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쓰러진 지니를 바라보며 네크로맨서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동료가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한눈팔아도 돼요?”
네크로맨서가 흠칫 놀란다.
어느 사이엔가 아더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급하게 완성시켜 두었던 마법을 시전했지만, 아더의 칼질이 먼저였다.
턱.
목과 몸이 분리되어, 떨어졌다.
데구루루 바닥을 구른 네크로맨서의 얼굴을 아더가 짓이기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크로맨서의 입이 먼저였다.
“목숨 하나를 바쳐 살아난다.”
이 말과 함께 네크로맨서의 얼굴이 터졌다.
그러나 죽지 않고 되살아난 네크로맨서가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텔레포트? 아닌데? 혈통의 힘인가?”
“글쎄요?”
대답과 함께 아더가 다시 공간 도약을 시전했다.
하지만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끼엑?
언데드를 이용해 벽을 세웠다.
시체 방패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 아더가 총을 든다.
탕-!
총성과 함께 앞을 가로막던 시체 방패에 구멍이 뚫린다.
덕분에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네크로맨서가 아더의 시야에 담겼다.
아더는 곧바로 방아쇠를 당기는 한편, 프라킬의 혈통 능력을 일으켰다.
탕-!
쾅-!
서로 다른 폭발음과 함께 네크로맨서의 머리가 또 한 번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아더의 몸에도 불이 붙었다.
하지만 미리 시전해 두었던 프라킬의 혈통 능력 덕에 피해는 없었다.
“…그건 또 뭐야? 설마 공간 도약은 아티펙트고, 그게 네 진짜 혈통이냐?”
되살아난 네크로맨서가 질문한다.
아더가 대답하며, 공간도약을 시전한다.
“글쎄요?”
이 말과 함께 또다시 목을 노리고 쇄도하는 칼질에 네크로맨서가 혀를 찬다.
‘저 귀쟁이보다 이놈이 까다롭군. 도대체 뭔 놈이야 이거?’
느껴지는 고리의 기운은 고작 한 개.
그런데 공간 도약을 쓰고 육체 변화를 일으켰다.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운데, 칼과 총까지 쓴다.
이 바닥 용병들이 종잡을 수 없는 놈들이라 하지만 이 정도의 잡탕은 흔치 않았다.
‘그냥 넘어갈 수 없겠어. 칼잡이를 꺼내야겠군. 남은 목숨도 별로 없으니깐.’
생각과 함께 네크로맨서가 제 손바닥을 찢는다.
뚝뚝 흘러내린 핏방울이 저절로 주문진을 그린다.
문이 완성되자 망자의 칼잡이들이 주문진을 통해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운철검으로 네크로맨서의 가슴팍을 찢었다.
파앗-!
튀기는 핏줄기와 함께 네크로맨서가 뒤로 쓰러졌다.
다행히 이번에도 주문을 외운 뒤였다.
다시 살아난 네크로맨서가 망자의 칼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 거두어들인 쓸 만한 놈들이지. 뚫기 쉽지 않을걸?”
“오… 그래 보이네요.”
대답과 함께 아더가 뒤편에서 덤벼드는 칼잡이의 목을 자른다.
실력 차이가 느껴지는 깔끔한 일격.
그 탓에 네크로맨서가 할 말을 잃어버린다.
“…자네의 주특기가 혹시 칼인가?”
“다른 것들도 할 수 있긴 한데 칼이 장기긴 하죠.”
“거참. 종잡을 수가 없군.”
이 말과 함께 되살아난 칼잡이가, 다시 한번 덤벼든다.
이번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서 목을 잘라낸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자세히 보니, 주문진에서 망자의 칼잡이들이 계속해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수는 대략 8명.
아더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까다롭네요.”
“한 놈이라는 말은 안 했지.”
대답과 함께 8개의 칼날이 쇄도한다.
아더는 노움의 능력을 사용해 그 칼날을 방어하는 한편,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공간 도약을 사용하려 했지만, 바이에른 피가 거부했다.
아무래도 도약을 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럼 돌파하는 수밖에 없겠네.’
생각과 함께 아더가 칼을 고쳐잡는다.
그리고 덤벼드는 망자의 칼잡이들에 맞서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촤악-!
