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미친놈-17화 (17/265)

제17화

귓가로 들려오는 거친 함성에 아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아아아--!!”

“미친 공자님이 제인 도르문트를 이겼어!”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언제 저렇게 강해지신 거야? 우리 공자님 맞아!?”

기사, 집사, 하녀.

바이에른의 이름을 단 모두가 제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그 탓에 아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바닥에 쓰러진 제인 도르문트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환호할 거리가 아니었다.

온몸에 칼자국이 난 것도 모자라 오른팔이 잘려 오줌을 지린 그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끔찍하다 못해 처참했으니.

즉, 저렇게 기뻐하며 환호할 거리가 아니란 소리다.

‘아무리 적이라도 이런 꼴로 만들면···. 보통은 환호하기보다는 겁을 먹지 않나?’

그래서 아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이에른 가신들을 바라보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나았고 비명보다는 환호가 나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환호하는 바이에른 가신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아더는 케인을 바라보았다.

‘오호….’

표정에서 감정이 사라진 케인의 미간은 매우 깊게 주름져 있었다.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아더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케인은 조금 전보다 더 화가 나 있었다.

그 탓에 아더의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간 순간, 아더를 지켜보던 바이에른 가신들의 환호 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와아아아-!!”

승자가 내비친 자신감 가득한 미소라 생각한 것이다.

바이에른 저택이 들썩일 정도로 아더의 이름이 연호되자, 여태껏 침묵하던 케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치워라.”

명령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도르문트 기사들이 재빨리 제인을 대리고 연무장을 빠져나간다.

그것을 확인한 케인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에 맞추어 아더가 제안한다.

“제가 이긴 듯한데, 약속한 걸 들을 수 있을까요?”

“….”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케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허나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하더라도, 그의 냉철한 이성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이성이 말하길, 지금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 봐야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계산 착오군. 하지만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중얼거림과 함께 케인이 눈빛을 빛낸다.

머릿속에서 아더 바이에른의 검술을 되새기던 그는 품속을 뒤져 책 한 권을 휙 던졌다.

“음? 이게 뭐죠?”

책을 받아 든 아더가 질문을 던졌지만, 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몸을 돌린 그는 그대로 연무장을 빠져나갔고, 고요하게 침묵하던 도르문트 가신들이 뒤늦게 그를 따랐다.

그렇게 30명의 도르문트 가신들이 꼬리를 말며 저택을 빠져나가자, 바이에른 가신들의 환호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와아아아-!

귀청이 얼얼할 정도의 환호 속에서 아더는 케인이 건네준 책을 펼쳐보다 눈을 치켜떴다.

마법이 걸린 페이지에 적힌 첫 문구가 꽤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데니안 바이에른. 바이에른 가문의 시초라 불리는 남자의 이름.’

그 탓에 책을 바라보는 아더의 눈길에 흥미가 깃들 때였다.

귓가를 때리던 환호 소리가 갑작스레 멈추었다.

그 이변에 아더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연무장에 모인 바이에른이 두 갈래로 갈라져 한 사람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더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음… .어머니?”

* * *

요넬을 뒤를 따르던 아더는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전 케인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였다는 감정도, 제인의 오른팔을 베어냈다는 기쁨도 지금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대신, 단단히 화가 난 듯한 요넬의 뒷모습에 알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 하지만 내 잘못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

케인을 도발했고, 멋대로 대련 약속을 잡았다.

이것만 해도 문제인데, 그 과정에서 제인을 참혹하게 썰어버렸다.

평범한 부모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기행들.

그 탓에 아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했다 빌어야겠어. 잘못하기도 했고···.’

그 사이 요넬이 텅 빈 집무실로 들어갔다.

뒤에 선 아더도 눈치를 보다, 한 박자 늦게 요넬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

방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요넬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더를 바라보았고, 아더는 그 시선이 무서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소리 한 점 없는 침묵이 계속될 때였다.

요넬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했다.

아더가 슬그머니 걸음을 옮겨, 그런 요넬의 앞에 다가갔을 때였다.

요넬이 두 팔을 뻗어 갑작스레 안겨 왔다.

“…?”

갑작스러운 포옹에 아더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요넬이 입을 열어 물었다.

“…잘못한 건 아니, 아더?”

아더가 정신을 차리고서 대답했다.

“네, 넵 어머니.”

“뭘 잘못했니?”

“그… 어머니의 말을 어기고 멋대로 고집을 부린 점이요.”

요넬이 아더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아더는 제 가슴팍의 상의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울고 계셔.’

생각과 함께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 때였다.

요넬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설명한다.

“그게 어째서 네 잘못이니?”

“….”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 자체가 내 잘못인데.”

