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8화 (18/265)

제18화

책 속의 글귀가 살아 움직여, 아더의 시야를 빼앗았다.

[바이에른의 시초. 데니안 바이에른은 결국 천사와 결혼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 인간의 껍데기를 취한 타락한 천사와 말이다.]

글자를 보면서 넋이 나간 적이 없던 아더로서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이 기분을 즐기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책에 새겨진 글자는 여기서 끝이었다.

텅 빈 페이지를 바라보던 아더는 정신을 일깨우고서 중얼거렸다.

‘하필 제일 중요한 장면에서 끝나네. 마치 의도적으로 끊긴 것처럼···.’

책을 덮은 아더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구를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이 책의 천사는···. 내가 아는 그 천사일까?’

던져진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천사는 상식선에서의 천사하고는 꽤 거리가 멀었다.

그 증거로 데니안 바이에른이 결혼했다는 존재는 인간이었다.

꽤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

그 탓에 천사라 묘사한 것은 어쩌면 비유적인 표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외모가 아름답다고 해서 천사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진짜로 천사일지도 모르겠네.’

생각과 함께 아더는 다시 고민했다.

케인은 이 책에 바이에른의 혈통과 관련된 비밀이 숨어있을 거라 했다.

그리고 그 비밀 때문에 바이에른을 노린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쳤고.

‘즉···. 케인 그 사람이 날 노리는 건, 바이에른의 핏줄이 천사라서 그런 거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가정에 아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신을 믿지 않는 아더로서는 당연하지만 천사도 믿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정은 너무 심한 비약이었다.

‘하지만 고려할 가치는 있어 보이네···. 케인 도르문트. 그 사람이 바이에른을 노리는 건, 핏줄과 관련 있다, 딱 이 정도로.’

결론을 내린 아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만 해석해도 꽤나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전생에서는 이 이유조차 밝혀내지 못했으니 말이야.’

그 후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아더는 잠든 노움과 운디네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밤하늘을 밝히는 둥근 보름달과 그 보름달 주위를 수놓은 수많은 별자리.

지나치게 아름다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더는 다시 상념에 빠졌다.

그렇게 흔들리는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상념에 빠져있던 아더는 중얼거렸다.

“슬슬 떠날 때가 오는 것 같네.”

케인 도르문트의 등장.

제인 도르문트와의 대련.

미래에는 없었던 변수들이었고, 그 탓에 상황과 흐름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아더는 느낄 수 있었다.

‘미래가 변했단 소리.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사건이 진행되는 방향으로.’

그리고 달라진 상황에서 일어날 사건들은 대화가 통할 가능성이 전무했다.

결국, 칼을 들어야 하고 힘이 필요했다.

허나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도 약했다.

‘제인 도르문트는···. 사실 적수라 평가하기에 민망한 실력이지. 앞으로 쓰러트려야 할 상대는 케인 도르문트, 칸 마드리드. 이 두 남자니깐.’

그뿐만이 아니라 칸 마드리드를 도와 바이에른 가문을 위협한 여러 세력.

그들과 비교해도 실력이 떨어졌다.

그 탓에 아더는 오늘의 승리를 크게 자축하지 않았다.

이겼지만, 한계를 깨달았고 부족한 점도 여러모로 많았으니.

그래서 더더욱 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어떤 위험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말이다.

‘가문의 힘을 빌릴 수도 있지만… 역시 한계가 있겠지?’

지금 당장 요넬에게 부탁해 영약을 받아 마나를 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영약으로 늘릴 수 있는 마나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바이에른 혈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바이에른 혈통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피를 섭취해야 해. 그것도 이질적인 능력이 담긴 피로.’

그리고 그 혈통이라 불리는 피를 얻기 위해서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했다.

프라킬과 같은 혈통의 능력을 지닌 자를 수도에서 다시 만나기란 행운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 혈통을 지닌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역시나 [아케인].’

더 특이한 혈통, 온갖 능력자.

더 나아가 기사와 마법사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제일로 거대한 도시.

그 도시로 가면, 전생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혈통의 능력을 섭취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생 때 그곳에서 꽤나 굴렀으니깐 어쩌면 더 좋은 능력들을 얻을지도 모르겠네.’

미래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몇 번의 사건을 통해 깨달은 바 있다.

그건 아케인으로 가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전과 달리 훨씬 빠르게 그리고 계획적으로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저택을 떠날수록, 이득이었다.

문제는 저택을 어떻게 떠나냐는 것이었다.

‘음… 이대로 도망치는 건 절대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5월 13일.

17번째 생일날이 불쑥 찾아왔다.

* * *

제국의 수도가 또 한 번 들썩였다.

“아니···. 진짜야? 그 제인 도르문트가 아더 바이에른에게 졌다고?”

“진짜라니깐! 그것도 한 끗 차이로 진 게 아니라, 아예 가지고 놀았다더군!”

“온몸에 칼자국을 내면서 가지고 놀았다지? 그래서 그 망나니 제인 도르문트가 오줌까지 지렸다던데!”

그 이유는 역시나, 아더 바이에른과 제인 도르문트.

두 거대 가문의 대련 때문이었다.

사실 어느 쪽이 이기건 파장이 있을 터였지만, 그 누구도 아더 바이에른의 승리를 예상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인 도르문트의 검술 솜씨는 꽤나 정평이 나 있었다.

19살이란 나이에 2서클.

어쩌면 3서클을 바라볼지 모르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그 대련 상대인 아더 바이에른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벙어리였다.

갑작스러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더 바이에른의 승리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버렸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인 만큼 엄청난 파장이 제국 전체를 휩쓸었다.

귀족들은 물론이고, 평민들까지.

