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포션 덕에 간신히 되살아난 지니가 배를 만지작거렸다.
배에 난 구멍은 포션 덕에 메꾸어져 있었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 탓에 진짜 죽을 뻔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지니가 고개를 든다.
“오···. 피 맛이 좋네, 이거.”
발달한 청각에 의해 아더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흠칫 놀란 지니가 어깨를 덜덜 떨었다.
‘미친놈···. 미친놈. 도대체 피를 왜 먹어?’
기행도 한두 번이지, 그것이 계속되자 이제는 두려움을 넘어 공포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사이 아더는 입가에 묻은 지니의 피를 핥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아더. 어떻게 한 거예요?]
[어? 진화했어?]
하급 정령에서 중급 정령으로 진화한 노움과 운디네.
둘은 이제 요정이 아니라 소년과 소녀가 되어 있었다.
확연히 달라진 그 변화에 아더가 미소지으며 묻는다.
‘운디네, 노움 씨 어때? 기분 괜찮아?’
[네. 너무 좋긴 한데···. 어떻게 한 거예요, 아더? 갑자기 힘이 확 늘었어요!]
[맞아. 어떻게 한 거야?]
정령들의 호들갑에 아더가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댄다.
‘그건 비밀. 하여튼 축하해. 중급 정령이 돼서.’
노움과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굳이 따져 묻지 않고, 조심스레 다가와 아더의 손을 각기 붙잡았다.
아이린이 생각나는 행동에 아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음···. 이 정도면, 지니를 살려준 보람이 있네.’
당연하지만, 하급 정령과 중급 정령은 그 힘의 차이부터가 달랐다.
지금까지 운디네와 노움이 자연을 이용한 변화를 일으켰다면, 이제는 변화를 넘어 기적까지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제정신으로 돌아오니깐, 이런 이득도 볼 줄 알고… 성장했어, 아더 바이에른.’
생각과 함께 아더가 지니를 바라본다.
시선을 마주친 지니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굳혔다.
“저… 지니 씨?”
“네, 네?”
“….”
“마, 말씀하세요!”
아더가 당황하며, 묻는다.
“어···.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네요?”
“….”
“지니 씨 맞으세요?”
지나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속으로는 온갖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시체를 썰어 대며, 웃는 미친놈.
여기까지 생각한 지니는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제가 말을 너무 막한 것 같아서요···.”
“….”
“거, 거기다! 던 씨 나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고.”
아더가 눈을 끔뻑이여 대답했다.
“저 17살인데요?”
“…?”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아더의 대답에 지니도 눈을 끔뻑였다.
허나 곧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모았다.
17살?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일까?
‘이 새끼···. 트집 잡고 날 죽이려 이러는 건가?’
생각과 함께 지니가 맹렬히 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아더가 왜 이런 말을 해오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자기 나이를 열일곱 살로 속일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 탓에 지니는 웃었다.
웃는 얼굴에는 침도 못 뱉는다는 명언을 떠올리며.
“하하! 재밌는 농담이네요!”
“…?”
“나이는 묻지 않을게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은 있죠!”
침묵하던 아더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가···.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지니란 사람이 바뀌었다.
그것도 아주 여러모로.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문이 들었지만, 아더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지니가, 조금 전의 지니보다 확실히 나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럼 지니 씨.”
“네 말씀하세요.”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저희 이제 동료인가요?”
지니의 눈이 치켜떠진다.
“동··· 료요?”
“네 동료.”
대답에 지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 제 배때기에 구멍을 낸 놈이 동료를 논해?
하지만 다시 구멍이 나고 싶지 않았던 지니는 방긋 미소지었다.
“당연히 동료죠. 던 님.”
“….”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
아더가 탄성을 내질렀다.
“오 좋네요. 그럼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부탁이요?”
“네.”
아더가 집무실을 가리켰다.
“지금부터 이곳을 빠져나갈 텐데, 지니 씨가 의뢰인의 호위를 맡아주세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지만, 의뢰는 완수해야 하잖아요?”
* * *
집무실을 뚫고 들어간 아더는 기절한 타르탄 사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나 그의 상태를 살펴본 아더는 단순 충격 때문에 기절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독약을 먹었네, 이거···.”
기도가 비정상적으로 막혀있고, 호흡이 가파르다.
독에 중독되었다는 증거였다.
‘침입자가 있었나? 아니면 스스로?’
고민을 하던 아더는 후자 쪽이 더 그럴싸하다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침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료 좀 해줄래, 운디네?”
[맡겨 주세요 아더!]