정신을 차린 아더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머니?”

“말 그대로란다. 이번 일에 네 잘못이 어디 있겠니?”

씁쓸히 이 말을 중얼거린 요넬이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잠을 지새우며 생각했단다. 그토록 착한 내 아들이 왜 이런 고집을 부릴까? 그것도 대련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면서까지. 그러다 보니 답이 나오더구나.”

“….”

“날 위해서. 나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더구나. 케인 그 양반이… 분명 협박을 했겠지. 대련을 하지 않으면, 네 어미를 위협하겠다… 이런 식으로 분명 너를 꼬드겼을 거야.”

아더가 끔뻑이던 눈을 치켜떴다.

그건 아닌데요, 어머니?

서로 충분히 합의해서 한 대련인데?

그사이 요넬이 다시 한번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아들아.”

“….”

“너에게 기대서 숨어버린 것도 모자라···. 널 이용하려 한 이 어미를 부디 용서하거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착각을 하신 덕에 상황을 넘긴 건 좋았지만, 반대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감정 사이에서 아더가 고민할 때였다.

“어?”

탄성과 함께 아더의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린다.

따스하면서 짭쪼름한 무언가.

그것은 눈물이라 불리는 것이었고, 심장이 멎는 순간에도 나오지 않았던 분비물이었다.

그래서 아더도 놀라고 요넬도 놀라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요넬이었다.

“아, 아더? 왜 우는 거니?”

“…모르겠어요. 그냥 흘러나오네요?”

“이리로 오너라. 네가 뭘 잘못했다고… 뭘 잘못했다고 우는 거니… 그 힘든 일을 멋지게 이겨낸 네가 뭘 잘못했다고….”

말을 흐린 요넬이 오열한다.

그 모습에 아더는 탄식을 터트렸다.

‘아….’

역시 어머니가 착각을 해 상황을 넘긴 것보다, 눈물을 흘리시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그 생각과 함께 아더가 다시 요넬을 껴안았다.

“죄송해요, 어머니.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아더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요넬이 대답했다.

“…아니다. 다만 이거 하나만 생각해주렴. 나는 이 세상에서 아이린과 아더. 너희 둘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네. 당연하죠. 저도 어머니가 제일 소중해요.”

요넬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아더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던 중, 어느 사이엔가 흘러내리던 눈물이 멈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네…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니깐 눈물을 흘린 거야.’

중얼거림과 함께 아더가 입꼬리를 올렸다.

따끔거리는 눈가가 아프긴 했지만, 수년 만에 흘려 보는 눈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 * *

울다 지친 요넬을 잠재운 아더는 방으로 돌아왔다.

노움과 장난을 치던 운디네가 그런 아더를 반겼다.

[아더 왔어요!?]

아더가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았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 모습에 노움과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더…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너무 좋아 보이는데?]

“아. 제 표정이 좋아 보여요?”

[네! 평소보다 훨씬 좋아 보여요!]

운디네의 말에 아더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울었거든요.”

[……?]

“그래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너무 오랜만에 흘려 보는 눈물이라 그런지 몰라도, 살아 있다는 감각이 생생하더라고요.”

아더의 설명에 운디네의 표정이 모호해진다.

‘… 울어서 기분이 좋다고?’

보통 눈물을 흘리면 슬퍼하는 게 정상 아닌가?

혼동을 느낀 운디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옆에 있던 노움이 바들바들 떨었다.

‘울면서 기분이… 좋아졌다고? 혹시 또 누군가를 때린 걸까?’

그래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거 아닐까?

말이 안 된다 생각하지만, 제 주인이라면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한 노움이었다.

그사이 자리에 앉은 아더가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운디네가 질문했다.

[오늘 밤은 운동하러 안 나가실 거예요?]

“응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아더가 케인에게서 받은 책을 보여 준다.

운디네가 감탄을 터트렸다.

[진짜 낡은 책이네요? 그런데 마법이 걸린 책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아더가 조심스레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케인 도르문트… 그 사람이 좋은 걸 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이왕 줬으니 읽어는 봐야지.’

생각과 함께 아더가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그렇게 독서를 시작한 아더를 위해 두 정령이 촛불을 켠다.

화르륵-!

타오르는 촛불의 음영에 기대어 아더가 페이지를 넘긴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책을 넘기는 소리와, 간간이 흘러나오는 숨소리뿐.

그 낮지만 무거운 침묵 속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아더의 손이 점차 빨라질 때였다.

어느 사이엔가 도달한 마지막 페이지를 바라보던 아더가 눈을 치켜떴다.

“흠… 이게 뭐지?”

이 말과 함꼐 아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깐···. 지금 내가 [천사]의 후손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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