모두가 이 대련을 두고 떠들어 대는 것이 그 방증이었다.

심지어 황실에서조차 이 대련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탓에 모두가 케인 도르문트.

차세대 실권자라 불리는 그가, 이번 사안을 절대로 곱게 넘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황태자로 유력한 2황자의 권위를 등에 업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의 입지가 이번 사건으로 처음 흔들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케인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약속되어 있던 환송식마저 취소하며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의외의 모습에 가지각색의 추측이 또 한 번 쏟아져 나올 때였다.

아더는 침대에서 일어나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더, 안녕하세요!]

[… !]

운디네와 노움의 인사에 아더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런 아더를 향해 운디네가 손짓한다.

[씻겨 드릴게요, 아더!]

작은 물보라가 허공에서 일며, 아더의 얼굴을 말끔히 씻어낸다.

잠기운을 몰아낸 아더가 기지개를 켰다.

‘흠...멍하네.’

지난 며칠간, 저택을 어떻게 떠날지 고민해서인지 몰라도 매일 같이 잠을 설쳤었다.

허나 어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깊이 잠들었고, 그 덕에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아침 햇살의 따스함을 멍하니 즐길 때였다.

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응 들어와.”

안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동시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나의 손에 웬 이상한 상자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야, 안나?”

“…선물입니다. 공자님.”

“선물?”

“네. 그런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네요. 최대한 고른다고 골랐는데···.”

말을 흐린 안나의 모습에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오늘이 내 생일이던가?”

“네. 그래서 제가 어젯밤 수련은 접어두시고 일찍 들어가 주무시라 했잖아요.”

이 말과 함께 안나가 살포시 웃었다.

“창피하니깐, 지금 여시지 마시고 나중에 열어주세요. 대단한 선물은 아니니깐 기대는 하지 마시고.”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선물 박스를 매만졌다.

이질적인 종이 질감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럼 식당으로 가실까요? 공자님?”

“…그래,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아더가 걸음을 옮겼다.

그 옆을 안나가 지켰다.

그렇게 식당으로 걸어가던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이에른 저택은, 긴 세월만큼이나 끝없는 증축을 해 온 덕에 수도에서 손꼽는 규모를 자랑했다.

그 탓에 제 방에서 식당으로 가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여러 시종을 매번 마주쳤다.

헌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

매일 같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시종들과 하녀들의 숫자가 매우 적었다.

그 이변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아더가 중얼거렸다.

‘뭐지? 설마 또 무슨 일이 난 건가?’

일전 도르문트 백작이 방문했을 때랑 비슷한 느낌에 아더의 눈길이 가늘어졌다.

그 속에서 안나가 식당으로 들어서는 문의 고리를 잡으며 말한다.

“음… 공자님. 혹시나 하는 말인데 너무 기뻐서 우시면 안 돼요?”

“…? 그게 무슨 말이야 안나?”

안나가 살포시 웃는다.

그와 동시에 닫혀 있던 식당의 문이 열리고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다.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합니다. 소공자님!”

* * *

아더가 눈을 끔뻑인다.

“소공자님 열일곱 번째 생일 축하드립니다!”

“큰 건 아니지만···. 이 시계.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열일곱 살이면 성인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건 저희 요리사들이 돈을 모아 산 넥타이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사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선물과 축하 인사.

전혀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 아더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처음 겪어 보는 생소한 일에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허나 바이에른 가신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얼어붙은 아더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음을 터트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제야 좀 애다우시군.’

‘그래… 이게 열일곱 살이지.’

‘항상 굳어 계셔서 걱정했는데···. 이런 모습도 보일 줄 아시고 다행이야.’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아더가 대답했다.

“어···. 감사합니다?”

어딘가 애 같지 않은 구석이 있던 소공자가 당황하는 모습에, 바이에른의 가신들의 마음이 절로 푸근해졌을 때였다.

한 소녀가 아더를 향해 뛰어왔다.

“오빠!”

“아이린?”

“응응 아이린이야, 생일 축하해!”

외침과 함께 아이린이 아더를 향해 커다란 곰 인형을 건네주었다.

아더의 관점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솜덩이에 불과한 물건이었지만 아이린이 건네주니 그 의미가 무척이나 남달랐다.

“선물이야! 내가 제일 아끼는 인형이야!”

아더가 아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곰 인형을 받아들었다.

그 후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쁘지 않네. 이 선물이 쓸모가 있건 없건.’

이래서 사람들이 선물을 받으면 좋아하는 건가?

생각과 함께 아더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는 걸 넘어 미소까지 지었다.

그런 아더의 표정에 모두가 흡족한 미소를 띠었을 때였다.

아더를 둘러싸고 있던 바이에른 가신들이 일제히 물러서며, 길을 터주었다.

이변을 느낀 아더가 고개를 들자, 어느 사이엔가 다가온 요넬이 보였다.

“생일 축하해, 아들.”

아더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감사해요, 어머니.”

“그래···. 그럼 어떤 선물을 받을지 정했니?”

아더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리고 어머니한테는 이미 선물을 받았는걸요.”

그의 대답에 요넬이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 장의 편지지를 건네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주고 싶은 선물이구나.”

“개인적으로 주고 싶은 선물이요?”

“그렇단다. 우리 바이에른의 미래···. 그리고 아더, 너의 미래.”

아더의 눈이 치켜떠진다.

동시에 요넬이 눈빛을 빛내며 아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미래를 위한 선물이···. 이 편지지에 담겨 있단다. 한 번 뜯어보겠니?”

아더의 시선이 편지지로 향했다.

그 후 밀봉된 부분을 조심스레 뜯었다가 보고는 놀라 중얼거렸다.

“어…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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