흩뿌려지는 피와 함께 망자들의 목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한 망자들이었기에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더는 놈들의 두 발을 잘라냈다.
끼엑!
발이 잘렸음에도 쓰러지지 않고 무기를 집어 든 칼잡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아더는 칼잡이들의 손목까지 잘라냈다.
그런데도 움직이려 하자, 이번에는 사지를 도륙 내 버렸다.
그렇게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칼잡이들의 신체를 도륙 내는 아더의 모습에 네크로맨서가 눈을 끔뻑였다.
‘정육점 백정도 아니고, 저런 식으로 칼질을 한다고?’
감탄에 가까운 탄성과 함께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용병은 예전에 네크로맨서 혹은 흑마법사를 만나 본 적이 있는 걸까?
그래서 저런 식으로 칼질을 하는 거고?
이 이유가 아니라면, 저 모습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네크로맨서가 질문을 던졌다.
“자네 혹시 예전에 네크로맨서를 만난 적 있나?”
“네?”
“아니면 흑마법사를 만난 적이 있다든가.”
질문에 마지막 칼잡이의 팔과 다리를 모두 잘라낸 아더가 대답했다.
“어···. 만난 적이 있기는 하죠.”
“그때도 이런 식으로 대응했나?”
“네?”
“그러니깐 당황하지 않고 칼질을 했냐 말이네. 보통 이런 광경을 보면 움츠러들기 마련이거든.”
아더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음···. 아뇨. 한 분은 그냥 싸웠고, 한 분은 대화만 나눴습니다.”
“대화만 나눴다고?”
“네. 하늘섬이라는 조직에 있는 흰 수염 님이란 분이었는데 대화만 나눴습니다.”
네크로맨서의 눈이 치켜떠진다.
하늘섬의 흰 수염.
전설적인 흑마법사이자,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암흑가의 세력.
그는 모든 흑마법사의 목표이자, 살아 있는 신화였다.
그래서 네크로맨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답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하지, 왜 거짓말을 해?”
“네?”
“네 놈 따위가 어찌 흰 수염 님을 만나? 설령 만났다고 쳐도 어떻게 살아 있고?”
아더가 눈을 끔뻑였다.
그 사이 네크로맨서가 흰 수염에 대해 열띤 설명을 시작했다.
“그분은 악마와 직접 계약한 모든 흑마법사의 신화!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모든 흑마법사가 흔적을 뒤쫓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없지! 왜냐고? 그분은 제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살려 주지 않거든! 쓸모가 있는 놈들을 제외···.”
네크로맨서의 말이 끊긴다.
어느 사이엔가 사용할 수 있게 된 공간 도약으로 네크로맨서의 입에 아더가 칼을 박아 넣었기 때문이다.
“아 말씀 중에 죄송해요.”
“….”
“하지만 되살아나시죠?”
훌쩍 물러선 네크로맨서가 찢어진 상처를 복구하며 중얼거린다.
“미친놈.”
“그런 소리를 종종 듣죠. 그런데 앞으로 몇 번 죽으면 진짜로 죽는 건가요?”
네크로맨서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지켜보던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네크로맨서의 손에 들린 것이, 텔레포트 스크롤.
원하는 위치로 순식간에 전송할 수 있는, 소비형 아티펙트였기 때문이다.
그 탓에 빠르게 총을 갈겼지만, 네크로맨서는 죽지 않고서 중얼거렸다.
“그걸 가르쳐 주겠나? 1층에서 보지. 자네한테 걸맞은 상대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대답과 함께 네크로맨서가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가 혀를 찼다.
‘까다로운데… 이렇게나 죽여도 되살아나는 걸 보니 진짜 네크로맨서야.’
그 탓에 아더는 난데없이 펼쳐진 이 난관을 어찌 돌파할지 고민했다.
‘윌렛 어르신이 경고하기는 했지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어떻게 하지?’
혼자서 도망치는 것쯤은 지금도 가능했다
공간 도약을 통해 빠져나가면 그만이니.
하지만 이번 의뢰는 타르탄 사장의 호위였고, 퓨리스의 공간 도약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럼 타르탄 사장을 호위하면서 조금 전 네크로맨서를 상대해야 한다는 건데···. 흠.’
