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26화 (126/156)

사는 길과 죽는 길 (2)

* * *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갑자기 전화해서는…….

‘죽는 길입니다.’

하지만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허무맹랑하고 앞뒤 맥락없는 말이지만.

내가 봤던 김정식의 아우라를 생각했을 때.

분명 의미 없이 하는 말은 아닐 것 같았다.

[설명을 좀…….]

[흠…….]

김정식은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지금 오리고깃집 사장이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뭐야? 오리고깃집도 알어?

[무슨 수작 말씀이시죠?]

[태평님 만난 이후로 등기를 나눌 준비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

[공동 등기로 재등록하여 지분거래를 하려는 겁니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의 말을 곰곰이 되씹어 봤다.

그러니까…… 땅 주인이 한 명인데, 이를 둘로 나누려는 뜻인 거 같은데.

[왜죠?]

[그 땅을 태평님 맘대로 못 쓰게 하고, 본인의 권리 행세를 하기 위함이죠.]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땅 팔려고 내놓았다면서,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나한테 그런다는 말인가?

엄청나게 큰 땅도 아니고…….

[미등기 전매도 아니고, 몇만, 몇천 정도의 필지도 아닌데…… 겨우 이백여 평 가지고 그런 짓을 할까요?]

수화기 너머 말이 없다가, 김 의원이 말했다.

[사람에 따라 가치의 차이는 다른 것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잘 믿기지 않았다.

[그래요. 어쨌든 김 의원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저한테 왜 그러는 걸까요?]

[그냥 사람 욕심 아니겠습니까? 돈은 필요한데, 땅 팔기는 아깝고.]

[…….]

[그렇게 사기꾼이 되는 거죠.]

훗. 김정식은 옅은 웃음소리를 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 사기꾼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돈이 사기꾼을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사기꾼에게 당할 뻔했다는 건가?

[별거 아닙니다. 그냥 그런 일이 생길 뻔한 거예요. 이제 아셨으니까 피하면 되는 거고.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놀랐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이런 식으로 날 안심시키려 했다.

사실이다. 난 지금 몹시 놀랐다.

오리고깃집 사장의 표정.

그와 나눴던 대화.

그 모든 것을 되짚어 봤다.

뭔가…… 특이점은 없었는데.

[태평님?]

한동안 말이 없자, 김정식이 날 불렀다.

[아, 네네.]

[급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 좀 급하셨죠?]

[…….]

[급하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급해서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 속 어딘가를 송곳으로 찌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가격 네고가 잘되면, 반드시 의심을 해보셔야 합니다.]

[…….]

[좋은 거 치고 싼 거는 없습니다.]

난 묵묵히 김 의원의 조언을 들었다.

[좋은 걸 싸게 사려는…… 작은 가능성에 애쓰지 마시고.]

김 의원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좋은 걸 제값 주고 사십시오. 그게 바로 사는 길입니다.]

빵빵―

빨리 오라는 듯 차 경적이 울렸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김 의원에게 말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일단 주신 정보에 대해서는 저희도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네, 이 일 마무리 하시고 저 한번 보시죠. 저에게 좋은 정보를 얻으실지…… 누가 압니까?]

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툭.

전화를 끊은 후.

난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무슨 통화를 그렇게 길게 해? 무슨 일 있어?”

변 이사의 물음에 난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리고깃집 사장. 지금 좀 만나죠.”

* * *

회식은 취소했다.

직원들을 가까운 역에 내려준 후.

나와 변 이사는 곧바로 오리고깃집 사장을 만나러 갔다.

가는 길에 전화로 들은 얘기를 변 이사에게 전해주었다.

“진짜?!”

“네.”

“그 양반 그렇게 안 보이던데?”

“…….”

변 이사는 도리어 내 정보의 출처에 대해 의심하는 눈치였다.

“믿을만한 정보야?”

김 의원, 헛소리할 위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게 그럴 이유도 없고.

“네.”

“누군데?”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변 이사는 미간을 좁히고, 눈알을 굴리다가 말했다.

“강 사장님 셀럽 되어서, 고급 정보처가 생긴 건가?”

“…….”

“근데 만약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니면 어떡해?”

