꼬리를 올린 아더가 사라진다.
테이큰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대검을 휘두른다.
쾅-!
그 순간 다시 한번 검과 검이 교차되며, 거친 쇳소리를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테이큰의 눈이 치켜떠진다.
“뭐냐 힘을 숨기고 있었어?”
“아뇨. 이게 제 전력입니다.”
이 말과 함께 아더가 테이큰 대검을 쳐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격은 조금 전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힘이 늘었다. 그것도 한순간에.’
생각과 함께 테이큰이 아더의 검을 쳐낸다.
밀려난 운철검이 비명을 토해낸다.
허나 검의 주인은 그런 엄살을 봐주지 않았다.
쾅!
온 힘을 다해 휘둘러 테이큰의 심장을 노린다.
불사신에 가까운 이 육체의 유일한 약점을 노리는 공격에 테이큰이 급히 방어한다.
“오. 거기가 약점인가 보네요?”
아더가 웃으며 검의 경로를 틀었다.
비정상적으로 꺾어진 검이 테이큰의 어깨를 베어낸다.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를 아더가 피해내지 않고 얼굴로 받아낸다.
그 모습에 테이큰이 웃음을 터트렸다.
“전투 중에 피를 받아먹어? 미친놈이군.”
“그런 소리를 종종 들었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근육을 폭발시켰다.
두근!
테이큰의 피를 흡수한 바이에른의 피가, 그에 맞추어 호응한다.
그 순간 넘쳐흐르는 힘과 활기에 아더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와. 무슨 힘이… 도대체 트롤의 피가 뭐길래, 이런 능력이 주어지는 거지?’
이 정도 힘과 활기면 적어도, 3서클 칼잡이의 육체에 버금갔다.
육체강화를 상시 사용할 수 있단 소리였다.
‘아직 완전히 피를 흡수하지 못해서, 재생능력까지는 따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네. 전생에 흡수했던 혈통과 비교해도 손꼽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새로이 얻은 혈통의 능력과 프라킬의 육체 능력.
마지막으로 1서클 고리로 강화한 육체의 힘으로 테이큰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서걱!
그 순간 테이큰의 가슴팍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처음으로 중심이 뒤틀렸다.
전투 중 처음으로 보인 완벽한 빈틈에 아더가 눈빛을 빛낸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급히 소리쳤다.
‘운디네, 노움 씨!’
아더의 부름에 중급 정령이 된 운디네와 노움이 나타났다.
동시에 비틀거리는 테이큰의 얼굴을 감싸는 거대한 물보라가 나타났다.
“…!”
그 이변에 놀란 테이큰이 황급히 숨을 참는다.
허나 아더가 만들어낸 기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지끈!
테이큰이 딛고 있던 지면이 뒤흔들렸다.
동시에 실금이 간 바닥이 무너지고, 테이큰의 육체가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육체의 모든 움직임이 제한된 테이큰의 눈이 치켜떠졌다.
그리고 뒤늦게 빠져나오기 위해 힘을 일으켰지만, 아더의 검이 먼저였다.
스윽!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테이큰의 머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아더가 타이밍 좋게 그 머리를 받아 들며 말했다.
“아무리 불사신이라도, 머리를 베면 죽겠죠?”
이 말에 테이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목과 얼굴이 분리되었는데,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방심을 해서 그런 건가. 검기는 사용하지 않았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리 혈통 능력에 의지했다 하지만, 1서클 고리로 5서클 고리를 지닌 칼잡이를 이겨냈다.
운이 겹쳐 이뤄낸 말도 안 되는 성과였다.
그사이 전투를 지켜보던 지니도 놀라 중얼거렸다.
“…이겼어? 도살자를 상대로?”
그와 동시에 시선을 돌린 네크로맨서가 눈을 치켜떴다.
“오… 저 친구의 머리를 잘라냈어?”
감탄과 함께 내려앉은 침묵이 소강상태를 만들어 낸다.
그 속에서 지니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더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혈통을 지니고 있어도… 이거 맞는 거야?’
생각과 함께 지니가 소름이 돋은 팔을 박박 문질렀다.
뒤늦게 저 괴물에게 자신이 했던 행동이 떠오른 것이다.
‘X발! 이놈의 입 입 입!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인 거냐! 과거의 나!’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아더를 바라보던 네크로맨서가 불쑥 소리친다.
“이봐. 장난 그만치고, 얼른 끝내. 아무리 이곳이 외각이라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더는 있을 수 없다고.”
그의 외침에 지니가 흠칫 놀란다.
그건 아더도 다르지 않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어?”