대답과 함께 운디네가 능력을 시전한다.
청량한 기운이 아더의 코끝을 스친 순간, 타르탄 사장의 안색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단번에 독을 날려 버린 운디네의 능력에 아더가 감탄했다.
“와···. 운디네. 능력이 너무 좋아진 거 아니야?”
[헤헤 아더 덕분이에요!]
운디네의 대답에 아더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운디네의 눈을 가렸다.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해맑게 웃으며 아더의 팔에 매달렸다.
그 상태 그대로 몸을 돌린 아더가 타르탄 사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뺨을 후려갈겼다.
짝-!
거친 소리와 함께 타르탄 사장의 얼굴이 돌아간다.
허나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아더는 다시 한번 뺨을 내리쳤다.
짝짝짝!
연달아 울려 퍼지는 거친 소리에 노움과 지니가 입을 벌린다.
‘저, 저 미친놈! 갑자기 사람 뺨을 왜 때려!’
[무, 무서워….]
그사이 타르탄 사장의 뺨이 부풀어 올랐음에도 깨어나지 않자,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흐음… 곤란하네, 이거. 네크로맨서에 대해서도 물어야 하고, 상황을 좀 전해 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다르게 보면 좋은 점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이 건물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타르탄 사장 같은 비전투인력은 차라리 기절해 있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는 타르탄 사장을 지니에게 맡겼다.
핼쑥한 얼굴인 지니였지만, 타르탄 사장 정도는 쉽게 업었다.
그렇게 집무실을 다시 빠져나왔을 때였다.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복도를 바라보던 지니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저… 던 씨?”
“네 말씀하세요.”
“그… 타르탄 사장을 업은 상태에서 지원사격을 하게 되면, 약간 늦어질 수 있는데 괜찮을까요?”
아더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 괜찮아요. 사실 걱정이 돼서 지니 씨에게 타르탄 사장을 맡긴 거거든요."
“…네?”
“제 경험상, 지니 씨와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은 꼭 원한을 갚는다고 돌발행동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타르탄 씨를 업고 있으면, 그런 행동을 못 하잖아요?”
지니가 입을 벌렸다.
설명을 하던 아더가 웃었다.
“뭐 지니 씨는 안 그럴 것 같지만.”
그 미소를 지켜보던 지니는 소름이 돋은 제 팔을 박박 문질렀다.
동시에 굳게 다짐했다.
‘지원사격을 하더라도, 절대 뒤통수를 겨냥하면 안 돼. 그 텔레포트 같은 능력을 사용해 내 목을 싹둑 잘라 버릴 거야.’
중얼거림과 함께 지니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속에서 옅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더는 감각을 최대한 일깨운 채, 어드벤처 제약사의 정보를 떠올렸다.
타르탄 사장이 이끄는 어드벤처 제약사의 본사는 C-44 구역에 있었는데 상업지구 중에서도 꽤 외각에 위치해 있었다.
대신, 넓은 지부를 통째로 사용해서, 본사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잘하면 안 들키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소리인데···. 이거 길을 잘 모르겠네.’
운디네와 노움의 도움을 빌리면 금방 해결되지만, 조금 전 마주쳤던 네크로맨서의 수준이 걸렸다.
중급 정령이 되면서 높아진 존재감에 정령 친화력이 없는 이들도 이제는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령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아더는 고민하다 지니에게 부탁했다.
“지니 씨? 길 좀 알려주실래요?”
“…길이요?”
“네. 이번 임무는 타르탄 사장을 호위하는 거잖아요? 적을 마주칠 필요가 없죠.”
지니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정확한 설명입니다. 던 님.”
“….”
“굳이 그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필요는 없죠. 때마침 제가 길을 기가 막히게 찾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너무나도 친절한 지니의 태도에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허나 곧 그러려니 했다.
‘태도가 확확 바뀌는 걸 보니 지니 씨도 어디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이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 들면 머리만 아플 뿐이다.
정상인이 어찌 비정상인을 이해하겠는가?
그 사이 지니가 앞장섰다.
느려터진 진행 속도가 그녀가 앞에 선 순간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몇 마리의 언데드들이 튀어나왔지만, 소리도 지르기 전에 아더의 칼날에 목이 떨어졌다.
“가시죠.”
담담히 대답한 아더가 다시 걸어 나가고, 지니는 마른침을 삼켰다.
‘윌렛 어르신. 언제 오세요. 제발 저 괴물한테서 저 좀 구해주세요.’
중얼거림과 함께 윌렛이 위험 상황이 터지면 사용하라고 건네준 마력전송장치를 매만질 때였다.