“그래서 지금 확인해 보자는 거잖아요.”

오리고깃집 사장을 만나서 어떻게 테스트할 것인지에 대해 변 이사에게 말해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면 확실하겠네.”

오리고깃집 사장과 만났던 ‘런던 바게트’ 앞에 도착했다.

길 건너에 ‘PC방’이 보였다.

“이사님 먼저 들어가 계세요. 출력만 해서 바로 올게요.”

“그래.”

런던 바게트 안.

오리고깃집 사장은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옷을 입고 왔고.

변 이사와 웃으며 대화 중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리고깃집 사장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인사했다.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강 사장님. 처음 뵈었을 때는 제가 몰라뵈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너무 젊으셔서, 그냥 영업사원인 줄 알았어요. 하하.”

“…….”

변 이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러실 수 있죠. 괜찮습니다.”

난 변 이사와 눈을 한번 마주치고.

서류 가방에서 바로 종이를 꺼내었다.

“제가 집이 멀기도 하고……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요. 하하.”

‘계약서’

내 손에 든 종이를 보고 오리고깃집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희가 생각한 가격에 비해 많이 높기는 하지만…… 저번에 최종 제시하신 가격 20억에 매입했으면 합니다.”

“오…….”

오리고깃집 사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난 그의 표정 변화를 주시하며 물었다.

“혹시 그사이 마음 변한 거 아니시죠?”

“아~ 좀 거시기하긴 한데. 해야죠, 뭐. 20억이면 너무 싸긴 한데~”

말만 이럴 뿐 싱글벙글이다.

좋아 어쩔 줄 모르는 표정.

“이견 없으시면 지금 바로 계약하시죠.”

“서명으로 해도 되죠?”

“물론이죠~”

오리고깃집 사장은 계약서에 쓰인 ‘20억 원’만 보고는 서명하려 했다.

“잠시만요.”

“네?”

“계약서 꼼꼼히 보셔야죠. 특히 ‘특약사항’ 자세히 봐주세요. 제가 읽어드려요?”

“됐어요~ 다 봤어요~ 20억 원.”

나는 그에게 계약서를 넘겨받곤 말했다.

“잠깐만요.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그를 골탕 먹이고 싶은 마음에 사인까지 하도록 두고 싶었지만.

과정 또한 법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

“자, 그러면 제가 특약사항을 설명해 드릴게요. 잘 들으신 후 서명하세요. 뭐, 너무 당연한 얘기이긴 한데…….”

난 계약서의 특약사항을 가리키며 읽었다.

“위 계약과 관련하여 특약사항은 모든 조건을 우선한다. 등기상태는 00월 0일 00시 현재 상태로 새로운 매수자로 등기 완료될 때까지 유지하며…….”

오리고깃집 사장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지고 있었다.

“만약, 등기인을 변경 혹은 담보 설정을 할 경우. 계약금의 50배를 배상하고…….”

“뭐? 50배?!”

오리고깃집 사장의 눈두덩이 덜덜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마저 읽었다.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지며 피해자는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위 특약사항은 모든 조건을 우선한다.”

오리고깃집 사장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고.

난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알아보니까, 이 부지 30억 원에 내놓으신 것도 비싼 게 아니더라고요. 먼 미래이긴 하지만 토지개발계획도 있는 거 같고.”

“…….”

“20억 원에 살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꿀꺽.

오리고깃집 사장은 벙어리가 된 듯 침만 삼켰다.

“자, 특약사항 설명 끝났으니까 서명하시죠.”

오리고깃집 사장은 펜을 잡은 채로 계약서 위에서 손을 덜덜 떨기만 했다.

“뭘 그렇게 망설이세요? 혹시 뭐 분할 등기라도 하려고 했어요?”

그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날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걸 어떻게…….”

“네?!”

오리고깃집 사장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연히 그런 짓은 안 하지!”

“근데 왜 이렇게 당황하세요?”

지금 오리고깃집 사장의 행동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김 의원의 정보가 맞았다.

변 이사는 오리고깃집 사장을 노려보며 씹듯이 말했고.

“젠장.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이 사기꾼 새끼.”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고, 오리고깃집 사장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누가 사기꾼이야! 누가?! 둘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사장님.”