당연하지만 누군가를 지키는 것은 누군가를 죽일 때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아더가 고민할 때였다.
놓치고 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다.
“어? 그러고 보니 타르탄 사장님은 무사하시나?”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고개를 든다.
다행히, 타르탄 사장의 집무실은 멀쩡했고 그 너머로 느껴지는 숨소리 또 한 거칠기는 하지만 생생했다.
일단 의뢰인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 아더가 걸음을 돌렸을 때였다.
희미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요.”
“…?”
“살려 주세요···.”
아더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지니를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어라? 지니 씨 아직 살아 계시네요?”
그의 물음에 지니의 뾰족한 귀가 부르르 떨린다.
허나 어떠한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아더를 애처롭게 바라봤다.
그 시선에 머리를 긁적인 아더가 그녀의 배에 난 상처를 꾹 짓눌렀다.
“…!”
고통에 그녀의 얼굴이 형편이 없이 일그러진다.
예쁘장한 얼굴이 귀신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사이 지니의 상처 부위에서 탄알을 빼낸 아더가 감탄한다.
‘육체 강화를 통해 버티고 있었네. 좋은 실력인데?’
어쩌면 상대가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면 인질로 붙잡히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수고하세요.”
“….”
“탄알은 빼 드렸으니, 상처를 치료하면 음···. 살 수는 있을 겁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아더가 타르탄 사장의 집무실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지니가 아더의 발목을 덥석 붙잡는다.
“제발···. 살려 주세요···.”
“….”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제발요···.”
아더가 고개를 돌린다.
항상 날이 서 있던 지니의 얼굴에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가시 돋친 장미 같던 지니에게서 이런 면모를 볼 줄 몰랐던 아더가 눈을 치켜뜬다.
그리고 고민하다 질문을 던졌다.
“시키는 거 뭐든지요?”
“네….”
“어떤 거든 할 거예요?”
“네···.”
대답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다, 조금 전 격전에서 주운 포션 하나를 꺼냈다.
“…!”
지니의 눈동자가 쉼 없이 떨린다.
저 포션만 있으면, 지금 배때기에 난 상처를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1층에 난입한 언데드를 처리하다, 주운 포션이에요, 지니.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당신한테 포션을 쓰는 것보다 저한테 쓰는 게 이득이죠.”
“….”
“이번 임무에서 당신이랑 상성이 나쁜 편이잖아요. 저격수이신 것 같은데, 네크로맨서와는 최악의 상성이죠. 그래서 쓰기가 아깝네요.”
설명에 지니가 입을 벌린다.
‘저 미친놈이 뭐라 지껄이는 거야!!’
아무리 동료 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저게 할 말인가?
그것도 자기가 이런 꼴을 만들었는데?
하지만 지니는 곧 그럴 수 있다 판단했다.
‘이 새끼···. 정상이 아니야. 맛탱이가 갔어.’
네크로맨서와의 대화.
그 과정에서 보여준 칼 솜씨.
하나 같이 비정상적인 것들뿐이지만, 제일 압권인 건 아더의 표정이었다.
자신을 쏠 때 보여주었던 아더의 표정.
그때 마주쳤던 시선에는 자그마한 감정의 편린조차 엿볼 수 없었고 그래서 지니는 알 수 있었다.
저놈은 미쳤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 미친놈한테 느끼는 두려움보다 생존 욕구가 더 컸다.
지니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아더를 설득했다.
“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요···.”
“어떤 면에서요?”
“살려만 주시면 던 님의 뒤를 봐 드릴게요. 저격수의 지원이 있으면, 네크로맨서를 상대하기 편하실 거예요. 거기다···. 윌렛 어르신에게 연락할 수단 또한 제가 가지고 있고….”
설명에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지니를 살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뭔가 빠트린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아더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지니 씨.”
“네에….”
“살려드릴게요.”
“…!”
지니가 놀라 입을 벌린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대신요. 그쪽 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
“많이도 말고 한 움큼. 딱 그 정도면 됩니다.”
이 말과 함께 아더가 방긋 미소짓는다.
“당신 피하고 포션. 이렇게 교환하면 살려는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