지반이 뒤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놀란 노움이 혼절한다.
[노, 노움!]
운디네의 외침과 함께 목이 잘린 테이큰의 육체가 노움이 만들어낸 구멍을 빠져나온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더는 제 손에 들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잘린 테이큰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새끼, 좀 치는군.”
이 말과 함께 아더의 얼굴에 무언가 닿았다.
테이큰의 주먹이었다.
“어라?”
항거할 수 없는 힘과 속도에 아더가 테이큰의 얼굴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조금 전과 같이 뒤로 밀려났다.
쾅!!
폭음과 함께 또다시 벽면에 부딪친 아더가 꿈틀거린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피가 흩뿌려진다.
즉사했다 해도 믿을 만한 상처가 얼굴에 난 것이다.
지켜보던 지니의 입이 벌어진다.
“…죽었어?”
그 사이 머리를 되찾은 테이큰이 입꼬리를 올린다.
“목이 잘리는 건 진짜로 오랜만이군. 언제 경험해도 섬뜩한 감각이야.”
이 말에 아더를 지켜보던 지니가 흠칫 놀란다.
‘저게… 뭐야? 머리를 잘리고도 되살아난다고?’
눈앞의 네크로맨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살자.
테이큰조차 죽음에서 되살아난 건 믿기가 힘들었다.
허나 그 믿기 힘든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허….”
탄식과 함께 지니가 쓰러진다.
절망적인 상황이, 그녀의 남은 희망을 꺾어버린 것이다.
그건 네크로맨서와 도살자도 다르지 않았다.
상황이 종결되었음을 깨달은 그들은 각자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얼른 타르탄 사장을 회수하고 물러나자고. 더는 시간을 끌어선 안 돼. 너무 일을 크게 벌이면, 시의 공무원 쪽에서 압박이 가해질 거야.”
“압박해 오라지. 내 알 바 아니다.”
“…주인님한테도 그렇게 말할 건가?”
이 말에 테이큰이 움찔 놀란다.
그 속에서 네크로맨서가 다시 한번 경고한다.
“예상보다 피해가 너무 컸어. 죽인 사람의 숫자가 50을 넘어간다고. 그럼 공무원 쪽에서 분명 제스쳐를 취할 거고, 그건 주인님 원하는 그림이 아니야.”
“그건 네가 감수해야지. 네 놈이 언데드로 만들었잖아?”
“그 언데드로 만들 수 있게, 머리를 터트린 건 너지, 테이큰.”
테이큰이 입을 다문다.
그는 진심으로 분노해, 네크로맨서를 노려보았다.
“언젠가 네놈의 머리를 박살 내주마.”
“기대하고 있지. 자 어서 가자고.”
이 말에 테이큰이 침을 뱉으며, 몸을 돌렸다.
타르탄 사장을 보호하는 지니를 향해 말이다.
하지만 지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친놈도 이기지 못한, 저 괴물을 자신이 무슨 수로 이긴다 말인가?
그래서 들고 있던 저격총을 자신도 모르게 내려놓았을 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공장 안에 울려 퍼진다.
“저기요?”
“…?”
“아직 안 끝났는데, 가시면 곤란한데요.”
테이큰이 고개를 돌린다.
네크로맨서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
“허?”
탄성과 함께 네크로맨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명 죽었어야 할,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드득-!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목을 더듬는다.
그 순간, 부러진 목뼈가 다시 교정되고, 피범벅인 얼굴에 새살이 돋는다.
눈에 띄게 말도 안 되는 재생력.
그 탓에 테이큰의 눈이 치켜떠진다.
‘나와 맞먹는 재생능력이라고?’
그 속에서 완벽히 되살아난 아더가 방긋 미소 짓는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났네요.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요?”
이 말과 함께 아더가 운철검을 치켜든다.
정신을 차린 테이큰이 웃음을 터트렸다.
“저놈 저거. 진짜로 재밌네.”
“…저게 재밌다고? 난 이제 좀 두려운데. 도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네크로맨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더를 관찰할 때였다.
갑자기 아더의 얼굴에서 무언가 툭 떨어진다.
눈알이었다.
“…?”
데구르르 굴러간, 눈알이 네크로맨서의 발 앞에서 멈춘다.
그것을 바라보던 네크로맨서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아더를 바라본다.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어 빠졌네.”
“….”
“혹시 주워주실 수 있나요, 네크로맨서 씨? 애꾸가 되고 싶지 않아서 말이에요.”
이 말에 네크로맨서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뭔지 모르겠는데, 미친 건 확실하군. 제정신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