난 그를 조용히 불렀다.

“사기꾼 아니면 서명하시면 돼요. 어서 하시라니까요?”

“…….”

“계약 이후에 등기상태와 담보 설정 변경 안 하는 건 기본 아닌가요? 별것도 아닌 특약사항 때문에 이럴 필요 없잖아요.”

“…….”

오리고깃집 사장은 벙어리가 되어 눈알만 굴렸다.

“협의한 대로 가면 되는 겁니다. 여기 사기꾼은 없어요. 오케이?”

난 씩 웃고는 펜을 들었다.

“그럼 저 먼저 사인 들어갑니다~”

난 먼저 계약서에 서명한 후, 그에게 내밀었다.

“자~ 사장님 차례~”

오리고깃집 사장은 계약서를 보고 동공이 흔들리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잠깐만!”

* * *

오리고깃집 사장의 눈에 ‘20억 원’이 아른거렸다.

이 땅을 20억 원에 팔 수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금액.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냥 마음이 바뀌었다고 할까?’

그는 강태평이 들고 있는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저,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방금 전까지 반말을 하던 오리고깃집 사장은 존댓말로 돌아왔다.

“뭘 더 생각해요? 문제 없잖아요.”

“…….”

“거참 희한하네. 특약사항 설명을 듣고는 왜 생각 좀 해본다는 말씀을 하실까요?”

강태평은 오리고깃집 사장을 매섭게 노려보았고.

오리고깃집 사장은 눈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다른 꿍꿍이가 있으셨나요?”

변 이사는 팔짱을 끼고,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오리고깃집 사장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북―!

강태평은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오리고깃집 사장은 놀라서 강태평을 바라보았고.

북―, 북―, 북―

강태평은 사정없이 계약서를 여러 갈래로 찢었다.

찢기는 소리가 들을 때마다.

오리고깃집 사장은 어깨를 움츠렸고.

고개는 점점 더 푹 꺼졌다.

탁!

강태평은 찢은 종이를 탁자 위에 거칠게 올려놓았다.

“먼저 일어납니다. 치우는 건 사장님이 하세요.”

“…….”

오리고깃집 사장은 벙어리가 되어,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 * *

변 이사의 차 안.

강태평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내일 괜찮으세요? 네네.”

누구와 통화하는지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여튼 덕분에 위기 모면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변 이사는 누군지 너무 궁금했다.

‘어째, 정보 제공자 같은데.’

오리고깃집 사장을 만나기 전 정보 제공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강태평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었다.

통화 내용을 들으며 유추해 보려 했다.

“아, 근데. 회사 직원 한 분과 같이 가도 되나요?”

변 이사는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추진 중인 토지 매입 건 담당 직원이어서요. 직원이긴 하지만 저와 함께 오래 근무한 선배님입니다.”

‘아무래도 날 말하는 것 같은데.’

변 이사는 궁금했지만,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아 네네. 염려 마십시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에~”

뚝.

강태평은 전화를 끊고 나서 변 이사를 바라봤다.

“누군지 궁금하시죠?”

“응. 알려줄 수 있어?”

강태평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변 이사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야. 지금 놀리는 거야?”

“하하.”

변 이사는 살짝 약이 올라서 말했다.

“정보 제공자 맞지?”

“맞아요.”

강태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분이 또 좋은 정보가 있다고, 보자고 하시거든요?”

“…….”

“부담스러워서 이분 신세를 안 지려고 하는데…… 뭐 서로 도우며 사는 거니까. 나도 큰 도움 준 적 있고.”

변 이사는 강태평의 말이 아리송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강태평은 변 이사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내일 같이 가요. 함께 와도 된대요.”

“…….”

“훗.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변 이사는 강태평을 바라봤다.

그는 한껏 미소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밝은 표정.

갈수록 달라져 가는 강태평.

일 추진하는 태도도 그렇고, 좀 전에 오리고깃집 사장을 대하던 단호한 모습은 또 어떤가.

‘어째 갈수록 인물이 되어가네. 진짜 사장다워 보여.’

변 이사는 빙그레 미소 짓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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