앞장서 걸어가던 아더가 제게 손짓했다.
동시에 멈추어 선 지니가 흠칫 놀라 중얼거린다.
“입구가···.”
“네, 막혀있네요.”
아더가 턱을 긁적였다.
100마리의 언데드들이 벽이 되어 출구를 막고 있었다.
강제로 뚫고 나가려면 나갈 수야 있지만, 뒤에 있는 타르탄 사장이 걸린 아더는 고개를 돌렸다.
“다른 곳은 없나요, 지니 씨?”
“제가 본 설계도에 따르면 저기가 유일한 출구였어요.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면 외벽을 파괴해야 해요.”
대답에 아더가 고민한다.
그리고 칼을 뽑아 들고서 앞으로 걸어 나가려는 순간, 지니가 소리친다.
“그, 그 싸우시게요?”
“네. 길은 저기 밖에 없고, 다른 곳을 뚫자니 어차피 네크로맨서가 눈치채고 뒤쫓아 오겠죠?”
“….”
“그럴 바에는 여기서 결판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지원을 좀 부탁드릴게요, 지니 씨.”
지니가 입을 다문다.
그 사이 운철검을 뽑아 든 아더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에 맞추어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칼잡이.”
아더가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도망친 네크로맨서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탕-!
위치를 확인한 아더가 곧바로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허나 미리 베리어를 시전해 둔 네크로맨서였다.
팅!
빗나간 총알을 바라보며, 아더가 입맛을 다셨다.
조금 전 쏘아 낸 총알이 안타깝게도 마지막 발이었다.
“거참···. 무슨 인사를 권총으로 대신하나?”
“인사를 굳이 나눌 사이는 아니라 생각해서요.”
“그건 맞지. 우리가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
대답과 함께 네크로맨서가 허공에서 내려온다.
그 모습에 아더가 운철검을 움켜쥐고 전투에 돌입하려 할 때였다.
네크로맨서가 입을 열었다.
“1층에 오면, 자네 상대가 있을 거라 했지. 기억나나?”
“…그런 소리를 했던가요?”
“했어. 그러니 나 말고, 그 친구하고 놀게나. 아주 재밌을 거야.”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 네크로맨서가 물러나자 동시에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100마리의 언데드들도 물러난다.
그 순간 울려 퍼진 묵직한 소음에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다.
쿵-!
‘어?’
탄성과 함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바이에른의 피가 보내는 그 경고에 아더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고쳐 잡았다.
‘뭐지? 갑자기 왜 이런 기분이?’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의 시선이 가늘어질 때였다.
아주 거대한 사내가, 거대한 대검을 든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겉보기에는 체격이 큰 것 빼고는 평범해 보이는 외관.
하지만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거친 고리의 기운을.
“5서클···.”
말을 흐린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아더의 뒤에서 타르탄 사장을 호위하던 지니도 네크로맨서 뒤에 선 사내를 발견하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 남자는···.”
“저 남자는? 누군지 아세요, 지니 씨?”
물음에 지니가 턱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도살자… 도살자예요. 뒷세계의 인간 중에서 아주 유명한 미치광이 살인자···.”
익숙한 단어에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오. 저 칼잡이가 미친놈이라고?’
그사이 네크로맨서가 소리친다.
“쉽지 않을 거야! 이 친구는 5서클에다 자네와 마찬가지로 혈통을 지니고 있거든! ‘트롤’이라고 들어봤나? 천 년 전 존재했다는 괴물의 핏줄이지!”
외침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한다.
“트롤이 뭔가요?”
“간단히 말해 불사···.”
네크로맨서의 말이 끊긴다.
동시에 터져 나간 그의 머리에 아더와 지니가 흠칫 놀란다.
“나불나불···. 내 능력을 잘도 지껄이는군.”
도살자.
테이큰이 이 말과 함께 네크로맨서를 밀치며, 걸어 나온다.
때마침 되살아난 네크로맨서가 뒷덜미를 매만지며 불평을 터트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내 머리가 장난감인 줄 아나···.”
그 사이 테이큰과 마주하게 된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위험하네요, 이거.”
“뭔 소리냐?”
“당신이요. 진짜로 위험하네요. 이런 상대를 만날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아더의 말에 테이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치고, 웃고 있군.”
“아 그건 버릇입니다.”
아더가 운철검을 고쳐 잡으며 입가에 건 미소를 지운다.
“그런데 테이큰 씨 상대로는 웃는 것도 사치네요.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야겠어요. 이번에는···. 진짜 위험해 보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